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흐음!”
요한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붉은 모자에 붉은 수사복을 걸치고, 코까지 가리는 마스크를 쓴 남자.
요한의 심복이자 이단 심문관인 조슈아였다.
그를 부르는 또 다른 이명은 신속의 조슈아.
섬전만큼이나 빠르고, 도깨비만큼이나 신출귀몰하다.
그 때문에 요한의 쓰임을 가장 많이 받는다.
강하고, 빠른 존재는 그만큼 유용하니까.
요한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네가 설마 나에게 거짓을 말할 리는 없을 테고…….”
“…….”
“타지크가 사막을 헤매다가 샌드웜의 밥이 되었다? 이 믿기지 않는 말이 사실이란 말이지.”
요한의 얼굴은 무섭게 경직되었다.
대신 안경 너머에 있는 조그만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타지크를 만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하지만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타지크가 결코 녹록한 남자가 아니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단신으로 자신을 찾아올 정도의 배포와 능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길을 잃고 사막을 헤매다가 샌드웜의 밥이 되었다?
개도 안 믿을 소리다.
분명 이면에 작용한 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든, 단체든 말이다.
“샤오룬의 반응은?”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그들도 아직 알아낸 것이 없는 듯합니다.”
“네 생각은?”
“…….”
“하긴 너는 판단하지 않지. 실행하기만 할 뿐.”
요한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이 정도로 찌푸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가 지배하는 동대문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줄 아는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판단은 요한이 하고, 나머지는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런 의외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대응책을 세우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이런 점이 꽤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체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요한은 자신의 권력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조슈아는 말없이 요한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 조슈아의 모습이 답답했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요한이 손짓하자 조슈아가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요한이 창가로 다가갔다.
“이 모든 일이 놈이 돌아온 이후 일어났어.”
요한이 말하는 놈이란 제온이었다.
제온이 돌아온 후 신촌을 지배하던 고란이 증발하고, 악어굴이 무너졌다. 그리고 제온에게 관심을 두던 타지크마저 어울리지 않는 죽음을 맞이했다.
“우연일까? 그럴 리 없겠지. 분명 타지크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놈이 관여했을 거야.”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요한은 신의 계시를 받아 각성했다.
신을 모시는 만큼 그의 감각은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하다.
제온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는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제온이라는 존재가 그만큼 껄끄러웠던 것이다.
“정말 놈이 타지크를 제거했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해.”
물론 동대문의 전력을 동원하면 제온을 못 지울 것도 없었다.
동대문엔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이 모래알처럼 널려 있었으니까.
특히 그가 키운 광전사들의 전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그들을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네오 서울의 권력자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네오 서울에 신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꿈이긴 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힘을 더 키워야 할 때였다.
최소 빈민가 전체를 집어삼켜야 네오 서울을 도모해 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전력의 누수를 최대한 막으면서 움직여야 했다.
그가 문득 탁자를 내려다봤다.
탁자엔 제온의 행적을 조사한 문서가 널브러져 있었다.
문서에 적혀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사막에서의 행적을 전혀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제온이 네오 서울을 떠나야 했던 이유와 네오 서울로 돌아온 이후의 행적 정도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등한시했었다.
정말 이용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유독 이름 하나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이지령? 설마 내가 아는 그 이지령인가?”
***
제온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보이는 거라곤 새빨간 네온사인과 사막한 빈민가의 풍경뿐이다. 그래도 제온은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는 이 시간을 즐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짜자잔!”
브리엘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활짝 벌린 그녀의 양팔에는 정체불명의 물건이 잔뜩 든 가방이 들려 있었다.
저렇게 많은 가방을 들고 빈민가를 무사히 가로질러 왔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분명 노리는 놈들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그 많은 짐을 혼자 들고 온 거냐?”
“레빈이 도와줬어.”
정확히는 레빈의 친구들이 옮겨다 줬다.
레빈이라는 말에 제온이 납득했다.
“그렇구나. 근데 그건 다 뭐냐?”
“이번 실험에 쓸 재료들.”
“설마 그것도 내 이름으로 외상한 거냐?”
“흥! 내가 벌어서 산 거거든. 누굴 거지로 아나?”
“네가 벌었다고? 어떻게?”
“그런 게 있어.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마. 다치니까.”
브리엘은 콧방귀를 뀌며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제온은 평화의 시간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저렇게 많은 재료를 사 왔으니 또 실험한다고 집을 어지럽힐 것이 분명했다.
“혹시 독립할 생각은 없냐?”
“난 이 집이 너무 좋은데? 안전한 데다가 전기도 마음껏 펑펑 쓸 수 있고. 빈민가에 이런 곳이 또 어디 있다고 나가?”
“…….”
브리엘의 뻔뻔함에 제온이 할 말을 잃었다.
‘원래 하이 엘프라는 족속은 다 저렇게 뻔뻔한 건가?’
브리엘은 벌써 짐을 풀어 집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제온의 정신이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제온은 고개를 저으며 옷을 걸쳤다.
