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역시 이 정도로는 형을 막을 수 없구나. 그래도 꽤 오래 붙잡아 놨으니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인가?”
데미안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스펙트럼 프리즌은 말 그대로 빛의 감옥이다.
정령왕의 크라운에서 공급되는 부정적인 마나를 스펙트럼을 통해 분해한다.
이렇게 분해된 마나는 일곱 가지 빛의 형태로 나타난다.
부정적인 일곱 개의 빛은 기본적으로 생명체의 적의를 증폭시킨다. 또한 생명체의 정신에 각기 다른 영향을 끼친다.
적색의 빛은 분노를 증폭시키고, 주황은 마음의 방벽을 풀어 방심하게 만든다.
노란빛은 나태함을 불러오고, 초록빛은 모든 것을 망각하게 만든다. 푸른빛은 원하는 환상을 보게 하고, 남색은 갈망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보랏빛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혼돈을 만들어 낸다.
빛으로 만든 이 감옥은 인간의 근원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 서로 상잔하게 만들거나, 포기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각각의 빛마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다.
외곽의 적색 빛이 가장 느리게 흐르고, 안쪽의 보랏빛이 몇 배는 더 빠르게 흐른다.
데미안도 원리는 모른다.
원래 던전이라는 게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존재다.
그렇기에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사용만 잘하면 되지, 굳이 원리까지 파고들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제온이 이곳까지 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스펙트럼 프리즌의 근원에 있는 자신에게 오려면 남은 여섯 개 빛의 감옥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거야.”
“크아아!”
그때 괴성과 함께 공간이 찢어졌다.
보랏빛 공간에 갇혀 있던 브릭스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브릭스턴이 노성을 내질렀다.
혈인이 된 채 눈을 부릅뜬 그의 모습은 무서웠다.
하지만 데미안은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꽤 늦었네요.”
“말도 마라. 꼭 큰 뿔 장갑곰을 상대하는 줄 알았다.”
그 순간 브릭스턴의 뒤에서 알렉산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산드로 역시 브릭스턴처럼 혈인이 되어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의 입가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걸려 있다는 것이다.
브릭스턴은 등 뒤에서 나타난 알렉산드로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반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옆구리가 마치 마수에게 물린 것처럼 모두 뜯겨져 나와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효과 좋은 포션을 퍼부어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였다.
브릭스턴에게 치명상을 입힌 이는 바로 알렉산드로였다.
스펙트럼 프리즌이 펼쳐진 순간 데미안과 가장 가까이 있던 알렉산드로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 일부, 브릭스턴과 광전사들은 보랏빛 초상 공간으로 전이됐다.
알렉산드로와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은 갑작스레 보랏빛 초상 공간으로 이동되었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데미안을 도와 스펙트럼 프리즌을 깬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보랏빛 초상 공간을 유리하게 이용할지 잘 알고 있었다.
보랏빛 초상 공간 안에서 그들은 브릭스턴과 광전사들을 맞아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하악! 하악!”
“크윽! 죽겠다.”
알렉산드로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화이트 베어 카라반 각성자들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유리한 공간을 선점했음에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만큼 광전사들은 무서웠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광전사들에게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들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겨우 목숨을 구해 초상 공간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정신력으로 억지로 버텨 섰다.
자신들만이 데미안에게 남은 유일한 방패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브릭스턴이 데미안에게 다가갔다.
쿵쿵!
둔중한 발소리와 함께 뜯겨 나간 복부에서 내장과 피가 흘러내렸다.
데미안은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신을 믿는 분답게 의지가 대단하군요. 그런 상처를 입고도 움직이다니.”
“신을 모욕하지 마라. 불신자야!”
“당신의 신은 누굽니까? 저 누런 하늘 위에 존재하는 분입니까? 아니면 빈민가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저 요한이라는 자입니까?”
“이익!”
“됐습니다. 굳이 당신의 대답 따윈 듣고 싶지 않네요.”
“노옴!”
브릭스턴이 두 팔을 뻗어 데미안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손아귀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털썩!
한참이나 데미안의 멱살을 잡은 채 노려보던 브릭스턴의 거대한 몸이 마침내 무너졌다.
알렉산드로가 한숨을 내쉬며 데미안에게 다가왔다.
“괴물 같은 자다. 차라리 던전의 보스를 혼자 상대하고 말지. 저 괴물 같은 회복력은 진짜…….”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 그 역시 브릭스턴에게 질린 것이다.
보랏빛 초상 공간이 아니었다면 그를 쓰러트리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을 것이다.
잠시 브릭스턴의 시신을 바라보던 그가 곧 데미안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괜찮냐?”
“아직 버틸 만해요.”
“데미안!”
“진짜 괜찮아요. 각오했던 일이니까.”
애써 미소 짓는 데미안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하아! 정 견디기 힘들면 말하거라.”
“알았어요.”
데미안이 대답하면서 네오 서울을 바라봤다.
