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4)
14화
“허억! 허억!”
제온은 벽을 등지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모든 것을 토해 냈다.
마나, 육체적인 에너지까지 모두 바닥났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이 없었다.
반면 데이오든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심지어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데이오든이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존재인지 절감했다.
제온도 상당히 많은 늑대 개미를 죽였지만, 데이오든에 비하면 새 발의 피만큼도 안 됐다.
개미굴 안의 늑대 개미들 대부분은 그가 죽였다. 그런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산란장을 뒤지고 있었다.
제온은 저 인간이 무슨 헛짓거리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우두둑!
데이오든이 뜯어낸 것은 여왕 늑대 개미가 주로 앉아 있는 석판이었다.
거대한 석판이 종잇장처럼 뜯겨 나갔다.
석판 밑에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알이 숨겨져 있었다.
“흐흐!”
데이오든이 알을 들어 바라봤다.
알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맞군!”
“뭐가 맞다는 겁니까?”
“먹어라.”
“네?”
데이오든이 제온에게 알을 던졌다.
제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알을 받았다.
“뭔데 먹으라는 겁니까?”
“여왕 늑대 개미의 알이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일반적인 알이 아니라 다음 여왕이 될 알이다. 여왕 늑대 개미의 정수가 이 안에 녹아 있다.”
“모래 아귀의 쓸개처럼 말입니까?”
“그보다 더 좋은 거다. 먹어라.”
“으음!”
제온은 알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알을 입에 가져갔다.
껍데기를 깨자 알이 흘러나와 제온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알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제온은 전신이 불타는 것 같은 지독한 열기를 느꼈다.
“으아악!”
지독한 고통에 제온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모래 아귀의 쓸개를 먹을 때의 고통은 이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었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배를 계속 쑤셔 대는 것 같았다.
맨정신으로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데이오든은 몸부림치는 제온을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고통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강해지기 위한 고통이다.
이런 고통은 진정한 고통 축에도 끼지 못한다.
적어도 데이오든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데이오든은 제온을 내버려 두고 여왕 늑대 개미의 사체에 다가갔다.
목과 몸통이 연결되는 부위를 미끄럽게 잘라 냈기에 사체는 상처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이 정도로 깔끔한 여왕 늑대 개미의 사체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왕 늑대 개미의 사체는 버릴 것이 하나 없었다.
한 쌍의 더듬이는 고스트 계열의 마수를 탐지하는 최고의 아이템이었고, 여섯 개의 다리는 강도가 매우 좋아 무기를 만드는 데 적합했다.
뿐만 아니었다.
푹!
데이오든이 여왕 늑대 개미의 몸통에 손을 집어넣고 휘적였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이 들려 있었다.
마정석이었다.
그것도 순도가 매우 높은 마정석.
한 무리의 여왕답게 마정석을 품고 있었다.
마정석은 광산에서만 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혹 마수들 중에서도 이렇게 마정석을 품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광산에서 캐는 마정석보다 순도도 훨씬 높고, 어떤 것들은 마수의 기운까지 품고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티탄질의 껍질은 최상품의 방어구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고, 장기들 역시 다양한 재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데이오든이 아공간을 소환해 여왕 늑대 개미의 사체를 통째로 수납했다.
아직 제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비명조차 지를 힘이 없는지 새우처럼 몸을 잔뜩 구부린 채 끅끅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여왕 늑대 개미의 알을 소화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푹!
데이오든은 크레이온을 바닥에 꽂고 주저앉았다.
화염 드레이크의 심장에 벼려서 크레이온은 더 강렬한 예기를 자랑했다.
또한 검신에 은은한 붉은 광채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변화 따윈 데이오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크레이온의 본질이었다.
“친구여…….”
우웅!
대답이라도 하듯이 크레이온이 검명을 토했다.
검명은 한동안 계속됐고, 데이오든은 주의 깊게 들었다.
한참 후 데이오든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웅!
“약하면 뒈지는 거고, 그게 녀석의 운명일 뿐이다.”
우우웅!
“알지 않느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우리에겐 반드시 녀석이 필요하다.”
우웅!
“그래!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인간과 검의 대화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
“하아!”
제온이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온몸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어제 여왕 늑대 개미의 알을 먹은 후유증이 분명했다.
밤새 송곳으로 배를 찌르는 통증을 느꼈으니, 사지에 힘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제온은 마나를 점검하다가 깜짝 놀랐다.
마나의 양이 족히 서너 배는 늘었기 때문이다.
“무슨?”
“이제 마나 조루는 조금 벗어났을 것이다.”
갑자기 데이오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데이오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크레이온을 수납하고 있었다.
“제가 먹은 알이 마나를 증가시켜 준 겁니까?”
“그렇다. 몇몇 마수의 알은 마나를 증가시켜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모든 알이 그런 게 아니라 네놈이 복용한 것처럼 특별한 개체만이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다.”
“으음!”
