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아우! 이놈의 땡볕.”
브리엘이 투덜거렸다.
고깔모자로 얼굴을 가렸지만, 바닥에서 반사된 햇볕은 사정없이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오랜만에 밖에 나왔는데, 하필 오늘따라 태양이 더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달궈져 있었다.
빈민가의 건물들, 도로, 심지어는 공기까지 이글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녹을 것 같았다.
낮에는 절대 밖에 나오지 않는 빈민들이 더위를 피해 골목 음지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연신 손부채질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브리엘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목적지는 바로 도깨비 시장이었다.
제온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하도 드나들었더니 이젠 집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흥흥!”
브리엘은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 실험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원하던 마나 증폭 포션은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포션을 만들어 냈다.
의도했던 포션은 아니었다.
마나 증폭 포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파생물이라고 하지만 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그것이 브리엘이 도깨비 시장으로 향하는 이유였다.
좋은 결과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보니 걸음걸이가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꼬마.”
“고깔모자. 잠깐 이리 와 봐.”
순간 브리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하! 또야.’
이런 동네다.
여자아이 혼자 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음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십 대로 보이는 양아치들.
골목 그늘에 숨어 브리엘을 향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혼자 다니는 여자,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만큼 만만한 존재는 없다.
양아치들의 의도는 누가 봐도 뻔했다.
브리엘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양아치들은 브리엘이 겁을 먹고 오는 거라고 생각해 웃었다.
“흐흐흐!”
“어디 모자 좀 벗어봐.”
양아치 중 하나가 브리엘의 모자를 들어 올렸다.
창백하지만 예쁜 외모에 양아치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제법 예쁜데. 심심하지 않겠어.”
그 순간 브리엘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양아치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이 어린년이 감히 누구한테 명령하는 거야.”
“씨발! 좀 맞아야 정신 차리지.”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려고 주먹을 들었다.
그 순간 브리엘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에어 바인딩!”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의 공기가 양아치들을 무겁게 조여 왔다.
“컥!”
“쿠엑!”
강한 압력에 양아치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굳었다.
그 순간 밧줄이 목을 감은 것처럼 숨통이 조여 왔다.
양아치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혀가 툭 튀어나왔다.
브리엘은 그런 양아치들의 모습을 무감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비록 사냥꾼들에게 잡혀 이곳까지 흘러들어 오게 됐지만, 그녀는 엘프였다.
그것도 일반 엘프보다 훨씬 고결한 하이 엘프.
인간 각성자들이 간신히 펼칠 수 있는 마법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펼칠 수 있었다.
마약 후유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면서 그녀는 예전의 마법 실력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이 정도 마법은 숨 쉬듯이 쉽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양아치들이 바닥에 엎어져 괴로워했다.
“크윽!”
“자, 잘못…… 살려…….”
그들의 애원에도 브리엘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빈민가에서 죽음은 일상이었다.
그들이 죽어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 없을 것이다.
브리엘이 그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버러지들! 그냥 죽어라.”
“워, 워! 진정해.”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머리는 반삭을 했고, 화려한 귀걸이와 피어싱이 인상적인 소년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브리엘은 소년을 한눈에 알아봤다.
“레빈!”
“오랜만이야. 브리엘!”
“이들 편을 드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런 쓰레기들의 편을 들 리 없지. 그냥 나는 네가 굳이 그런 양아치들의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거야.”
“왜?”
“다른 구역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온 놈들이야. 이놈들을 잡아가면 현상금이 나와. 차라리 넘겨주고 현상금 받는 게 더 나을 거야.”
“그래?”
브리엘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레빈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상금이 많지는 않아. 겨우 오백 솔. 그래도 공돈이잖아.”
“레빈이 대신 처리해 줄 거야?”
“기꺼이!”
레빈의 대답에 브리엘이 마법을 풀었다.
털썩!
양아치들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상태라 손발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당연히 도주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레빈이 손짓하자 골목 입구에 있던 소년들이 양아치들을 데려갔다.
브리엘이 물었다.
“레빈 부하야?”
“친구들!”
“아!”
“브리엘은 낮부터 어디를 가는 거야?”
“도깨비 시장!”
“잘됐네. 나도 도깨비 시장에 가는데.”
“레빈은 왜 가는 건데?”
“찾을 사람이 있어서.”
“누구?”
“나도 모르겠어. 정확지 않거든.”
“그렇구나.”
브리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도 레빈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레빈이 누구를 찾는지도.
그는 아직도 살인마를 추적하고 있었다.
“단서를 잡은 거야?”
“놈이 사용하는 물건 중 일부가 도깨비 시장에서 흘러나온 것 같아. 그래서 일단 도깨비 시장에 죽치고 앉아 지켜보려고.”
“들어갈 자격은 돼?”
