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제온이 머무는 호텔은 룸서비스가 가능했다.
즉 방 안에 있어도 얼마든지 식사가 가능한 것이다.
딩동!
호텔 직원이 제온의 방 벨을 눌렀다.
곧 문이 열리고 로브를 입은 제온이 나왔다.
‘별난 사람이네.’
직원이 제온을 보고 혀를 찼다.
방 안에 있음에도 로브의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나온 제온의 모습이 별나다고 생각한 것이다.
꼭 이런 손님이 있었다.
호텔에 들어왔으면 편히 있으면 될 것을 꼭 풀 착장으로 있는 자들 말이다.
이 호텔의 보안은 완벽했다.
결계로 보호받는 데다가 각성자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 외부의 침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객실 안에서조차 편히 있지 못한다는 것은 범죄자이거나 뒤가 구린 자일 가능성이 컸다.
제온은 말없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직원은 음식을 올려 둔 스트레쳐카를 밀고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탁자 위에 음식을 내려놓은 후 인사했다.
“맛있게 드십시오.”
직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이제까지 꾸부정하게 있었던 제온이 고개를 들었다.
모자 아래로 드러난 제온의 얼굴은 온통 모래로 되어 있었다.
제온이 아니라 샌드 솔저였다.
순간 샌드 솔저가 무너지며 모래로 돌아갔다.
직원이 나간 방 안에 남은 것은 차갑게 식어 가는 음식과 한 무더기의 모래뿐이었다.
***
마수는 인류의 위협이었다.
한때 지구 전체를 지배했던 인류의 영역은 이제 극히 일부분으로 축소됐고, 남은 대부분의 땅은 마수들의 영토가 됐다.
네오 서울에서도 어떻게든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네오 서울의 영향력이 끼치는 곳은 딱 마정석 광산 일대뿐이었다.
그 이상 먼 사막엔 아직 이렇다 할 거점을 마련하지 못했다.
먼 사막으로 나갈수록 강한 마수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어떤 마수가 모래 아래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마수는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역설적으로 귀한 자원이기도 했다.
강대한 마수의 육체일수록 훌륭한 자원이 된다.
가죽, 비늘, 뼈, 피, 내장 조직,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어쩌다가 마정석이라도 나오면 잭팟이 터진 거나 다름없다.
가성비로 따지면 광산에서 채굴하는 마정석이 훨씬 좋지만, 마수에게서 채취한 마정석은 차원이 다른 성능을 가지고 있다.
보스급 마수에게서 얻은 마정석엔 스킬이 담겨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스킬이 나올지는 랜덤이었지만, 행운이 따르면 엄청난 전력의 상승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네오 서울에선 수많은 파티와 공략대를 동원해 마수 사냥과 던전 토벌을 하고 있었다.
각성자들이 사냥한 마수들은 네오 서울로 들어와 해체된다.
가아앙!
거대한 톱니바퀴가 맹렬히 회전하며 마수의 사체를 잘라 내고 있었다. 마법 처리를 한 톱니바퀴는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마수의 다리 하나를 자르는 것만으로도 이가 다 빠져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씨발! 날 다 나갔다.”
“빨리 교체해.”
하는 수 없이 날을 교체하고 다시 해체했다.
그렇게 수없이 날을 교체한 끝에 거대한 마수가 해체됐다.
작업자들은 살 한 점, 피 한 방울 흘릴세라 조심스럽게 옮겼다.
타지크는 팔짱을 낀 채 작업 과정을 꼼꼼히 살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체는 역시 콘돌 SSC였다. 아무래도 그의 무력은 모두 콘돌 SSC가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업체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주인인 샤오룬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언뜻 보면 심복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 두고 방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큰 권한을 주지만, 권한만큼 일을 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타지크는 항상 자신이 맡은 업체들을 둘러보며 문제점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마수 가공업체 다음에 향한 곳은 화학 염료 회사였다.
화학 염료 회사가 뭐 대단한가 싶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염료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스텔스, 은신, 에너지 차폐와 같은 성능을 가진다.
각성자의 방어구에 적용하면 그만큼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곳에선 화학 염료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각종 연구가 이뤄졌다.
타지크는 커다란 통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염료를 바라봤다.
B급 마수인 갈기털 도마뱀에게서 추출한 혈액을 기반으로 한 염료였다.
갈기털 도마뱀은 산성 피를 가지고 있었다.
산성 피가 얼마나 지독한지 철판에 한두 방울만 떨어져도 구멍이 뻥 뚫릴 정도였다.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사람 하나 녹아내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냥하기도 쉽지 않았다.
워낙 은신을 잘하는 데다가 교활하기까지 해서 놈을 사냥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공장에 갈기털 도마뱀이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구할 수 있었다.
타지크는 잠시 작업 과정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공장을 나온 그는 거처로 향했다.
그의 거처는 공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초고층 빌딩에 있었다.
이 역시 샤오룬의 심복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응?”
한참 골목을 걷던 샤오룬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 걷던 골목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평상시와 달랐다.
이상하리만큼 어둡고, 칙칙하게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이 보이지 않아.”
네오 서울은 아무리 인적이 뜸한 골목이라도 가로등이 존재했다. 타지크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은 가로등이 보이지 않았다.
“결계?”
“결계는 아니고, 모래 막으로 외부와 차단을 했습니다.”
그 순간 골목 한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타지크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 순간 골목 으슥한 곳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타지크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당신은 제온?”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요.”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이는 바로 제온이었다.
타지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네오 서울 안에서 제온을 만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떻게 네오 서울에 들어온 거죠?”
“운 좋게 임시 출입증을 얻었습니다.”
“임시 출입증?”
“네! 얼마 전 지인이 준 건데 이렇게 써먹네요.”
