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알렉산드로는 분노했다.
그가 카라반을 이끌고 이 먼 곳까지 온 것은 정당한 거래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싣고 온 물건들은 아쿠츠크 콜로니 사람들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귀한 물건들을 김재경과 브릭스턴은 세뇌라는 스킬로 강탈하려고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죽여 버리겠다.”
쾅!
그의 주먹이 브릭스턴의 가슴에 격중했다.
“큭!”
순간 브릭스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중갑주가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가슴뼈가 완전히 함몰되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알렉산드로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챠앗!”
또다시 이어지는 강맹한 일격.
브릭스턴은 급히 해머를 휘둘렀다.
쾅!
주먹과 해머가 부딪쳤는데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브릭스턴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고, 알렉산드로의 거체가 덜컥거렸다.
한쪽은 해머라는 무기를 들었는데, 다른 한 명은 맨 주먹이다.
그런데도 해머를 든 쪽이 뒤로 밀려났다.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 명확했다.
하지만 브릭스턴은 인정할 수 없었다.
“사막의 장사꾼 따위가 나보다 강하다고? 어림없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서 검은자가 사라져 갔다.
그의 스킬인 광전사가 발동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광전사 스킬이 완전히 발동하면 순간적으로 공격력이 두 배 이상 상승한다. 대신 이성을 완전히 잃어 적아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 했다.
김재경이 외쳤다.
“멍청아! 스킬 발동하지 마.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라고.”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너무 늦었다.
브릭스턴의 눈에서 검은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흰자는 온통 붉게 충혈됐다.
광전사 스킬이 완전히 발동된 것이다.
“죽인다.”
이성을 잃은 브릭스턴이 무서운 기세로 알렉산드로에게 달려들었다.
쾅!
폭음과 함께 이번에는 알렉산드로가 뒤로 밀려났다.
손해를 본 알렉산드로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화가 난 그가 전력을 다하려는 순간이었다.
“뒤로 물러나요.”
앳된 목소리가 알렉산드로의 귀에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렉산드로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후퇴했다.
그 순간 예의 앳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방향 교란(Direction Disturb).”
브릭스턴의 몸 위로 붉은빛이 내리꽂혔다.
이성을 잃은 브릭스턴은 빛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덮어썼다.
순간 브릭스턴의 감각이 교란됐다.
분명 눈앞에 상대를 뒀는데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의 감각을 교란시켜 혼란스럽게 만드는 스킬.
브릭스턴처럼 광전사 상태로 돌입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자에겐 효과가 배가된다.
브릭스턴이 알렉산드로를 공격하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졌다.
“대장!”
“제기랄!”
브릭스턴과 함께 온 전사들이 애타게 불렀지만, 그는 성채 밖으로 나간 후였다.
김재경이 외쳤다.
“모두 탈출해!”
결국 동대문 각성자들은 큰 피해를 입고 카라반을 탈출했다.
“개새끼들!”
“카악! 퉤!”
승리를 거둔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래침을 뱉었다.
승리를 거뒀음에도 그들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그들을 다독인 것은 뜻밖에도 앳돼 보이는 미소년이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다들 흥분은 가라앉히자고요. 어차피 이 정도 분란은 예상했던 일이니까.”
순간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이 이성을 되찾았다.
그것이 소년이 가진 힘 중 하나였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 중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누구보다 믿음직하고 신뢰가 가는 존재였다.
소년의 이름은 데미안이었다.
알렉산드로가 데미안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들겼다.
“수고했다.”
“수고는요. 별일도 아닌데.”
데미안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가 있어 항상 든든한 거 알지? 앞으로도 우리를 잘 이끌어 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해요. 우리 카라반의 리더는 단주잖아요.”
“하지만 실제 이끌어 가는 것은 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 네가 없었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 이야기는 하지 마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알았다.”
그제야 알렉산드로가 카라반 안에 다른 이들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알렉산드로의 시선이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는 제온 일행을 향했다.
자연 데미안의 시선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제온 일행을 바라보던 데미안의 눈이 크게 떠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형?”
데미안의 입에서 뜬금없는 호칭이 흘러나왔다.
“형이라니? 무슨 소리냐?”
곁에 있던 알렉산드로가 물었지만, 데미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은 제온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온이 입을 열었다.
“데미안, 너였구나.”
“정말 형이네요. 헛것을 본 줄 알았더니 진짜였어.”
“나도 신기루를 보는 줄 알았다. 너무 뜬금없이 나타나서.”
“하하!”
데미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반갑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정말 이곳에서 제온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제온이 네오 서울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온은 세상을 떠도는 중이었고, 언제 네오 서울로 돌아갈지 기약조차 없었다.
당연히 데미안도 제온을 만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기에 신기하고, 또 반가웠다.
제온이 데미안에게 다가왔다.
“많이 컸네.”
“벌써 칠 년이나 지났으니까요.”
“많이 달라졌구나.”
“그래? 다들 똑같다고 하던데요.”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네.”
“그럼 형이 정확한 거겠죠. 어쨌거나 이렇게라도 보게 돼서 너무 반가워요. 네오 서울엔 언제 돌아온 거예요?”
“얼마 되지 않았어.”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몰랐구나.”
데미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데미안의 곁으로 알렉산드로가 다가왔다.
“나에게도 소개해 주지 않겠느냐?”
