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좋네!’
제온이 육포를 씹으며 생각했다.
큰 뿔 하이에나의 육포였다.
수분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이었다.
옷으로 감싼 고깃덩이들은 수분을 모두 빼앗기고 쪼그라들었다. 먹을 만한 육포가 된 것이다.
누린내가 조금 나는 것이 흠이었지만, 그 정도는 참고 먹을 만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배를 곯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육포는 넉넉했고, 배가 고플 때마다 제온은 조금씩 육포를 씹었다. 풍족하게 먹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식수였다.
매일 아침 이슬로 해결하기에 항상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온종일 물을 먹지 못해 괴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수분을 아끼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최대한 볼일을 참고 입을 열지 않는다. 땀으로 배출되는 수분도 아까워 모래 걸음을 펼칠 때도 상체의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했다.
나중에는 다리의 움직임마저도 최소한으로 했다.
그 때문에 멀리서 보면 가만있는데 모래가 알아서 그를 운반해 주는 것같이 보였다.
나중에는 데이오든이 투덜거렸을 정도였다.
“병신 새끼가 제법 쓸 만한 스킬을 얻었구나. 누구는 뼈 빠지게 걷는데, 편하게 사막을 걷다니.”
사막에서 제온의 능력은 절대적이었다.
아직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급이 낮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씩 자신의 잠재력을 깨우치다 보면 사막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데이오든은 세상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정작 제온이 자신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모른채 말이다.
제온이 고개를 들어 허공을 쳐다봤다.
‘습기? 근처에 수원(水原)이 있나?’
미세하나마 공기 중에 수분이 느껴졌다.
예전의 그였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성하고, 데이오든을 따라다니면서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날카로워진 감각은 사막의 미세한 습기를 놓치지 않았다.
제온이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데이오든은 수분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제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연일 리 없지. 나도 알아챈 것을 저 괴물이 모를 리가…….’
데이오든은 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같은 인간인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데이오든은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쩌면 그가 이제까지 보여 준 능력조차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저 인간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
데이오든의 한계가 곧 인간이라는 종(種)의 한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커다란 모래 언덕이 나타났다.
불어오는 바람에 언덕의 모래가 물결처럼 휩쓸려 나갔다.
‘최근에 만들어진 언덕이군.’
사막은 늘 그대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어제까지 존재하던 언덕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언덕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래술사로 각성한 덕분인지 제온은 모래의 겉모습만 보고도 여러 정보를 알 수 있었다.
힘들게 거대한 모래 언덕을 넘으니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물이 가득 고인 거대한 연못이 나타난 것이다.
오아시스가 분명했다.
“아!”
제온이 탄성을 내뱉었다.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오아시로 달려갔다.
이제까지 갈증을 잘 참았지만, 막상 물이 가득한 광경을 보니 자제력을 잃은 것이다.
“쯧!”
데이오든은 무작정 오아시스로 달려가는 제온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온은 순식간에 오아시스에 도달했다,
그는 물에 고개를 처박고 미친 듯이 물을 들이켰다.
입안을 가득 채우며 밀려드는 물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물을 마시고 있던 그의 눈에 무언가 은은한 불빛이 보였다.
물속 깊은 곳에서 등불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구체.
제온은 자신이 물속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구체형의 등불을 바라봤다.
등불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제온은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눈은 홀린 것처럼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마침내 등불이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정신 차려라, 병신 새끼야!”
욕설과 함께 데이오든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데이오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제온은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그때였다.
푸화학!
갑자기 물을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큰 뿔 하이에나조차 한입에 삼킬 것 같은 거대한 몸체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큼직한 입. 그리고 이마에 달린 안테나 모양의 가시엔 동그랗고 커다란 살점이 달려 있었다.
제온이 등불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바로 둥그런 살점이었다. 살점에는 은은한 빛이 어려 있었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모래 아귀다. 이마에 달린 등불로 먹이를 유혹해 잡아먹지.”
“아!”
간발의 차이로 겨우 목숨을 구한 제온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는 모래 아귀를 바라봤다.
데이오든이 구해 주지 않았으면 그는 한입에 잡아먹히고 말았을 것이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꺼내며 말했다.
“조금 적응했다고 설치는 너 같은 새끼가 일찍 뒈지는 거다. 알겠냐? 병신아!”
“…….”
“대답!”
“네!”
데이오든은 제온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그의 몸이 수면 위로 쏘아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수면 아래로 잠수하려는 모래 아귀를 향해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퍼엉!
크레이온이 작렬하자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두려움을 느낀 모래 아귀가 물속 깊은 곳으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데이오든이 그렇게 놔주지 않았다.
“챠앗!”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앞세워 물속으로 들어갔다.
쐐애액!
마치 어뢰처럼 무서운 속도로 쏘아지는 데이오든.
순간 도주하는 것을 포기한 모래 아귀가 몸을 돌려 데이오든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모래 아귀의 패착이었다.
푹!
크레이온과 데이오든이 그대로 모래 아귀를 관통한 것이다.
거대한 모래 아귀가 숨이 끊어져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데이오든은 그런 모래 아귀의 꼬리를 잡고 오아시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쿵!
데이오든이 모래 아귀의 거대한 몸체를 제온 발아래 던졌다.
“흐업!”
제온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금방이라도 모래 아귀가 자신을 덮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모래 아귀의 위용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생명체가 오아시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사막에 간혹 발견되는 오아시스엔 모두 이놈이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등불로 너 같은 멍청이를 유혹해 단숨에 잡아먹지. 그러니까 어디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보인다고 함부로 고개를 처넣는 짓은 하지 마라. 머리가 텅텅 빈 새끼야!”
“네!”
