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헉헉!”
마리엘과 가시나무 공격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백 명이 훨씬 넘던 공격대는 이제 스무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남색과 보라 초상 공간을 통과한 대가였다.
남색 초상 공간은 엘프들의 마음속 깊이 묻어 뒀던 갈망을 끄집어냈다.
갈망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강렬하게 원하는 데서 나온다.
인간 세상에 섞여 사는 엘프들은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원했고, 남색 초상 공간은 그들의 환상을 보여 줬다.
그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서 욕망이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네오 서울의 모든 인간들을 죽이고, 그 빈자리를 엘프들이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말이다.
욕망은 엘프들을 초흥분 상태로 만들었다.
어찌어찌해서 남색 초상 공간에서 탈출했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혼돈의 보랏빛 초상 공간이었다.
혼돈은 엘프들을 온전히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고,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게 했다.
서로를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죽이고 보랏빛 초상 공간을 탈출하고 나니 엘프들의 수는 스무 명까지 줄어들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마리엘과 엘프들은 몸을 덜덜 떨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동료를 학살한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 것이다.
“이럴…… 수가!”
“내가 친구를 죽이다니.”
“으아아!”
엘프들이 절규했다.
무엇보다 동족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엘프들이었다.
인간 세상에 세 들어 산다는 열등감과 더불어 박해받고 있다는 망상이 그들을 더욱 동족에 집착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동족을 아끼는 그들이 이성을 잃고 동족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어떻게 내 손으로 그들을…….”
몇몇 엘프들은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엘은 알고 있었다.
꿈도, 환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더라도 자신들은 동족들을 죽인 대죄인이었다.
“울지 마라. 우린 울 자격조차 없으니까. 저자의 피로 진혼제를 올리고, 정령왕의 크라운을 확보하는 것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유일한 방법이다.”
마리엘이 엘프들을 꾸짖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더 이상 그들과 데미안 사이를 가로막는 존재는 없었다.
“네놈을 죽여 동료들에게 바칠 것이다. 데미안!”
“우와아!”
마리엘과 엘프들이 데미안에게 몸을 날렸다.
데미안이 그런 엘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들 때문에 죽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 정도로 피해자인 척하는 거냐? 남의 세상에 멋대로 침입해 망가트려 놓았으면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지.”
“헛소리하지 마라. 데미안!”
마리엘이 데미안의 말을 부정하며 검을 휘둘렀다.
덜컥!
그녀의 검이 데미안의 목 앞에서 멈춰 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몸을 옭아맨 것이다.
마리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를 따라 데미안을 공격하던 엘프들 전원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무슨?”
“유리 거미의 거미줄이야. 보다시피 줄이 투명해서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지. 한번 붙잡히면 자력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고.”
“그런 물건이 있을 리가…….”
“후후! 자신의 상식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지 말라고. 던전에는 당신이 상상조차 못 한 각종 마수들이 서식하고 있으니까. 그중에 이런 특성을 가진 마수가 서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지.”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이제까지 던전을 몇 개나 공략했을 것 같아?”
“잘도 그런 개소리를…….”
“칠십이 개야. 팔 년 동안 무려 칠십이 개나 공략했어. 일이 개월에 한 번 꼴로 던전에 들어간 거야. 미친 짓이지. 그 누구도 그렇게 던전을 미친 듯이 공략하지 않으니까.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난 목숨을 걸었다고.”
“미친! 우린 너를 모른다고.”
“네년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엘하룬에 있는 엘프들, 드워프, 수인들까지 그럴까?”
“무슨 헛소리냐? 엘하룬이라니.”
“엘프 여왕이 엘하룬은 이야기해 주지 않았나 보군. 동족에게마저 숨기다니. 역시 엘프들은 믿을 것이 못 돼.”
데미안의 조롱에 마리엘과 엘프들의 얼굴이 벌게졌다.
“거짓으로 선동하지 마라. 인간!”
“엘프여! 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저렇게 너의 여왕이 달려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데미안의 시야에 성채 가까이 접근한 세리언과 북 구역 정예들이 들어왔다.
딱!
데미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세리언 앞쪽의 스펙트럼 프리즌이 사라졌다.
그들을 위해 데미안이 통로를 열어 준 것이다.
세리언은 잠시 통로 앞에서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늘함, 경멸, 증오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미소에 담겨 있었다.
저자는 왜 대체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통로로 들어갔다.
지금은 의문을 풀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묶인 마리엘과 엘프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백 명이 넘게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보이는 이는 겨우 스무 명뿐이었다.
나머지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대체 엘프들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엘프들에게 원한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나올 수 없다.
‘정령왕의 크라운도 엘프들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음이 분명해.’
이쯤 되면 데미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엘프들을 적대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물론 그 전에 마리엘과 가시나무 공격대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말이다.
세리언과 북 구역 정예들은 단숨에 성채 정상에 올라섰다. 그러자 데미안이 과장되게 팔을 휘둘러 예의를 차렸다.
“어서 오십시오. 인간 세상에 기생하는 이종족들의 여왕이시여.”
“역시 당신은 우리를 증오하고 있군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진실을 아는 모든 인간들은 당신들을 증오할 겁니다.”
“이미 백 년도 전에 벌어진 일이에요. 네오 서울에 사는 이종족들은 그때 사건과 관련도 없구요.”
“그래서 아무 책임도 없다?”
“그건…….”
