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제온은 그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장용범 파티.’
팔 년 전 제온이 사막 한가운데서 샌드웜에게 공격당했을 때 구해 줬던 파티였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단번에 그들을 기억해 낸 제온과 달리 장용범 파티는 제온을 알아보지 못했다.
지젤이 에이든을 노려봤다.
“그러게 카지노는 왜 들르자고 해서 이 사달을 만들어?”
“누가 이렇게 털릴 줄 알았나?”
“자신 있다고 했잖아?”
“자신이야 있었지. 다만 저 덩치 큰 바보가 한 번에 다 베팅할 줄 몰랐던 것뿐이지.”
에이든은 뒤쪽에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마운틴을 째려봤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에 마운틴이 있었다.
하필 마운틴에게 큰돈을 맡겼는데, 그가 한 판에 모두 건 것이다.
당연히 딜러가 이겼고, 마운틴은 모든 돈을 잃었다.
뒤늦게 장용범이 이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빈털터리가 된 후였다.
장용범이 말했다.
“마운틴에게 돈을 맡긴 건 누구 생각이야?”
“죄송합니다. 제일 안전할 거라 생각해서…….”
에이든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용범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별수 없군. 일하는 수밖에.”
“어쩐지 며칠 편히 쉰다 싶었다? 이 덩치만 큰 바보야. 네가 일 다 해.”
지젤이 마운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래도 마운틴은 헤벌쭉 웃기만 했다.
그렇게 장용범 파티는 웃고 떠들며 제온을 지나쳐 갔다.
“응?”
갑자기 장용범이 뒤돌아섰다.
지젤이 그런 장용범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조금 전 스쳐 간 남자.”
“그 잘생긴 남자?”
“…….”
“그 남자가 왜요?”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네? 전혀요. 저렇게 잘생긴 남자를 봤다면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요.”
“아니,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장용범이 턱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제온은 이미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잔향은 장용범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기억력이 좋군. 단 한 번 스쳐 지나간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장용범 딴에는 나직하게 중얼거렸지만, 제온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팔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 남자는 변함없구나. 여전히 강해 보이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위압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제온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온은 프런트에서 방을 잡았다.
그의 방은 십오 층에 있었다.
무심코 계단으로 올라가려다가 이곳이 곧 네오 서울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네오 서울의 모든 고층 건물에는 당연하게도 엘리베이터가 존재한다.
빈민가에선 귀한 엘리베이터가 이곳에는 널려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매우 빠르고 편하게 그를 십오 층으로 이동시켜 줬다.
덕분에 힘 하나 안 쓰고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호텔 방은 매우 좁았다. 빈민가에 있는 제온의 집에 비할 수 없이 작았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제온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각종 전기 기기와 편의 시설이 가득했다.
“이건 뭐…….”
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트의 손잡이를 눌렀다. 그러자 금세 물이 끓으며 수증기가 새어 나왔다.
그 모습조차 제온에겐 꽤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문명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 건지 네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후!”
제온은 침대에 앉아 네오 서울을 바라봤다.
화려하고 위압적인 네오 서울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밤인데도 거리와 건물은 현란한 조명들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빈민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구나.”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멋있었다.
이 때문에 빈민가에서 각성자가 나오면 기를 쓰고 네오 서울로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한번 이렇게 편한 생활에 물들면 두 번 다시 빈민가로 돌아가기 싫을 것이다.
제온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네오 서울에 들어왔다는 흥분 때문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후! 카지노나 가 봐야겠군.”
결국 제온은 잠자는 것을 포기했다.
맨디는 패가망신한다며 카지노에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네오 서울에 들어왔으니 한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제온은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 1층 카지노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뜨거운 열기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광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좋아!”
“씨발! 조금만 더 힘내.”
“한 바퀴만 더.”
“와아아!”
사람들의 광기 가득한 외침에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멀쩡한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대부분이 눈이 벌게진 채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와아아!”
“아아!”
딜러가 패를 뒤집자 환희와 비탄이 교차했다.
이긴 사람은 세상 모두 가진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고, 진 사람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문명을 재건하고,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지자 도시엔 카지노가 만들어졌다.
그래도 예전의 카지노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었다.
베팅액, 도박의 종류, 그리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형식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규제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네오 서울의 카지노엔 그런 것이 없었다.
베팅액 무제한.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무엇이든 도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카지노 한쪽의 링 위에선 격투가들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지금은 각성자들끼리 싸우고 있지만, 때로는 일반인들 간의 결투도 이뤄진다.
“씨발! 조금만 더 힘내.”
“죽여! 못 죽이면 내 손에 죽어.”
“이야아아!”
피 터지는 싸움을 보며 관객들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퍽! 퍼억!
“크윽!”
상대의 주먹에 얻어맞은 격투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모습이 관객들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F급 무투계 각성자들인가?’
