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제온은 빈민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서서 사막을 바라봤다.
거친 사막의 바람이 당장이라도 제온을 날려 버릴 듯 거세게 불어왔지만, 마치 쇠못을 박아 놓기라도 한 듯이 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쾅! 콰앙!
저 멀리 성채에서 각성자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보였다.
“스캐빈저에 동대문의 광신도들. 그리고 광신도들을 지원하는 자들. 개판이군!”
동대문의 각성자들은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복면을 쓰고, 무기를 바꿔 들었다. 하지만 절대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스킬이었다.
동대문 각성자들이 공통으로 쓰는 스킬 중 하나가 신의 광막이었다.
일종의 베리어 같은 스킬이었다.
성기사나 광전사라면 필수적으로 익히는 스킬이었다.
위기에 닥치면 동대문 각성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의 광막을 펼쳐 전신을 보호했다.
거창한 이름처럼 모든 공격을 막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위급시 목숨을 한 번 구해 줄 정도의 위력은 가지고 있었다.
죽을 위기에 처하면 누구나 가장 자신 있는 수법을 펼치기 마련이었고, 동대문 각성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덕분에 쉽게 그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제온의 시선이 빈민가 외곽에 있는 높은 건물로 향했다.
레일건에 전력을 공급한 후 탈진한 기계화 각성자들이 보였다.
‘기계화 각성자들은 분명 서 구역에서 왔을 테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빈민가 곳곳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혼란은 더 큰 혼란을 부르기 마련이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정령왕의 크라운을 욕심낸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이다.
‘데미안이 원하는 대로 됐군.’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던 네오 서울의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체계가 무너지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겠지만, 큰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제온은 네오 서울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이야 어떻든 네오 서울이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여 살고, 또 초고도 문명을 이룬 곳은 네오 서울이 유일했다.
적어도 제온이 다녀 본 곳 중에서는 말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인류의 문명은 최소 두 세대 전으로 퇴보할 것이다.
그렇기에 제온은 될 수 있으면 네오 서울의 체계가 흔들릴 정도의 문제는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제온과 달랐다.
이 일로 인해 네오 서울이 흔들리든, 무너지든 개의치 않는 것이다.
그에겐 아비의 복수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를 위해선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네오 서울의 혼란을 거침없이 유도했다.
이제까지 어렵게 구한 아이템들을 모조리 투입해서 말이다.
콰앙!
그 순간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폭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강력한 폭발이었는지, 후폭풍이 제온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 나가고, 옥상에 있던 기물이 수수깡처럼 부서져 흩날렸다.
‘저건?’
제온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성채 한쪽이 터져 나간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매머드였다.
뿌우우우!
매머드가 콧소리를 내며 카라반을 습격한 각성자들을 공격했다.
“매, 매머드가 폭주한다.”
“씨발!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제기랄!”
스캐빈저와 동대문 각성자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머드가 제아무리 온순한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무려 C급 대형 마수였다.
공격력이 약해서 C급 취급받는 거지, 방어력만 놓고 따지면 B급 마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매머드는 미친 듯이 날뛰면서 상아와 네발로 각성자들을 공격했다. 그 때문에 각성자들의 피해가 점점 더 커졌다.
매머드의 난동으로 혼란이 극에 달하자 빈민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온도 이쯤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팟!
제온은 그대로 옥상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수십 미터나 날아간 제온의 신형이 포물선을 그리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착!
도로에 가볍게 착지한 제온이 사막을 향해 걸어갈 때였다.
“제온!”
“맞지?”
갑자기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마치 빵틀로 찍어 낸 것처럼 얼굴이 똑같은 쌍둥이 자매였다.
“내가 제온인 건 맞는데, 너희들은 누구냐?”
“맞네!”
“잘 찾아왔어.”
쌍둥이 자매는 제온의 질문엔 답도 안 하고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제온은 어디선가 그들을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쌍둥이라면 혹시 광장에서 본?’
결계 때문에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노인 하나에 소녀 둘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 앞을 막아선 쌍둥이의 느낌이 그들과 비슷했다.
“혹시 광장에서 지켜본 이가 너희들이었냐?”
“알고 있었어?”
“어떻게?”
쌍둥이 자매가 크게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들이 마치 종달새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대단한데? 정말 할배의 결계를 꿰뚫어 보다니.”
“할배의 실력이 녹슨 거 아냐?”
“주름살은 늘었지만, 실력은 여전히 쟁쟁할걸?”
“그런데 어떻게 알았데?”
“정말 A급인가 보다.”
쌍둥이 자매는 S급 이상의 각성자만이 결계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고 노인이 이들에게도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온을 단순히 A급 각성자 정도로 생각했다.
“A급이면 대단한 건데.”
“대단하지. 우리도 A급이니까.”
“그래도 우리한텐 안 되지. 우린 그 이상이니까.”
“그건 그래!”
그녀들의 대화에 제온은 머리가 다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그녀들의 수다를 끊어야 했다.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거냐?”
“응!”
“왜?”
“막으려고.”
“나를? 왜?”
“사막으로 가려는 거 아냐?”
“맞아!”
“그래서 못 가게 하려고.”
“왜?”
“할배가 부탁했어. 개입하지 못하게 잠깐만 발목 좀 잡아 달라고.”
“그러니까 왜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데?”
“제온을 위험 요소로 판단했거든.”
“위험 요소?”
“응! 제온 때문에 애써 만든 판이 깨질지도 모른대. 그건 안 되거든.”
쌍둥이 자매는 해맑은 표정으로 순순히 대답했다.
