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사막의 바람은 무척이나 건조한 데다가 모래를 포함하고 있어 잠시만 노출돼도 피부에 큰 상처가 남았다.
제온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모래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모래는 그의 신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배력이 약해 부릴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사막에서 스스로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과 밤의 한기는 몸에 걸친 로브가 해결해 주었다.
모래 아귀의 뱃가죽으로 만든 로브는 얇고 가벼운 데다가 보온 능력이 무척 뛰어났다.
낮에는 열기를 차단해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밤에는 체온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해 줬다.
덕분에 체력의 소모가 덜했다.
데이오든을 따라 걷던 제온이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를 봐도 모래뿐이었다.
지표로 삼을 만한 지형이나 건축물 따윈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서 있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제온은 저만치 앞서가는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데이오든은 단 한 번도 쉬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갔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사막을 헤매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똑바로 걸어갈 수 없다.
선명한 목표가 있는 자만이 오로지 저렇게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동행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데이오든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목표나 과거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해가 져 휴식을 취할 때면 그는 항상 크레이온을 앞에 꽂아 두고 대화를 나눴다.
제온은 처음엔 그런 데이오든을 미친 늙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검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고 소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물건은 극히 희귀해 네오 서울에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진짜 데이오든의 검이 진짜 에고 소드라고 믿진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정말 데이오든이 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마수에겐 그렇게 광포한 데이오든이 크레이온과 대화를 나눌 때면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또 간혹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해가 뜨고 사막을 걸어갈 때면 예의 사나운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엔 엄청난 광기와 세상 모든 것을 찢어발길 만큼 큰 분노가 담겨 있었다.
무엇이 데이오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도 그는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제온은 육포를 우물우물 씹으며 데이오든의 뒤를 따랐다.
모래 아귀의 쓸개와 고기를 먹은 후 제온의 육체는 큰 변화를 겪었다.
쓸데없는 군살은 모두 사라지고, 근육질의 신체를 갖게 된 것이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았고, 고된 행군에도 힘든 줄 몰랐다.
데이오든이 아니었다면 모래 아귀란 존재도 몰랐을 테고, 모래 아귀의 쓸개에 이런 효능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 사막을 홀로 횡단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지?’
의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궁금증을 해소할 가장 좋은 방법은 데이오든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뭐 하나 속 시원한 것이 없구나.’
꿀꺽!
제온이 한참을 씹던 육포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입안이 텁텁했다.
제온은 로브 안쪽을 뒤져 물이 든 가죽 부대를 꺼냈다.
이 역시 모래 아귀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가볍고 신축성이 좋아 무척이나 많은 물을 담을 수 있었다.
제온은 오아시스가 사라지기 전에 가죽 부대에 물을 가득 담아 둔 상태였다.
정말 필요할 때만 조금씩 아껴 마셨다.
“크으!”
물 한 모금 마신 것만으로도 갈증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가죽 부대를 허리에 찰 때였다.
츠으으!
그의 감각에 은밀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모래 깊은 곳에서 무언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온은 감각에 집중했다.
그의 감각에 잡힌 물체는 모두 열 개였다.
사방에서 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제온을 중심으로 한 방원 십 미터 쯤에서 움직임이 감지됐다.
이제 제온의 감지력이 십 미터까지 늘어났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감지력이 늘어났다고 무작정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은 좋아하기보다는 대비해야 할 때였다.
놈들은 느리지만 착실히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러다가 불쑥 튀어나왔다.
철갑을 두른 것처럼 윤기 나는 티탄질의 껍질, 양 갈래로 갈라진 강인한 턱 집게, 여섯 개의 다리와 한 쌍의 더듬이.
놈들은 개미였다.
다만 일반적인 개미와 다른 점은 덩치가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놈들의 이름은 늑대 개미였다.
늑대처럼 무리 지어 움직이고, 그만큼 사납고 거칠기 때문이다.
늑대 개미는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일단 주위에 늑대 개미 한 마리가 나타나면 근처에 둥지가 있다고 봐야 했다.
흔히 말하는 개미굴이었다.
개미굴엔 최소 수백 마리 이상의 개미들과 유충들이 존재한다.
일단 먹이를 잡으면 개미굴로 끌고 가 여왕과 유충들에게 먹인다.
늑대 개미는 먹이를 물 때 특유의 독을 주입한다.
이 독이 무서운 것은 몸은 움직일 수 없는데, 정신은 멀쩡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늑대 개미에게 물린 자는 산 채로 잡아먹히는 느낌을 맨정신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막에선 늑대 개미를 만나면 차라리 자살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제온도 빈민가에 있을 때 늑대 개미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게 들었다. 그 때문에 늑대 개미를 보자마자 정체를 알아차렸다.
딱딱!
늑대 개미들이 이빨을 부딪치며 제온에게 다가왔다.
무기질의 눈빛과 껍질이 햇빛을 반사해 시야를 어지럽혔다.
제온은 당황하지 않고 샌드 블라스터를 펼쳤다.
슈슈슈!
다섯 줄기의 샌드 블라스터가 늑대 개미의 머리에 작렬했다.
늑대 개미들이 큰 충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큰 뿔 하이에나와 달리 그들의 머리에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티탄질의 껍질이 보호해 준 덕분이었다.
늑대 개미의 무서운 점 하나가 바로 방호력이었다. 어지간한 공격 따윈 티탄질의 껍질로 튕겨 내는 것이다.
