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카라반을 이끄는 자들은 로간과 각성자들의 호위 아래 빈민가를 지나 네오 서울에 입성했다.
그들이 입성했다는 소문은 곧 네오 서울 전체에 퍼져 나갔다.
“카라반이라고?”
“그렇습니다.”
김재경의 보고에 요한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지금 네오 서울은 수 년 만에 카라반이 접촉했다는 사실에 축제 분위기였다.
네오 서울뿐만 아니라 빈민가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라반은 그 지역에서만 나는 물건을 가지고 상행에 나선다. 네오 서울에선 구경하지 못할 물건들이 짐칸에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놈들이 가져온 물건의 가치는 얼마나 된다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매머드가 네오 서울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해 멈춰서…….”
“항마력 때문이군.”
“그나마 그렇게 거대한 매머드니까 근처까지 접근한 거지, 소형종이었다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멈춰 섰을 겁니다.”
“흠! 그렇겠지.”
요한이 코끝까지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저 높은 장벽 너머 시청사가 보였다.
“지금쯤이면 시청에 들어갔겠군.”
“네!”
“수십 년 만에 이뤄진 만남이야. 평범한 카라반이라면 이곳까지 찾아오지도 못했을 터. 분명 귀한 물건을 잔뜩 싣고 왔을 거야.”
안경 너머 요한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카라반이 어떤 물건을 싣고 왔든 빈민가로 흘러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흘러들어오더라도 한참 후의 일이 될 것이다.
요한은 지금 바로 그들이 싣고 온 물건을 확인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카라반과 접촉할 방법을 찾아봐.”
“알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책임자급을 세뇌해.”
“네!”
김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중얼거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변수가 발생했군.”
요한은 확실하게 통제된 상황을 좋아한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다른 인간들도 바쁘게 움직이겠군.”
수십 년 만에 이뤄지는 다른 콜로니와의 만남이었다.
시장 진금호뿐만 아니라 네오 서울의 각 구역 패자들도 분주히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카라반이 싣고 온 물건뿐 아니라, 그들이 움직인 경로, 사막의 상황, 마수들의 분포, 모든 정보가 곧 힘이 된다.
그렇게 얻어진 힘은 곧 네오 서울의 권력 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네오 서울 안의 패자들이라면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뒤처지면 절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어. 네오 서울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카라반을 내 손에 넣어야 해.’
***
네오 서울에 들어온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인원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로브에 달린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로간은 곁눈질로 그들의 얼굴을 열심히 살폈지만, 결국은 아무 정보도 알아내지 못했다.
로간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나온 인원들을 데리고 시청사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네오 서울에서 임무를 받아 수행했지만, 시청사에 들어오는 것은 로간도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로간의 얼굴은 얼음처럼 얼어 있었다.
카라반이 들어왔다는 정보를 들었는지, 별다른 절차 없이 시청사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시청사 일 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쪽 분들이 아쿠츠크 콜로니에서 온 화이트 베어 카라반 사람들이군요. 반가워요. 저는 시장님의 비서인 서태란이라고 해요.”
몸에 착 달라붙는 붉은 상하의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금발 머리. 옛 북유럽 여신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눈빛과 콧대.
여자는 무투가 계열 각성자이자 시장 진금호의 비서인 서태란이었다.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녀에게선 왠지 모를 당당함과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꿀꺽!
그녀를 본 순간 로간이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같은 각성자이기에 그녀의 강력함을 느낀 것이다.
등급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보다 강력한 각성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등과 목을 따라 올라오는 소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줬다.
그때 화이트 베어 카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덩치가 큰 남자가 걸어 나와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그의 본얼굴이 드러났다.
머리가 정수리 아래까지 벗겨져 있는 대머리였지만, 전혀 우습게 보이지 않는 강인한 인상과 눈빛, 움푹 들어간 눈빛은 마치 불곰처럼 난폭했고, 굳게 다문 입술에선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주인인 알렉산드로 푸르첸코라고합니다.”
“푸르첸코 단주셨군요. 네오 서울에 방문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편하게 알렉산드로라 불러 주십시오. 환영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수년 만의 방문자신데 당연히 환대해야죠. 다른 분들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들은 저희 상단을 지키는 각성자들입니다. 모두 로브를 벗고 인사해라.”
“예!”
대답과 함께 각성자들이 모두 로브에 달린 모자를 벗었다.
그들의 분위기는 알렉산드로만큼이나 강인했다.
그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서태란의 시선이 마지막 남자에게서 멈춰 섰다.
그만 다른 이들과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모두 화이트 베어, 즉 백곰을 연상시킬 정도로 단단한 체구와 강인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마지막 남자는 유독 호리호리한 체형에 수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상남자라기보다는 미남, 아니 미소년에 가까웠다.
서태란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분도 각성자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적으로는 제 조카가 됩니다.”
“그렇군요.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제 이름은 데미안이라고 합니다.”
서태란에게 지목받은 각성자가 직접 자신을 소개했다.
얼굴만큼이나 듣기 좋은 미성이었다.
서태란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데미안 님이라고 부를게요.”