지은 죄가 있기에 제온은 힘없이 대답했다.
“가죽을 벗겨라.”
“네?”
“귀까지 멀었느냐? 가죽을 벗기라고. 모래 아귀는 C급 마수다. 뱃가죽이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아 로브를 만들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잘라서 로브를 만들어라.”
“혹시 로브가 필요하신 겁니까?”
“나 말고 네 것 말이다, 병신아! 어떻게 점점 더 지능이 떨어지냐? 대가리에 석화 마법이 걸린 것도 아니고.”
“아!”
그제야 데이오든의 말뜻을 알아들은 제온이 급히 모래 아귀를 뒤집었다.
등 쪽은 짙은 갈색에 우둘투둘한 돌기가 잔뜩 돋아나 있었는데, 뱃가죽은 검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무척이나 질겨 단검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제온은 단검에 마나를 주입해 뱃가죽을 잘라 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마침내 뱃가죽을 모두 잘라 낸 제온의 전신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로브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바늘이 있을 리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거대 마수인 모래 아귀의 뱃가죽에 들어갈 리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제온은 모래 아귀의 뼈 하나를 꺼내 바늘 형태로 다듬었다. 실은 모래 아귀의 등껍질을 얇게 잘라서 대신했다.
다행히 제온은 손재주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로브였지만, 그래도 반나절을 낑낑거리고 힘을 쓰니 얼추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제온이 로브를 만드는 사이 데이오든은 모래 아귀의 사체를 해체했다.
모래 아귀의 고기는 버릴 게 하나 없었다.
마수 고기에 으레 존재하는 독기도 거의 없었고, 맛도 좋은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지금 데이오든의 손에 들린 쓸개였다. 그는 어른 몸통만 한 크기의 쓸개를 제온에게 던져 줬다.
“먹어라!”
“네? 생으로 먹으란 말입니까?”
제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 같은 약골한테는 최고로 좋은 녀석이다. 그러니까 하나도 남기지 말고 먹어라.”
“…….”
“안 먹으면 내 손에 뒈진다.”
“먹습니다. 먹는다구요.”
데이오든이 항상 진심이라는 것을 제온은 알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모래 아귀의 쓸개를 뜯어 먹었다.
누가 쓸개 아니랄까 봐 지독하게 썼다.
‘젠장!’
제온이 오만상을 다 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쓸개를 잘게 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입 뜯어 입안에 넣으면 녹아서 식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포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른 몸통만 한 쓸개를 모조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온의 배는 그대로였다.
“신기하네! 큭!”
중얼거리던 제온이 갑자기 인상을 썼다.
배 속에서 갑자기 가공할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아악!”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고통에 제온이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흥!”
데이오든은 그런 제온을 본체만체하며 모래 아귀 고기를 잘라 냈다.
화르륵!
그의 손에서 불길이 피어나며 순식간에 고기를 바싹 익혔다.
데이오든은 잘 익은 모래 아귀를 질겅질겅 씹으며 오아시스를 바라봤다.
“이 또한 금방 사라지겠지.”
사막의 오아시스는 신기루와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가 또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막의 유사를 타고 엉뚱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오아시스의 주인인 모래 아귀가 죽었지만, 또 다른 모래 아귀가 나타날 것이다.
모래 아귀는 자신이 사는 오아시스에 항상 알을 낳아 둔다.
오아시스의 지배자가 죽으면 알아서 새끼 모래 아귀가 태어난다.
그렇게 생명의 순환은 절대 끊이지 않는다.
다만 지금 데이오든이 잡은 모래 아귀만큼 자라려면 족히 백 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크아악!”
지금도 옆에서는 제온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데이오든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병신 새끼!”
***
제온이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어?”
눈을 뜬 제온은 깜짝 놀랐다.
전신에 이제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활력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몸에 근육이 잔뜩 붙어 있었다.
풍선처럼 빵빵한 근육이 아니었다.
제온의 원래 체형 자체가 마른 편이었다.
그런데 마른 몸 전체가 근육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근육 한 올 한 올이 철사를 엮어 놓은 것처럼 선명하고 질겼다.
제온은 자신의 변화에 놀라 말을 못 했다.
옆을 바라보자 데이오든이 앉아서 모래 아귀의 고기를 먹는 것이 보였다.
제온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네놈 몸이 약발을 잘 받은 모양이구나.”
“그럼 모래 아귀의 쓸개가 약이라는 겁니까?”
“천하에 다시 없을 귀한 약이지. 근골을 보강하는 데 저만한 놈이 없다.”
“감사합니다. 그리 귀한 것을 저에게 주셔서.”
“흥! 네놈 같은 약골을 데리고 다니려니 어쩔 수 있나? 이거나 먹고 떠날 준비를 해라.”
데이오든이 고기 한 덩이를 제온에게 던져 줬다.
제온은 먼저 어제 만든 로브를 몸에 걸쳤다.
로브를 걸치는 순간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모래 아귀 가죽이 완벽하게 사막의 열기를 차단하고 냉기를 발산하는 것이다.
“아!”
상상도 못 했던 효능에 제온이 놀라 탄성을 내뱉었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당분간 이곳에 있으면서 모래 아귀 고기를 먹을 것이다.”
“모두 먹는단 말입니까?”
“사막에 이 정도 영양을 가진 고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모조리 먹어 치워야지.”
“알겠습니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데이오든이 사막에서 콩 나무가 자란다고 거짓말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온은 데이오든과 함께 모래 아귀를 먹었다.
거대한 모래 아귀가 뼈만 남기고 사라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나흘에 불과했다.
정말 뼈만 남기고 남김없이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오아시스도 사라졌다.
두 사람은 미련 없이 오아시스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