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깊은 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구축한 성채에 접근하는 이들이 있었다.
숫자는 모두 오십 명.
전원 각성자로 이뤄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면이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나 신분을 모르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그들은 모두 빈민가 출신의 각성자들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털기 위해 오늘 급조된 약탈대였다.
공격대를 이끄는 자는 이범호.
D등급 마법계 각성자였다.
수십 년 만에 카라반이 들어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즉시 그는 약탈할 계획을 세웠다.
‘아쿠츠크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분명 진귀한 물건이 가득 있을 거야.’
그가 도깨비 시장에서 어렵게 구한 아공간 배낭은 모두 열 개.
각 배낭마다 조그만 방 하나 크기의 아공간이 인챈트 되어 있었다.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살 만한 돈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약탈한 물건을 분배하는 조건으로 도깨비 시장의 상인에게 빌렸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모든 물건을 약탈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일부라도 아공간 배낭에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번 한탕만 성공하면 네오 서울에 들어갈 수 있어. 나도 네오 서울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거야.’
이범호를 비롯한 약탈대에 참여한 모든 각성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의 시야에 조그만 성채가 들어왔다.
짐차를 켜켜이 쌓아 만든 성채는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준비해 온 물건들을 믿기 때문이다.
이범호가 외쳤다.
“익스플로전 스크롤을 사용해.”
“오케이!”
각성자들이 익스플로전 스크롤을 성채 외벽에 붙였다.
잠시 후 붉게 달아오른 익스플로전 스크롤이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이범호와 각성자들은 성채 외벽, 즉 짐차에 큰 구멍이 뚫릴 거라 기대했다.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물건을 약탈해 빠져나가는 것이 이번 계획의 큰 골자였다.
하지만 세상일이 꼭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씨발! 저게 왜 멀쩡해?”
“익스플로전 스크롤이 잘못된 거 아냐?”
폭발이 일어난 곳을 보던 각성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강력한 폭발에도 성채의 외벽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염에 그슬린 흔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무슨 재질로 되어 있기에?”
“그게 중요해? 씨발! 좆 된 것 같은데.”
한 각성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채 안에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들이 뛰어나왔다.
“약탈자들이다.”
“잡아 죽여.”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약탈대를 공격했다.
자신의 계획과는 많이 다른 상황에 이범호가 잠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씨발! 이렇게 된 것 다 죽이고 모조리 빼앗자.”
“와아아!”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전리품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도 죽는다.
“챠앗!”
이범호는 자신의 스킬인 매직 미사일을 펼쳤다.
쐐애액!
다섯 발의 매직 미사일이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다른 약탈자들 역시 전력을 다해 주력 스킬을 펼쳤다.
콰콰쾅!
“아악!”
“큭!”
곳곳에서 폭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죽어 나가는 이들은 대부분 약탈자들이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들은 모두 정예들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위협과 마수들의 습격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빈민가의 하급 각성자 따윈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카라반의 수장인 알렉산드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각성자들과 싸우는 약탈자들을 바라봤다.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다른 콜로니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 첫날부터 습격해 올 줄은 몰랐다.
“모조리 죽여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님을 네오 서울에 알려 주거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다 뒈졌어. 개새끼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줄 알아.”
“어떤 놈도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물건을 공짜로 가져갈 순 없다. 이건 우리 목숨줄이란 말이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들은 그야말로 피에 미친 마수처럼 날뛰었다.
짐차에 싣고 온 물건들은 아쿠츠크의 모든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수집한 것들이었다.
카라반의 상행 성과에 아쿠츠크 콜로니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
당연히 마음가짐부터 약탈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크악!”
“켁!”
약탈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절반이 넘게 목숨을 잃자 약탈자들이 주춤했다.
“씨발! 이렇게 강하다니.”
“이러다간 모두 전멸당할 거야.”
약탈자들 사이에서 이탈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들은 무리에서 이탈해 네오 서울로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은 단 한 명도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개 같은 스캐빈저 새끼들!”
“죽엇!”
그들은 약탈자들을 악착같이 따라붙어 죽였다.
“이럴 수가! 이렇게 강하다니.”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약탈대를 조직한 이범호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이니 각성자들도 강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실패 요인이었다.
“제기랄!”
결국 이범호는 도주를 택했다. 하지만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유난히 호리호리한 체구의 미소년이었다.
