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콰콰콰!
파도가 친다.
모래로 이뤄진 파도는 보랏빛 초상 공간을 거세게 때렸다.
거대 쓰나미가 밀려오면 이런 광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고 노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모래 파도도 비현실적이었지만, 모래 파도 위에 올라선 채 꼿꼿이 서 있는 제온의 모습은 더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이 꼭 제온이 모래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모래 해일은 제온을 떠받든 채 고 노인이 있는 방향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그 순간 고 노인과 제온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설마 진짜 모래를 부리는 건가?”
“피해야 합니다.”
“어서…….”
그림자 부대 남자들이 고 노인의 양팔을 붙잡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촤하학!
고 노인이 있던 자리를 모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갔다.
보랏빛 초상 공간이 마치 금방이라도 깨져 나갈 것처럼 흔들렸다.
이곳은 현실과 유리된 별개의 세계였다.
이공간이긴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한계도 존재했다.
초상 공간에 쏟아져 들어온 모래의 질량은 어마어마했다.
한계를 초월한 모래의 질량은 초상 공간 내부에서부터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쩌저저적!
결국 내부에서부터 가해지는 압력을 이기지 못한 초상 공간은 처참하게 찢겨 나갔다.
“도대체?”
고 노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지금 제온은 던전 하나를 그냥 무식하게 힘으로 박살 낸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모래라는 이물질을 사용했지만, 그 역시 제온의 힘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지배력이 얼마나 강하기에 저렇게 많은 모래를 부릴 수 있는 거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백수십 년 전 이 세상이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후 수많은 각성자들이 탄생했다.
크게는 무투계, 마법계, 기계화, 저주계 등으로 나뉘지만, 이에 해당되지 않는 특수 능력 각성자들도 존재했다.
특수 능력 각성자들은 말 그대로 이레귤러였다.
일반적이지 않은 능력을 보유한 각성자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령화 능력을 보유한 레빈이었다.
특수하다고 해서 대단할 것 같지만, 인간인 이상 엄연히 한계가 존재한다.
고 노인도 A급 결계술사지만, 결계로 장악할 수 있는 공간에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있는 성채와 그 주변 정도가 그의 한계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이다. 그래서 진금호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고 노인을 파견한 것이다.
성채와 주변에 결계를 치는 데 필요한 것은 마나와 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강한 지배력이다.
아무리 마나가 많아도 지배력이 약하면 결계를 오래 유지 못 한다.
그렇기에 고 노인은 지배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고 노인의 눈에 비친 제온은 괴물이었다.
“저렇게 많은 모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도대체 지배력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이냐?”
당연히 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 노인과 잠시 시선이 마주치긴 했지만, 그는 더 이상 제온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제온의 온 신경은 성채로 향해 있었다.
‘데미안!’
그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좋은 변화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전에 데미안에게 가야 했다.
지배력을 더 끌어 올리자, 더 많은 모래가 외부에서 유입됐다. 합쳐진 모래는 질량을 끌어 올렸고, 더해진 질량만큼 파괴력이 늘어났다.
증가한 파괴력은 초상 공간을 유리처럼 산산이 부쉈다.
쩌어어엉!
보랏빛 초상 공간이 파괴되면서 환경이 바뀌었다.
불길한 보랏빛에서 붉은 모래가 가득한 풍경으로.
비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제온은 멈추지 않았다.
콰콰콰!
그대로 모래를 몰아 성채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고 노인이 급히 제온을 쫓았다.
“엇?”
“어르신!”
그림자 부대 남자들이 고 노인을 따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결계를 펼쳐 모습을 감춘 후였다.
“제기랄!”
“성채로 접근해.”
고 노인을 놓친 그림자 부대 남자들도 성채 쪽으로 접근했다.
***
마치 갈대처럼 브로이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끄으으!”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고통 가득한 신음성.
그런 브로이의 목을 검은 촉수가 휘감고 있었다.
그 때문에 브로이의 두 다리는 허공에 뜬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브로이뿐만이 아니었다.
드워프, 엘프, 기타 수인족 전사들 수십 명이 촉수에 묶여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으!”
“사, 살려…….”
“으으!”
그들의 신음에 세리언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그녀가 믿고 의지하던 북 구역 정예들이 모두 데미안에게 제압당한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직접 움직이는 건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정말 저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당했으니까.
심지어 그녀가 깊게 믿고 있던 브로이마저 데미안에게 별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오히려 포로가 됐다.
데미안은 마치 전리품처럼 촉수에 휘감긴 이종족들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들이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이미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자들도 있었다.
조금만 지체해도 그들의 목숨이 위험했다.
세리언이 다급히 외쳤다.
“멈춰요.”
“누구 마음대로…….”
“그들을 죽이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해요.”
“내 걱정하는 척하지 마. 역겨우니까.”
“진정해요.”
“진정은 당신이 해야 할 것 같은데.”
데미안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예전의 정중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었다.
사납고 거친 말투, 평소의 데미안이 아니었다.
그가 입고 있는 프리즘 아머의 영향이었다.
정확히는 프리즘 아머에 힘을 보내 주고 있는 정령왕의 크라운 때문이었다.
프리즘 아머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본체는 바로 정령왕의 크라운이다.
정령왕의 크라운이 보내 준 힘을 프리즘 아머를 통해 분류하고 증폭한 것이 바로 스펙트럼 프리즌이다.
