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저게 뭐야?”
고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데미안은 분명 인간이었다.
프리즘 아머라는 아이템을 착용했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데미안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단지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영혼 자체가 바뀐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데미안의 육체를 빌려 부활한 이는 바로 발록이라는 마수였다.
마수 공작이라는 이명을 지닌 고대의 재앙급 마수.
드래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 포악함만큼은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 포악함 때문에 위험도에서는 오히려 드래곤보다 높게 평가받는다.
실제로 발록의 출현에 왕국 하나가 멸망했다.
그 때문에 쿠라얀에서는 발록을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각성자들과 나라가 힘을 모았다.
그렇게 역량을 모았어도 완전히 숨통을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정령왕의 힘을 빌려 크라운에 봉인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정령왕이 봉인되어 있다고 믿은 크라운의 비밀이었다.
발록은 데미안의 육체를 통해 부활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봉인되어 있었기에 본신의 힘이 무척이나 약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S급 마수 이상의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발록의 피어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마리엘, 보린은 물론이고 여왕인 세리언마저도 말이다.
결계로 전신을 보호한 고 노인 또한 심령에 타격을 입어 잠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네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인 그들이 이 정도였으니, 다른 각성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스캐빈저와 각성자 들은 발록의 피어에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했다.
푸화하학!
그런 그들을 지옥의 겁화가 휩쓸고 지나갔다.
헬 파이어에 비견된다는 발록의 스킬, 파멸의 눈(The Eye of Destruction)이었다.
발록의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파멸의 눈 범위에 해당했다.
그 어떤 생명체도, 각성자도, 마수도 발록의 눈을 피해 도주할 수 없었다.
괜히 발록이 파멸의 마수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오랜 봉인 때문에 힘이 약해진 지금이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세리언이나 마리엘 모두 발록에게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발록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에 짓눌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발록의 정체를 몰랐다면 홀가분하게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발록의 전설에 대해 알고 있었고, 뼛속 깊이 배인 두려움이 얼어붙게 만들었다.
“크르르!”
그녀들을 발견한 발록의 눈에 더욱 강렬한 불길이 일어났다.
자신을 봉인한 엘프와 이종족들을 보자 강력한 적개심이 발산되는 것이다.
촤르륵!
발록의 손에 기다란 채찍이 나타났다.
채찍을 타고 지옥의 겁화가 피어올랐다.
발록의 무기인 화염 채찍이었다.
이 화염 채찍이야말로 발록을 다른 마수들과 구별하게 만들어 주는 무기였다.
대부분의 마수들은 타고난 육체와 스킬 등을 본능적으로 사용한다.
굳이 공부할 필요도, 도구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발록은 다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손에 들고 있는 화염 채찍이었다.
타고난 지옥의 겁화를 응축시켜 채찍 형태로 만들었다.
그 위력은 당연히 상상을 초월했다.
촤하학!
발록이 세리언 등을 향해 화염 채찍을 휘둘렀다.
지옥의 겁화를 담은 채찍은 음속을 돌파해 날아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리언이 급히 스킬을 펼쳤다.
“세븐 오버랩 실드!”
실드 일곱 개를 겹쳐 펼치는 세리언만의 방어 스킬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실드가 펼쳐져 채찍을 막을 수 있었다.
쩌어엉!
하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일곱 개의 중첩 실드 중 무려 여섯 개가 화염 채찍질 한 방에 부서진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 실드가 버텨 줘서 목숨은 구했지만, 막대한 충격이 세리언과 마리엘, 보린 등을 강타했다.
“흐읍!”
“컥!”
마리엘과 보린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고, 세리언도 안색이 핼쑥해졌다.
세리언은 급히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려 했다.
비록 발록의 등장에 기선을 제압당하긴 했지만, 그녀 역시 S급 각성자였다.
발록과 정면으로 겨루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힘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정식으로 스킬을 펼치면 자신의 몸 하나 정도는 충분히 빼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발록이 그녀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쾅! 쾅!
발록이 연신 채찍으로 후려쳤다.
