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어우! 뭐야?”
레빈이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일어났다.
족히 수십 미터는 굴러떨어진 것 같았다.
각성자니까 무사한 거지, 일반인이었다면 죽거나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긴 제온도 자신이 각성자인 것을 아니 그렇게 걷어찼을 것이다.
“형은 왜 날 이런 곳에 밀어 넣은 거지?”
레빈이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온통 시커먼 어둠뿐이다.
각성자인 레빈의 눈으로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어둠은 지독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하 공간이 꽤 넓다는 것을 말이다.
레빈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바로 바람이었다.
지하 어디선가 제법 센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퀴퀴한 냄새와 미세한 소음.
후이잉!
짐승의 숨소리 같기도 하고, 미약한 피리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소음을 듣는 순간 레빈은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뭐냐?”
그때였다.
레빈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 눈을 떴다.
어둠을 밝히는 샛노란 안광.
그런데 한 쌍이 아니었다.
수백, 수천 쌍이 넘는 안광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씨발! 저게 뭐야?”
후이잉!
그 순간 예의 그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레빈은 그제야 소음이 안광의 주인들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푸드득!
그때 날갯짓 소리와 함께 한 쌍의 안광이 레빈에게 날아왔다.
레빈은 급히 유령화해서 놈의 공격을 피했다.
놈은 허무하게 레빈의 몸을 통과했다.
그 순간 레빈은 놈의 모습을 확인했다.
“박……쥐?”
그것은 분명 박쥐였다.
날개 길이만 일 미터가 넘는 거대 박쥐.
주둥이엔 화염 늑대의 어금니만큼이나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달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흡혈하기 최적의 형태로 발달한 이빨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하에 가득한 박쥐들은 모두 흡혈박쥐였다.
놈들에게 물리면 모든 피를 빨려 미라처럼 말라 죽고 말 것이다.
“씨발!”
레빈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유령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유령화된 상태에선 놈들의 공격이 아무 소용 없으니까.
그때였다.
후이잉!
박쥐들이 발산하는 기묘한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그 순간 레빈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크윽!”
신음과 함께 그의 몸이 다시 실체화되었다.
레빈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잃고 실체화된 것이다.
“그럼 박쥐들이 발산하는 초음파가 유령화를 방해하는 건가?”
박쥐들이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초음파를 발산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초음파가 유령화를 방해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그 누구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이곳에 밀어 넣을 이유가 없으니까.
후이잉! 후이이잉!
흡혈박쥐 수백, 수천 마리가 일제히 초음파를 발산했다.
“제기랄!”
레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천 마리 앞에 알몸으로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흡혈박쥐들이 일제히 날아왔다.
레빈은 필사적으로 몸을 유령화했다.
초음파의 방해를 뚫고 겨우 유령화되었지만, 집중력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차례 박쥐들이 통과한 후 집중력이 깨지면서 그의 몸이 실체화됐다.
콰득!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흡혈박쥐 한 마리가 그의 팔뚝을 물었다.
“으아악!”
레빈이 비명을 지르며 체인 라이트닝을 펼쳤다.
콰가각!
그의 팔뚝을 물은 박쥐와 근처에 있던 놈 몇 마리가 강한 전류에 터져 나갔다.
놈들이 죽으면서 피 냄새와 타는 냄새가 확 퍼져 나갔다. 그러자 흡혈박쥐들이 더 미쳐 날뛰었다.
후드득!
수많은 날갯짓과 초음파가 뒤섞여 엄청난 반향음을 만들어 냈다.
그 모든 것이 레빈의 유령화를 방해했다.
레빈은 필사적으로 흡혈박쥐의 공격을 피하며 유령화를 시도했다.
그제야 레빈은 제온이 자신을 왜 이곳에 집어넣었는지 알아차렸다.
각성자가 등급을 상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많은 경험을 하는 것.
이곳에 있는 흡혈박쥐들은 그와는 천적 관계.
흡혈박쥐들을 상대해 살아남는다면 등급의 상승을 이룰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투지가 생겨났다.
“씨발!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고. 너희들이 죽는지, 내가 죽는지. 덤벼! 박쥐 새끼들아.”
후두두둑!
그의 도발에 답이라도 하듯 흡혈박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시작됐군.”
사암 틈바구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제온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레빈의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마 레빈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지하 공간의 크기가 그의 짐작보다 훨씬 크고, 흡혈박쥐 무리가 몇 배나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레빈이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잠력을 폭발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지 못하면 끝없는 흡혈박쥐들의 공격에 결국 미라처럼 피가 말라 죽고 말 것이다.
레빈을 지옥 같은 곳에 밀어 넣었지만, 제온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강해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데이오든도 그렇게 제온을 키웠다.
그리고 제온도 그렇게 레빈을 키우려 한다.
콰르르!
제온이 사암에 손을 대자 모래로 변해 무너져 내렸다.
모래는 조그만 틈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이제 레빈이 빠져나올 구석은 없다.
유일한 방법은 흡혈박쥐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오는 것뿐이었다.
제온은 그때까지 마음 편히 쉬기로 했다.
그는 아공간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냈다.
철갑 쇠똥구리의 똥도 그중 하나였다.
철갑 쇠똥구리는 먼 사막에 사는 마수였는데, 놈의 똥은 단단한 데다가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또 한번 불이 붙으면 매우 오랫동안 화력이 유지되었다.