세리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 순간 곁에 있던 일라이가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우리가 아니었어도 지구는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너희 종족은 이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난 너 같은 년들이 제일 싫어. 분명 본인의 잘못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남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들이. 그래서 용서 못 해.”
“용서 못 하면 어쩔 건데?”
“대가를 치러야지.”
“건방진! 인간 따위가 감히 책임을 묻다니…….”
일라이가 분노하자 세리언이 자제시켰다.
“조용해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 인간을 용서하면 안 됩니다.”
“일라이!”
“제가 죽이겠습니다. 어쨌거나 정령왕의 크라운만 확보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일라이가 세리언이 말릴 사이도 없이 뛰어나갔다.
순식간에 데미안 근처까지 도달한 그녀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하얀빛이 튀어나왔다.
하얀 거미줄을 연상시키는 빛은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더니 데미안을 에워쌌다.
웨빙 커터(webbing cutter).
명칭 그대로 빛으로 만든 거미줄을 칼날처럼 사용해 대상을 잘게 자르는 마법이었다.
일라이만의 독창적인 능력으로 그녀에게 거미여왕이라는 이명을 갖게 해 줬다.
거미줄처럼 퍼져 나간 빛이 정사면체가 되더니 그대로 데미안을 조여 왔다.
“데미안!”
그 순간 알렉산드로가 데미안의 앞을 막아서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웨빙 커터가 산산이 부서졌다.
“감히!”
일라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알렉산드로에게 분노했다.
그녀가 연이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모든 마법은 알렉산드로에게 분쇄당했다.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데미안에게 손을 댈 수 없다.”
알렉산드로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브릭스턴을 상대하면서 입은 상처 위에 일라이의 마법을 분쇄하며 얻은 상처가 더해졌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전신이 새빨갛게 물들었지만, 그의 눈빛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일라이가 북 구역 각성자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느냐? 어서 이들을 죽이고 동료들을 구하지 않고.”
“…….”
하지만 그녀의 외침에도 북 구역 각성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세리언이 명령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리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라이. 당신은 도무지 일의 경중을 모르는군요. 이에 대한 책임은 네오 서울로 돌아가는 대로 묻겠어요.”
“여왕님!”
일라이가 다급히 세리언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입을 열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알렉산드로가 공격을 해 왔기 때문이다.
“네 상대는 나다.”
그는 성난 곰처럼 일라이를 밀어붙였다.
알렉산드로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두려울 것도,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불태워 일라이를 공격했다.
그 때문에 일라이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리언은 한숨을 내쉬며 데미안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데미안에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큰 증오심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겠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고, 또 죽었는지는 아나요?”
“당신들 종특이네요.”
“네?”
“책임은 떠넘기고, 말꼬리는 흐리고, 점잖은 척 설교하는…….”
“우리를 향한 증오가 하늘을 찌르는군요. 좋아요! 더 이상 말 돌리지 않을게요. 정령왕의 크라운을 주세요. 그건 인간이 가지고 있기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에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가지고 온 거니까.”
“역시 나를 끌어내려고 가져온 거군요.”
“당신이라면 알아차릴 줄 알았거든요, 정령왕의 크라운에 봉인된 진짜 존재를…….”
데미안의 전신에선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올수록 세리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당신의 계획은 성공했어요. 이렇게 나를 불러냈으니. 하지만 이제 스펙트럼 프리즌을 거두는 게 좋을 거예요. 본래 스펙트럼 프리즌은 정령왕의 크라운을 봉인하기 위한 마법진이에요. 이런 식으로 파괴되면 봉인도 약해질 거예요.”
콰콰콰!
스펙트럼 프리즌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브릭스턴과 가시나무 공격대 등이 내부에서 뒤흔든 데다가 외부에서 제온이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스펙트럼 프리즌이 부서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령왕의 크라운에 봉인된 존재도 풀려날 것이 분명했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기에 세리언의 눈빛은 간절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그녀의 눈빛을 외면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럼 말해요.”
“무얼 말인가요?”
“엘하룬의 위치.”
“설마 그것 때문에 이 일을 벌인 건가요?”
“네!”
“당신 미쳤군요.”
“맞아요. 미쳤어요. 그러니까 말해요. 엘하룬이 어디에 있는지.”
데미안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세리언은 느낄 수 있었다. 차가움 뒤에 숨겨진 지독한 광기를.
세리언이 잠시 누런 하늘을 바라봤다.
백여 년 전에는 푸르렀을 하늘이었다.
그녀의 종족들이 넘어오는 대가로 지구는 저렇게 누런 하늘을 가지게 됐다.
‘우리의 운명은 쿠라얀에서 끝났어야 했어. 그랬다면 지구의 생명들까지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그녀에게 결정권이 있었다면 결코 지구로 넘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녀도 어린 엘프에 불과했다.
어른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 역시 피해자였지만, 말해 줘 봤자 믿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변명할 생각도 없었고, 엘하룬의 위치를 말해 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원죄야 어쨌든 엘하룬은 이종족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미안하지 않잖아요?”
“말할 수 없는 제 사정도 이해해 주길 바라요.”
“그럴 줄 알았어. 누구보다 자애로운 척하지만, 당신들은 가장 이기적인 족속이니까.”
“데미안!”
“일말의 미안함을 느낀다면 말해. 엘하룬으로 가는 길을 말하라고. 쌍년아!”
이제까지 꾹꾹 눌러 왔던 데미안의 화가 폭발했다.
그 순간 세리언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저자를 제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