“다 쉬었으면 일어나라. 언제까지 게으름을 피울 생각이냐?”
“네! 네! 일어납니다.”
제온이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제아무리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해 봐도 데이오든이 사정을 봐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몸이 아프더라도 참고 일어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았다.
데이오든 덕분에 마나가 몇 배는 더 늘었는데,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온은 데이오든을 따라 개미굴에서 나왔다.
“후!”
뜨거운 뙤약볕이 이리 반가울 줄은 몰랐다.
제온이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음미하는 사이 데이오든은 이미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제온은 급히 모래 걸음을 펼쳐서 데이오든의 뒤를 따랐다.
스르륵!
그의 몸이 모래 위를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갔다.
마나 양이 넉넉하니 이제 굳이 두 다리를 움직이지 않더라도 모래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제 데이오든을 따라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제온은 로브를 깊이 눌러썼다.
늑대 개미들과 사투를 겪으면서 로브의 겉면에는 많은 생채기가 생겼다. 구멍이 뚫린 곳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원상태로 회복되어 갔다.
모래 아귀 가죽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복원력이 발동한 것이다.
덕분에 반나절 정도 지나자 로브는 흠집 하나 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열기를 차단하는 능력도 그대로였다.
모래 걸음에 로브의 능력이 더해지자 더 이상 사막에서의 행보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온이 품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천천히 육포를 씹으며 생각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 넓은 사막에서 그가 찾는 곳은 무엇일지, 어디로 가는 건지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처음부터 같이 다니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이젠 그의 진정한 목적지가 궁금해서라도 동행해야 했다.
그때였다.
짙은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유독 강한 바람이 일대의 모래를 같이 쓸어 온 것이다.
제온은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사람이라면 모래바람에 방향을 잃거나, 시야에 제한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제온에겐 약간의 불편함만 줬을 뿐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제온은 지배력을 끌어올려 모래가 얼굴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했다. 나머지 부위는 로브가 보호해 줘서 괜찮았다.
휘이잉!
강한 모래바람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보이는 것은 모래의 장막뿐, 데이오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제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나가 늘면서 그의 감지 영역도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전방 수십 미터 앞 모래 위를 걷고 있는 데이오든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가 모래를 밟을 때마다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모래들이 알아서 데이오든의 정보를 전해 주는 것 같았다.
‘승급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가 계급장을 바라봤다.
두 개의 선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짙은 오렌지빛은 그가 E급 각성자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일 뿐이다.
실제로는 일반적인 E급보다 훨씬 강하고, 마나도 많았다.
데이오든이 가혹하게 굴린 덕분이었다.
덕분에 제온은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상식이나 선입견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야.’
늑대 개미들과 싸우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정해진 스킬로만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말이다.
같은 스킬이라도 어떻게 응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위력이 큰 차이가 났다.
무한대로 상상하고, 이를 현실로 구현해 내는 것.
제온이 생각하는 진정한 강함이란 그런 것이다.
데이오든에게 혹독하게 굴려지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개 같은 늙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는 항상 한계까지 제온을 몰아붙이고, 스스로 살아 나오길 기대한다.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려질 것이다.
이젠 버려져도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제온은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끝까지 따라가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제 힘이 없어서 숨고, 약해서 쫓기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길의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데이오든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와 비슷한 강함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모래바람이 지나가고, 시야가 확 트였다.
앞서가는 데이오든의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머리와 어깨에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털어 내지도 않고 걷기만 했다.
그때 앞서 걷던 데이오든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러지?’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데이오든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 아닌 것이다.
제온이 데이오든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가 옆에 섰음에도 데이오든은 반응하지 않고 앞만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제온의 시선도 그가 보는 곳을 향했다.
‘뭐가 있기에?’
전방을 바라보던 제온의 눈이 이내 크게 떠졌다.
하늘과 사막이 맞닿은 지평선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쿵!
둔중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거대한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제온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것은 거대한 거북이었다.
일반적인 거북과 다른 점이라면 덩치가 수천 배는 더 크다는 것이고, 등껍질이 요새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B급 이상의 특성인 푸른 역장이 전신에 어려 있었다.
“저게…… 뭡니까?”
“이동 요새, 아르켈론이다.”
“아르켈론?”
“그래! 거북 형상의 마수다. 등급은 B급에 불과하지만, 방호력만큼은 A급 이상이지. 그 때문에 등껍질을 요새로 개조해 타고 다니는 거다.”
“인간이 저렇게 거대한 마수를 길들여 타고 다닌단 말입니까?”
제온의 얼굴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요새를 등에 짊어진 거북 형상의 마수가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르켈론은 똑바로 제온과 데이오든이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 아르켈론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금세 그들 앞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본 아르켈론은 더욱 압도적이었다.
크기가 거의 마을 하나만 했다.
인간이 이렇게 큰 마수를 길들여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쿵!
마침내 아르켈론이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요새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그가 검지로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멀어서 긴가민가했더니, 역시 데이오든 당신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