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오래전 인간은 신에게 닿길 원했다.
그래서 높은 탑을 세웠다.
바벨이라는 이름의 탑을.
탑은 결국 신의 분노에 무너졌고, 인간은 분열됐다.
이제는 기억하는 이조차 거의 없는 신화시대의 전설이었다.
네오 서울은 현시대의 바벨탑이다.
사막에 홀로 우뚝 선 거대한 도시엔 그 옛날 신에게 닿길 소원했던 인간들의 염원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네오 서울 안엔 대멸망 이전 번영했던 최첨단의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서 있었다.
모든 구역이 골고루 발달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곳이 바로 서 구역이었다.
초고도 문명을 자랑하는 네오 서울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서 구역은 최첨단을 자랑했다.
다른 곳보다 기계화 각성자들의 수가 많았고, 이런 특징은 기계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곳에서 마법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 주력은 아니었다.
서 구역은 기계화 각성자들을 위해 기계를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그 덕분에 다른 구역보다 월등한 발전 속도를 자랑했다.
그런 서 구역의 특징은 김현수의 거처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금속으로 된 실내 공간엔 수많은 파이프와 전선이 노출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만든 커다란 의자에 김현수가 앉아 있었다.
김현수의 외형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육체 중 상당 부분은 기계로 만든 의체였다.
다만 월등한 기술력으로 인간의 육체와 상당히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육안으로 봐서는 어디가 기계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육체인지 알 수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눈빛도 차가워서 마치 금속 가면을 쓴 것 같았다.
김현수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눈 역시 기계로 된 의안이었다.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던 김현수가 입을 열었다.
“삼족오!”
순간 그의 뇌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직접 전해졌다.
―예! 마스터.
“상황 보고하라.”
―현재까지 희생자 칠십이 명이고, 모두 기계 신체를 빼앗겨 폐기되었습니다. 빼앗긴 기계 신체는 잘게 분해돼 암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측됩니다.
“칠십이 명이라고?”
―지금 한 명 더 늘어 칠십삼 명입니다.
“범인은 역시 스캐빈저인가?”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군. 며칠 새에 칠십삼 명이나 스캐빈저에게 당했다고? 아무래도 우리가 호구로 보였나 보군.”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흘러 들어온 아이템이 기계화 각성자들과 최악의 상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놔두었다간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계산됩니다.
“대응 방안은?”
―기계 병단을 움직여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직접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건 안 돼! 기계 병단을 움직였다가는 진금호가 서 구역에 직접 개입할 빌미를 주게 돼.”
김현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김현수였지만, 네오 서울의 시장인 진금호만큼은 무서워했다.
그는 진금호가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진금호에게 개입할 빌미를 주는 것은 서 구역과 그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은?”
―계산 중입니다.
잠시 기계음이 침묵했다.
김현수는 잠자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삼족오는 인간이 아니었다.
우연과 과학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슈퍼컴퓨터였다.
각성 초기 김현수는 우연히 한 던전에 들어갔다.
던전의 주인은 S급으로 분류되는 에이션트 골렘.
아직 애송이였던 김현수가 감히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에이션트 골렘은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덕분에 김현수는 겨우 에이션트 골렘을 쓰러트리고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에이션트 골렘의 에고가 담긴 두뇌였다.
에이션트 골렘의 두뇌는 초기화되어 있었다.
김현수는 에이션트 골렘의 두뇌를 가져와 연구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연구에 동원된 컴퓨터와 에이션트 골렘의 두뇌가 결합되었다.
컴퓨터와 결합된 에이션트의 골렘의 두뇌는 슈퍼컴퓨터로 되살아났고, 김현수는 삼족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족오의 본체가 된 컴퓨터는 지하 백 미터 아래 벙커에 존재했다.
서 구역에서 각성한 기계화 각성자에겐 삼족오와 연결되는 통신 모듈이 장착된다.
그 덕분에 김현수는 이곳에 앉아서도 기계화 각성자들의 동향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었다.
일반 각성자는 단순히 통신 모듈이 장착될 뿐이지만, 김현수의 심복에겐 보조 AI가 장착된다.
보조 AI는 삼족오의 열화판으로 에고가 연결되어 있다.
보조 AI는 기계화 각성자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제어해 비약적으로 강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기계화 각성자라면 누구나 김현수의 심복이 되어 보조 AI를 장착하길 원한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보조 AI의 수량은 한계가 있었고, 그 때문에 극히 소수에게만 허락됐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삼족오의 음성이 들려왔다.
―현재 세력 분석 결과 동대문과 연합이 가장 효율이 높을 것으로 계산됩니다.
“동대문? 그 광신도들의 집단?”
―예!
“하필?”
김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서 구역의 지배자인 김현수에게도 요한을 주축으로 뭉친 동대문은 꺼림칙한 집단이었다.
그들의 무력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들의 결집력과 신을 향한 광적인 믿음이 껄끄러운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신도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화 각성자들에게도 꽤 피곤한 존재였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삼족오가 동대문을 추천해 주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삼족오의 설명이 이어졌다.
―최근 동대문은 연이어 실패해서 궁지에 몰린 상태입니다. 큰 피해는 없지만, 지도자인 요한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어 반전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반전? 그럴 수도 있겠군.”