힘겨워하던 그의 얼굴에 생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왜?”
알렉산드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데미안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네오 서울의 문이 열리고 일단의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너무 멀리 있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데미안은 본능적으로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끄집어냈네요. 위대한 이종족의 여왕을…….”
***
세리언은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가시나무 공격대가 멋대로 움직였다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보린이 송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도 가시나무 공격대가 멋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조금 전에 보고받았다.
그만큼 가시나무 공격대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누가 가시나무 공격대를 움직인 거죠?”
“그게…….”
“역시 일라이인가요?”
“죄송합니다.”
“하아! 보린이 죄송할 게 뭐가 있나요? 다 일라이의 명령인데. 그녀는 지금 어디 있죠?”
“거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녀를 불러오세요.”
그때였다.
“그럴 것 없어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일라이가 들어왔다.
“일라이!”
“죄송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뭐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거죠?”
“모두를 위해서 다른 이들보다 빨리 정령왕의 크라운을 손에 넣어야 했으니까요.”
“모두를 위해서?”
“네! 저희와 또 함께하는 모든 종족을 위해서 정령왕의 크라운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왕님의 허락도 없이 가시나무 공격대를 움직였습니다.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일라이는 추호의 위축됨도 없이 대답했다.
당당한 그녀의 변명에 세리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멋대로 병력을 움직일 줄은 몰랐다.
“하아! 일라이.”
“말씀하십시오, 여왕님!”
“모두를 위해 가시나무 공격대와 엘프 전사들을 움직였다는 말 책임질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이 일라이, 적어도 책임을 회피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일라이는 세리언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세리언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이상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린은 그녀들 사이에서 마른침만 삼켰다.
명색이 북 구역의 여왕과 이인자였다.
그녀들의 사이가 이 이상 틀어지면 북 구역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북 구역은 네오 서울에 있는 이종족들 최후의 보루였다.
그런 북 구역이 흔들리면 이종족들의 삶 또한 위태로워진다.
그 사실을 세리언과 일라이도 알기에 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곤 했다.
보린은 이번에도 그러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세리언과 일라이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음!”
“이건?”
그녀들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심령을 불길하게 자극하는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 그녀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사막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일곱 가지 빛이었다.
세리언이 중얼거렸다.
“설마 저건 스펙트럼 프리즌?”
“그게 뭡니까?”
“그럼 정령왕의 크라운이란 게 스펙트럼 프리즌에서 나온…….”
순간 세리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반면 일라이는 영문을 몰라 세리언을 바라보기만 했다.
세리언이 다급히 말했다.
“정령왕의 크라운이 정말 스펙트럼 프리즌에서 발굴된 아이템이라면 그 안엔 정령왕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뭡니까? 여왕님!”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모두 나를 따라와요.”
세리언은 건물 옥상에서 그대로 몸을 날렸다.
보린과 푸른 낙엽 특작대, 그리고 북 구역의 정예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일라이가 중얼거렸다.
“정령왕이 봉인된 게 아니라고? 그럼 뭐가 봉인되었다는 말이야?”
그녀의 얼굴엔 갈등의 빛이 가득했다.
세리언의 다급한 태도로 보아 보통 존재가 아닌 듯싶었다.
잠시 입술을 질겅 깨문 일라이가 세리언의 뒤를 쫓았다.
이유야 어쨌든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그녀 역시 문제 해결에 일조해야 했다.
“제기랄!”
***
“살려 줘!”
“제발!”
곳곳에서 사람들의 고통에 찬 절규가 들려왔다.
모두 깊은 상처를 입어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그들의 간절한 눈빛과 목소리를 외면했다.
저들은 모두 스캐빈저들이었다.
아이템에 눈이 멀어 부나방처럼 죽을 자리를 찾아온 자들.
타인의 것을 탐하다가 죽을 상처를 입은 자들에게 줄 동정 따윈 없었다.
“씨발! 포션 있으면 좀 나눠 달라고.”
“야, 이 새끼야! 좀…….”
무심히 지나가는 제온을 보며 스캐빈저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들은 손을 뻗어 제온을 잡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깊은 상처를 입고 죽어 가는 그들에겐 팔을 끝까지 뻗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온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엄청난 존재감 때문이었다.
“엘프들의 여왕이군.”
그도 데미안처럼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세리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세리언이 품고 있는 마나는 독특했다.
푸른 숲을 품고 있는 듯한 청량한 마나.
엘프들 중에서도 이렇게 청량하면서 거대한 마나를 품은 자를 제온은 본 적이 없었다.
저 멀리서 세리언이 이종족 수십 명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기운을 발산하는 이들.
북 구역의 정예들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데미안이 원하는 대로 되어 가고 있군.”
제온이 고개를 살쩍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앞에는 아직 여섯 개의 빛의 초상 공간이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통과해야 데미안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서둘러야겠군.”
제온이 움직이자 모래가 파도치며 따라왔다.
모래 해일이었다.
콰콰콰!
모래 해일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