“이 사달을 일으켜 놓고 그냥 가려구요?”
“비켜! 꼬마 새끼야.”
이범호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다섯 발의 매직 미사일은 무서운 속도로 데미안에게 날아왔다. 그런데 매직 미사일이 격중하기 직전 끼어든 이가 있었다.
바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인 알렉산드로였다.
퍼버버벅!
매직 미사일은 데미안 대신 그의 전신에 격중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엔 조그만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범호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가 큰 손을 뻗어 그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말도 안 되긴…….”
콰직!
이범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이범호를 죽인 알렉산드로가 손을 털며 데미안을 바라봤다.
“괜찮냐?”
“제 손으로 처리해도 됐는데요?”
“누누이 말하지 않느냐? 너는 우리 카라반의 핵심이니 부디 몸조심하라고.”
“하하! 그렇다고 이렇게 어린애 보호하듯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네가 없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다. 데미안! 부디 네가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인지하길 바란다.”
“그럴게요.”
데미안이 해맑게 웃었다.
***
간밤의 화이트 베어 카라반 습격 사건은 금세 빈민가에 알려졌다.
“D급 각성자인 이범호가 주도한 약탈대가 전멸했다고?”
“물건을 하나도 탈취하지 못했어? 미친!”
“생각보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전력이 더 대단한 모양이군.”
둘 이상만 모이면 사람들은 어제 일을 가지고 떠들었다.
이범호가 대단한 각성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당할 정도로 약한 자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약탈대를 주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범호와 약탈대가 맥을 쓰지 못하고 전멸당했다는 소문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이범호 말고도 약탈대를 조직하던 이들은 꽤 있었다. 하지만 이범호가 이끌던 약탈대가 순식간에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직후 해산됐다.
한차례 무력 과시를 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네오 서울 밖에 쌓은 성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용건이 있는 자가 직접 찾아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곳곳에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정식으로 방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온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건을 가지고 있는 자는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다.
공급권도 그들이 쥐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건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찾아가 거래를 요청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였고,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자신들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수요자가 널려 있는데, 굳이 힘들게 움직여 접선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 그들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그렇게 제 발로 찾아가려는 사람 중 한 명이 브리엘이라는 것이다.
“우리 카라반에 가자!”
갑자기 제온에게 찾아와 뜬금없이 말했다.
제온이 눈을 끔뻑거렸다.
“왜?”
“어떤 물건을 싣고 왔는지 궁금하잖아. 제온은 궁금하지 않아?”
“딱히!”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이젠 도깨비 시장에서 더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없단 말이야.”
연금술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회가 왔을 때 물건들을 확보해야 한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브리엘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번 방문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문제는 브리엘 혼자만으로는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들어갈수 없다는 것이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개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어중이떠중이 다 들어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문 자격에 엄격한 제한을 뒀다.
최소 한 단체의 수장 정도가 되어야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들어올 수 있게 한 것이다.
그것이 브리엘이 제온에게 조르는 이유였다.
신촌의 지배자인 이튼이 제온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했다.
브리엘이 제온을 올려다보며 졸랐다.
“응? 가자.”
“하아! 그래, 가자.”
“진짜지? 신난다.”
하는 수 없이 제온이 허락하자 브리엘이 방방 뛰며 좋아했다.
제온은 로브를 걸쳤다.
브리엘이 졸라서 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 역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물건만 봐도 아쿠츠크 콜로니의 환경이나 마수들의 분포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가기 전에 먼저 이튼에게 들렀다.
이튼은 당연히 제온의 방문을 껄끄러워했다.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방문하고 싶다구요?”
“네!”
“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제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튼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그의 목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 역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싣고 온 물건을 욕심내고 있었다. 그래서 방문할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그런데 제온이 먼저 치고 나온 것이다.
당연히 방문할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망설이는 그에게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안 될까요?”
순간 이튼은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저 부드러운 말투에 속으면 안 된다.
상대는 양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늑대, 아니 마수였다.
겉모습에 속아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잡아먹히고 만다.
이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당연히 되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도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가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지금 당장.”
“잘됐네요.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제온 님이 있어서 이렇게 신촌이 평화로운 건데. 당연히 편의를 봐 드려야죠.”
이튼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너는 존재 자체가 민폐야.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