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장갑 큰 뿔 곰의 몸을 관통한 수많은 모래 가시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어디에도 모래가 거대한 가시가 되었다는 증거는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핏빛으로 물든 모래뿐.
그마저 바람에 실려 오는 새로운 모래에 덮여 금방 사라졌다.
“뭐였지?”
“도대체?”
김경수 파티가 눈을 끔벅거렸다.
분명 착각이나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그들 눈으로 제온이 모래를 이용해 가시를 만드는 것을 똑똑히 봤다.
그것은 거짓도, 환상도 아니었다.
제온의 능력이 분명했다.
‘분명 화염계 스킬을 사용했었는데?’
‘거기에 모래까지 사용한다고? 그럼 듀얼 각성자?’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듀얼인 것만 해도 놀라운데, 또 하나의 능력이 모래를 다루는 거라니.
그들은 단번에 제온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험한 것인지 알아차렸다.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지만, 모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온의 가능성은 무한했다.
제온의 시선이 네 사람을 향했다.
“비밀 지켜야 하는 것 알죠?”
네 사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심장을 보이지 않는 사슬이 옥죄이고 있었다.
맹약을 어기고 입을 여는 순간 사슬이 그들의 심장을 터트릴 거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의 노예가…… 되었구나.’
‘제기랄!’
‘씨발!’
‘이번 생은 망했네.’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한 번의 욕심이 그들을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탐욕이 부른 화였으니까.
제온이 김경수에게 말했다.
“당신이 이들의 대장이죠?”
“그……렇습니다.”
“그럼 이들을 단속하는 것도 당신의 몫이에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경수가 고개를 떨궜다.
그의 얼굴엔 체념의 빛이 담겨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인가?’
그때 제온이 물었다.
“네 분의 거주 구역은 어딘가요?”
“우리는 중앙 구역 13블록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13블록이면 시청 근처인가요?”
“그렇습니다.”
“잘됐네요.”
제온이 미소 지었다.
그가 이들에게 맹약의 스크롤을 이용해 강제 복종시킨 것은 네오 서울 내부에 잡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경수 파티는 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태생 자체가 중앙 구역인 데다가 토박이라서 네오 서울 사정에 밝았다.
네 명 다 각성자니까 활용도도 무궁무진했다.
이 정도면 제온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패라 할 수 있었다.
노예 1, 2, 3, 4호.
제온의 머릿속에서 그들의 신분이 정해졌다.
김경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젠 우리가 어떡하면 됩니까?”
“달라질 것은 없어요.”
“네?”
“네 사람은 평소와 똑같이 살다가 내가 명령을 내리면 수행하면 돼요.”
“명령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그때그때 달라질 거예요.”
“네?”
“억울한가요?”
“그건…….”
“내가 건 시비가 아니에요. 당신들의 탐욕이 부른 화죠. 내 명령을 따르는 게 싫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에요.”
김경수와 동료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제온의 부드러운 말투 속에 숨겨진 차가운 살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사내는 결코 무르거나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었다.
그런 자였다면 그들의 습격을 이용해 맹약의 스크롤을 사용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저 웃는 얼굴 속에 숨겨진 진짜 모습은 무섭도록 냉철하며 무자비한 냉혈한이다.
이제 그들은 제온의 본모습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런 자를 건드렸다니.’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제온에게 반하는 행동을 절대 할 수 없었다.
“당신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김경수가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행동했다.
제온이 미소 지었다.
이들이 진심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진짜 충성도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단지 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도구일 뿐이다.
제온이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딱 그 수준이었다.
제온이 김경수에게 물었다.
“연락용 아이템 가진 것 있나요?”
“던전용 양방향 통신기가 있습니다.”
김경수가 품에서 귀걸이를 하나 꺼냈다.
공방제 아이템이었다.
던전에서 파티원들 간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으로 김경수 파티 모두 하나씩 차고 있었다.
제온이 귀걸이를 귀에 걸며 말했다.
“잘됐네요. 앞으로는 이걸로 연락하죠.”
“알겠습니다.”
“저걸 가지고 먼저 네오 서울로 들어가요. 내가 따로 연락하죠.”
제온이 장갑 큰 뿔 곰의 사체를 가리켰다.
“하지만 저희는 차량 엔진이…….”
“내 차를 끌고 가요. 엔진이 쌩쌩하니 그쪽 차를 끌고 갈 만할 거예요. 네오 서울에 도착하면 차량은 신촌 빈민가의 정육점 주인인 윌이란 사람에게 반납해요.”
“그럼 주, 주인님…….”
“그냥 마스터라고 불러요.”
“네! 마스터. 그럼 마스터는 어떻게 돌아오시려고?”
“제 능력이 무언지 잊었나 보네요. 사막의 모래는 나에게 방해물이 아니에요.”
“으음!”
김경수가 침음성을 흘리며 뒤돌아섰다.
그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마스터 말 들었지? 장갑 큰 뿔 곰 사체를 가지고 네오 서울로 돌아간다.”
“마스터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안 나오면?”
“그,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마스터라고 불러.”
