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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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던 나는 가능한 방법을 모두 써봤다. 하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정말 지독한 독이구려. 약간 증상을 늦추는 정도가 다이니.”
슈바르체토이펠이 죽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다. 이 정도의 마룡을 드라코 리치로 살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내 SSS등급 스킬 중 하나인 <원형시간축 역행>을 쓰면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서 나 자신에게 밖에 못쓴다는 게 문제였다.
“이 독은… 어떤 어둠의 대군이… 리켄티아투스에서… 드래곤을 치우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세…. 괴이한 힘을 가졌지….”
슈바르체토이펠은 드래곤을 말살하기 위한 독에 당했다고 했다. 그런거라면 옆에 있는 괴종족들이 잘 알지 않을까.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미리 협의된 대로 돕고 있다만 하등한 자여, 주제를 알았으면 좋겠군.”
“뭐?”
“그딴 늙은 도마뱀 따위 죽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역시 한때 리켄티아투스를 지배했던 고등종족이라 그런지 오만함이 장난 아닌데.
“그딴 식으로 나오면 후회할 텐데? 문어 대가리들.”
“흥! 정말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 너 따위 놈이 뭘 어쩌려고?”
내가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건 알지만 숫자를 믿고 기고만장해 하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 마왕급의 기운이 느껴져 확실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물론 뒤집어엎으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슈바르체 영감이 숨넘어가게 생겼다. 봉인지로 간 황제의 일도 있고.
내가 참는 기색이 보이자 괴종족 중 리더로 보이는 이가 비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분한가? 하지만 우리는 사전에 협의된 일 이상을 해줄 의리는 없다.”
나는 그들이 일부러 뻗대고 있는 걸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이쪽과 손을 잡긴 했지만 자존심상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어쩔까 고민하던 나는 독도 해결하고 저놈들도 박살낼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물론 잘 될지 장담은 못하지만.
“어차피 황제는 봉인지에서 시간 좀 끌 거고….”
“뭐라 혼자 중얼중얼거리나? 하등종족.”
비아냥거리는 괴종족의 말투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파도치는 핏물을 베어버리고, 그들의 조직과 사사건건 부딪쳐왔기 때문에 감정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일단 사전에 협의한 게 있으니 참고는 있지만 저 주둥이는 가만둘 생각이 없나보다. 나는 어이없단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SS등급 스킬 <괴종족 소환>을 사용했다.
왕관을 헤매는 자의 능력인 이 스킬은 경우에 따라서 특정한 존재를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 마치 전화번호를 아는 것처럼 상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말이다.
나는 며칠 전의 회담 덕에 발버둥치는 죽음의 비서나 다름없는 최고위층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래서 이 스킬로 그를 불러냈다.
구우우우웅-.
갑자기 둥지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등종족!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감히 분수도 모르고!”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주변에 있던 괴종족들이 동요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닥쳐! 이 새끼들아! 다 쳐죽여 버리기 전에!”
“뭐!”
“어차피 마왕급 힘 밖에 없는 주제에 감히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슈바르체 영감이 이 꼴이 아니었으면 니들 새끼들은 지금 다 대가리 깨져 죽었어! 알아!”
성질을 버럭 내자 그제야 다들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지금 거물이 소환에 응했다는 걸 느낀 듯 안색이 변한 상태였다.
파직. 파지직!
갑자기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 틈에서 시커먼 촉수와 살덩어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세 어마어마한 덩치가 되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세상에… 별의 자식이군……. 생전에 쿨럭! 저걸 또… 볼 줄이야.”
슈바르체토이펠은 나타난 존재를 보고 경악했다. 나 역시 바로 알아봤다. 전에도 한 번 봤던 존재기 때문이었다.
별의 자식은 괴종족 중 최고위급이다. 지난번엔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내게 썰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얕볼 순 없다. 게다가 이번에 나온 별의 자식은 이전과 품격 자체가 달랐다.
존재감이 어마어마하고 정확한 힘은 판별도 안 됐다.
“그대의 요청에 응해 이 자리에 왔다. 발러슈테드.”
“바로 와 줘서 감사하오.”
“당연하다. 요청이 있으면 응하겠다 약속하지 않았나?”
“좋소. 도움이 필요하오.”
“말하라.”
시종장은 느긋하게 촉수를 출렁였다. 아마 인간으로 치면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 같았다.
“그것이 우리 거래의 영역에 부합한다면 그대를 도울 것이다. 발러슈테드.”
