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레빈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옷은 찢어지고 타서 걸레처럼 변했고, 어깨와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상처 입은 부위에서는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헉! 헉!”
레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상태는 레빈보다 좋지 않았다.
깊은 상처도 더 많았고, 피도 훨씬 많이 흘렸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키킥! 정말 재밌는 능력이야. 유령화에 전격 계열 스킬까지 쓸 수 있다니. 아마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네놈도 연구소에 갇히게 될 것이다.”
“네놈도? 연구소에 갇혀 있었냐?”
“흐흐! 이거면 대답이 되려나? 내 의지로 멀쩡한 손을 잘라 내고, 단 게 아니니까.”
남자가 기계로 된 손을 흔들었다.
수차례 강력한 전기 에너지를 방출한 기계 의수는 망가져 쩔그럭 소리를 냈다. 그래도 남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었다.
“그래서 연구소를 탈출해 사람들을 썰고 다닌 거냐?”
“흐흐! 내가 당한 것만큼 다른 놈들도 고통을 느껴 봐야지.”
“개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왜 말이 안 돼?”
“겨우 그런 이유로 엄마와 동생이 죽었다고? 그런 시답지 않은 이유로?”
“흐흐! 꼬마야! 그보다 못한 이유로 죽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언제까지 어리광을 피울 셈이냐?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부모에게서 독립하게 되어 있어. 난 그 시간을 조금 더 빨리 끌어온 것뿐이야.”
“너는 내가 죽인다. 반드시!”
“이제 좀 어른다운 얼굴이 됐구나.”
“씨발!”
순간 레빈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오오! 등급이 오른 것인가?”
남자는 그것이 각성자의 등급이 상승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의 분노는 레빈을 E급에서 D급으로 상승하게 했다.
빠지직!
레빈은 유령화된 상태로 보라색 전기를 발산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레빈의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죽엇!”
순간 그의 전신에서 보랏빛 체인 라이트닝이 터져 나왔다.
전격의 그물은 순식간에 남자를 덮쳤다.
“키킥!”
남자가 뒤로 물러나며 은사가 매달린 검을 휘둘렀다.
의수가 망가져 더 이상 검과 은사엔 전류가 흐르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이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는 사람을 죽이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레빈이 사용하는 유령화는 분명 대단한 능력이다.
인간의 육체를 실체가 없이 바꾸다니.
어지간한 물리 공격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령화를 펼치는 레빈은 대단하지 않았다.
등급이 상승했지만, 아직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다룰 줄 몰랐다.
그 때문에 유령화가 된 와중에도 간간이 육체가 실체화되었다. 물론 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남자에겐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남자는 레빈의 육체가 실체화되는 찰나의 순간을 노렸다.
푸욱!
단검이 레빈의 옆구리에 깊이 박혔다.
레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옆구리에 박힌 단검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남자가 그런 레빈을 보며 비웃었다.
“봤잖아. 날 한쪽이 톱니처럼 되어 있는 것. 생살을 다 뜯어내기 전에는 안 뽑혀. 어때? 뜨겁지.”
레빈이 대답 대신 충혈된 눈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그거 화염 악어의 뼈로 담금질했어. 그래서 꽤 뜨거울 거야.”
“누가 뽑는데?”
“뭐?”
“이제 겨우 잡았는데 왜 뽑아?”
레빈이 피로 물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새끼!”
남자는 순간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레빈이 능력이 모자라 순간적으로 실체화된 게 아니라 일부러 허점을 보인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유도한 거냐?”
“그래! 이 개새끼야.”
레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전력으로 체인 라이트닝을 펼쳤다.
보라색 전류는 단검에 매달린 은사를 타고 남자를 강타했다.
남자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엄청난 전류에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만 떨었다.
퍼버벅!
전류가 관통하면서 여기저기 살점이 터져 나가고, 기계 의수가 완전히 박살 났다.
레빈은 죽일 각오로 전력을 쏟아부었다.
“허억!”
잠시 후 레빈이 허탈감을 느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느새 유령화가 풀려 실체로 돌아와 있었다.
레빈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불에 구운 것처럼 바싹 타 있었다.
머리는 모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피부는 눌어붙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태로도 남자는 살아 있었다.
비록 숨이 끊어질 것처럼 가쁜 호흡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서 레빈을 노려보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죽기 일보 직전에도 살기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그 모습에 소름이 다 끼쳤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저런 살의를 품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이겼어.”
레빈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저 소름이 끼치는 눈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레빈은 자신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단검을 뽑았다.
단검이 뽑혀 나오면서 생살이 뜯겨 나왔다.
지독한 고통에 정신이 다 아득해졌지만, 레빈은 애써 의식을 유지했다.
“너도 느껴야 해. 울 엄마와 동생, 다른 사람들이 느꼈던 고통을…….”
“크흐……흐! 좆 까!”
가래 끓는 소리로 남자가 겨우 대답했다.
레빈은 그런 남자의 허벅지에 단검을 꽂았다.
푹!
단검이 파고들면서 남자의 몸이 크게 펄떡였다.
전신이 전류에 탔지만, 그래도 통각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레빈이 단검을 뽑았다.
뿌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생살이 뜯겨 나왔다.
충분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마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이 웃었다.
“개새끼! 넌 살 가치가 없는 새끼야.”