정령왕의 크라운이 보내 준 힘을 많이 사용할수록 프리즘 아머를 입은 자는 그에 종속된다.
지금 데미안의 상태가 그렇다.
그는 이미 정령왕의 프리즘에 반쯤 종속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가 아직까지 이성을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제 엘하룬의 위치를 말해.”
“그럴 수는…….”
우두둑!
세리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미안이 촉수에 매달려 있던 수인 하나의 목을 부러트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은 수인의 모습에 세리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답이 늦어질 때마다 한 놈씩 죽는다.”
“저기 진정…….”
그 순간 데미안이 다시 누군가의 숨통을 끊었다.
이번에 엘프였다.
엘프의 죽음에 세리언이 말을 잇지 못했다.
데미안이 그런 세리언을 비웃었다.
“이래도 말 안 할 거야? 그렇다면 이번엔 이놈을 죽여 주지.”
그가 촉수에 매달린 브로이를 흔들었다.
“크윽! 저는 괜찮으니,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검은 촉수가 그의 목을 강한 힘으로 조였다.
브로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런 브로이의 모습에 세리언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브로이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여기서 그를 잃으면 북 구역의 힘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구역과의 싸움에서 힘의 저울추가 현격하게 기울게 된다.
우두둑!
그 순간 브로이의 목에서 뼈가 부러지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브로이의 목이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말 것이다.
세리언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마가단.”
“응?”
“엘하룬은 옛 러시아의 도시 중 하나인 마가단 앞쪽 바다였던 곳에 있어요.”
“마가단이란 말이지? 들어가는 방법은?”
“저도 몰라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까.”
“엘프의 명예를 걸고 사실을 말한다고 맹세할 수 있나?”
“명예를 걸고 맹세해요.”
세리언이 감았던 눈을 뜨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엔 체념의 빛이 어려 있었다.
데미안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엘프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면 절대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세리언의 말은 사실이었다.
“드디어 알아냈어. 드디어……. 흐흐!”
데미안이 웃었다.
이 순간을 위해 지난 팔 년을 살아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서 말이다.
데미안의 시선이 세리언의 뒤쪽 허공을 향했다.
“들었지? 형!”
“들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제온이 있었다.
거대한 모래 기둥 위에 서서 말이다.
“엘하룬의 위치를 알아내겠다는 약속 지켰어.”
“그래! 기어이 약속을 지켰구나.”
“다행이다.”
데미안이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얼굴을 잠식해 온 투구에 가려졌다.
프리즘 아머가 데미안의 몸체에 뿌리를 내리며 장악하고 있었다.
인간과 갑옷이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데미안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의 자아가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다.
무언가 그의 정신을 장악해 오는 것이다.
데미안의 시선이 알렉산드로를 향했다.
알렉산드로는 이미 혈인이 되어 있었다.
거미 여왕이라고 불리는 일라이는 강했다. 그녀를 상대로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만했다.
데미안이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내 알렉산드로에게 말했다.
“가요.”
“데미안!”
“내 목적은 다 이뤘어요. 그러니까 가요.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가 잭과 합류해요.”
“…….”
“약속했잖아요. 그러니까 약속대로 해요.”
“알……았다.”
알렉산드로가 힘겹게 대답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쾅!
강력한 힘이 담긴 일격에 일라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알렉산드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살아남은 자는 모두 퇴각한다.”
그의 외침에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각성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알렉산드로의 얼굴엔 착잡한 빛이 가득했다.
극히 일부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왔지만, 막상 이렇게 적은 생존자를 확인하니 가슴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써 참담한 심정을 감추며 말했다.
“가자.”
“네!”
살아남은 자들은 잠시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도 그들을 바라봤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다.
알렉산드로와 생존자들은 그대로 탈출을 감행했다.
세리언은 그 모든 광경을 보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데미안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가 포로로 잡은 브로이와 북 구역의 각성자들이었다.
“목적을 이뤘으니 이제 그들을 놔줘요.”
“흐흐!”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인가요?”
“약속은 지켜. 어차피 모두 죽을 테니까.”
“무슨?”
그 순간 데미안이 촉수로 휘감고 있던 자들을 모조리 풀어 줬다.
브로이를 비롯한 북 구역 각성자들이 엎어져 가쁜 숨을 몰아쉴 때였다.
콰아앙!
정령왕의 크라운을 보관하고 있던 창고가 폭발하며 불길한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세리언과 일라이는 동공을 자극하는 검은빛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지만, 제온은 오히려 눈을 똑바로 뜨고 응시했다.
검은빛의 출처는 정령왕의 크라운이었다.
정령왕의 크라운에 봉인되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데미안을 쬐는 검은빛은 더더욱 짙어졌다.
정령왕의 크라운에서 시작된 검은빛을 타고 무언가 데미안의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뚜둑! 뚜두둑!
데미안의 몸이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틀리며 형상이 변했다.
오 미터도 넘게 커진 체구 위에 프리즘 아머가 피부처럼 덧씌워졌다.
붉게 변한 눈동자엔 적의가 가득했고, 수인처럼 툭 튀어나온 입엔 화염을 가득 머금었다.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은 데미안이 이미 인간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데미안의 몸을 통해 정령왕의 크라운에 봉인되었던 존재가 세상에 나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세리언이 중얼거렸다.
“발……록!”
크워어어!
그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발록의 포효가 사막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