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왜지? 그렇게 희귀한 능력을 각성하고도 야망이 없는 건가? 실망이군!”
이지령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야망 없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차라리 능력이 없으면 상관없는데, 능력이 있는 자가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제온은 최악의 부류였다.
적어도 이지령의 기준에서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제온의 각성 능력이 워낙 사기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라니.’
세상 대부분이 모래로 뒤덮였다.
모래 때문에 인간의 영역은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네오 서울만 해도 그렇다.
옛 서울 땅을 겨우 차지하고 있을 뿐, 본격적으로 외부로 진출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겨우 이 손바닥만 한 땅에서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지령은 이런 현실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어 이제까지 방관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 때문이다.
제온만 있다면 얼마든지 네오 서울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인간이 다시 지구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내 제안은 유효하다.”
“내 대답도 아직 유효합니다.”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는군. 제온! 그렇다면 힘으로 굴복시키겠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이트닝 필드가 더 확대됐다.
이제 그를 중심으로 방원 오십 미터에 뇌전이 명멸했다.
주위 어디를 돌아봐도 뇌전이 번쩍이고 있었다.
“챠앗! 기가 라이트닝 스피어!”
이제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굵기의 뇌전이 제온에게 내리꽂혔다.
제온은 모래걸음을 펼쳐 이지령의 공격을 피했다.
간발의 차이로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뇌전이 작렬했다.
모래가 터져 나가고, 깊이가 무려 오 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일대의 모래가 물줄기처럼 이지령을 향해 쏘아졌다.
고압의 샌드 블라스터였다.
퍼버버벙!
하지만 샌드 블라스터는 이지령의 주위에 명멸하는 뇌전의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어림없다. 네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 정도 공격력으로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
이지령이 제온을 비웃었다.
제온도 미소 지었다.
“그럼 위력을 조금 높여볼까요?”
“뭐?”
가아아앙!
그 순간 이지령이 딛고 있는 곳 주위의 모래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온의 스킬 중 하나인 샌드 믹서가 펼쳐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모래는 순식간에 이지령을 집어삼켰다.
이지령은 급히 모래를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엄청난 압력이 그를 짓눌러 힘을 쓸 수 없었다.
“이런!”
콰가가각!
보이는 모든 것이 모래다.
통째로 믹서기 안에 넣어진 것 같은 아찔한 고립감과 위기감이 이지령을 엄습했다.
이렇게 회전하는 모래에 갇히면 제아무리 거대한 마수라도 살점이 갈려 나가고, 뼈가 분쇄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지령은 마수 따위가 아니었다.
평범한 각성자도 아니었다.
뇌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흐아앗! 라이트닝 웨이브!”
기합과 함께 그의 몸 주위에서 뇌전이 파도쳤다.
일 차 뇌전의 파도가 샌드 믹서를 강타했고, 뒤이어 이 차, 삼 차, 사 차 뇌전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다.
그렇게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던 모래들이 모두 타서 흩어지고, 이지령은 자유를 되찾았다.
모래를 빠져나온 이지령은 바로 반격하려 했다.
그런 그의 눈에 제온의 주위에 일어서는 모래 병사들이 보였다.
제온이 샌드 솔저를 소환한 것이다.
수십 명이 넘는 샌드 솔저에 이지령이 그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 이거 사기 아냐? 모래로 병사를 만들어?”
“그러는 당신의 능력도 충분히 사기적입니다만?”
“그렇다면 물량 공세도 가능하다는 건데. 이건 진짜 너무 탐나는데.”
이지령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제온을 쓰러트리려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도 문제였지만, 제온이 죽어도 문제다.
“좋아!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지.”
“끝장을 보는 거 아니었습니까?”
“너하고 철천지원수도 아닌데 굳이?”
“동생의 원수잖습니까?”
“그 새끼는 쓰레기였다. 재활용도 안 되는 새끼지. 네오 서울에서 큰 사고 친 거 겨우 수습해 주고 얌전히 숨어 있으라고 했어. 그런데 참지 못하고 또 사고를 치고, 그러다 잘못 걸려서 뒈졌어. 그 새끼는 항상 그 모양이었어.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내가 수습했지. 그냥 같은 피를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난 할 만큼 했어. 그 병신 같은 새끼 복수를 하겠다고 이제 와서 주접떨고 싶진 않아.”
“냉정하네요.”
“그래야 살 수 있는 세상이니까. 핏줄보다는 능력이 우선이고, 강한 각성자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이지령은 라이트닝 필드를 거둬들였다.
