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칠 년이란 세월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충분한 세월이었고, 묘목처럼 빈약하기만 하던 자아가 거대한 나무처럼 크고 강해질 만큼 오랜 시간이었다.
지금 제온 앞에 서 있는 데미안처럼 말이다.
칠 년 전 여렸던 소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고집스레 다문 입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눈빛, 꼿꼿하게 세운 허리, 그 모든 것이 데미안이 여린 심성의 소년이 아닌 강한 신념을 가진 남자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품은 신념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온이 신이 아닌 이상 데미안이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제온을 보며 미소 짓던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형!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그래!”
“데이오든 님은 원하시는 바를 이뤘나요?”
“이루셨다.”
“그럼 하이엘툰은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거죠?”
“그래!”
“그럼 데이오든 님은?”
제온이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데미안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요. 그래도 필생의 비원을 이뤘으니 마음 편히 가셨겠네요.”
“그러셨겠지.”
“형은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형 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다니까요.”
“뭐가?”
“누구는 진짜 뭐 빠지게 노력해서 길을 찾아내는데, 형은 사막을 내 집 안마당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잖아요?”
“네 능력도 충분히 사기적이다. 잘 알 텐데?”
“알죠! 그래도 너무 차이 나니까 하는 말이죠.”
데미안이 입술을 삐죽였다.
“어울리지도 않는 표정 짓지 마.”
“표났어요?”
“꽤!”
“아직 많이 부족한 모양이네. 그래도 많이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한 가지만 묻자.”
“뭐를요?”
“엘하룬!”
“…….”
순간 데미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미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찾았냐?”
“형은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아직은요. 하지만 머지않았어요.”
“그래?”
“형은요?”
“나는 아직 못 찾았다.”
“그랬을 거예요. 보통 꼭꼭 숨겨 둔 게 아니니까.”
데미안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제온이 그런 데미안의 표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찾으면 알려 줄 거냐?”
“형에겐 당연히 알려 줘야죠. 데이오든 님과 약속했는데.”
“믿어도 되는 거겠지?”
“형, 저는 적어도 제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요.”
“믿어 보마.”
이번에는 제온이 미소 지었다.
데미안은 그런 제온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
제온과 데미안이 화이트 베어 카라반으로 돌아왔을 때 브리엘은 이미 쇼핑을 끝낸 후였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좀 있었어?”
“응! 그런데 비싸서 다 사진 못했어.”
브리엘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가져온 물건들은 네오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당연히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그 때문에 브리엘도 원하는 물건을 다 사지 못하고, 겨우 몇 가지만 샀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소 해 보고 싶었던 연금술을 시도해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네.”
“응! 제온은 데미안과 이야기 잘 끝났어?”
“잘 끝났어.”
“다행이네.”
“그래!”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시야에 데미안이 알렉산드로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는 알렉산드로였지만, 그는 데미안의 말을 경청했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실 주인이 누군지 말이다.
‘많이 컸구나.’
문제는 너무 많이 컸다는 것이다.
겉모습은 그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안에는 능구렁이가 한 열 마리쯤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제온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브리엘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응!”
두 사람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성채를 나섰다.
성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브리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미안은 어떤 사람이야?”
“왜?”
“아니, 엘프와 드워프 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 모두 구하기 힘든 거거든.”
“그래?”
“어, 우리 마을에 있을 때도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수두룩해. 특히 푸른 월계수 잎은 나도 처음 보는 보물이었어.”
“푸른 월계수 잎이 보물이야?”
“다른 종족들에겐 소용없지만, 엘프들에겐 엄청난 보물이지. 몸에 지닌 것만으로도 활력을 높여 줘. 사막의 혹독한 기후를 견디는 데 그만한 물건이 없어.”
“엘프들과 궁합이 맞는 물건인 모양이네.”
간혹 그런 물건들이 있다.
다른 종족들에겐 별 영향이 없지만, 특정 종족에겐 큰 영향을 끼치는 물건들이.
아마도 푸른 월계수 잎도 그런 물건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원래 쿠라얀에는 푸른 월계수가 매우 흔했다. 하지만 사막화된 지구에선 구하기 힘든 귀물이 되었다.
오죽하면 하이 엘프인 브리엘의 마을에서조차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슨 수로 푸른 월계수 잎을 구했을까? 할 수 있다면 납치해서 물어보고 싶네.”
“브리엘이 그 정도면 다른 엘프들은 더 하겠네?”
“그렇겠지. 아마 다들 환장할 거야.”
“음!”
제온이 고개를 돌려 성채를 바라봤다.
성채 가장 높은 곳에서 데미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
“네가 누군가를 그렇게 신경 쓰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니까요.”
“그래?”
데미안의 대답에 알렉산드로가 눈을 빛냈다.
데미안과는 무려 칠 년이나 알아 온 사이였다.
그래서 알고 있다.
데미안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과 두뇌를 가졌는지 말이다.