그 때문에 사막에서 불을 피울 때 매우 유용했다.
화르륵!
철갑 쇠똥구리의 똥에 불이 쉽게 붙었다.
제온은 모닥불 위에 솥을 걸고, 안에 미리 준비해 뒀던 음식을 넣었다.
아공간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제온은 네오 서울에 들어온 후 먹을 만한 음식을 상당수 아공간에 넣어 두었다.
이렇게 해 두면 언제나 신선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네!”
제온은 음식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모닥불을 쬈다.
사실 제온은 이런 모닥불이 필요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로브가 체온을 완벽히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닥불을 피운 것은 불이 주는 묘한 안도감 때문이다.
왠지 이 안으로는 마수들이 넘어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제온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해가 지고 하늘도 어두워졌다.
밤은 마수들의 시간.
이제부터는 마수들이 활개 칠 것이다.
쿠오오!
멀리서 이름 모를 마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제온은 울음만 듣고도 단번에 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장갑 큰 뿔 곰인가? 놈이 이 근처까지 영역을 넓히다니.”
제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장갑 큰 뿔 곰은 무려 B급 마수였다.
체고만 칠 미터에 전신에 장갑 같은 두꺼운 가죽이 뒤덮여 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장갑 같은 가죽을 뚫고 상처를 입힐 수 없다.
단순히 방어력만 높은 게 아니라 엄청난 치악력과 치명적인 발톱, 큰 뿔을 갖고 있어 위험하다.
C급 이하의 무투계 각성자가 놈의 가죽을 뚫고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놈은 짝짓기 시기를 제외하면 혼자 사막을 떠돈다.
그만큼 자신의 체구와 힘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놈을 건드릴 수 있는 마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화염 늑대 무리는 물론이고, 샌드웜조차 놈을 건들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온이 알기로 이곳은 장갑 큰 뿔 곰의 영역이 아니었다.
사막을 혼자 떠돌지만, 그것도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움직였다.
“놈이 영역을 확장한 건가? 굳이 네오 서울 가까이?”
제온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을 때였다.
콰아아!
어둠을 뚫고 굉음이 들려왔다.
제온은 그것이 자동차 엔진 소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잠시 후 전조등 불빛과 함께 차 한 대가 제온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
엉망이 된 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내 말이 맞잖아. 역시 모닥불 빛이었어.”
“누가 겁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 불을 피우는 거야.”
“엔진이 완전히 맛 가기 전에 겨우 도착했네.”
차에서 내린 이는 중장갑을 입은 네 명의 남녀였다.
제온과 비슷한 또래였는데,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뻤다.
그중 가장 강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제온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파티장 김경수라고 합니다. 혹시 신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온이라고 합니다.”
“네오 서울에서 나오신 분입니까?”
“네오 서울은 아니고, 빈민가에서 나왔습니다.”
“음!”
예상치 못한 제온의 대답에 김경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일행들을 바라봤다.
그와 함께 온 일행들도 의외였는지 눈만 끔뻑거렸다.
그중 유일한 홍일점인 여자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멀리 나오셨네요. 전 유승희라고 해요.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이준수입니다.”
“최창식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신분을 밝혔다.
모두 한국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한국계만으로 이뤄진 파티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온이 물었다.
“모두 친구분들이신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모두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죠. 이십 년 넘게 붙어 다니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밤중엔 어쩐 일입니까?”
“그게 엔진이 맛이 가서 무리에서 뒤처졌습니다.”
“무리?”
“공략대 말입니다. 얼마 전에 발생한 던전을 이제 공략하고 귀환하던 중이었습니다.”
대형 던전이 발견되면 네오 서울에선 공략대를 모집한다.
그러면 각 구역에서 활동하는 각성자들이나 파티들이 지원한다.
네오 서울에선 그들을 선별해 공략대를 구성해 던전을 토벌하게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던전 공략 방식이었다.
하지만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던전은 무작위로 발견되었고, 모든 던전을 네오 서울에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던전 발견 사실을 네오 서울에 알리지 않고 들어가는 각성자들이나 파티도 꽤 많았다.
성공적으로 던전을 토벌하면 큰돈을 벌기 때문이다.
대신 그만큼 위험도가 높아졌다.
어쨌거나 판단은 발견자들의 몫이었다.
김경수가 이끄는 파티는 독자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만큼 강하지 않았다.
일단 리더인 김경수가 C급이었고, 나머지 친구들도 C급과 D급에 골고루 포진되어 있었다.
그들은 주로 네오 서울에서 주관하는 공략대에 지원해 이익을 챙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공략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그들이 타고 온 차량이 문제였다.
혹독한 환경에 그만 엔진이 맛이 간 것이다.
그 때문에 뒤처져서 낙오된 것이다.
만일 유승희가 제온이 피운 모닥불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유승희가 말했다.
“실력에 꽤 자신이 있나 봐요? 이렇게 모닥불을 피우다니. 덕분에 우리는 살았지만.”
“그냥 추워서 어쩔 수 없이 피웠습니다.”
“그래요? 그냥 차에 계실 것이지. 아, 차는 저기 있네요.”
소형 버기카를 본 유승희의 눈이 빛났다.
김경수와 다른 친구들의 눈도 위험하게 빛났다.
그 모습을 본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 웃긴 게 꼭 별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