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
사막의 모래술사
“내 이름은 제온, 나의 무기는 사막 전체다.”
지구는 테라포밍 당했다.
테라포밍의 반작용으로 바다는 증발했고, 대지는 모래로 바뀌었다.
사막화된 지구 유일의 모래술사 제온.
세상은 그를 모래 귀신이라 부른다.
1화
틱!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실이 끊어지는 미세한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순간 소년이 눈을 떴다.
소년은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몸을 일으켜 철문을 바라봤다.
어른 두 명이 몸을 누이면 꽉 차는 조그만 방.
창문조차 없는 조그만 방에 출구는 오직 조그만 철문뿐이다.
소년은 숨소리를 죽인 채 철문의 손잡이를 바라봤다.
찰칵! 찰칵!
누군가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 딴에는 소리를 최대한 죽인다고 했지만, 이미 잠이 깬 소년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덜컥!
마침내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철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고개를 들이민 남자의 손에는 어른 팔뚝만 한 단검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아직 어둠이 눈에 익지 않았는지 손을 더듬으며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소년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
침입한 남자는 그 사실도 모르고 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왔다.
그때였다.
틱!
남자의 발밑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미리 설치해 둔 함정이었다.
퍼억!
“컥!”
순간 둔중한 소성과 침입한 남자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남자의 옆구리엔 조그만 단검이 꽂혀 있었다.
끈이 끊어지면 단검이 발사되도록 소년이 설계해 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방 안에 침입한 남자는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끄으으! 뭐야?”
남자가 방을 뒹굴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이제까지 숨소리도 없이 웅크리고 있던 소년이 움직였다.
타탁!
소년은 바닥을 박차고 남자의 가슴에 올라탔다. 그리고 남자의 단검을 빼앗아 그의 목에 겨눴다.
남자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으윽! 이 꼬마 새끼가…….”
“누가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오나 했더니 옆방 아저씨였네.”
말 그대로 옆방 아저씨다.
남자는 소년의 방 바로 옆 방에 살고 있었으니까.
어젯밤에도 스쳐 지나갔다.
인상이 워낙 좋지 않은 데다가 그를 보는 눈빛이 하도 흉험해서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년이 손으로 남자의 뺨을 툭툭 쳤다.
“어이,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이웃사촌인데 강도질은 너무한 거 아냐?”
“개미굴에서 그런 게 어딨어? 새끼야! 어서 놔주는 게 좋을걸. 내 형이 누군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
소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밑에 깔린 남자가 바락 악을 썼다.
“각성자라고. 그것도 마법을 사용하는 각성자.”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 믿지. 정말 어이가 없네. 각성자 동생이 이딴 개미굴에서 살고 있다고?”
“정말이야. 사정이 있어 잠깐 머무는 것뿐이야.”
“그럼 조용히 있다 갈 것이지, 애새끼 푼돈 빼앗으려고 숨어들어 와?”
“하! 씨발, 그럼 눈앞에서 마정석을 봤는데 그걸 그냥 냅둬?”
“역시 봤나?”
소년이 혀를 찼다.
우연히 조그만 마정석을 얻었다.
마정석을 가진 것이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에 몇 번 만져 봤다. 그런데 그 모습을 옆방 남자가 본 모양이다.
소년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개미굴, 혹은 마굴이라 불리는 빈민가.
네오 서울 콜로니에 들어가지 못한 빈민들이 모여 사는 이곳엔 규칙이나 예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짓밟고,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도 되는 곳.
약한 것이 죄고, 강한 것이 면죄부다.
소년, 제온은 그런 빈민가의 법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굴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기억의 시작이 빈민가의 거지굴이었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구걸에 이용된 것이다.
거지굴에서 좋은 기억 따윈 하나도 없다.
적게 벌어 왔다고 맞고, 많이 먹는다고 맞고.
그래서 나이가 어느 정도 차자 거지굴을 박차고 나왔다.
그냥 거지굴을 나온 것은 아니었다.
거지굴의 대장이 자는 틈에 몰래 칼침을 놓고 나왔다.
그 때문에 거지굴의 대장이 아직도 제온을 찾고 있었다.
제온이라는 이름도 스스로 지은 것이었다.
