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레이븐은 B급 무투계 각성자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한데, 군인으로서 훈련을 받고 각종 화기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마총사는 아니지만, 그들만큼 능숙하게 화기를 다룰 줄 알았다.
검과 총.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무기는 그의 손에서 조화를 이루며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레이븐은 검을 뽑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들고 있는 총은 데저트 이글.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나 쓰던 골동품이다.
원래라면 격발조차 안 되었을 고물이 인챈터 덕분에 최강의 인명 살상 무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거 한 방이면 어지간한 각성자의 대갈통은 수박처럼 터져 나간다.
제아무리 뛰어난 각성자라도 코앞에서 겨눠진 총탄을 피할 순 없었다.
레이븐이 제온의 미간에 데저트 이글을 겨눈 채 말했다.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그냥 네 운명이 여기까지였던 거야.”
“멋대로 남의 운명을 정하지 마시죠. 남의 손에 좌우될 만큼 싸구려가 아니니까.”
“그래? 싫은데.”
레이븐이 씨익 웃더니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공이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총탄은 발사되지 않았다.
“뭐야? 고장인가?”
레이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데저트 이글을 바라봤다.
평범한 총이라면 고장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평범한 총이 아니다.
솜씨 좋은 인챈터가 강화한 아이템이었다.
사막의 혹독한 환경도 아니고 네오 서울 안에서 갑작스레 고장 날 이유가 없다.
레이븐이 데저트 이글을 기울였다. 그러자 총구와 약실에서 고운 모래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모래? 이게 왜 총 안에?”
레이븐이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신경 써 관리하는 총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확인했다.
그때는 분명 이상이 없었다.
레이븐이 제온을 노려봤다.
“네 짓이냐?”
“글쎄요!”
“마법계인가 보구나. 이런 트릭을 쓰는 것을 보니.”
“트릭일 수도 있고, 실력일 수도 있고.”
제온이 슬쩍 웃었다.
그 모습이 레이븐을 열받게 만들었다.
“어디 목이 잘리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마.”
쉬악!
레이븐이 등에 차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전광석화처럼 허공을 가른 검은 순식간에 제온의 목에 도달했다.
텅!
그 순간 제온이 건틀렛을 낀 주먹으로 레이븐의 검을 튕겨 냈다.
“마법계가 아니라 무투계였나?”
“직접 알아내 보시죠.”
“그러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다.”
쉬아악!
레이븐이 무서운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술은 정교하면서도 날카로웠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인간의 가냘픈 육체 따윈 이에 걸리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난다.
하지만 그것도 검날에 걸렸을 때 이야기다.
제온은 간발의 차이로 레이븐의 모든 공격을 피했다.
피하는 것이 여의찮을 때는 초열의 건틀렛을 이용해 방어하거나 튕겨 냈다.
약이 오른 레이븐이 코트 속에 감춰 뒀던 기관총을 꺼냈다.
“쥐새끼 같은 놈! 이것도 피하나 보자.”
드르륵!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관총을 갈겼다.
십 센티 두께의 철판도 뚫어 버리는 위력의 총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제아무리 강력한 각성자라도 이런 공격엔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온은 총탄을 피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터터터터텅!
무수히 많은 총알이 제온의 몸에 작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총알도 제온의 몸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제온이 입고 있는 로브 때문이다.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는 겨우 이 정도 공격에 뚫릴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그나마 드러난 곳은 얼굴뿐인데, 그마저도 초열의 건틀렛으로 모조히 막아 냈다.
레이븐이 눈을 크게 치떴다.
“제기랄!”
쾅!
그 순간 강렬한 충격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제온의 발이 작렬한 것이다.
“크윽!”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레이븐이 뒤로 튕겨 나갔다.
제온은 그런 레이븐을 따라잡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커흑!”
폭음과 함께 레이븐이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간발의 차이로 제온의 공격을 막아 냈음에도 충격이 내장을 울렸기 때문이다.
“너, 뭐냐? 뭐냐고? 개새끼야!”
레이븐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위에 일 남 이 녀가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허리가 꾸부정한 노인과 외모가 완벽히 일치하는 쌍둥이 자매였다.
쌍둥이 자매가 제온과 레이븐이 싸우는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
“와아!”
“레이븐, 저 인간 사냥꾼이 저렇게 궁지에 몰린 것은 또 처음 보네.”
쌍둥이 자매가 진기한 구경을 한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들 옆에 서 있는 노인에게서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레이븐이라면 제법 강한 B급 각성자인데, 저렇게 궁지에 몰아넣다니.”
레이븐은 절대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총기와 검을 동시에 사용하기에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물론 일반적인 기준에서 말이다.
노인과 쌍둥이 자매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레이븐 따위에게 당하기에 그들은 너무 강했다.
쌍둥이 자매가 노인을 동시에 바라봤다.
“저자의 정체가 뭐야?”
“아는 거 있어?”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오늘 처음 보는 놈이야.”
“할배도 모르는 게 있네.”
“그러게.”