이준수가 제온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김경수가 그런 이준수를 노려봤다.
“그 머리는 장식품이냐? 우리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렸는데, 어설픈 자존심 따윌 내세울 때야?”
“그, 그래도…….”
“그가 죽으라고 하면 우린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병신아! 제발 현실 좀 자각해라. 사람 열받게 하지 말고.”
“제기랄!”
“그리고 알지? 오늘 일 입 밖으로 내뱉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뒈지기 싫으면 알아서 입단속 해.”
“알았어.”
결국 이준수와 동료들이 힘없이 대답했다.
한순간에 당당한 각성자에서 노예로 전락했으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가자!”
김경수의 명령에 세 사람이 장갑 큰 뿔 곰의 사체를 차량에 싣고 버기카를 연결했다.
그들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날이 밝자마자 네오 서울로 떠났다.
혼자 남은 제온은 육포를 한 조각 꺼내 먹었다.
“잘됐어. 그렇지 않아도 네오 서울 사정을 알려 줄 빨대가 필요했는데.”
저들은 모두 정식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만큼 운신의 폭도 넓었다.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하룻밤 사이에 노예로 전락한 김경수 파티에겐 안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죄책감 따윈 느끼지 않는다.
타인을 죽이려고 했으면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이제 레빈이 나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콰르르!
발 아래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레빈이 흡혈박쥐와 싸우면서 일어나는 진동이었다.
아직 레빈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제온은 모래 바닥에 누운 채로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
“으아아!”
레빈의 전신에서 보랏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빠지직! 빠직!
유령처럼 변해 허공에 떠 있는 레빈의 전신에서 보랏빛 전류가 명멸했다.
퍼버버벅!
보랏빛 전류는 공기를 타고 퍼져 레빈을 에워싸고 있는 흡혈박쥐들을 태우고 터트렸다.
한 번에 수십 마리의 흡혈 박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레빈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중얼거렸다.
“등급이 올랐어.”
조금 전 보랏빛 광채는 그가 승급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로써 레빈은 C급이 됐다.
살인마를 상대하면서 D급이 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C급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초고속 승급이었다.
C급이 되자마자 알 수 있었다.
D급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흡혈박쥐의 초음파는 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완벽하게 유령화된 것이다.
거기에 공격 수단인 라이트닝 능력은 더욱 강화됐다.
보랏빛 전류, 퍼플 라이트닝은 하얀 뇌전보다 몇 배는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등급이 오르기 전까지 레빈은 수십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어떤 때는 마나가 고갈되어 맨손으로 흡혈박쥐와 싸우기도 했다.
이빨로 놈들의 숨통을 끊고, 팔다리로 공격을 대신 막았다.
그렇게 쌓인 상처가 온몸을 가득 채웠다.
너무 많은 피를 빨려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냥 포기하고 편하게 죽고 싶었다.
하지만 레빈은 애써 유혹을 떨쳐 내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싸우다가 한계를 느낄 무렵 갑작스럽게 승급이 이뤄졌다.
C급이 되자 온몸의 상처가 물로 씻은 듯 나았고, 전신에는 활력이 가득했다.
아직도 수많은 흡혈박쥐들이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레빈이 소리쳤다.
“덤벼! 이 박쥐 새끼들아.”
웅웅!
그의 목소리가 지하 공간에 메아리쳤다.
아직 남아 있던 흡혈박쥐들이 그에 자극받아 일제히 공격해 왔다.
하지만 흡혈박쥐들의 공격은 더 이상 레빈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했다.
흡혈박쥐들은 유령처럼 변한 레빈의 몸을 허무하게 관통했다.
초음파로도 공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레빈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다들 뒈졌어.”
빠지직!
그 순간 레빈의 전신에 보랏빛 전류의 그물이 퍼져 나갔다.
그의 스킬인 퍼플 라이트닝이었다.
변한 것은 단지 색깔뿐인데 위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동굴을 가득 채운 퍼플 라이트닝은 흡혈박쥐들을 모조리 불태우거나 터트려 버렸다.
동굴 안에 고기 타는 메케한 냄새가 가득했다.
“윽!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유령화되었다고 냄새까지 못 맡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각이 더 예민해져 괴롭게 느껴졌다.
레빈은 유령화를 풀지 않고 그대로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금세 모래를 통과해 사막 위로 올라왔다.
“왔구나.”
그를 반긴 것은 역시 제온이었다.
제온이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레빈을 보며 말했다.
“역시 등급이 올랐구나. 축하한다.”
“고마워요, 형!”
레빈이 유령화를 풀며 실체를 되찾았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어디 갔어요? 보이지 않네.”
“일이 좀 있었다.”
“네?”
“그리고 이젠 차가 없어도 상관없잖아. 어지간한 마수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테니까.”
“네!”
특수 스킬을 가지거나, 같은 스펙터 계열의 마수가 아니면 레빈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제온처럼 사막을 제집처럼 이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 네오 서울 근처 사막에서만큼은 레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오 서울로 돌아가자.”
“네! 형.”
레빈은 기꺼이 제온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