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푹!
“크헉!”
날카로운 소성과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비명의 주인은 어깨에 구멍이 뚫린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수염 하나 없이 매끈한 남자였다.
발목까지 덮는 코트와 중절모를 눌러쓴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왜, 왜 이러는 것이오?”
그 순간 그의 어깨에 구멍을 뚫은 상대가 사뿐히 착지했다.
고혹적인 눈매와 바람에 나부끼는 부드러운 머릿결, 굴곡진 몸매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여자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다란 창을 휘휘 휘두르며 다가왔다.
“몰라서 물어?”
“아니, 멀쩡히 길 가던 사람을 갑자기 공격해 놓고…….”
“멀쩡히?”
“아니, 그러니까…….”
“씨발! 진짜 그렇게 생각해? 어제 멀쩡히 길 가던 각성자를 습격해 죽여 놓고.”
“그걸 어떻게?”
중절모를 쓴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창을 든 여자가 피식 웃었다.
“네오 서울 안에서 그딴 짓을 벌이고도 안 들킬 줄 알았냐? 이 스캐빈저 새끼야!”
“씨발! 너 누구야?”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나? 너 때문에 특근하게 된 불쌍한 공무원이다. 아, 공무원은 아닌가? 어쨌거나 너 때문에 아닌 밤중에 개고생하는 맨디라고 한다. 아! 지금은 엘로이지.”
“맨디? 엘로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너 때문이라고. 씨발 새끼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여자는 엘로이였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네오 서울을 어지럽히는 스캐빈저의 소탕이었다.
스캐빈저의 분탕질이 계속되자 시청에서 각성자들에게 임무를 내린 것이다.
다른 각성자들은 입맛에 맞게 임무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시청과 계약 관계인 맨디에겐 거부할 자격 자체가 없었다.
슈퍼바이저이기에 받는 혜택만큼이나 의무도 컸다.
그것이 그녀가 한밤중에 스캐빈저로 짐작되는 남자와 드잡이질을 하는 이유였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오.
북 구역에 거주지를 둔 평범한 남자였다.
적어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습은 그랬다. 하지만 엘로이가 조사한 바는 달랐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위장했지만, 놈은 스캐빈저였다.
그것도 무척이나 악질이다.
놈에게 사냥당한 각성자의 숫자가 벌써 다섯 명이 넘었다.
하프 엘프인 엘로이의 예민한 촉이 아니었다면 놈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이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시청의 사냥개에게 걸리다니 운도 없군.”
“너, 죽었다고 복창해라.”
“웃기지 마. 네년을 죽이고 사막으로 튀면 그만이야.”
“사막에서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차라리 나한테 잡히는 게 나을 텐데.”
“흥! 네오 서울에만 사람이 사는 줄 아냐? 사막에도 사람이 산다고.”
“스캐빈저 본진이 사막에 있나 보네. 순순히 불면 안 아프게 패 줄게.”
“웃기네! 다짜고짜 사람 어깨에 구멍을 낸 년에 안 아프게 한다고?”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조금 심했네. 당신이 이해해 줘. 직장인의 애환을 잘 알잖아.”
“몰라! 씨발년아.”
“몰라? 그럼 알게 해 줘야지.”
엘로이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해보자. 누가 쉽게 당할 줄 알고.”
데이비드가 코트 안에 감춰 뒀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촤르륵!
그가 손에 든 무기는 금속으로 된 채찍이었다.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데이비드가 손을 털자 순식간에 오 미터까지 늘어났다.
엘로이가 데이비드의 손에 들린 채찍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쉽게 가는 법이 없어요, 스캐빈저 새끼들은. 뒈지게 맞아야 정신 차리지.”
“죽엇!”
그 순간 데이비드의 채찍이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날아왔다.
평범한 인간은 절대 감지할 수 없는 무서운 속도였다.
하지만 엘로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하프 엘프이자 각성자.
그녀의 감각은 일반적인 각성자보다 훨씬 예민했다.
쉬악!
간발의 차이로 채찍을 피한 후 데이비드에게 쇄도했다.
데이비드가 휘두른 채찍만큼이나 빠른 속도였다.
“크윽!”
데이비드가 급히 채찍을 회수해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엘로이는 그에게 방어할 틈을 주지 않았다.
빠악!
그녀의 창대가 데이비드의 몸에 작렬했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되는 고통에 데이비드가 비명을 질렀다.
“커억!”
“어디 엄살을? 아직 멀었어. 씨발 새끼야! 넌 죽도록 맞아 봐야 해.”
엘로이는 창대로 데이비드를 마구 후려쳤다.
창날로 찌르면 금방 목숨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데이비드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제압해서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
일단은 숨만 붙여 두면 됐기에 힘 조절해서 마구 두들겨 팼다.
퍽! 퍼어억!
무자비한 폭력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몽둥이질이 멈췄을 때 데이비드는 고깃덩이처럼 잘 다져진 후였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엘로이가 데이비드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대화라는 것을 해 보자고. 네놈들 근거지 어디야?”
***
빈민가가 시끄러웠다.
원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대낮엔 사람들이 활동을 안 해 조용했었는데, 최근엔 평화가 깨졌다.
제온은 그 이유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성채가 네오 서울 밖 사막에 자리 잡은 이후부터 사람들의 활동이 많아졌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등장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네오 서울과 빈민가에 자극을 줬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풀린 물건들은 기존에 네오 서울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물건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대낮에도 거리에 나오게 만들었다.
덕분에 죽은 듯 조용하던 빈민가에는 오랜만에 활력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덩달아 사건 사고도 늘어났다.