‘이젠 밖으로 나갈 때도 됐지.’
너무 오래 집에 처박혀 있었더니 관절이 다 뻣뻣하게 굳은 것 같았다.
거리로 나온 제온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식당들이 들어선 거리로 걸어갔다.
그의 목적지는 바로 클렉시 영감의 가게였다.
생각대로 가게에는 클렉시 영감이 앉아 있었다.
제온을 보자 클렉시 영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오랜만이구나.”
“몸은 좀 어떻습니까?”
“좋지는 않아. 죽음의 관에 오래 갇혀 있었더니.”
“그만큼 정기를 빨리고도 살아 있는 게 기적입니다. 평소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먹었으면…….”
“너도 나이 들어 봐라.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게 되지.”
“다행입니다. 그렇게라도 버텼으니.”
“감사의 인사가 늦었구나. 고맙다. 덕분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됐습니다. 다 대가 받고 한 일이니까요.”
“네놈이 나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그 은혜는 반드시 갚으마.”
지독할 정도로 돈을 탐하는 클렉시 영감이었지만, 그래도 은원은 확실히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기에 제온을 각별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말을 돌렸다.
“혹시 석관에 오래 갇혀 있었다고 요리 실력마저 줄어든 것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잠깐만 기다리거라. 금방 차려 줄 테니까.”
클렉시 영감은 화구 앞에 서서 요리하기 시작했다.
제온은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를 보는 상인들의 시선에서 경계심이 많이 사라졌다.
그들의 주인인 클렉시 영감을 제온이 구해 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온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릴 수 있었다.
“먹어라.”
잠시 후 클렉시 영감이 먹음직한 볶음밥 한 그릇을 내놨다.
배양육 고기에 각종 양념을 버무려 냄새만으로도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제온은 바로 수저를 들고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클렉시 영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은 정말 맛있게 볶음밥을 먹었다.
클렉시 영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타지크가 죽었다더구나.”
“그렇습니까?”
“음흉한 놈이었지. 그만큼 능력도 있어 더 골치 아팠고. 그런데 뭐에 홀렸는지 사막을 헤매다가 샌드웜의 밥이 되었다더구나.”
“저런…….”
“세상엔 참으로 요상한 일들이 많아. 어떤 일들은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 이번 일도 그런 것 같구나.”
“별일이 다 있군요.”
“어쨌거나 타지크가 죽었으니 샤오룬도 당분간 빈민가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할 게야.”
“잘됐네요.”
제온이 그릇에 고개를 처박은 채 대답했다.
클렉시 영감은 그런 제온을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세희는 내 외손녀야.”
“알고 있습니다.”
“하나만 빼고 내 사업체를 다 그 녀석이 이끌고 있어.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녀석에게 말해.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줄 테니까.”
“다 넘겨준 거 아니었습니까? 어지간하면 넘겨주고 여유롭게 사시지.”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줘 버리면 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그리고 그것까지 감당하기엔 세희의 그릇이 크지 못해. 좀 더 담금질하고 확장해야 해.”
“깐깐하시네요.”
“원래 가족끼리 더 깐깐해야 하는 법이야. 가업을 날려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니까.”
“어련하시겠어요.”
제온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클렉시 영감은 여전히 신중한 표정이었다.
“궁금하지 않으냐?”
“뭐가요?”
“내가 세희에게 넘겨주지 않은 마지막 사업체가.”
“뭐, 조금 궁금하기는 하네요. 물어보면 알려 줄 건가요?”
“너라면.”
“그럼 물어보죠. 그렇게 애지중지 아껴 둔 사업체가 뭔가요?”
“아르고스의 눈.”
“뭐라구요? 아르…….”
“아르고스. 신화에 나오는 백 개의 눈을 가진 괴물이다.”
“백 개의 눈이면 정보 쪽이겠군요.”
“역시 단번에 알아듣는구나.”
클렉시 영감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제온은 덤덤했다.
“그렇게까지 힌트를 줬는데 못 알아들으면 이상한 거죠.”
“단번에 알아차리는 네가 더 이상한 거야.”
“그건 그렇고 아르고스의 눈은 왜요?”
“정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이용하거라.”
“오!”
제온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거짓이 아니라 진짜 감탄한 것이다.
정보의 유용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르고스의 눈이 얼마나 광대한 정보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빈민가의 사정에 관해서는 환할 것이 분명했다.
빈민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아도 앞으로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클렉시 영감이 누군가를 불렀다.
“윌!”
“네!”
거대한 체구에 붉은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대답과 함께 다가왔다.
“윌은 이 시장 입구에 있는 정육점 주인이다. 이 녀석에게 필요한 것을 물어보면 언제든지 알아다 줄 것이다.”
“반가워요. 윌! 우리 몇 번 봤죠?”
제온이 손을 살짝 흔들었다.
윌의 정육점은 클렉시 영감의 가게로 오다 보면 반드시 지나올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 때문에 오다가다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윌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저희 정육점을 찾아오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어르신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윌이 제온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제온은 괜히 쑥스러워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