레빈은 그런 남자의 어깨에 다시 한번 단검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좌우로 휘저었다.
톱날에 상처가 뜯겨 나가면서 구멍이 넓어졌다.
레빈은 단검을 뽑아 바라봤다.
톱날 부위에 엉켜 있는 살점들이 보였다.
거기엔 남자의 살점뿐 아니라 자신의 것도 섞여 있었다.
왠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두 눈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씨발!”
레빈은 남자의 목으로 단검을 가져갔다.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이…… 짓도 해 본 놈이나 하는 거야. 너……처럼 무른 놈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못해.”
“이름이 뭐냐?”
“왜, 기억이라도 하려고?”
“그래! 영원히 기억하고 곱씹으련다.”
“흐흐! 웃기는 새끼네. 그런데 어쩌냐? 애초부터 나에겐 이름이 없었는데.”
“그래? 그럼 너를 개새끼로 기억할게.”
“그것도 나쁘지 않네. 개새끼! 이제부터 내 이름은 개새끼다. 죽기 직전에야 이름을 가져 보는군. 흐흐!”
레빈은 더 이상 남자가 웃는 꼴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단검을 힘껏 찔렀다.
쾅!
하지만 그의 시도는 누군가에 의해 무위로 돌아갔다.
폭음과 함께 단검을 쥔 레빈의 손이 뒤로 튕겨 나갔다.
엄청난 충격에 팔이 골절되어 덜렁거렸다.
“크윽!”
뒤로 나가떨어진 레빈이 팔뚝을 바라봤다.
그의 팔뚝엔 어린아이 손바닥 크기만 한 화살이 박혀 있었다.
누군가 화살을 쏘아 그의 행동을 막은 것이다.
레빈이 팔뚝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누구야? 씨발!”
“미안하지만 소년, 그자는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화살의 주인이 나타났다.
발목까지 가리는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쓴 여자였다.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로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빈이 악을 썼다.
“너도 이 개새끼하고 공범이냐?”
“그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소년!”
“진짜 모욕이 뭔지 알아? 정당한 복수를 못 하게 막는 것이 진짜 모욕이야.”
“그건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이자는 매우 중요한 증거니까. 그리고 소년도 우리와 같이 가 줘야겠다.”
“뭐?”
“소년의 그 특이한 능력은 위험하다. 우리가 보호해 주겠다.”
“좆 까! 씨발! 누가 누굴 보호해?”
“인간은 어째서 이성적이지 못할까? 왜 이렇게 격정적인지 모르겠구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옳은 것을 알 텐데.”
여자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등 뒤로 똑같은 복장을 한 여자들 십여 명이 나타났다.
여자가 그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두 사람 모두 데려가요.”
“네!”
여자들이 레빈에게 다가왔다.
“으아아!”
레빈이 걸레를 쥐어짜듯 남은 힘을 모두 방출했다. 하지만 그 위력은 보잘것없었다.
퍼버버벅!
그런 레빈의 몸 위로 무자비한 주먹세례가 쏟아졌다.
가냘픈 체구와 달리 그들의 주먹질은 강렬했다.
떵!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레빈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날아갔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레빈을 여자 중 하나가 안아 들었다.
우두머리 여자가 중얼거렸다.
“임무 완수에 덤으로 희귀한 각성자까지 얻었으니 퀸께서 좋아하시겠군. 인간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세뇌하면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 있겠지.”
“퀸이라면 북 구역의 아이스 퀸을 말하는 건가요?”
그때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언제?’
바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가 공격했으면 속절없이 당할 뻔했다.
그녀가 재빨리 뒤돌아섰다. 그러자 훤칠한 키에 잘생긴 남자와 고깔모자를 쓴 어린 소녀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고?’
자신의 감각을 속인 게 두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애써 동요를 감추며 태연하게 말했다.
“저희 말고도 손님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어디서 온 분들이죠? 남 구역, 중앙 구역?”
“이 동네 사람인데요.”
“빈……민가 사람이라고요?”
“네!”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이는 제온이었다.
그의 곁에 있는 고깔모자 소녀는 바로 브리엘이었다.
“레빈!”
브리엘의 시선이 여자의 어깨에 짐처럼 걸쳐진 레빈을 향했다.
레빈은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고깔모자 아래 숨겨진 브리엘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비록 깊은 속내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였다.
그런 레빈이 심각한 상처를 입고 납치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두 사람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레빈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저들에 의해 실종되었을 것이다.
빈민가에서의 실종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브리엘은 잘 알고 있었다.
브리엘이 말했다.
“레빈! 내려놔.”
“…….”
여자들은 대답이 없었다.
제온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자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레빈은 우리 친굽니다. 돌려주시죠.”
“그럴 수는 없어요. 그는 매우 희귀한 각성자예요. 잘만 키우면 큰 전력이 될 거예요.”
“그의 동의를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의 동의는 필요 없어요. 물론 당신의 동의도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아요.”
“그것참 유감이네요.”
“저도 유감이에요. 될 수 있으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는데.”
여자가 중절모를 깊이 눌러썼다.
눈과 얼굴을 가리는 것은 그만큼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누구나 가면을 쓰는 걸지도 모르지.’
그 순간 우두머리 여자가 명령을 내렸다.
“죽이지 말고 제압해. 저들도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