“좋소. 당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중 하나를 아직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마시오.”
발버둥치는 죽음의 시종장이라면 보통 위치가 아닌데 내가 은근히 압박하자 지켜보던 괴종족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저마다 소근소근 떠들며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의아해 하는 듯했다.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던 내가 생각 이상의 존재인 걸 알고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설마 자기들보다 한참 높은 발버둥치는 죽음의 시종장까지 몰아붙일 줄은 몰랐겠지.
시종장은 발버둥치는 죽음의 바로 밑에 있는 자 중 하나고, 저기 있는 괴종족들은 하부 조직의 조직원일 뿐이니까.
“그 점은 잊지 않고 있다. 위대하신 분께서도 그대와의 동맹에 만족해하신다. 그대가 충분히 가치있는 것들을 제안해 줬기에.”
“하면 지금 내 요청을 들어주시오. 먼저 여기있는 늙은 드래곤을 구해주기 바라오.”
“흐음…….”
시종장은 기다란 촉수를 뻗어 창백하게 질려있는 슈바르체토이펠을 톡톡 건드리더니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가능한 것이오? 극악한 독이라 했는데.”
“걱정할 필요 없다. 저 독을 리켄티아투스에 푼 존재도 알고 있으니까.”
“그게 누구요?”
“끈적이는 역병이다.”
그 자식도 꼴에 어둠의 대군이라고 죽기 전까지 리켄티아투스의 역사에 여기저기 영향을 끼쳤구나.
“대관절 그가 왜?”
거기까진 시종장도 모른다고 했다.
“뭔가 드래곤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겠지.”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한 종족의 운명이 그리 결정되다니. 죽어간 드래곤들이 들으면 통탄을 금치 못하겠군.
“우리는 드래곤을 효과적으로 제거한 그 독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이제는 드래곤이 거의 사라져 의미가 없어졌지만 해독은 충분히 가능하다.”
쩌억.
촉수 하나가 갑자기 갈라지더니 안에서 기괴하게 생긴 벌레들이 줄줄이 기어 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렬로 걸어가 슈바르체토이펠을 깨물어댔다.
그 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벌레들의 배 부분이 마치 꿀단지 개미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배가 독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임무를 마친 벌레들은 그대로 픽 쓰러져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해독 방식이라니 생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보였다.
“후우! 후우!”
슈바르체토이펠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어느새 안색이 회복된 상태였다. 정말 독을 빨아냈군.
“원하는 요구는 처리했다. 더 바라는 게 있는가?”
“추가적으로 없소.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소이다.”
“뭔가?”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돌려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여길 보고 있는 괴종족들을 쳐다봤다.
“당신들 부하 교육 좀 잘 시켰으면 좋겠소.”
“음?”
“내 동료가 쓰러져 도움을 청했더니 도와주기는커녕 비웃음을 터뜨리더군. 심지어 당신의 주인과 직접 거래를 튼 나를 하등종족이라 비하하기도 했으니 그대들의 기강이 알만 하오이다.”
“…….”
“이 몸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당신이 섬기는 위대한 분의 성공에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소. 한데 그간의 감정 때문에 비아냥거릴 거면 우리 거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겠군.”
며칠 전의 협상으로 나는 발버둥치는 죽음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런 대접이냐고 따지자 시종장은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 점은 사과하지. 일을 급하게 진행하느라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군.”
“앞으로 주의하시오.”
여기까지 대화가 되자 오만하기 짝이 없었던 괴종족들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실감한 모양이었다.
내가 설마 자신들의 상급자를 부를 줄은 몰랐겠지. 역시 불만이 있으면 윗선에 찔러야 해결이 되는 법이야.
“발러슈테드의 말에 대해 변명 거리가 있느냐?”
시종장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묻자 괴종족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하나하나 마왕급의 존귀한 강자들인데, 역시 발버둥치는 죽음을 곁에서 모시는 상위의 존재에겐 소용없었다.
“저희가 어리석어 착각했나이다. 부디 자비를….”
“변명은 듣지 않겠다. 네놈들의 독선적인 행동은 중요한 거래를 그르치게 만들 뻔했다.”
“하오나!”
“시끄럽다! 대가를 치르도록!”
단호한 선언과 함께 아까 나를 제일 무시하던 괴종족의 리더의 몸에서 영혼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시종장은 뽑아낸 영혼을 추잡한 소리를 내며 먹어치웠다. 살덩이 사이로 벌어진 입에선 더러운 침이 줄줄 흘러내린다.