그래도 정체성을 증명해 줄 이름이 필요했으니까.
이름에 딱히 의미는 없다.
그저 멋있어 보이기에 그렇게 지은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이름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소매치기부터 도둑질까지, 사람 죽이는 것 빼곤 다 해 봤다.
빈민가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거처에도 함정을 설치해 뒀다. 그런 치밀함이 제온을 살렸다.
제온은 잠시 자신에게 깔린 남자의 처분을 고심했다.
정말 남자의 형이 각성자라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때 남자의 눈동자가 교활하게 빛났다.
스르륵!
남자의 소매에서 비수가 미끄러지듯 흘러나왔다.
비상용으로 숨겨 둔 비수였다.
“죽어랏! 꼬마 새끼!”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비수를 휘둘렀다.
제온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남자가 그런 제온을 쫓아왔다. 그런 그의 눈엔 독기가 가득했다.
어떻게든 제온을 죽이고 마정석을 빼앗겠다는 일념으로 비수를 휘둘렀다.
“크윽!”
제온은 그런 남자를 부둥켜안고 한참이나 드잡이질했다.
푸욱!
잠시 후 칼이 살에 박히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헉!”
그리고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가슴엔 단검이 꽂혀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보던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숨이 끊어졌다.
“제기랄!”
제온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지만, 사람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검이 남자의 가슴을 파고들던 섬뜩한 촉감이 아직도 선명했다.
“씨발! 그러게 왜 몰래 숨어들어 와서…….”
제온이 죽은 남자의 시신을 바라봤다.
언젠가 사람을 죽일 줄은 알고 있었다. 개미굴에서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날이 오늘일 줄은 정말 몰랐다.
제온은 정신을 차렸다.
정말 죽은 남자의 형이 각성자라면 위험했다.
어차피 시신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리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빈민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시신을 옮기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차라리 시신을 이곳에 두고 빨리 몸을 숨기는 것이 나았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제온은 바로 움직였다.
남자의 시신이 있는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주 오래전 홍콩에 있었던 구룡성채를 연상시키는 거리가 나타났다.
사람 하나 몸을 누일 수 있는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건물들이 닭장처럼 늘어서 있었다.
어떤 규칙도 없이 제멋대로 들어선 건물들 때문에 거리는 미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복잡했다.
제온은 미로 속으로 몸을 감췄다.
***
“씨발! 정말 각성자였다니. 운이 없어도 어떻게 이렇게 없을 수가.”
철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장갑 버스 안에서 제온이 중얼거렸다.
제온이 죽인 남자의 형은 진짜 각성자였다.
그것도 무려 B급 각성자.
F급이 쫓아와도 파리 목숨인데, 하물며 상대는 무려 B급이었다.
B급은 네오 서울에 있는 수많은 각성자 중에서도 겨우 백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제온이 천민이라면 B급 각성자는 귀족이었다.
잡히면 단순히 죽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동생의 죽음에 분노해 제온을 추적했다.
동생이 먼저 제온을 털려고 했었다는 것은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자신의 동생이었다.
동생이 제온 같은 애송이에게 죽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이렇게 초라하게 도주하지만, 내가 꼭 복수하고 만다. 이지령.”
그를 추적하는 각성자의 이름은 이지령.
뇌전 마법 각성자였다.
마법계 중에서도 뇌전 마법은 위력이 강하기로 소문났다.
B급 각성자 중에서 상위에 있는 강자였다.
제온만큼이나 이지령도 빈민가를 잘 알았다. 지금은 네오 서울에 있지만, 그 역시 빈민가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온이 피할 곳, 도주할 곳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제온은 결국 궁지에 몰렸고, 그래서 버스에 탔다.
네오 서울 콜로니 밖 마정석 광산으로 향하는 버스다.
일단 네오 서울 콜로니만 벗어나면 제아무리 이지령이라도 추적해 오기는 쉽지 않았다.
‘설마 내 발로 이 버스에 타게 될 줄이야.’
제온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네오 서울 콜로니 밖은 사막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붉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타는 듯한 붉은 사막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모래 아래에는 샌드웜, 철갑 모래무지 같은 지저 마수가, 사막 위에는 화염 늑대나 큰 뿔 하이에나 같은 온갖 마수가 판을 친다.