“임시 출입증을 발급해 줄 정도라면 꽤 고위직이라는 건데. 제법이네요. 그런 인맥이 있다니.”
“운이 좋았죠.”
타지크는 제온과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는 듯했다. 하지만 끝없이 탐색하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특이한 능력이네요. 모래 막이라. 이게 당신의 스킬인가 보죠?”
“네!”
“쓸모가 많겠어요.”
타지크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단번에 제온의 스킬이 가진 유용성을 꿰뚫어 봤다.
“등급은? 범위는 어떻게 되죠? 얼마나 지속할 수 있죠?”
“…….”
“대답해 주지 않을 건가요?”
“밑천을 털어놓으라는 건데, 당신 같으면 하겠나요?”
“그건 또 그렇네. 그렇게 순순히 털어놓을 리 없지.”
타지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의 눈이 뱀처럼 차갑게 빛났다.
“마지막으로 제안하죠. 샤오룬 님 밑으로 들어와요. 대우는 최고로 해 드리죠.”
“그럴 거면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써서 네오 서울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역시 평범한 대화보다는 몸으로 직접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부류군요. 공교롭게도 나도 그런 부륜데.”
“좋네요.”
제온이 미소를 지었다.
모래 막으로 내부와 외부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외부에선 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오래 끌어서도 안 된다.
누군가 지나가다 보게 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타지크의 전신에서 불길한 핏빛 오러가 피어올랐다. 무투계 각성자라는 증거였다.
타지크는 B급 무투가였다.
스릉!
그가 허리춤에서 조그만 단검을 빼 들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단검의 길이는 겨우 삼십 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휘어진 날에서는 엄청난 예기가 느껴졌다.
“던전에서 나온 물건인가 보네요.”
“나는 그녀를 피의 엘레나라고 부릅니다. 그녀가 한번 뽑히면 반드시 피를 보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거든요.”
타지크는 단검에 여성 인격과 이름을 부여했다.
그만큼 단검의 위력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피의 엘레나엔 ‘증폭’이라는 효능이 붙어 있었다.
피의 엘레나를 사용하면 본신 능력의 삼십 프로 정도가 증폭된다.
말이 좋아 삼십 프로지, 엄청난 전력의 상승이었다.
타지크가 혀로 피의 엘레나를 핥으며 말했다.
“죽이지는 않을게요. 당신은 매우 특별한 존재니까.”
숨통만 끊지 않으면 제온을 활용할 방법은 많았다.
사지를 끊어 놓고 육체만 남긴 채 특수 처리한 보관 용기에 담아 죽지 않게 만들어 놓은 후 자신의 명령만 듣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을 반인륜적인 방법이었지만, 샤오룬 밑에서는 뭐든지 용납된다.
제온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위험한 능력이라니까.”
“아뇨! 유용한 능력입니다. 당신은 네오 서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겁니다.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죠.”
팟!
말이 끝나는 그 순간 타지크가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환영만 남긴 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타지크.
제온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순간 그들을 둘러싼 모래 막에서 십여 개의 모래 줄기가 섬전처럼 쏘아졌다.
샌드 블라스터를 펼친 것이다.
“어림없습니다.”
쉬가가각!
타지크가 피의 엘레나를 휘둘러 샌드 블라스터를 베어 냈다.
피의 엘레나에 실린 핏빛 오러가 베지 못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다리부터.”
쉬이익!
타지크가 낮게 몸을 깔며 제온의 다리를 노렸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피의 엘레나에 베이기 직전 제온의 몸이 뒤로 스르륵 밀려났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실로 묶어 제온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뒤로 물러나며 제온이 다시 손가락을 까닥였다.
쉬쉬쉭!
수많은 모래 줄기가 타지크에게 쏘아졌다.
타지크는 피의 엘레나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샌드 블라스터가 부서지고 잘려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베어 내도 샌드 블라스터는 끝이 없었다.
“미친! 마나가 도대체 얼마나 많다는 거냐?”
타지크가 눈을 부릅떴다.
제온은 마치 신기루 같았다.
분명 눈에 보이고, 코앞에 있는데 잡히지 않았다.
잡힐 만하면 쏟아지는 샌드 블라스터의 비.
마치 모래로 된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의 단검에 베어진 모래 알갱이가 눈과 입으로 튀어 들어왔다.
결국 참다못한 타지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비장의 스킬을 펼쳤다.
“씨발! 엘레나 블레이드!”
쉬쉬쉭!
피의 엘레나에서 붉은 오러의 칼날 수십 개가 만들어져 제온에게 날아왔다.
한번 펼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비장의 스킬.
타지크의 뇌리엔 제온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생각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을 짜증 나게 만드는 저 성가신 존재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붉은 오러로 이뤄진 칼날들은 제온이 피할 방위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날아왔다.
“끝이다.”
타지크가 제온의 죽음을 확신한 그때였다.
갑자기 수십 명의 병사가 나타난 제온을 에워쌌다.
샌드 솔저들이 육탄으로 타지크의 스킬을 막아선 것이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샌드 솔저와 오러로 만들어진 칼날들이 부서졌다.
“이게 무슨?”
타지크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너무 놀라서 제온이 순식간에 등 뒤로 접근한 것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제온이 손을 뻗어 타지크의 목 부분을 붙잡았다. 그러자 전신의 힘이 쭉 빠지면서 타지크가 쓰러졌다.
“큭!”
제온은 쓰러지는 타지크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귀한 육체에 상처가 생기면 곤란했다.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려고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끈 거니까.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서 풀지 못해.”
“무슨 짓은 이제부터 할 예정입니다.”
“뭐?”
제온은 대답 대신 아공간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서 제온이 꺼낸 것은 철사 쪼가리 같은 무언가였다.
“그게 뭐냐?”
“혹시 물 마시고 싶지 않아요?”
제온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