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 이루다(3)
아시아 리전에서의 업무를 마무리한 유빈은 길지 않았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아쉬움과 축하를 뒤로하고 뉴욕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작별 인사를 나눌 때, 특히 정이 많이 든 루이자 우드는 눈물까지 훔쳤고 미스터 나라옌은 악수하기 위해 잡은 손을 쉽게 놔주지 않았다.
한편, 타츠야와 리센위는 유빈과 함께 본사 BD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유빈의 직급은 누군가를 다른 리전에서 스카우트해 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위치였다.
타츠야는 제네스 재팬의 전문의약품 사업부 마케팅 헤드로 갈 수 있었지만, 일 년만 더 함께하자는 유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연말에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은 타츠야는 유빈과의 만남이 제네스에서 자신에게 생긴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리센위 역시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승진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유빈에게 배우는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리더십,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 방법, 영업 마인드의 적용, 전략적 사고 등등. 리센위는 능력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자신에게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음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 유빈에게 받은 영향이었다.
본사 BD 헤드로 임명된 유빈의 업무실은 마크 램버트 CEO 집무실의 두 층 아래인 25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시아 본부 BD 매니저 업무실도 널찍하고 좋았지만, 지금 유빈이 들어와 있는 공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3층부터는 임원들의 업무실과 회의실만 있어서 일반 사원을 부르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도 없었다. 완벽하게 독립적인 공간에 개인 비서마저 있어서 출세했다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 공간이었다.
잠시 창밖의 풍경을 감상한 유빈이 내선 전화를 들어 비서를 찾았다.
“미스 하워드.”
“네, 전무님.”
“내일 오전 10시에 BD 부서 미팅 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무님.”
“그리고 BD 부서가 있는 층에 책상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지 알아봐 줘요.”
“공간이요? 누가 새로 오나요?”
* * *
마크 램버트의 지시에 따라 제네스 유럽 리전에서는 유럽의 비뇨기과 의사들로부터 E디테일에 관한 설문 조사를 받았다.
톰 로렌스와 함께 설문 조사 결과 보고서를 확인한 마크 램버트의 미간이 내천(川)자를 그렸다. 의사들의 E디테일에 대한 평가는 유빈이 분석한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미스터 램버트, 그럼 결과를 바탕으로 E디테일 보완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음, 로렌스. 이 자료도 참고하라고 해.”
마크 램버트가 책상 서랍에서 꺼낸 보고서를 그에게 건넸다.
“이건······?”
“유빈 킴이 E디테일 보완점을 정리해서 만든 보고서야. 원인 분석은 설문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으니까 E디테일 팀에 건네줘.”
“미스터 킴이요? ······알겠습니다.”
“BD 부서에서 다른 소식은 없나?”
톰 로렌스는 마크 램버트가 유빈이 본사로 옮긴 후, 부쩍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NEVA에 대한 자기 예상이 틀렸다고 4백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의 사용권을 유빈에게 넘긴 마크 램버트도 대단했지만,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2백억 달러를 다시 넘겨준 유빈도 보통 배짱이 아니었다.
원래 4백억 달러를 쓸 수 있었던 것을 반을 뚝 잘라 마크 램버트에게 넘겼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승부를 겨뤄 보자는 의미였다.
NEVA가 E디테일에 압승을 거뒀지만, 회사 경영 방침에 변화가 없는 마크 램버트에게 던지는 유빈의 새로운 도전장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없지만, BD 부서는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그가 예산권을 가지고 있지만 뭔가를 하려면 절차상으로라도 CEO의 승인을 받아야 하니까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아, 그렇지. 내가 너무 급했군. 그나저나 트루 헬스 아날리틱스(True Health Analytics) 쪽하고는 협상 스케줄 잡았나?”
“네, 날짜는 컨펌했습니다.”
“분위기는 어때?”
“25억 달러(3조 원)의 인수 금액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 왔습니다.”
“음, 자네 표정을 보니 금액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마크 램버트는 적극적이지 않은 톰 로렌스의 대답에 그의 의견을 물었다.
1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태도였다.
에이티제이와의 합병 협상 이후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때로는 마크 램버트의 의견에 반하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 톰 로렌스의 태도를 마크 램버트가 좋은 쪽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금액보다도 왜 첫 인수합병 대상 업체가 트루 아날리틱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ADC(Antibody Drug Conjugate, 항체 약물 결합체) 같은 기반기술력이 있는 바이오벤처를 먼저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ADC도 중요하지. 하지만 큰 그림을 보면 앞으로 제약회사도 신약개발부터 마케팅 전략 수립까지 빅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트루 아날리틱스는 헬스케어 데이터 관리와 분석 분야에서는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니까.”
톰 로렌스는 큰 그림을 그린다는 마크 램버트의 대답에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갸우뚱했다.
마크 램버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빅 데이터 업체에 관심이 없었다.
“미스터 킴도 E디테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4P 중에 예측 모델링(Predictable Analysis)을 언급했어. 그도 분명 관련 회사를 인수하려고 할 거야.”
역시나 마크 램버트는 유빈을 과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톰 로렌스는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CEO가 잡은 방향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두 달이 지나고 마크 램버트는 트루 헬스 아날리틱스의 공식 합병 의사를 발표했다.
이번 합병 외에도 다양한 벤처와 스타트업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그의 말에 헬스케어 업계는 다시 그의 입을 주목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빈의 BD 부서는 조용했다.
BD 부서 직원들이 미국과 유럽에 있는 신약개발 연구소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뻔질나게 출장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이상해. 도대체 2백억 달러를 어디다 쓰려고 이렇게 조용한 거지······.”
마침 그의 내선 전화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미스터 램버트, BD 부서 미스터 킴의 미팅 요청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마크 램버트가 한 손에 두꺼운 바인더를 들고 다가오는 유빈을 응시했다.