거기에 콜로니를 오가며 상행을 하는 카라반을 노리는 스캐빈저 무리까지 도사리고 있다.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그래서 빈민들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네오 서울 콜로니 밖에 머무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마수들은 네오 서울 콜로니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린다.
최소한 네오 서울 콜로니 근처에 머물면 마수들에게 죽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온도 악착같이 빈민가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이지령에게 찍힌 이상 빈민가에 그가 있을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기랄! 나도 각성만 했으면…….”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지구는 사막으로 변했다.
전 인류의 구십 프로가 넘게 죽었고, 살아남은 자는 모래로 변한 폐허 위에 콜로니를 세워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때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들이 바로 각성자들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생존자 중 일부가 미지의 능력을 각성한 것이다.
어떤 이는 육체가 강화되었고, 어떤 이는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들을 각성자라고 불렀다.
각성자는 새로운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위 각성자도 네오 서울에선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에 비하면 제온 같은 존재는 천민이나 다름없었다.
제온이 죽어 나간다 해도 누구 한 명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제온이 택한 것은 마정석 광산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마정석 광산은 네오 서울에서 칠십 킬로미터 떨어진 돌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채취되는 마정석은 전량 네오 서울에 들어간다.
마정석에서 추출한 에너지로 네오 서울이라는 초거대 도시가 유지되는 것이다.
단 마정석을 캐기 위해선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갱도가 깊고 비좁아서 광부가 직접 곡괭이를 들고 캐낼 수밖에 없었다.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광부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다.
그 때문에 항상 인력이 부족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네오 서울은 마정석 광산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신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버스에 태웠다.
덕분에 제온도 마정석 광산으로 향하는 장갑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어떻게 하든 마정석 광산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지령에게 복수한다.’
제온이 창밖을 보며 의욕을 불태우는 사이 버스 안엔 사람들이 가득 찼다.
광부들이 모두 탄 것이다.
“어이, 꼬마! 너도 광산에 가는 거냐?”
제온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광산에 자원한 사람답게 덩치도 크고 힘도 세 보였다.
제온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요?”
“어린 새끼가 제법 독기가 있네. 그래도 광산에 가면 조심해야 할 거다.”
“뭐를요?”
“그곳엔 너처럼 허여멀건 녀석의 엉덩이를 노리는 놈들이 널려 있거든. 흐흐!”
남자가 음흉한 눈빛으로 제온의 전신을 훑어봤다.
‘이 씨발 새끼가.’
제온은 저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빈민가에는 남자를 탐하는 새끼들이 널려 있었고, 그들 중 상당수는 제온을 노렸다.
제온은 몸매가 호리호리한 데다가 얼굴도 잘생긴 편이었다.
얼굴에 어린 독기만 빼면 잘생긴 미소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특유의 눈치와 독기가 없었다면 당해도 수십 번은 당했을 것이다.
제온은 소매 속에 숨겨 둔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언제 옆에 앉은 남자를 담가야 할지 고민했다.
목숨은 빼앗지 않더라도 최소한 인대 하나는 끊어 병신으로 만들어 놔야 다른 놈들이 그를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밑바닥에서 생존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장갑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는 금세 네오 서울 콜로니를 벗어나 사막으로 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붉은 사막의 물결은 장갑 버스에 탄 사람들을 압도했다.
제온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자조차도 광활한 사막의 풍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의 바다 위에서 장갑 버스는 티끌 한 점에 불과했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무사히 광산에 도착할 수 있겠지?”
그는 곧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그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쿠콰콰콰!
맹렬하게 달리는 버스 뒤로 붉은 모래가 무섭게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샌드웜이 버스를 뒤쫓고 있었다.
“미친! 이 근처엔 샌드웜이 없을 텐데.”
그 순간 제온의 말을 마치 정면으로 부정이라도 하듯이 샌드웜의 거대한 동체가 모래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유성처럼 장갑 버스에 내리꽂혔다.
쿠우우!
그 모든 광경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생생하게 제온의 눈에 들어왔다.
‘씨발! 샌드웜이 나는 게 말이 돼?’
쾅!
엄청난 충격이 장갑 버스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