내비게이터.
말 그대로 길잡이를 말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각성자가 존재하지만, 길잡이로 각성한 자는 극히 드물다.
그중에서도 데미안만큼 뛰어난 길잡이는 더더욱 드물다.
다른 콜로니와 교류하면서 알게 됐다.
데미안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뛰어난 길잡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가 있기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다른 콜로니와 교류를 할 수 있었고, 이만큼이나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성장할 수 있었다.
아쿠츠크 콜로니나 다른 콜로니의 각성자가 아무리 강해도 데미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다른 각성자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적어도 알렉산드로가 데미안이라는 각성자를 안 이후에는 말이다.
“마법계 각성자냐?”
“글쎄요. 그걸 뭐라 말해야 하나. 아, 그냥 말 안 할래요.”
“왜? 혹시 비밀을 지키려고 맹세라도 한 거냐?”
“형에겐 빚을 졌거든요. 그러니까 최소한의 의리라도 지키고 싶어요.”
“음!”
“무엇보다 형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 정도로 그 남자가 두려운 거냐?”
“솔직히…… 네! 나는 그가 무서워요. 적어도 이 사막 위에서 그를 당할 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음!”
알렉산드로가 침음성을 흘렸다.
‘데미안이 이 정도까지 말할 정도라면 주의해야 할 자가 맞군.’
문득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치솟아 올라왔다.
알렉산드로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호승심이었다.
강한 자와 싸워 이기고 싶다는 호승심.
비록 지금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로 있지만, 그는 뛰어난 각성자이자 전사였다.
강한 상대를 보면 싸워 보고 싶고, 또 짓밟고 싶었다.
‘언젠가는 맞붙을 기회가 있겠지. 지금은 데미안의 일이 우선이다.’
그는 애써 호승심을 억눌러 가라앉혔다.
그때였다.
저 멀리 네오 서울에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무리들이 보였다.
입고 있는 옷과 무장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각성자 무리였다.
동대문과 신촌 말고도 다른 집단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가 수하들에게 외쳤다.
“손님들 오신다. 맞이할 준비를 해라.”
“예!”
밑에서 수하들의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알렉산드로가 밑으로 내려가려다가 문득 데미안을 돌아봤다.
“데미안!”
“네!”
“오 층은 언제쯤 개방할까?”
“충분히 관심을 끈 후에요.”
“알았다. 그렇게 하마.”
알렉산드로가 내려가고 성채 위엔 데미안 혼자 남았다.
데미안은 제온이 빈민가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
빈민가로 돌아오자마자 브리엘은 집으로 달려갔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산 물건들로 연금술을 시험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제온이 택한 곳은 바로 클렉시 영감이 장사하는 노점 거리였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가게 문을 연 클렉시 영감이 보였다.
제온이 다가가자 클렉시 영감이 알은척을 했다.
“대낮에 네가 웬일이냐? 해가 떨어져야 움직이는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일찍 나온 거야?”
“그러는 영감님은 왜 이렇게 일찍 문 연 겁니까? 아직 열 시간이 아니잖아요.”
“나야 대목이니까 문을 열었지.”
“대목?”
“외부에서 온 카라반 덕분에 네오 서울 전체가 떠들썩하잖아. 평소 낮에는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던 놈들도 아침부터 돌아다니고. 장사꾼이 이런 기회를 놓치면 장사 접어야지.”
“저도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다녀오느라 일찍 일어났습니다.”
“호! 벌써 갔다 왔어?”
클렉시 영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을 제온은 놓치지 않았다.
네오 서울에 있는 어떤 단체들보다도 더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동향과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가 바로 클렉시 영감이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벌써 아르고스의 눈을 총동원해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네 눈으로 본 카라반 내부는 어떻더냐?”
“그 자체로 완벽한 요새더군요.”
“요새?”
“동대문에서 수작을 부리다가 망신당했을 정도로 방어력이 대단합니다.”
“쯧! 그 광신도 새끼들이 수작을 부린 것은 하나도 놀랍지 않구나.”
클렉시 영감이 혀부터 찼다.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빨리 수작을 부렸고, 또 들켜 망신당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울 뿐이었다.
“아마 놈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다. 원래 광신도들이 한번 집착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거든.”
“화이트 베어 카라반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호! 그 정도로 높게 평가하는 거냐?”
“직접 그들의 전력을 봤으니까요.”
“그렇다면 믿을 만하겠구나. 다른 건 몰라도 네놈 눈썰미 하나는 끝내주니까.”
제온을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실제로도 클렉시 영감은 제온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식사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진짜 용건이 뭐냐?”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이상 동향이 감지되면 알려 주십시오.”
“이상 동향?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냐?”
“그냥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흐음!”
클렉시 영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온을 안 이후로 그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봤다.
그것만으로도 느낌이 싸했다.
“알았다.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제일 먼저 너에게 알려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