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알렉산드로는 강한 남자다.
단순히 육체만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가진 진짜 남자였다.
각성하지 않았을 때도 그는 강했다.
각성한 후에는 당연히 더욱 강해졌다.
강력한 힘으로 수하들을 모으고,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이 아쿠츠크 콜로니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아쿠츠크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콜로니가 들어선 곳을 제외하곤 전부가 사막이었고, 유난히 대형 마수가 많이 서식했다.
네오 서울처럼 문명을 발전시키기는커녕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마수들에게 있어 아쿠츠크 콜로니는 맛 좋은 음식들이 가득한 식량 저장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곳엔 인간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마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가 인간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마수들의 습격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때 활약한 이들이 바로 알렉산드로가 이끄는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었다.
그들은 마수들에 맞서 싸워 아쿠츠크 콜로니를 지키고, 외부의 생존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렇게 콜로니 밖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접촉해 세를 불리고, 마수를 주기적으로 토벌했다.
덕분에 아쿠츠크 콜로니는 마수들의 위협에서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그다음 그가 한 일은 본격적으로 카라반을 가동하는 것이었다.
마수들의 습격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선 다른 콜로니와 접촉해 교역해야 했다.
알렉산드로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목숨을 걸고 다른 콜로니를 찾아 나섰다.
사막으로 변한 세상에서 다른 콜로니를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괴롭힌 것은 수시로 습격해 오는 마수들이었다.
그때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마수들의 종류도, 서식지도, 심지어는 위험도도 알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그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천 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콜로니를 찾아내 교역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쿠츠크 콜로니의 숨통이 트였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외부에서 들여온 물건들은 아쿠츠크 콜로니의 삶을 조금은 윤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콜로니와의 교역이 필요했다.
알렉산드로는 필사적으로 다른 콜로니를 찾아 나섰고, 그의 레이더에 네오 서울이 들어왔다.
네오 서울에 관한 소문은 예전부터 들었다. 하지만 워낙 뜬구름 잡기처럼 허황된 이야기가 다수였기에 관심을 껐었다.
대멸망 이전의 문명보다 훨씬 발전한 초고도 문명을 이뤘다거나, 천만 명 이상이 모여 사는 메가시티라든가.
척박한 아쿠츠크 콜로니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 허황된 이야기였기에 그냥 누군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전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진출을 준비하면서 정보들을 수집한 결과 네오 서울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네오 서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순히 전설이라고만 생각하던 도시에.
그리고 전설의 도시를 세운 남자와 일대일로 대면할 수 있었다.
네오 서울의 시장인 진금호를 처음 본 소감은 ‘두렵다’였다.
겉모습은 그저 중후하게 생긴 중년인에 불과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멋스럽게 난 수염, 그리고 맑고 깊은 눈동자와 잘 빠진 슈트핏.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기 전이었다면 중년의 모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멋스러웠다.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그가 전혀 멋있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팔뚝을 따라 소름이 올라와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진금호의 강함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상대의 기세에 반응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오늘날의 네오 서울을 만든 자라더니. 정말 대단하구나.’
알렉산드로는 격동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진금호는 그런 알렉산드로의 얼굴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별거 아닌 그의 눈빛에도 알렉산드로는 전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문득 진금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네. 나는 진금호라고 하네.”
“알렉산드로 푸르첸코라고 합니다. 네오 서울의 시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년 만에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와서 나는 몹시 즐겁다네. 그래, 아쿠츠크에서 왔다고?”
“그렇습니다.”
“놀랍군. 내가 알기로 아쿠츠크는 매우 추운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곳에서도 생존자가 콜로니를 세웠다니.”
“아쿠츠크를 알고 계십니까?”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기 전 인터넷에서 봤다네.”
“인터넷?”
“아! 자네는 모르겠군. 당시엔 컴퓨터와 위성 등을 이용해 수많은 정보를 공유했지. 인류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지. 뭐, 이제는 네오 서울도 그에 못지않게 발전했지만.”
인터넷, 컴퓨터, 위성, 하나같이 뜻 모를 단어에 알렉산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만일 진금호에 대해 몰랐다면 그가 자신을 놀리려고 아무 말이나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대멸망 이전부터 최소 백사십 년을 살아온 괴물.’
인류의 문명이 최절정기에 달한 그 순간부터 몰락, 대멸망, 그리고 네오 서울의 부흥까지 온몸으로 겪고 이겨 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냥 헛소리일 리 없었다.
“아쿠츠크의 상황은 어떤가?”
“다른 콜로니와 똑같습니다. 항상 마수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요.”
“그런가?”
“그에 비하면 네오 서울은 평안해 보입니다. 분명 마수의 습격을 받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문명을 이뤄 낼 수 있었는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지. 우린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네.”
“저희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야지. 그게 멸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참된 마음가짐이지.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은데, 자네는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군.”
진금호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알렉산드로가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아시다시피 저희 콜로니가 매우 척박합니다. 그래서인데 허락해 주시면 콜로니에서 가져온 물건으로 네오 서울과 교역을 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허락해야지.”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네. 서로 돕고 살아야지.”
“하면 시장님을 통해서 물건을 풀면 되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네. 자네 재량껏 거래하면 되네.”