제온은 격투가들의 등급을 단번에 알아봤다.
각성자 세계는 피라미드와 같다.
제일 하위 등급인 F급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로 E급, D급 순으로 켜켜이 쌓인다.
등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숫자가 급속히 줄어들어 최상위의 S급 각성자는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하다.
네오 서울에선 최소 D급 이상이 되어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그 밑에 등급인 E급은 그래도 조금 낫지만, F급의 처우는 심각했다.
그중에서도 무투계 각성자는 아예 각성자 취급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렇게 카지노의 링에 흘러들어 와 피를 흘리며 싸웠다.
이기면 확실히 대우해 주는 게 카지노였다.
“더, 더!”
“죽이라고, 새끼야!”
“우와아!”
승자가 거의 결정되자 사람들이 더욱 광분했다.
제온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무투계 각성자는 말 그대로 육체의 재능을 각성한 자들. 그래서 그들의 싸움은 처절하다.
직접 육체로 부딪혀 상대의 강함을 가늠한 후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기 때문이다.
뒤를 생각할 여유 따윈 없다.
그들은 단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퍽! 퍼어억!
때리는 자의 주먹에서도 피가 튀었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뼈가 드러나도 때리고 또 때린다.
그렇게 상대를 완전히 침몰시킨 후에야 이제까지 참았던 가쁜 숨을 내쉰다.
“하아악! 하악!”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단시간에 에너지를 쏟아부은 전신에서는 엄청난 열기와 함께 김이 피어올랐다.
“승자는 김준석.”
심판이 승자의 팔을 들어 올렸다.
순간 희비가 교차했다.
김준석에게 판돈을 걸었던 자들은 환호를, 패자에게 돈을 건 자들은 탄식을.
승자인 김준석에겐 많은 상금을 줬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김준석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가 퇴장한 링 위엔 새로운 격투가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람들이 돈을 걸었다.
제온은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사람들이 광분하는 것이 이해됐다.
하지만 직접 저 도박판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제온은 혀를 차며 다른 곳을 바라봤다.
“우와아! 떴다.”
“잭팟이다.”
그때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뜬 것이다.
잭팟의 주인공은 로브를 입은 여자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본모습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드디어 떴다고. 하아! 씨발. 눈물 나려고 그러네.”
여자는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주위에 있던 이들이 그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들 중에 진정으로 축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서 고물을 얻어먹을까, 또는 그녀와 친해져 단물을 빼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당연히 여자도 그런 도박꾼들의 생리를 잘 알기에 의례적인 감사 인사만 하고 거리를 뒀다.
잭팟이 터졌다는 소식에 지배인이 달려왔다.
지배인은 여자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환전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분 좋은 얼굴로 제온이 앉아 있는 바 앞으로 걸어왔다.
“이봐! 바텐더. 엔젤 더스터 한 잔 줘요.”
“축하합니다. 손님!”
바텐더의 말에 여자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훗! 여기 바에 앉은 분들에게 모두 한 잔씩 돌려요.”
“넷!”
바텐더가 대답과 함께 부지런히 칵테일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돌렸다.
제온도 칵테일을 한 잔 받고, 여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못 보던 얼굴이네요. 여기에 있을 얼굴은 아닌데.”
“이곳에 있을 얼굴이 따로 있습니까?”
“당연하죠. 둘러봐요. 저들의 얼굴이 어떤지, 욕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에요. 남의 불행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자들은 자신의 불행에도 둔감해요. 도박이 파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죠.”
“마치 당신은 아니란 것처럼 말하네요.”
“난 저들과 달라요.”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그건…….”
여자가 말하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로브의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코와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입술의 모양만으로도 그녀가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제온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아니에요. 아예 틀린 말도 아니네요. 이유야 어쨌든 나도 이곳에 와서 회포를 풀고 있으니까요.”
“힘든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힘들긴 했죠. 오랜만에 전력을 다했으니까.”
“그렇군요.”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귀신 잠자리 냄새.’
귀신 잠자리는 죽을 때 특유의 페로몬을 발산한다.
등급이 높을수록 페로몬 냄새는 더욱 은밀해지고 특유의 향기를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제온은 귀신 잠자리의 페로몬을 구별할 수 있었다.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귀신 잠자리. 그것도 매우 강한 개체가 죽을 때 뿌린 페로몬 냄새다.
‘예를 들면 여왕 귀신 잠자리 말이지.’
여자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내 이름은 클레어예요.”
“제온입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인연이 닿는다면 또 보죠.”
클레어라고 밝힌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제온은 잠시 그녀를 쫓아갈까 하다가 관뒀다.
그녀에게 여왕 귀신 잠자리의 페로몬이 묻어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온에겐 페로몬을 추적할 방법이 있었다.
“클레어라…….”
제온은 살짝 고개를 흔들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클레어가 산 술을 단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