“아! 인사해요. 제가 언젠가 이야기한 적 있죠? 칠 년 전에 사막에서 만난 적이 있다던 형.”
“아! 그분이구나. 반갑습니다. 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인 알렉산드로 푸르첸코라고 합니다.”
“제온입니다.”
알렉산드로와 제온이 악수했다.
알렉산드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제온의 전신을 훑었다. 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데미안이 제온에게 물었다.
“형도 물건을 사러 온 거예요?”
“나는 이 녀석을 따라 구경만 온 거야.”
제온이 이튼 일행과 함께 있는 브리엘을 가리켰다. 그러자 브리엘이 제온의 곁으로 다가오며 인사했다.
“난 브리엘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나도 반가워.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평범한 사람 같지 않네.”
“뭐가?”
“그냥 느낌이…….”
“그쪽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네.”
“그럼 피차 마찬가지인가?”
데미안이 피식 웃었다.
반면 브리엘은 잔뜩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데미안을 노려봤다.
다행히 그녀의 눈빛은 고깔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 남자 이상해.’
그녀는 하이 엘프였다.
비록 마약 때문에 감각이 많이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하이 엘프 특유의 감은 살아 있었다.
데미안에게서는 이상하게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명색이 하이 엘프인 그녀가 착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때 데미안이 알렉산드로에게 말했다.
“단주님, 이들에겐 그냥 삼 층까지 열어 주세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우선으로 내주고요. 제가 책임질게요.”
“알았다. 그렇게 해 주마.”
알렉산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말했다.
“나는 저 녀석과 이야기 좀 할 테니까 너는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봐.”
“조심해!”
“뭘?”
“데미안 말이야.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알았어.”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브리엘이 종종걸음으로 떠나갔다.
제온이 데미안에게 말했다.
“좀 걸을까?”
“그래요.”
두 사람은 함께 성채를 나와 모래 위를 걸었다.
먼저 입을 연 이는 제온이었다.
“아쿠츠크 콜로니에서 왔다고?”
“알다시피 캄차카 콜로니에는 돌아갈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콜로니를 찾아야 했죠.”
데미안은 캄차카 콜로니 출신이다.
아버지인 벨로프가 캄차카 콜로니에서 카라반을 운영했고, 데미안도 그곳에서 잔뼈가 굵었다.
하지만 벨로프가 이종족들의 협박 때문에 데이오든과 제온을 함정으로 유인했고, 이종족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시 캄차카 콜로니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데미안은 캄차카 콜로니가 아닌 다른 콜로니를 찾아야 했다.
데미안은 홀로 사막을 떠돌았다.
그렇게 몇 달을 떠돌다가 겨우 도착한 곳이 바로 아쿠츠크였다.
데미안이 도착했을 때의 아쿠츠크는 꿈도 희망도 없이 망가져 있었다.
연일 계속된 마수의 습격에 방벽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식량, 무기, 의지 모든 것이 부족했다.
아쿠츠크 콜로니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 해결책을 제시한 이가 바로 데미안이었다.
카라반을 조작해 타 콜로니와 교역하고, 그렇게 얻은 물자를 아쿠츠크로 들여왔다.
말은 쉬웠지만, 그 과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소년을 믿어 줄 이는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소년은 아쿠츠크 출생도 아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데미안을 불신했다.
그때 데미안을 믿어 준 유일한 인물이 바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인 알렉산드로였다.
당시 알렉산드로는 마수들의 습격에서 콜로니를 지키는 자경대의 대장이었다.
모두가 절망할 때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마수들과 싸웠다.
분명 누군가 돌파구를 찾아내 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때 나타난 이가 데미안이었다.
모두가 데미안의 말을 허황하다고 생각했지만, 알렉산드로는 이상하게 그의 말에 신뢰가 갔다.
결국 알렉산드로는 데미안과 함께 카라반을 만들었고, 그게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시작이었다.
데미안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줬다.
나침반도 통하지 않는 사막에서도 정확히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마수들의 동향을 먼저 감지해 위험을 피해 나갔다.
내비게이터로서 완벽하게 각성한 것이다.
그의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졌다.
결국 그는 아쿠츠크 콜로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생존한 다른 콜로니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처음이 힘들었지, 그 후부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다행히 그쪽 콜로니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 꽤 있었고, 우리 쪽 물건도 그쪽에 도움이 됐거든요.”
첫 교역을 성공적으로 한 후 데미안에 대한 믿음은 대폭 상승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은 급속도로 몸집을 불렸고, 덩달아 아쿠츠크 콜로니의 환경도 더욱 개선됐다.
방벽은 더 높아졌고, 마수들의 습격에 대항할 무기들이 성벽 위에 놓였다.
주민들은 더 안전해지고, 삶에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되다 보니 조금 더 교역 규모를 키우고 싶더라고요. 그때 네오 서울이 생각났어요. 네오 서울과 교역을 틀 수 있으면 아쿠츠크를 더 키울 수 있겠더라고요.”
“오는 길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네오 서울로 오는 길은 위험도가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그렇겠지.”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오 서울 근처에는 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항마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 밖으로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많은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것이다.
개중에는 고위 각성자도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마수도 존재한다.
그 모든 마수의 위협에서 안전한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한 소년이 눈앞에 있었다.
데미안이 제온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묘하게 불길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