“할배라면 혹시 같이 있던 결계술사?”
“어떻게 알았어?”
“너희들 옆에 있는 것을 봤으니까.”
“역시 대단하네. 그래서 더 위험해.”
“판이 깨지는 것을 막는다? 혹시 너희들 시청 소속이냐?”
“와아!”
쌍둥이가 입을 떡 벌렸다.
그녀들이 시청 소속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같이 다니는 고 노인과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너희들 시장 직속의 처형 부대라는 넘버즈구나.”
그녀들의 반응을 보고 제온이 확신했다.
“진짜 머리 좋네.”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네.”
“궁금해!”
“그럼 헤집어 보자.”
“그럴까?”
“그러자. 할배도 허락했잖아.”
순간 쌍둥이 자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제온의 눈빛도 무겁게 가라앉는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갑자기 이명과 함께 지독한 두통이 느껴졌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뇌를 마구 찌르는 것 같았다.
고통 속에서도 제온은 쌍둥이 자매의 능력을 알아차렸다.
“너희들은 텔레파시 능력자구나.”
“역시 똑똑해.”
“난 너무 똑똑한 사람이 싫어.”
제온의 짐작처럼 쌍둥이 자매는 텔레파시 각성자들이었다.
은수진, 은수영.
어렸을 때부터 텔레파시 능력을 각성했다.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뿐더러 사고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부모로부터도 버림받았다.
부모의 마음을 읽어 무심코 말했는데, 그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내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라. 괴물들아!
부모들이 그녀들을 버리면서 마지막에 한 말이었다.
그들의 말은 쌍둥이 자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다행히 그녀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진금호에게 거둬져 시청에서 자랐고, 결국 넘버즈의 일원이 됐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그녀들은 누구도 깊게 믿지 않았다.
그나마 믿고 따르는 것은 진금호와 고 노인뿐이다.
진금호는 갈 곳 없는 그녀들을 거둬 줬기 때문이고, 고 노인은 아무런 욕망 없이 순수하게 아껴 주기 때문이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면서 저주였다.
그녀들의 재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졌다.
이제는 단순히 타인의 사고에 개입하는 것을 넘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할 수 있었다.
이른바 정신 조작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상대에게 환각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영원히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마치 진흙을 주무르는 것처럼 타인의 뇌를 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능력. 그래서 그녀들의 실체를 아는 이들은 매우 두려워했다.
“죽이지는 않을 거야.”
“우린 사람을 죽이는 것을 싫어하거든.”
“그냥 살짝만 엿볼게.”
“궁금하거든.”
은수진, 은수영이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들의 능력이 폭증되었다.
쌍둥이답게 그녀들은 서로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시너지를 냈다.
인간의 뇌는 입구가 완전히 밀폐된 밀실 같았다.
그 안에 침투하기 위해선 우선 날카로운 송곳으로 조그만 구멍을 뚫어야 했다.
이 작업이 제일 힘들었다.
특히 고위 각성자일수록 정신 방벽이 굳건해 구멍을 내는 것이 힘들었다.
혼자라면 쉽지 않았을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쌍둥이였고, 서로의 힘을 이용해 증폭시키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은수진이 말했다.
“내가 구멍을 뚫을게. 힘을 집중시켜 줘.”
“응!”
은수영이 대답과 함께 은수진에게 자신의 마나를 전해 줬다. 그러자 은수진의 텔레파시 능력이 엄청나게 증폭됐다.
은수진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두 배 이상 증폭된 능력으로도 제온의 정신 방벽에 구멍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씨이! 힘들어.”
“힘내!”
“응!”
은수영의 응원에 힘입어 은수진은 더욱 출력을 높였다. 그래도 제온의 정신 방벽엔 조그만 구멍조차 생기지 않았다.
“미친……. 이 정도면 대장이나 그레인보다 훨씬 강한 것 같은데.”
넘버즈의 대장인 성호연.
이인자인 그레인.
모두 S급 각성자들로 엄청난 굳건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 때문에 쌍둥이 자매도 그들의 생각을 읽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과 시간, 마나를 소비해야 했다.
시장인 진금호는 아예 생각을 읽을 수 없었고, 고 노인은 읽을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성호연과 그레인이 생각을 읽기 가장 힘들었는데, 제온은 그들보다도 정신 방벽이 굳건했다.
“이익!”
은수진이 이를 악물며 출력을 높였다.
은수영이 그녀에게 힘을 보태 줬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제온의 정신 방벽에 바늘만 한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됐다.”
은수진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구멍을 뚫는 게 힘들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조그만 구멍에 물을 주입하듯 자신의 정신을 제온의 뇌에 침투하는 것이다.
은수진은 곧장 제온의 뇌를 장악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은수영이 힘을 보탰다.
그녀는 순식간에 제온의 뇌간으로 침투했다.
뇌간의 신경망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뇌간은 대뇌, 소뇌의 여러 중추와 척수를 연결하는 중요 통로였다.
이곳을 장악하면 구십 프로 이상 작업이 끝난 거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타인의 정신에 침투하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뇌간의 신경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심상을 파악한다.
심상엔 상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심상만 파악하면 상대의 과거, 행적, 욕망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밥 먹듯이 하던 작업이었기에 은수진은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뇌간을 완벽하게 장악한 후 신경망을 타고 제온의 대뇌에 침투해 심상을 엿봤다.
이렇게 굳건한 정신 방벽을 가진 자가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살포시 제온의 머릿속 어둠의 장막을 열어젖히는 순간이었다.
“이, 이게 뭐야?”
은수진의 새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