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언제 고 노인을 봤었냐는 듯이 제온은 다시 레이븐과의 전투에 몰두했다.
지팡이를 짚은 고 노인의 손등 위로 소름이 올라왔다.
짧은 순간이지만 제온은 분명히 고 노인이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봤었다.
“정말 나를 본 건가?”
고 노인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의 주위엔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현실 공간과 완벽히 차단되어 있어 그 어떤 각성자들도 감지할 수 없었다.
당연히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같은 넘버즈라도 말이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제온은 찰나지만 정확히 그와 쌍둥이 자매가 서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정말 결계를 꿰뚫어 봤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내 결계는 설령 S급 각성자라도 감지할 수 없어.”
고 노인은 자신의 생각을 부인했다.
정말 제온이 자신의 결계를 꿰뚫어 본 거라면 S급 이상의 각성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의 결계를 꿰뚫어 봤던 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바로 진금호와 데이오든이었다.
두 사람 모두 대멸망 이전 시대부터 살아온 인외의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결계를 꿰뚫어 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에겐 매우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외의 어떤 각성자도 고 노인의 결계를 감지하거나 꿰뚫어 보지 못했다.
정말 제온이 결계 너머의 자신을 발견한 것이 맞다면, 그가 진금호나 데이오든과 동급의 존재라는 의미였다.
“말도 안 되는……. 그냥 착각이겠지.”
고 노인의 혼잣말에 쌍둥이 자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이 안 돼?”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저놈의 이름 알아낼 수 있겠느냐?”
“어렵진 않을 거야.”
“그럼 알아보도록 해.”
“응!”
쌍둥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콰앙!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폭음이 들려왔다.
놀라 전장을 바라보니 레이븐이 저 멀리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코트는 볼품없이 찢기고, 안에 입고 있던 방탄조끼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상징처럼 끼고 있던 선글라스도 부서져 다리만 남아 있었다.
“큭!”
레이븐이 선글라스 다리를 집어 던지며 일어섰다.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마치 거대한 분쇄기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만일 제온의 주먹에 담긴 힘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진짜 분쇄기에 들어간 것처럼 분해됐을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똥을 밟았군. 설마 빈민가에 너 같은 놈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정보의 부재는 늘 뼈아픈 상처를 남기죠.”
“인정하마. 빈민가에 대해, 그리고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그래서 낭패를 당했다는 것도. 하지만 내가 동 구역을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나는 그냥 일개 사냥개에 불과하니까.”
“알고 있습니다.”
“큿!”
제온의 담담한 대답에 레이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감히 제온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덤벼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이 씨발 새끼들!”
레이븐에게 당해 이제까지 죽은 듯 누워 있던 제이콥이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손에는 아까 누르려고 했던 격발 장치가 들려 있었다.
그가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함께 죽는 거다.”
“저, 저?”
제이콥의 돌발 행동에 레이븐이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흐흐!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오늘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도 이 많은 인간이 길동무라면 지옥 가는 길이 그렇게 외롭진 않겠구나.”
마침 제이콥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대형 마수 사냥용 폭탄을 숨겨 둔 곳이다.
폭발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광장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몰살당할 것이다.
레이븐이 외쳤다.
“머, 멈춰 새끼야!”
“좆 까!”
제이콥은 레이븐에게 중지를 들어 보이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격발 장치를 눌렀다.
“제기랄!”
“아!”
고 노인과 쌍둥이 자매가 탄식했다.
그들이야 결계 안에 있기에 안전하겠지만, 광장 일대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빈민가 사람들까지 챙겨 줄 정도로 그들은 인정이 넘치지 않았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이가 움직였다.
제온이었다.
제이콥이 격발 장치를 누르는 그 순간 제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렸다.
폭발을 막기는 글렀다.
하지만 폭발 범위를 최대한으로 좁힐 수는 있었다.
제온은 초열의 건틀렛에 마나를 가득 주입했다.
순간 초열의 건틀렛에 박혀 있던 드래곤의 눈에서 모두의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크윽!”
“눈이…….”
빛에 노출된 이들이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다.
레이븐도 고 노인도, 쌍둥이 자매도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고 비틀거렸다.
콰아앙!
그 순간 광장에 묻혀 있던 폭탄이 폭발했다.
제이콥이 폭발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지고, 화염 폭풍이 주위로 퍼져 나가려는 찰나 제온이 폭발 중심부에 도달했다.
“차앗!”
기합과 함께 제온이 초열의 건틀렛으로 폭발을 억눌렀다.
초열의 건틀렛에서 터져 나온 빛이 화염 폭풍을 감쌌다.
화염 폭풍은 더 퍼져 나가지 못하고 빛의 막에 막혀 주춤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했다.
제온은 더욱 마나를 끌어 올렸다.
“큿!”
제온의 입가에 핏기가 비쳤다.
폭발이 더 퍼져 나가지 못하게 막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제온은 자신의 권능을 이용했다.
‘꺼져라.’
순간 폭탄이 폭발한 광장 바닥이 움푹 꺼졌다.
제온이 바닥의 모래를 움직여 거대한 구덩이를 만든 것이다.