“그 말씀은 저희 카라반이 알아서 거래해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일세. 오랜만에 온 손님인데 그 정도 혜택은 줘야지.”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로가 진심으로 감사했다.
타 콜로니와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득, 그 독점적인 권리를 진금호가 포기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싣고 온 짐차에는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아쿠츠크 콜로니의 각성자들이 사냥한 마수의 사체와 마정석, 장인들이 만든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던전을 토벌하면서 얻은 아이템까지.
그야말로 아쿠츠크 콜로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만큼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이번 교역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기에 진금호에게 상당한 이익을 떼 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그가 그런 이득을 모조리 포기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알렉산드로는 진금호의 의중이 궁금했다.
진금호가 그런 알렉산드로를 보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런데 궁금하군. 네오 서울은 어떻게 찾아온 건가?”
“네?”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네. 위성도, 내비게이션도 없어. 이 빌어먹을 세상에선 나침반도 통하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 정확히 네오 서울을 특정하고 찾아온 거지? 난 그게 궁금하다네.”
“그건…….”
알렉산드로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고, 진금호는 그런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
시장실 밖으로 나온 알렉산드로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단주님!”
“괜찮으십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각성자들이 서둘러 그에게 다가왔다.
알렉산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밖으로 나가자.”
“예!”
각성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알렉산드로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서태란이 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진금호는 의자에 앉아 통창으로 네오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태란은 말없이 그의 옆에 서서 명령만 기다렸다.
잠시 후 진금호의 눈에 시청사를 나서는 알렉산드로 일행이 들어왔다.
진금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알렉산드로가 고개를 들어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알렉산드로가 각성자들과 함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진금호가 입을 열었다.
“태란아!”
“네! 시장님.”
“그림자 부대에서 애들 몇 명 차출해 저들을 감시해.”
“알겠습니다.”
“분명 저들 중에 쓸 만한 길잡이가 있을 거야. 길잡이가 누군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알아내도록 해. 네오 서울의 영역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길잡이가 필요하니까.”
“그렇게 조처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자유롭게 교역하도록 허락하신 겁니까? 차라리 저희가 독점해 시중에 푸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서태란의 말에 진금호가 슬쩍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하면 별다른 잡음이 없겠지. 네오 서울도 평화로울 테고.”
“평화를…… 원치 않으시군요?”
“데이오든이 알아서 네오 서울을 나간 후 지금의 세력 구도가 고착됐지. 그렇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어. 이젠 변화를 줄 때도 됐어.”
순간 서태란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진금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장님께서 드디어 판을 흔들 모양이구나.’
진금호가 힘이 없어서 다른 세력들을 좌시한 것이 아니다.
그에겐 원대한 야망이 있었고,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으로 경주해 왔다. 그래서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중앙 구역을 제외한 다른 구역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틈을 타 네 구역의 패자들이 힘을 쌓을 수 있었다.
진금호는 그들의 힘이 더 이상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른 콜로니에서 온 카라반은 군침 도는 먹잇감이지. 분명 욕심내는 자들이 많을 거야.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것뿐이지. 그다음은 자기들이 알아서 정리할 거야.”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였다. 그리고 진금호는 누구보다 그런 이치에 통달해 있었다.
***
제온은 도깨비 시장을 걸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아쿠츠크 콜로니에서 왔다고 했지? 어떤 물건을 싣고 왔을까?”
“뭔지 몰라도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싣고 온 것만은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 먼 곳까지 찾아올 리가 없잖아.”
“어떤 물건들이 시중에 풀릴지 정말 기대되는군.”
상인들과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같이 이번에 들어온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카라반의 등장에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특히 도깨비 시장의 상인들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시중에 풀리면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시장이 활성화된다.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상인들의 관심사는 과연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물건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였다.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자가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
그 때문에 벌써부터 시청과 각 구역의 패자들에게 줄을 서려는 상인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이 다섯 곳 중 하나에 물건을 독점적으로 공급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남 구역의 동향은 어때?”
“북 구역은 가능성이 있어 보여?”
“그래도 역시 시장이 관리하는 중앙 구역이 가능성이 높겠지?”
상인들의 기대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제온은 걸음을 옮겼다.
‘카라반 때문에 난리군.’
수십 년 만에 방문한 카라반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열기가 과열되고 있었다.
이대로 분위기가 달궈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당분간은 집에 처박혀 있어야겠구나.’
요즘 의도치 않게 여러 가지 일에 엮여 바쁘게 살았다.
이 이상 복잡한 일에 얽히는 것은 될 수 있으면 사양하고 싶었다.
그때 제온의 귀에 수상한 대화가 들려왔다.
“익스플로전 스크롤 스무 개에 붉은 등 전갈에서 추출한 신경독, 그리고 아공간이 인챈트 된 배낭 열 개, 확인해 봐.”
“배낭이 너무 적은 거 아냐? 최소 서른 개는 돼야지.”
“아공간이 인챈트 된 물건이 그렇게 구하기 쉬운 줄 아나? 이것도 겨우 구한 거야.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린 쫄딱 망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걱정하지 마. 절대 실패할 리 없으니까. 성공만 하면 우린 부자가 될 거야.”
“기대해 보지. 제기랄!”
도깨비 시장의 상인과 한 무리의 남자들이 은밀히 나누는 대화였다.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부나방들이 여기 또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