늑대 개미의 방호력은 D급 각성자들의 공격은 아예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때문에 D급 이하의 각성자들은 늑대 개미를 만나면 차라리 도주를 택할 정도였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제온은 늑대 개미들을 공격했다.
제온의 공격에 열받은 늑대 개미들이 더욱 흉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챠앗!”
제온이 뒤로 물러나며 샌드 블라스터를 연거푸 펼쳤다.
콰콰쾅!
샌드 블라스터는 잇달아 늑대 개미의 머리에 작렬했다.
큰 충격을 받아 비틀거렸지만,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었다.
제온은 이대로는 승산이 없음을 느꼈다.
급히 모래 걸음을 펼쳐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한 놈만을 노리고 샌드 블라스터를 펼쳤다.
퍼엉!
그제야 목표가 된 늑대 개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좋았으!”
제온이 주먹을 불끈 쥐며 샌드 블라스터를 연이어 펼쳤다.
펑!
퍼엉!
샌드 블라스터가 작렬할 때마다 늑대 개미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데이오든과 동행하면서 샌드 블라스터는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등급의 차이를 극복하고 타격을 입힐 정도로 말이다.
제온은 샌드 블라스터의 위력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때였다.
키이이!
갑자기 늑대 개미 한 마리가 기괴한 고주파를 발산했다.
그 모습이 꼭 제온이 두려워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시끄럿!”
제온이 고주파를 발산하는 늑대 개미의 머리에 샌드 블라스터를 날렸다.
퍼어엉!
이번에도 늑대 개미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 남은 늑대 개미는 세 마리.
제온은 빨리 처리하고 데이오든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변고가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츠으으으!
갑자기 제온의 감각에 수많은 생명체의 접근이 감지됐다.
“뭐야?”
제온이 깜짝 놀라는 사이 모래를 뚫고 늑대 개미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그 수가 백 마리가 넘었다.
“미친!”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에 제온이 경악했다.
그제야 조금 전에 늑대 개미가 터트린 고주파가 동료들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늑대 개미들이 제온을 완벽히 포위한 채 다가왔다.
카카카카!
늑대 개미들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흉성이 폭발했을 때 내는 소리였다.
늑대 개미들이 빠른 속도로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씨발!”
제온은 모래 걸음을 펼쳐 늑대 개미들의 공격을 피했다.
딱! 따악!
간발의 차이로 늑대 개미의 턱 집게에서 벗어난 제온이 샌드 블라스터를 펼쳐 머리를 터트렸다.
제온이 늑대 개미의 살점과 피를 뒤집어썼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늑대 개미들이 더 무섭게 달려들었다.
“이야아아!”
제온은 괴성을 지르며 늑대 개미와 싸웠다.
그런 그의 시야에 문득 저 높은 모래 언덕에 앉아 있는 거구의 노인이 보였다.
데이오든이었다.
그는 크레이온을 옆에 꽂아 둔 채 제온과 늑대 개미의 사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늑대 개미는 동족이 공격당하면 모두 몰려오는 습성이 있지.”
지금 공격하고 있는 늑대 개미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도 놈들은 죽어 가면서 동료를 부르는 특유의 고주파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나머지 놈들도 몰려올 것이다.
실제로 데이오든의 감각에 이쪽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늑대 개미 무리가 감지됐다.
아마 근처에 둥지인 개미굴이 있는 것 같았다.
펑! 퍼엉!
제온은 사력을 다해 샌드 블라스터를 펼쳤다.
그때마다 늑대 개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아직 모자라.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해.”
데이오든이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온은 세상에 다시없을 훌륭한 특성을 각성했다.
사막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모래를 다루는 권능을 각성했다는 것은 더없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자신의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활용도가 얼마나 높은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가야 했다.
세상은 계급장만 보고 각성자의 강함을 규정한다.
무투계가 어쩌고, 마법계가 저쩌고, F급은 D급보다 약하고…… S급이 최고다.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 서열을 정하고, 가능성을 규정한다.
각성자가 스킬을 터득하면 스스로 활용도와 발전 방향을 깨닫게 하기보단, 획일화된 안전한 방식으로만 발전을 유도한다.
그래서는 자신의 가능성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없다.
몸으로 부딪치고, 생사의 경계선을 넘고,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그래서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데이오든이 생각하는 각성자의 올바른 성장이었다. 하지만 네오 서울의 권력자들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데이오든의 방식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효율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오 서울의 권력자들은 데이오든을 경원시했다.
“머리가 굳은 병신들! 세상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도 모르고, 권력 다툼에나 미쳐 있다니.”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난 지 백 년.
당시 생존자들은 대부분 죽고, 남은 자는 몇 되지 않는다.
데이오든은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생존자였다.
어떻게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고, 허무하게 죽어 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봤다.
문명은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전이된 마수가 지구를 유린했다.
가족이, 지인이 한낱 마수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무기력한 자신에게 얼마나 큰 분노를 느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행히 각성해서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지만, 데이오든은 단 하루도 당시의 참상을 잊은 적이 없다.
누구는 데이오든에게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소리다.
어떻게 자신을 용서한단 말인가?
무기력하게 아내의 죽음을 바라봐야 했던 자신을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병신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가장 병신은 자신이다.
데이오든은 광기 어린 시선으로 제온을 지켜봤다.
제온은 늑대 개미와 뒤엉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모래 걸음으로 피하고, 샌드 블라스터로 공격한다.
획일화된 방식이다.
제온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데이오든의 기대에는 아직 한참 못 미쳤다.
“스스로 살아남아 쓸모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라. 병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