“그래서 너와 같이 가려고. 안 될까?”
“돼!”
브리엘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 시장은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신분이 엄격히 검증된 자에게만 출입 자격을 준다.
당연히 브리엘은 자격이 있었다.
브리엘이 보증한다면 레빈도 도깨비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함께 걷던 레빈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제온 형은?”
“집에서 쉬고 있어.”
네오 서울에서 돌아온 이후 제온은 어디 나가지 않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어디 갔다 왔나 봐? 며칠 보이지 않던데.”
“응! 일이 있어 다녀왔대.”
“그렇구나.”
레빈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도깨비 시장에 도착했다.
레빈은 브리엘 덕분에 도깨비 시장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브리엘이 레빈에게 말했다.
“이제 헤어져야겠네. 난 이쪽으로 가야 하거든.”
“들여보내 줘서 고마워. 볼일 잘 보고 들어가.”
“응!”
“그럼 다음에 보자.”
레빈이 손을 흔들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브리엘은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유세희의 거처였다.
유세희가 미소로 브리엘을 맞이했다.
“오랜만이네.”
“그렇게 오래도 아니잖아. 새삼스럽게.”
브리엘이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제온은?”
“집에서 쉬고 있어.”
“도깨비 시장에 언제 들른다는 말은 없고?”
“없어.”
“그렇구나.”
그녀는 제온에게 큰 빚을 졌다.
타지크의 압력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보를 차단한 채 제온을 던전으로 내몰았다.
클렉시 영감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도깨비 시장의 조합장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제온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유세희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내 방엔 웬일이야? 필요한 물건은 상인들에게 사면 되잖아.”
“이번에는 팔려고.”
“응?”
“내가 뭐 좀 만들었어.”
브리엘이 소매 속에서 푸른 액체가 담긴 병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뭔데?”
“해독 포션!”
“포션?”
유세희가 눈을 크게 떴다.
보통 포션은 액체 상태의 약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러나 현시대에서 포션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마법계 각성자들이 만들어 낸 현대판 연금술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포션은 질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마나를 회복시켜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기적 같은 일들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포션을 만들 줄 아는 각성자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네오 서울에서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예 전략 물자로 지정해 반출입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각종 포션은 이해관계와 거래에 따라 네오 서울의 패자들에게 풀렸다.
각종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포션들은 수하들의 충성을 받아 내는 좋은 도구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시중에서 포션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빈민가에서 포션을 구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도깨비 시장에서도 포션을 취급하지만, 효능이 떨어지는 싸구려가 대부분이었다.
진짜 좋은 포션은 도깨비 시장에서도 구하기 힘들었다.
유세희가 애써 흥분을 감추며 물었다.
“효과는 어느 정도야?”
“D급 마수의 독까지는 해독이 가능해.”
“그 정도면…… 조금 약한데.”
“진짜 그렇게 생각해?”
브리엘이 유세희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경멸의 빛을 유세희는 놓치지 않았다.
‘이 꼬맹이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어린 꼬맹이에게 들킨 속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빈민가의 각성자들이 주로 사냥하는 마수들은 대부분 D급 이하였다.
그 이상의 마수들을 사냥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고, 위험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D급 이하의 마수 중엔 독을 가지고 있는 개체들이 꽤 많았다.
제때 해독하지 못하면 각성자들을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요컨대 지금 브리엘이 내놓은 해독 포션이 정말 그 정도의 효과가 있다면, 빈민가엔 최고의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우! 일단 검증해야 하는 것 알고 있지?”
“그래서 두 병 가져왔어. 시험해 보고 효과가 검증되면 그때 계약할게.”
“알았어. 최대한 공정하게 시험해 보지.”
“만일 시험에 통과하면 제온 이름으로 계약할 거야.”
“네 명의가 아니라?”
유세희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엄청난 결과물을 본인이 아닌 제온 명의로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응! 제온 명의로 할 거야.”
“그럼 네 몫으로 들어올 수익이 제온에게 가는데 괜찮겠어?”
“그러려고 하는 거야.”
“왜?”
“제온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싶으니까.”
“…….”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도 악어굴에서 마약이나 만들고 있을 거야. 인간들은 다 증오하지만, 그만은 예외야.”
살기 위해 영혼의 맹약을 했다.
의도치 않게 맹약의 끈으로 묶여 버리고 말았다.
제온이 무엇을 요구하든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몸을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제온은 브리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것이 고마웠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그게 우리 방식이야.”
“후회하지 않겠어?”
“절대!”
“꼬맹이가 쓸데없이 진지해서……. 알았어! 효과 검증해 보고 확실하면 우리 쪽에서 독점 생산하지. 레시피는 넘겨줄 거지?”
“조건만 맞으면…….”
“딜?”
“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