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이튼은 각성자들을 소집했다.
대부분이 E급으로 실제 전투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전력들이었다. 하지만 구색 갖추기 용도로는 충분했다.
제온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있는 이상 다른 각성자들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 세를 과시하기 위해선 동행해야 했다.
그렇게 소집한 각성자가 스무 명.
이튼에 제온, 브리엘까지 더하니 스물세 명이 됐다.
그들은 빈민가를 나와 화이트 베어 카라반으로 향했다. 그런데 화이트 베어 카라반으로 향하는 이들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동대문 놈들이다.”
“어? 그러네.”
저 멀리서 화이트 베어 카라반으로 향하는 무리들을 발견한 이들이 웅성거렸다.
번쩍이는 중갑주를 입은 다수의 남자들이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앞세운 채 걷고 있었다.
네오 서울에서 십자가를 내세우는 집단은 한 곳밖에 없었다.
바로 요한이 수장으로 있는 동대문이었다.
이튼이 눈을 빛냈다.
“요한도 나온 건가?”
“요한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 브릭스턴이 보입니다.”
수하의 대답에 이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브릭스턴? 그 광전사가 있다고?”
“저 커다란 해머를 들고 있는 자가 브릭스턴이 분명합니다.”
“씨발! 요한이 미친 것 아냐? 이런 자리에 그런 미친 개새끼를 보내다니.”
이튼이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튼의 반응에 제온이 브릭스턴을 바라봤다.
보통 사람들을 상회하는 엄청난 덩치와 그에 걸맞은 중갑주, 그리고 어지간한 마수들의 대가리 정도는 순식간에 파괴할 것 같은 커다란 해머.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리게 만들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브릭스턴.
괜히 그가 광전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저 커다란 해머를 들고 날뛰면 막을 자가 없었다.
그는 요한의 광신도였다.
요한의 명이라면 지옥이라도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워낙 단순하고 무식해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자였다.
그때 제온의 시야에 브릭스턴과 나란히 걷는 여자가 들어왔다.
특이하게 수녀복을 입고 모래를 걷는 여자는 제온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김재경!’
요한의 심복이자 세뇌 능력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가 직접 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김재경도 제온을 알아봤는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제온에게 당할 뻔한 전적이 있기에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브릭스턴과 무어라 말을 주고받았다.
뒤이어 브릭스턴이 제온을 노려봤다.
제온을 노려보는 그의 시선엔 섬뜩한 광기가 담겨 있었다.
브릭스턴이 수하들을 이끌고 제온 무리를 향해 다가왔다.
마침내 제온 앞에 도착한 브릭스턴이 입을 열었다.
“네놈이 제온이냐?”
“그러는 그쪽은 브릭스턴?”
“그렇다. 요한 님의 오른팔 브릭스턴이 바로 이 몸이다.”
브릭스턴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대답했다.
제온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한가하게 인사나 하자고 온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용건인가요?”
“나는 경고를 하러 왔다.”
“경고?”
“그렇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과의 거래는 우리 동대문이 독점할 것이다. 네놈과 신촌에겐 기회가 절대 돌아가지 않을 테니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동대문에 독점을 준다고 합니까?”
“흥! 싫어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되게 만들 테니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깔끔하게 물러나죠.”
“약속한 거냐?”
“네!”
“좋다. 네놈의 약속을 믿고 지금은 물러가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이 해머로 네놈의 머리를 산산이 박살 내 줄 테니까.”
브릭스턴이 힘을 과시하듯 어깨에 걸치고 있던 해머를 허공에 휘두르다가 돌아갔다.
“저 건방진 새끼.”
뒤늦게 이튼이 분노를 터트렸다.
뒷북을 치는 이튼의 모습에 브리엘이 피식 미소 지었다.
‘이 아저씨도 은근히 겁쟁이라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튼이 아니라 어떤 각성자라도 브릭스턴의 위압적인 모습 앞에서는 쫄 수밖에 없을 테니까.
태연한 제온이 이상한 것이었지, 이튼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제온은 브릭스턴의 경고 따윈 잊어버렸는지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침내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세운 성채에 도착한 제온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짐차를 이렇게 활용하는 방법도 있었군. 머리를 많이 굴린 모양이야.”
“확실히 이렇게 하면 사막에서 노숙할 때 좋을 것 같아. 어지간한 마수들은 접근조차 못 할 거 아냐?”
브리엘이 제온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튼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평범한 차량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매우 특별한 재료로 강화한 것 같아요.”
“그렇겠죠.”
평범한 차량으로는 절대 사막을 횡단할 수 없다.
분명 특별한 재료로 차체를 보강하거나 강화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표면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온 분들이십니까?”
성채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각성자가 제온 일행에게 다가왔다.
제온이 이튼에게 눈짓하자 그가 나섰다.
“신촌에서 온 이튼입니다. 귀 카라반과 거래하기 위해 왔습니다.”
“신촌의 이튼 님? 확인됐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이미 네오 서울의 권력 구도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제온과 브리엘은 이튼을 앞세워 편히 성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성채 안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커다란 차량 오십 대를 이용해 만든 성채였다. 빈민가의 조그만 건물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넓고 높았다.
그때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 하나가 이튼 일행에게 다가왔다.
“이튼 님 일행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저는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세르게이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아, 네!”
이튼이 고개를 갸웃했다.
카라반에 들어왔으니 물건을 고르고 사면 그만이지, 굳이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튼의 생각을 읽었는지 세르게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희가 가져온 물건은 모두 아쿠츠크의 각성자들이 목숨을 걸고 확보한 것들입니다. 마수의 사체도 있고,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도 있습니다. 저희들은 편의상 물건들을 모두 다섯 등급으로 나눠 배치했습니다.”