쌍둥이 자매의 말에 할배라고 불린 이가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고 노인,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오직 쌍둥이 자매만이 그를 할배라고 불렀다.
그만큼 그들은 친밀한 사이였다.
“나라고 모두 아는 건 아냐.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모두 아는 건 아니구나.”
“그런데 저대로 놔둘 거야?”
제온과 레이븐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아직까지 별다른 피해는 없지만, 이대로 놔둔다면 주위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고 노인이 말했다.
“굳이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저 녀석이 알아서 피해가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어.”
그의 시선은 제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쌍둥이 자매는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제온의 몸놀림은 교묘했다.
레이븐의 모든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주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절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집중된 공격을 교묘히 흘려 힘을 분산시켰다.
덕분에 아직 큰 피해도,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쌍둥이 자매가 번갈아 말했다.
“무투계인가?”
“등급은?”
“B급 이상.”
“강하네.”
“그래도 우리한텐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공격할까?”
“그럴까?”
그때 고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지 마라.”
“왜, 우리가 질 것 같아?”
“질 것 같아?”
“그건 아닌데 꽤 귀찮아질 것 같거든. 저런 타입들은 단번에 해치우지 못하면 뒤끝이 장난 아니라서.”
고 노인의 대답에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둘이 동시에 말했다.
“귀찮아지는 것은 싫은데.”
“싫어!”
“그냥 구경만 하자.”
“그래!”
그녀들의 대화에 고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쌍둥이 자매의 이름은 은수진, 은수영.
고 노인과 같은 넘버즈의 일원이었다.
넘버즈.
네오 서울의 시장 진금호 직속의 처형 부대를 가리킨다.
네오 서울의 근간을 흔들 큰 사건이 벌어지거나, 진금호의 숙적을 제거할 일이 생기면 그들이 출동한다.
넘버즈 전원이 S급과 A급 각성자로 이뤄져 있었다.
은수진, 은수영 남매는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의 보유자들이었다.
텔레파시로 상대의 정신에 침투해 혼란하게 만들거나, 조종할 수 있었다.
그들의 정신 능력은 매우 강해 B급 이하의 각성자들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한다.
고 노인은 결계술사였다.
마음만 먹으면 광장 전체에 강력한 결계를 만들 수 있다.
그가 만든 결계는 현실과 완벽히 차단된다.
고 노인이 해제하기 전에는 그 어떤 존재도 결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전투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이를 보완하고도 남는 강력한 결계 능력과 다용한 활용도 때문에 넘버즈 중에서도 강자로 인식되고 있다.
“시장 덕분에 재밌는 구경을 하는군. 확실히 수준 높은 전투야. 클클!”
진금호는 그를 은밀히 불러 조율자 역할을 맡겼다.
조율자는 말 그대로 상황을 조율하는 자였다.
진금호는 판이 커지길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커지길 원치 않았다.
네오 서울이라는 판 자체가 깨지는 것은 그에게도 큰 손해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 노인과 쌍둥이 자매를 은밀히 파견했다.
그들이 상황을 조율하기에 최적의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처음 임무를 맡을 때만 해도 귀찮다고 생각했던 고 노인이었다.
진금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도 꽤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만큼 많은 사건·사고를 겪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일들을 즐기기도 했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재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넘버즈에서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 제온과 레이븐의 싸움은 그에게 다시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제온과 레이븐의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악에 받친 레이븐은 그야말로 전력으로 제온을 공격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기관총을 마구 쏘아 대고, 검을 종횡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제온에게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레이븐은 동 구역의 유명한 인간 사냥꾼.
그의 무력은 이미 검증이 되어 있었다.
레이븐은 강자였다.
하지만 이 순간은 강자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강한 자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너, 뭐야? 뭐냐고?”
결국 악에 받친 레이븐이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레이븐은 이미 심리적으로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
제온은 절벽이었다.
무너트리거나,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높은 절벽.
제온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레이븐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쓰러트리지 않은 것은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느낌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이었다.
제온은 감각을 끌어 올려 일대를 훑었다.
하지만 시선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장애물이나 건물 안에 은신해서 찾을 수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런 곳에 숨어 있었다면 진작 찾아냈을 것이다.
‘결계를 펼쳐 공간을 격리한 건가?’
보통 각성자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온은 보통 각성자가 아니었다.
팔 년 동안 사막을 헤매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고, 그만큼 많은 각성자를 만났다.
그중에는 결계나 마법진을 펼쳐 은신하던 각성자들도 있었다.
처음엔 그들 때문에 고생했지만, 결국 제온은 방법을 찾아냈다.
촤하학!
갑자기 광장에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모래바람이야 늘 불어오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모래바람은 특별했다.
제온이 불러일으킨 것이기 때문이다.
모래바람은 광장을 뒤덮었다.
그 순간 제온은 봤다.
모래바람이 유일하게 비껴 나가는 공간을 말이다.
바로 고 노인과 쌍둥이 자매가 있는 곳이다.
‘저곳이군.’
제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건물 위를 향했다.
그 순간 고 노인이 전율했다.
제온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저 녀석, 나를 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