―동대문을 앞에 내세우고, 우린 지원만 하면 됩니다.
“저들의 체면을 살려 주고 우린 실속만 챙기잔 말이군.”
―맞습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그제야 김현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마스터의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김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잠시 창밖을 보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현재 남은 순수 한국인은?”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삼백칠십이만 사천삼백아홉 명입니다.
“그것밖에 안 되나?”
―이 추세대로라면 백 년 안에 순수 한국 혈통은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이 땅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니까.”
비록 기계로 육체 대부분을 교체했지만, 그의 영혼과 정신은 순수 한국인이었다.
***
제온은 탁자 위에 놓인 금속 파편을 바라봤다.
도깨비 시장에서 폭발을 일으킨 물건의 잔해였다.
이것 때문에 다섯 명이 죽고 스무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도깨비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유세희는 당장 도깨비 시장의 상인들과 각성자들을 소집해 대책 수립에 들어갔다.
“이거 하나 때문에 분위기가 개판이 됐군.”
“그게 뭔데?”
그때 방 안에 처박혀 있던 브리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제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또 밤샌 거냐?”
“어!”
브리엘이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연금술을 실험하다 보면 밤을 새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덕분에 이젠 아예 낮과 밤이 뒤바뀌어 버렸다.
브리엘은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이거 가시 삼엽충의 껍질로 만든 거네.”
“아는 재료야?”
“응! 대단히 희귀한 건데 잘못 가공하면 폭발해서 잘 사용하지 않아.”
“그래?”
“가시 삼엽충은 이 근처에서 보기 힘든 마수인데, 혹시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풀린 물건이야?”
“그런 것 같아.”
“안전한 재료도 많을 텐데, 왜 이렇게 위험한 것을 사용했을까?”
“일부러 그런 걸 수도 있지.”
“일부러? 왜?”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쿵쿵!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레빈인가?”
브리엘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전혀 의외의 인물이 보였다.
웨이브 진 금발을 길게 늘어트린 아름다운 여자였다.
무엇보다 사파이어를 박은 것처럼 푸른 눈동자가 유독 인상에 남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브리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브리엘의 반응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가 제온 님의 집 맞나요?”
“맞는데 누구시죠?”
“아! 제 이름은 맨디예요. 제온 님을 뵈러 왔어요.”
“맨디?”
“네! 안에 제온 님 계시나요?”
그때 맨디의 목소리를 들은 제온이 문 앞으로 왔다.
“당신이 내 집엔 웬일이죠?”
“제대로 찾아왔군요.”
“일단 안에 들어오시죠.”
제온은 맨디를 집 안으로 들였다.
맨디를 집에 들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브리엘이 인상을 썼다.
맨디가 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집이 아주 넓고 좋네요. 빈민가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빈민가도 잘 찾아보면 쓸 만한 곳이 꽤 있죠.”
“제온 님이 왜 굳이 네오 서울에서 살지 않는지 알 것 같네요. 저라도 이런 곳이 있다면 살 것 같네요.”
“마음에 들면 찾아보든가요?”
“그건 차차 하기로 하죠. 오늘 찾아온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그런 것 같군요.”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겨우 담소나 하자고 맨디가 이 위험한 빈민가로 찾아오진 않았을 거다.
맨디가 제온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제온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왔어요.”
“도움?”
“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온 님만큼 빈민가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빈민가에 용건이 있는 모양이군요.”
“스캐빈저들을 추적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놓쳤어요. 어떻게 추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제온 님을 찾아왔어요.”
평생을 네오 서울에서 살아온 맨디였지만, 빈민가는 미지의 세계였다.
잘 정돈된 네오 서울과 달리 미로를 연상시킬 정도로 복잡하고,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험이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번거로운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때 생각난 이가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이 그녀에게 물었다.
“스캐빈저들을 추적했다고요?”
“네! 그들을 추적하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어요.”
“스캐빈저들 때문에 많이 심각한 모양이죠?”
“아주 심각해요. 놈들의 분탕질 때문에 피해자도 많이 나오고 있어 시청에서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까지 스캐빈저 소탕에 동원됐죠.”
“그렇군요.”
“저는 빨리 이 사태를 끝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스캐빈저들을 찔끔찔끔 잡아들일 게 아니라 아예 본거지를 소탕하는 게 낫겠죠.”
“스캐빈저들에게 근거지가 있나요? 개별적으로 약탈하는 게 아니었나요?”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그들 간의 네트워크가 존재해요. 사막 어딘가에 그들의 근거지가 있다는 정보도 입수했어요. 그렇다면 분명 네오 서울, 혹은 빈민가 어딘가에 그들이 회합할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할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일리가 있네요.”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할게요.”
“정말요?”
“네!”
“와!”
맨디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예상외로 제온이 너무 쉽게 허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온도 아무 생각 없이 허락한 것이 아니었다.
데미안이 푼 물건 때문에 빈민가도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훨씬 큰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제온이 벽에 걸어 놓은 로브를 걸치며 말했다.
“가죠.”
그때 브리엘이 다급히 외쳤다.
“나도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