‘그래, 드디어 왔구나.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어디 한번 보자.’
가벼운 인사를 나눈 유빈이 바인더를 마크 램버트의 앞에 놓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료는 오기 전에 메일로 보냈습니다. 바인더를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바인더의 자료를 한 장씩 넘겨보는 마크 램버트의 표정이 기묘했다.
유빈이 각 장마다 자세한 사업 설명을 했지만, 그는 듣지도 않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까지 확인한 그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게 1년 동안의 사업 계획이라고?”
“네, 지난 두 달간 준비한 겁니다. CEO께서 승인해 주시면 바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평온한 유빈의 태도와 의도를 알 수 없는 그의 사업계획서에 마크 램버트의 혈압이 올라갔다.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인수합병 계획은커녕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효율을 넘는 법입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연말이면 아시게 될 겁니다.”
“크흠, 평소라면 절대 승인하지 않았겠지만, 2백억 달러는 자네가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더 말하지 않겠네. 다만, 내가 넘어간다고 해도 이게 자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마크 램버트가 신경질적으로 바인더를 유빈에게 밀었다.
“CEO께서 합병을 비롯한 수익 창출 사업에 집중하실 테니까 저는 이쪽에 집중하겠습니다.”
“자네의 생각을 정말 모르겠군. 나가 보게.”
“알겠습니다.”
유빈이 나가고 한참 뒤에도 마크 램버트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저런 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상대는 유빈이었다. 그의 자신감이 마크 램버트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마크 램버트의 승인을 받은 유빈이 BD 헤드로서 처음 시작한 일은 소아 희귀병 연구 프로젝트였다.
다니엘 듀레인 회장이 시작한 연구사업으로 과거 유빈의 여동생인 인아가 앓았던 부신백질이영양증의 증상 완화제를 개발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마크 램버트가 CEO가 되면서 효율성을 중시한 예산 절감을 위해 프로젝트를 셧다운을 시켰다.
마크 램버트의 행동은 유빈이 글로벌 CEO를 목표로 삼게 된 직접적이 이유가 되었다.
유빈은 드디어 동생인 인아와의 약속이자 전 세계 수많은 환우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재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달의 준비하는 기간에 신약개발 연구소를 다니며 연구팀을 모집했고 인력을 확보했다.
프로젝트의 첫 번째 대상 질환은 물론 부신백질이여양증이었다. 이번에는 완벽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유빈이 희귀병 연구 프로젝트의 책임자라면 타츠야는 ‘미래의 동반자 재단’을 출범했다.
‘미래의 동반자 재단’은 어려운 환경에서 의대에 진학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동시에 의료인을 위한 최신 의학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트인 MD Friends를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BD 부서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끝없이 이어졌다.
유빈은 BD 부서 팀장급 직원 열 명이 각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운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직원들도 직접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시작하자 가족의 일처럼 열정을 다해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제네스는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공식 파트너이자 후원사가 되었고 동물의약품 부서와 협업해 하와이의 휴메인 소사이어티와 같은 유기견과 유기묘 쉼터를 중국과 한국에 건립하기로 했다.
사실 수많은 제약회사가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생색만 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빈은 전례 없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제대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렇다고 자금을 함부로 운용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사회 공헌 프로젝트에도 2백억 달러를 다 쓰려면 20년이 넘게 필요했다.
마크 램버트도 천문학적인 돈을 잘 활용하며 스타트 업 기업을 계속 인수했지만, 제약업계 안에서만 이슈가 될 뿐 일반인은 잘 알지 못했다.
그에 비해 유빈이 이끄는 BD팀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은 기부와 자원봉사라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생성해 갔다. 뉴스 또한 한 주가 멀다 하고 제네스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를 다뤘다.
안 좋은 뉴스가 가득한 이 시대에 제네스의 이름은 희망을 대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빈이 헛돈을 쓴다며 비판하던 주주와 이사회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면서 입을 다물었다.
작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서 10위 밖으로 미끄러졌던 제네스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네스에 대한 인식이 의료진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좋아지면서 매출이 급격히 증대되었다.
의료진은 제네스라는 이름을 신뢰하며 약을 처방했고 환자 역시 일반 약품은 물론이고 전문 약품도 제네스 약품으로 처방받기를 원했다.
유빈이 시작한 일은 일견 성취와는 상관없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보였지만, 브랜드 가치가 올라감으로써 어떤 방법보다 효율적이게 된 것이었다.
4분기가 끝나고 몇 년간 정체되어 있던 제네스의 글로벌 매출은 한 단계 도약한 성적을 보여 줬다.
* * *
“내가 졌네. 완패야.”
마크 램버트는 유빈을 마주하자마자 한숨과 함께 백기를 들었다.
그가 CEO로 재임한 이후 어떻게든 돌파하려던 목표를 유빈은 단 1년 만에 해낸 것이었다.
“자네가 처음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왔을 때, 나는 지금과 같은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네. CEO라면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 필수인데 나는 두 번 모두 헛다리를 짚었지. 할 말이 없네.”
유빈의 따뜻한 오라가 두꺼운 갑옷이 무장 해제된 마크 램버트의 오라를 감쌌다.
“패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승자입니다.”
“······.”
마크 램버트가 물끄러미 유빈의 눈을 쳐다봤다.
그 어디에도 승자의 오만함이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눈빛은 없었다.
“미스터 램버트가 인수합병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고 저는 반대편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매진했기 때문에 균형이 맞춰진 겁니다.”
“자네는 정말······.”
자본주의 이름 아래서 이윤의 추구가 궁극적인 목표인 기업은 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어 패자는 도태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곳이었다.
하지만 유빈은 그런 이분법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