“편하게 데미안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래요. 데미안! 네오 서울에 방문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제 시장님을 뵈러 올라가시죠. 시장님께선 여러분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서태란은 알렉산드로 일행을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우웅!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그들을 시청사 최고층으로 이동시켰다.
알렉산드로 단주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 네오 서울은 멸망 이전의 기술력을 뛰어넘었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모두 시장님의 노력 덕분이랍니다.”
“대단한 분이군요.”
“네! 대단한 분이죠. 그분이 없었으면 지금의 네오 서울도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희 아쿠츠크 콜로니는 마수의 습격을 방어하는 데 급급해 이런 초고도 문명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어서 빨리 시장님을 뵙고 비결을 듣고 싶군요.”
“곧 그렇게 될 겁니다. 이 문만 넘으면요.”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시장실의 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서태란이 주먹으로 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기며 말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라.”
“네!”
진금호의 허락에 서태란이 시장실의 문을 열었다.
문 너머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통창을 배경으로 진금호가 서 있었다.
서태란이 알렉산드로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죠.”
“고맙습니다.”
알렉산드로가 고개를 끄덕인 후 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호위하는 각성자들이 따라 들어가려는 순간 서태란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시장실에 들어갈 수 있는 분은 오직 알렉산드로 단주님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이곳에서 기다리시죠.”
“그럴 수는 없소.”
“우리는 단주님을 지키는 자들, 절대 떨어질 수 없소.”
각성자들이 발끈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이 마치 큰 곰들이 성을 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위협적인 모습에도 서태란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여전히 생글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시장실의 규칙이에요. 시장님과 대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한 번에 한 명뿐이에요. 네오 서울에 왔으면 이곳의 규율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네오 서울을 어떻게 믿고 단주님을 혼자 내버려 둔단 말이오?”
“그럼 이대로 돌아가시든가요.”
“뭐요?”
서태란의 말에 각성자들이 발끈했다.
당장이라도 서태란을 밀치고 시장실 안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그때 가장 호리호리한 미소년,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형님들!”
그러자 거짓말처럼 각성자들이 위협적인 행동을 멈췄다.
데미안의 말이 이어졌다.
“설마 네오 서울의 시장이 단주님에게 위해를 끼치겠어요? 그냥 우리는 여기서 단주님이 나오길 기다리죠.”
“으음!”
“알았다. 그렇게 하자.”
그렇게 사나운 기세를 발산하던 각성자들이 거짓말처럼 얌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서태란이 생각했다.
‘그러면 이들의 중심이 데미안이라는 소년인 건가? 어쩐지 달라 보인다 했더니.’
***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네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 캠프를 꾸몄다.
매머드가 아쿠츠크에서부터 끌고 온 짐차들은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데다가 높기까지 했다.
짐차들을 둥글게 배치하고 오 단으로 쌓자 그 자체로 하나의 성이 됐다.
이것이 바로 카라반이 사막에서 생존하는 비결 중 하나였다.
이렇게 성을 만들면 사막의 마수들의 공격에서도 안전하게 인원을 보호할 수 있다.
워낙 짐차들이 크고 높다 보니까 외부에서는 안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모두 몇 명이나 있는지, 각성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짐차에 실린 물건들은 무엇인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다.
캠프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브리엘이 제온에게 물었다.
“제온은 아쿠츠크에 가본 적 있어?”
“아니.”
제온이 고개를 저었다.
지난 칠 년 동안 제온은 꽤 많은 콜로니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가 다닌 곳은 주로 네오 서울 남쪽과 동쪽에 편중되어 있었다.
서쪽은 미처 갈 시간이 없었고, 북쪽은 거리가 워낙 멀어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쿠츠크에 콜로니가 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다.
아쿠츠크는 옛 러시아의 극동부 사하 공화국의 수도로 한겨울 온도가 영하 오십 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추위를 자랑했다.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살아남아 콜로니를 건설할 수 있었다.
러시아와 아쿠츠크 지역도 사막으로 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온도가 달랐다. 네오 서울보다 훨씬 북쪽에 있기에 기온이 한결 낮은 것이다.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힘을 모아 콜로니를 건설할 수 있었다.
‘꽤 좋은 지도자가 있었나 보군. 아무리 네오 서울보다 환경이 좋다고 하더라도 콜로니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문득 아쿠츠크 콜로니의 지도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제온은 이내 관심을 접었다.
경험상 타 콜로니와 너무 깊게 엮여 좋았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적당한 거리를 둬야 편안한 법이었다.
“이제 들어가자.”
“벌써?”
제온의 말에 브리엘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너는 더 지켜보고.”
“그래도 돼?”
“접근하지는 말고. 순해 보이지만, 매머드는 흉포한 마수야. 놈이 날뛰면 빈민가가 초토화될 거야.”
“응!”
브리엘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은 그런 브리엘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거리엔 카라반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보는 신기한 구경거리는 빈민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성을 바라보는 빈민가 사람들의 눈엔 각종 욕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제온이 나직이 혀를 찼다.
‘브리엘이 문제가 아니었군.’
욕망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좋은 욕망은 사람을 발전하게 만들지만, 그릇된 욕망은 자신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도 파멸로 몰아넣는다.
제온은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이번에는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