일대를 뒤덮었던 뇌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지령에게선 더 이상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온을 적대시하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이지령이 말했다.
“제온!”
“말하십시오.”
“동생을 죽인 원한은 잊겠다. 더 이상 너를 죽이겠다고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마운 일이군요.”
“너는 나에게 빚을 졌다.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그것도 빚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나는 당신이 나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다. 다만 우리 관계가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기억하도록 해라.”
이지령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런 이지령의 태도가 어이없었지만, 제온은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다.
애써 봉합했는데, 굳이 상처를 벌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빠지직!
이지령의 발아래서 뇌전이 명멸했다.
“나에게 너의 정보를 알려 준 자는 요한이다.”
“역시 그였군요.”
“그래! 나를 부추겨 너를 죽이려고 했지. 조심해라. 그 늙은이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보지.”
퍼엉!
순간 이지령의 발아래서 번쩍이던 뇌전이 폭발했다.
폭발의 추진력으로 이지령이 순식간에 하늘 멀리 날아갔다.
제온은 섬전처럼 사라지는 이지령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뇌신 같군!”
***
“괜찮아?”
집으로 돌아오자 브리엘이 제일 먼저 그를 맞이했다.
“어, 괜찮아!”
“진짜?”
브리엘이 믿지 못하고 제온의 주위를 맴돌았다.
제온이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브리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그때 레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어땠어요? 형!”
“강하더구나.”
“저와 비교하면요?”
레빈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온은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이 호승심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직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 정도인가요?”
“그래!”
“큭!”
레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제온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같은 등급이라면 네가 훨씬 강할 것이다.”
“진짜요?”
“그래! 너에겐 그에게 없는 능력이 있으니까.”
“스펙터, 유령화 말이죠?”
“맞아! 그 능력만 잘 키우면 분명 언젠가는 이지령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알았어요.”
레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 어려.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어.’
흡혈박쥐를 상대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의 능력이 사기적이라는 것을.
또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겨우 C급이었다.
나중에 B급, A급이 되면 지금과 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에게 절망을 안겨 준 이지령과 제대로 싸워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제온은 잘됐다고 생각했다.
레빈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됐기 때문이다.
능가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것만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오늘 일을 계기로 레빈은 더 빨리 성장할 것이다.
제온은 로브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꽤 피로했다.
레빈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레빈과 브리엘은 그런 제온을 건들지 않았다.
레빈은 볼일이 있다고 외출을 했고, 브리엘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오늘 사 온 재료들을 펼쳐 놓았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시킨다.’
브리엘은 바로 연금술에 몰두했다.
***
“그러니까 제온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그렇습니다.”
“확실해? 잘못 본 거 아냐?”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김재경의 대답에 요한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이지령은?”
“네오 서울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놈이 그냥 네오 서울에 들어갔다고?”
“그렇습니다.”
“분명 둘이 만났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런데 어떻게 둘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지?”
요한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지령에게 제온의 정보를 알려 준 이는 바로 요한이었다.
이지령은 네오 서울 안에서도 인정받는 강자였다.
최초 알려진 추정 등급만 B급이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어쩌면 지금쯤 A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요한도 경시하지 못할 초강자였다.
그런 초강자의 원한을 부추겨 만나게 조장했다.
요한은 당연히 두 사람이 크게 싸워 상처 입거나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온이 죽어도 좋았고, 이지령이 상처 입어도 좋았다.
제온이 죽으면 자연스럽게 신촌에 진출하는 거고, 설령 그가 이겼어도 큰 상처를 입었으면 자신들이 나서서 숨통을 끊으면 됐다.
어느 쪽이든 요한은 손해 볼 일이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계획이 모두 어그러졌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각자의 거처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싸운 것은 확실한가?”
“알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사막으로 사라져서.”
“쓸모가 없구나. 내가 너에게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김재경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얼굴엔 두려운 빛이 역력했다.
인자할 때 요한은 성자 같지만, 분노하면 악마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의 분노를 사면 아무리 심복이라도 무사하지 못한다.
요한에게 부하 따윈 언제든 찍어 낼 수 있는 양산품 같은 존재였다.
김재경의 능력이 다소 특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체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아내고, 놈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봐.”
“알겠습니다.”
“반드시 신촌을 손아귀에 넣어야 해. 그래야 주의 가르침을 네오 서울 전체에 전도할 수 있어.”
안경 너머 요한의 눈엔 짙은 광기가 어려 있었다.
그가 창가로 다가갔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시청사가 보였다.
“반드시 저 시청사 정상에 십자가를 달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