“거기 안 서! 잡히면 죽는다.”
“제기랄!”
도깨비 시장 안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손님 한 명이 물건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깨비 시장의 가드에게 잡혔다.
상인들이 가드에게 잡혀 얻어맞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요즘 들어 저런 뜨내기들이 늘었어.”
“도깨비 시장이 어떤 곳인지 알면 감히 도둑질할 시도조차 못 했을 텐데.”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온 후 물이 흐려졌어.”
제온은 가게 근처에서 상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도깨비 시장에 나왔다가 소동을 목격한 것이다.
손님이 훔친 물건은 바로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흘러나온 단검이었다.
솜씨 좋은 인챈터가 강화한 단검이라고 했다.
인챈터 자체가 워낙 희귀한 직종인 데다가 단검의 재료가 워낙 좋아 좋은 옵션이 붙었다.
바로 관통력의 증가였다.
도깨비 시장에서 확인한 바로는 동급의 단검보다 최소 삼십 프로 이상 관통력이 향상됐다.
이 정도의 물건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훔친 남자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물론 제온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풀린 물건들이 꽤 훌륭하긴 하지만, 제온의 흥미를 끌기엔 부족했다.
제온이 필요한 것은 그런 무기들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이었다.
도깨비 시장의 각성자가 도둑의 품에서 조그만 원반을 꺼내 들었다.
“이건 또 뭐야? 어디서 훔친 거야?”
“씨발! 그건 내 거야. 내 돈 주고 카라반에서 산 거라고.”
“새끼가 거짓말하고 있네. 일단 이건 압수.”
“내 거야! 내놓으라고.”
“도둑 새끼가 어디서 큰 소리야?”
도깨비 시장 각성자들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도둑을 팼다.
도둑은 눈이 벌게져 대항했지만, 도깨비 시장 각성자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제온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건들을 골랐다.
그때 제온에게 조용히 접근해 오는 이가 있었다.
“이런 물건들은 굳이 도깨비 시장에서 사지 않아도 되잖아?”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이는 바로 도깨비 시장의 조합장인 유세희였다.
그녀의 등 뒤엔 심복인 흑사자가 서 있었다.
제온이 상인에게 돈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가 가장 믿을 만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유세희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죠. 당신은요?”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와 봤지.”
유세희가 제압당한 도둑을 바라봤다.
도둑은 아등바등하면서 각성자에게 빼앗긴 원반을 되찾으려 했다.
제온이 피식 웃었다.
“요즘 자주 나오겠네요.”
“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 보게 되네.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
“원래 신분을 엄격하게 가려 받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막을 수도 없어. 요즘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까 구멍이 뚫렸거든.”
“그건 좀 심각하네요.”
“심각하지. 이게 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 때문이야. 그들이 조용하던 연못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어.”
“그 충격파가 꽤 크긴 하네요.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니.”
“네오 서울이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이지. 완벽했다면 겨우 이 정도 충격으로 이렇게 흔들리진 않았을 거야.”
“그것도 그렇네요.”
“아마 앞으로도 많이 삐걱댈 거야. 이미 시중에 독이 풀렸으니까.”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풀린 물건을 말하는 거였다.
제온이 그에 동의했다.
“독이라? 그 말도 맞는 것 같네요.”
“저들이 푼 독이 어디까지 퍼져 나갈지 지켜봐야지. 그때까지는 꽤 시끄러울 거야.”
“뭐, 감수해야죠.”
“태평하니 좋네. 하긴 당신 정도 능력자라면 이런 소란에 별 영향을 받지 않겠지. 좀 부러운데.”
“부럽긴요. 저도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이에요.”
제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할 때였다.
콰앙!
갑자기 근처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강렬한 화염과 후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제기랄!”
흑사자가 급히 보호막을 만들어 유세희를 폭발에서 보호했다.
덕분에 그녀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무슨?”
유세희가 황망한 얼굴로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물건을 훔쳐 달아나던 각성자를 제압한 곳이었다.
물건을 훔친 각성자는 물론이고, 그를 제압했던 도깨비 시장의 각성자와 일대의 상점까지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무래도 제압당했던 자가 폭발한 거 같군요.”
“그럼, 사람이 폭발했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어쩌면 그자가 갖고 있던 물건이 폭발했을지도 모르죠.”
“그런…….”
말을 잇지 못하는 유세희를 뒤로하고 제온이 폭발이 일어난 장소로 걸어갔다.
“크윽!”
“윽! 다리가…….”
“살려 줘.”
폭발이 일어난 곳 일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많은 이들이 폭발에 다쳐 신음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팔이 떨어져 나갔고, 누군가는 복부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큰 피해에 제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죽거나 다친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곳이군.”
제온은 폭발의 근원지를 바로 찾아냈다.
커다란 구덩이가 패 있었고, 여기저기 살점과 뼈가 널브러져 있었다.
도깨비 시장 각성자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의 잔해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제온의 눈길을 끈 것은 검게 그을린 금속 파편이었다. 제온은 그것이 도둑의 품에 들어 있던 원반의 파편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제온이 파편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손바닥 절반만 한 크기의 파편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뭐야?”
어느새 다가온 유세희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물건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 처음 보는 물건이야.”
“마나의 잔향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슨 의미야?”
“아무래도 이 물건이 폭발한 것 같습니다.”
“그게 뭔데 폭탄처럼 터져?”
제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물건의 정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 물건을 푼 자가 데미안이라는 것을 말이다.
‘데미안. 작정하고 독을 풀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