‘지금!’
제온은 화염 폭풍을 모래 구덩이 속으로 짓누른 후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했다.
콰아아앙!
억눌렸던 화염이 분풀이라도 하듯이 더욱 강렬하게 폭발했다.
사방이 모래로 막혀 있기에 폭발은 뻥 뚫린 하늘로 분출됐다.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레이븐과 고 노인 등이 하늘을 관통하는 불기둥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어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폭발을 억누르다니.”
“무슨 수를 쓴 거지? 저게 가능해?”
“미쳤다.”
“저거 인간 맞아?”
제온이 분명 무언가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수를 써서 폭발을 하늘로 집중시켰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늘로 끝없이 치솟던 불기둥은 잠시 후 사라졌다.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던 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최소 A급 각성자다.”
“최소라고? 그럼 S급일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미쳤네.”
고 노인의 선언에 쌍둥이 자매가 입을 떡 벌렸다.
착각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고 노인의 눈썰미가 정확하다는 것은 그녀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고 노인이 A급이라고 말하면 A급이 분명했다.
거기에 ‘최소한’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렇다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광장과 연결된 대로로 일단의 각성자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동대문의 각성자들이었다.
“저기다.”
“테러인가?”
비록 폭발을 최대한 억제해 피해를 최소화했다지만, 하늘로 치솟은 화염 기둥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폭발을 본 동대문의 각성자들은 헐레벌떡 달려왔다.
“놈은?”
레이븐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서도 제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빠져나간 것이다.
“제기랄! 어쩔 수 없군.”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레이븐은 자신의 장비를 모두 챙긴 후 광장을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본 고 노인이 쌍둥이 자매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자.”
“응!”
그들도 바로 자리를 떴다.
모두가 떠난 광장에 도착한 동대문 각성자들이 망연자실했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또 스캐빈저 짓인가?”
동대문 각성자들은 혈안이 되어 사태의 원흉을 찾으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두가 떠난 후였다.
***
“제기랄! 꽤 아프네.”
제온이 오른 손목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남들이 들었으면 기함했을 이야기를 제온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만큼 그가 한 일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초열의 건틀렛이 없었다면 팔이 날아갔을 거야.”
처음 초열의 건틀렛을 얻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초열의 건틀렛 덕분에 수많은 위기를 넘겼고, 모래의 권능을 적절히 숨길 수 있었다.
지난 팔 년 동안 단 한 번도 빼놓지 않았다 보니 이젠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온!”
뒤늦게 달려온 브리엘이었다.
“왔냐?”
“괜찮아? 큰 폭발을 봤는데.”
“별일 아니야. 집에 가자.”
“지금?”
“응!”
“그래!”
두 사람은 동대문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동대문은 연이은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각성자들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빈민들은 얼이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야말로 동대문 전체가 패닉 상태인 것이다.
극도의 혼란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신촌으로 돌아왔다.
신촌에 들어오자 좀 살 것 같았다.
분명 같은 하늘 아래 있는데, 공기가 훨씬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래 봤자 똑같이 모래 입자가 섞인 탁한 공기일 뿐인데도 말이다.
제온이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자들은 누구였을까?’
결계 속에 숨어 은밀히 지켜보던 이들.
노인 하나에 여자아이 둘.
너무 멀어 얼굴을 확실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분위기와 결계를 치는 능력으로 보통의 각성자가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나온 자들이지? 레이븐이 나에게 당할 때도 나오지 않았으니 동 구역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고. 다른 구역, 아니면 시청?’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그때였다.
“이봐!”
누군가 씩씩거리며 제온과 브리엘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제온은 피식 웃었고, 브리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엉망이 된 꼴로 다가오는 여자는 바로 엘로이였다.
동대문 각성자들을 따돌리는 미끼로 던져졌던 그녀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옷은 다 찢어져 있었고, 얼굴과 몸에도 상처가 꽤 있었다.
“씨발! 사람이 싸우고 있는데 도와주지 않고 내빼? 너희들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용케 동대문에서 빠져나왔네.”
“내가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너희들이 알아? 광신도 새끼들이 개떼처럼 몰려오는데……. 아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엘로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치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광신도들.
차라리 죽였으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인다면 네오 서울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커진다. 그것은 동대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서 무력화시켜야 했기에 더욱 힘든 싸움이었다.
더 열받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악전고투할 동안 제온과 브리엘이 내뺐다는 것이다.
“동료를 두고 도주해? 그러고도 너희들이 동료라고 할 수 있어?”
“진정해!”
“진정? 내가 어떻게 진정해!”
엘로이가 악을 버럭 쓰자 브리엘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반쪽짜리 엘프가 목청도 좋네. 귀 아프게시리…….”
“너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진정해. 네가 좋아할 단서를 얻었으니까.”
“뭐? 진짜?”
엘로이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며 브리엘이 씨익 웃었다.
“뭔데?”
“공짜로는 못 알려 주지.”
“이 꼬맹이가…….”
“히히!”
그 후로도 하프 엘프와 하이 엘프는 한참이나 말다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