바스스.
희생자의 남은 육체는 재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 끔찍한 광경에 다들 바닥에 기는 것처럼 엎드려 계속 자비를 간청했다.
“발러슈테드.”
“말씀하시오.”
“일단 본을 보였다. 원한다면 저들을 모두 파괴하지. 하지만 종처럼 부리는 게 더 낫지 않겠나?”
“그렇게 하겠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장이 뭐라, 뭐라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렇게 콧대 높던 괴종족들이 내 앞으로 달려와서 일제히 엎드렸다.
“벌레처럼 기겠습니다!”
“필요할 때 가축처럼 부려주십시오!”
한목소리로 외치는 그들이 속으로 얼마나 굴욕감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다시없을 치욕이겠지. 원래 인간은 그들에겐 침팬지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침팬지 하나에게 납작 엎드리고 있으니 그 기분이 알 만하다.
“다음부터 무슨 말을 할 때 생각을 좀 하고 말하도록.”
내 싸늘한 말투에 괴종족들을 바짝 엎드려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혹시라도 내 변덕에 죽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였다.
“이것으로 그대의 요구는 모두 수용했다. 발러슈테드,”
“모든 게 협의된 대로 진행되길 희망하오.”
“이쪽 또한 마찬가지다. 그대는 우리에게 약속한 걸 잊지마라. 커다란 대가를 치르기 싫다면.”
그 말을 끝으로 시종장은 떠났다. 거대한 몸뚱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바닥에 난 거대한 구멍만이 그가 다녀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드래곤과 나눌 얘기가 있으니 물러나 있도록.”
괴종족들이 물러나자마자 슈바르체토이펠이 흥분해 말을 걸어왔다.
“별의 자식은 모두 극히 사납고 성질이 더럽네. 한데 저런 고분고분한 태도라니…… 자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가?”
시종장은 협조적인 태도에 그는 벌린 입을 좀처럼 다물질 못했다.
“저쪽에서 저리 저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내가 저들이 원하는 걸 쥐고 있기 때문이오.”
“대체 그 며칠 전에 무슨 짓을 한 게야!”
“궁금한 것 같으니 말해 드리겠소. 다 듣고 나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을 거요.”
“그것보다 정말 황제가 봉인을 풀 게 둘 건가?”
슈바르체토이펠은 이번 일에 협력하긴 했지만 내게 들은 게 적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소. 봉인은 그에게 넘어갈 것이오. 황제는 아마 발버둥치는 죽음의 화신이 되겠지.”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나! 우리는 고대의 악 앞에서 서로의 방위를 돕겠다고 약속했어.”
확실히 슈바르체토이펠이 지키던 봉인을 황제에게 넘기는 건 맹세를 저버리는 일이다.
“알고 있소.”
맹세를 어기면 내가 아무리 끓어오르는 심연의 총애를 받고 있어도 소용없다. 아니, 그는 총애 여부와 상관없이 칼 같이 일을 처리하겠지.
그게 그의 공정함이니까.
“황제 녀석이 화신이 되면 우리 둘을 가만 둘 것 같나!”
“그 점 역시 잘 알고 있소. 영감은 그저 내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끝까지 지켜보시오. 바람 한 번 불면 떨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끓어오르는 심연에게 잡혀가면 그딴 줄타기는 끝일세!”
“그 부분은 감당할 수 있소.”
“대체 자네 생각을 모르겠군!”
문제는 끓어오르는 심연만이 아니었다. 나는 발버둥치는 죽음과 협력하는 바람에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와 맺은 신의성실의 원칙까지 위배했다.
차후에 이 짓거리가 걸리면 영혼째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에게 잡혀가게 된다. 즉, 줄줄이 약속이란 약속은 다 깨고 있는 셈이었다.
“자넨 정신이 나갔어. 이건 외줄타기 수준이 아니야. 지금 자네의 행동에 몇 명의 초월자가 엮여 있는 줄 아는 건가? 게다가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다가오고,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은 깨지기 직전이야. 이래서 이 행성이 남아나겠나?”
“뭐, 그러면 초월자들의 전쟁 속에 이 행성 구하는 게 쉬울 줄 알았소? 그보다 들어보시오.”
나는 며칠 전 발버둥치는 죽음의 세력과 거래를 하게 된 얘기를 꺼냈다.
“마침 산호공주의 검술 때문에 발버둥치는 죽음의 후원이 필요하던 차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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