“등급은 어떻게 나눈 겁니까?”
“마수의 사체나 특이 재료는 D등급으로 일 층에 배치했고, 던전에서 발굴된 특이한 재료는 C등급으로 이 층에 전시해 놨습니다. 삼 층엔 던전 보스에서 추출한 마정석, 아쿠츠크 콜로니와 다른 콜로니에서 만든 아이템들을. 사 층에는 던전에서 출토된 아이템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 층에 있는 물건은…….”
“왜 말하지 않는 겁니까?”
“죄송합니다만 오 층의 물건은 나중에 경매를 위해 밝힐 수 없습니다.”
“경매?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이튼이 캐물었지만, 세르게이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일행을 데리고 일 층의 차량으로 데려갔다.
“와아!”
차 안에 들어오자마자 브리엘이 탄성을 내뱉었다.
일 층에 전시된 물건들 때문이 아니었다.
차량 그 자체에 놀란 것이다.
제온이 바라보자 브리엘이 남몰래 속삭였다.
“차에 다중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다중 마법진?”
“응! 마법진 여러 개를 겹쳐 만든 건데, 굉장히 정교해.”
“어떤 목적의 마법진인지 알 수 있어?”
“현재 내 수준으로는 불가능해.”
브리엘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의 솜씨인지 모르지만, 오십 대의 차량에 펼쳐진 마법진은 무척이나 수준이 높아서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브리엘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마법계 각성자가 펼친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 어차피 다중 마법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래도…….”
“네게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만 신경 써. 어쩌면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맞다!”
그제야 브리엘이 정신을 차렸다.
이미 동대문 쪽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들어올지 몰랐다.
경쟁이 붙으면 아예 일 층 물건부터 경매가 시작될 수도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브리엘이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철썩 때리며 전의를 다졌다.
제온은 피식 웃으며 오 층을 올려다봤다.
문득 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오 층에서부터 상당히 강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마법진이나 결계로 봉인했을 텐데도 뚫고 나올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그만큼 오 층에 보관된 물건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이 정도까지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아이템은 제온도 처음이었다.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왔기에 이 정도인 거지?’
같은 등급의 각성자라면 당연히 좋은 아이템을 가진 이가 유리하다.
등급이 높을수록 그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꼭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야 이기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등급이 높은 각성자일수록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래서 네오 서울의 공방들이 잘되는 것이다.
각 공방만의 비전으로 만들어 내는 아이템은 각성자들을 훨씬 강하게 만들어 준다.
그 때문에 이름난 공방에는 각성자들이 알아서 줄을 선다. 하지만 공방의 기술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바로 던전에서 가끔 출토되는 아이템들이다.
그 자체로 던전의 핵이 되기도 하는 아이템들은 네오 서울의 기술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어마 무시한 위력을 자랑한다.
특히 고위험 던전에서 발굴된 아이템일수록 더욱 강력한 위력을 지닌다.
하지만 아이템이 온전한 상태로 발굴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실제 소유한 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전해진다.
정말 오 층에 있는 물건이 던전에서 출토된 아이템이라면 경쟁이 장난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저 물건 때문에 네오 서울이 발칵 뒤집힐지도…….’
그때였다.
쾅!
갑자기 일 층 반대편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 순간이었다.
“미친년이 감히 세뇌 스킬을 쓰다니.”
“제기랄!”
“들켰다. 모두 조져.”
갑자기 사람들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제온 일행과 비슷한 시간에 들어온 동대문 각성자들이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과 충돌한 것이다.
제온 일행에게 시비를 걸었던 브릭스턴이 거대한 해머를 휘두르며 김재경을 보호했다.
김재경의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온은 단번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했다.
‘저 여자가 또 세뇌 스킬을 펼치려다가 실패한 모양이군.’
김재경은 제온에게도 세뇌 스킬을 펼쳤었다. 다행히 제온의 정신 방벽이 굳건해 실패로 돌아갔지만, 성공했다면 꽤 위험했을 것이다.
세뇌 스킬은 만능이 아니었다.
정신 방벽이 굳건하거나 정신을 보호해 주는 아이템을 소유한 자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던 모양이다.
소리를 지른 각성자의 목에는 푸른빛을 내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아마 목걸이가 세뇌 스킬에서 각성자를 보호해 준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김재경이 세뇌 스킬을 펼치려 했던 것이 드러났고, 분노한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이 공격하는 것이다.
“이 시부럴 것들이 감히 겁도 없이 누굴 공격해?”
브릭스턴은 김재경을 보호하며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 냈다.
콰콰쾅!
두꺼운 중갑주는 각종 스킬의 포화 속에서도 브릭스턴을 완벽하게 보호해 줬다.
그의 중갑주 역시 특별히 제작된 아이템으로 각종 물리 공격에 강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크흐흐! 간지럽지도 않다. 이게 다냐? 그렇다면 차라리 힘으로 가져가는 게 낫겠구나.”
브릭스턴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원래 계획은 김재경이 책임자를 세뇌해 동대문에 헐값에 물건을 넘기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싸워 보니 무력으로 탈취해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김재경이 다급히 말했다.
“어서 빠져나가야 해.”
“시끄럽다. 실패한 주제에 누구에게 명령이야? 이제부턴 내가 지휘한다.”
“이 미친 곰 새끼가. 지금은 빠져나가서 사태를 수습해야 할 때라고.”
“패배자의 명령 따윈 듣지 않는다.”
브릭스턴과 수하들은 더욱 미쳐 날뛰었다.
그 누구도 감히 브릭스턴의 난동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그 순간이었다.
“거기까지다. 광신도야!”
브릭스턴 못지않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바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인 알렉산드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