타이밍에 맞춰 세리언이 세븐 오버랩 실드를 펼쳤다.
“어서 정신 차려요.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당해요.”
그녀가 마리엘과 보린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들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들을 보호하느라 세리언은 몸을 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저런 마수가 존재한다니.”
그 광경을 본 고 노인이 얼어붙었다.
발록은 처음 등장한 마수였다.
그를 비롯해 네오 서울의 그 누구도 발록과 같은 마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꼭 정보를 알아야만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발록이 얼마나 강대한 힘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쿠워어어!
실드가 부서지지 않자 화가 폭발한 발록이 포효를 했다. 그러자 엄청난 화염 폭풍이 일어나 일대를 휩쓸었다.
결계 안에 있던 고 노인은 그나마 화염 폭풍의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그를 따르던 그림자 부대의 각성자 세 명은 그와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크아악!”
“사, 살려…….”
“으헉!”
초고열의 화염 폭풍에 휩쓸린 그들은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목숨을 구한 스캐빈저와 각성자 들이 녹아내렸다.
그 광경을 본 고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맙소사!”
초고열에 일대의 모래가 모두 녹아 반질반질하게 변했다.
아직 힘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는데도 이 정도 위력인데, 힘을 모두 되찾으면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놈이 네오 서울로 향하면 큰 재앙이 닥친다.”
발록은 네오 서울의 항마력을 무시할 수 있는 마수였다. 급이 낮은 마수들과 달리 네오 서울의 항마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런 발록이 네오 서울에 난입하면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 전에 발록을 붙잡아 놔야 했다.
그때 화가 난 발록이 다시 한번 피어를 터트렸다.
쿠워어!
순간 발록의 전신에서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순식간에 네오 서울에까지 도달했다.
파지직!
“크윽!”
“뭐야?”
네오 서울 외곽 빈민가에 진을 치고 있던 차진철과 기계화 각성자들이 신음을 터트렸다.
발록이 발산한 빛에 노출된 기계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멈췄기 때문이다.
차진철이 스파크가 튀는 팔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성채 주위로 엄청난 화염의 벽이 생겨나 있었다.
그 때문에 그가 있는 곳에선 성채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EMP라도 발생한 건가?”
그의 추측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빈민가 일대의 전력 공급이 딱 끊겼다.
그 때문에 빈민가의 불이 모두 꺼지면서 암흑이 찾아왔다.
그 광경을 본 고 노인이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군.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그는 결코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처형 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좌시할 만큼 못 된 인물도 아니었다.
발록이 네오 서울로 가기 전에 시간을 벌어야 했다.
다행히 그에겐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거대한 결계가 생성됐다.
결계는 그와 발록, 그리고 일대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결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네오 서울에서 다른 각성자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믿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제온!’
부유하는 모래를 발판 삼아 허공에 떠 있는 남자,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은 데미안을 보고 있었다.
데미안의 모습에서 이제 인간의 흔적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프리즘 아머와 완벽하게 융합된 육체는 발록의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크고 강해졌고, 눈과 입에서는 초고열의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인간의 자아는 사라지고, 마수의 강대한 영혼이 내면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데미안은 완벽하게 발록이 되었다.
데미안은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정령왕의 크라운과 프리즘 아머를 얻은 그 순간부터 말이다.
이것들을 사용하면 결국 자신이 발록이 될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사용했다.
그만큼 엘프와 이종족들을 향한 그의 증오는 거대했다.
인간 데미안을 구성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그 증오심만큼은 발록과 융합되어 더욱 커졌다.
쿠워어!
발록이 다시 한번 피어를 터트렸다. 그러자 초고열의 화염 폭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화염 폭풍은 고 노인의 결계에 막혀 외부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크윽!”
결계에 가해진 막대한 충격에 고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그가 제온에게 말했다.
“놈을 막아야 하네. 놈이 결계를 벗어나면 네오 서울에 재앙이 닥칠 거야.”
고 노인의 표정은 절박했다.
어떻게 해서든 발록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후!”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야 어쨌든 데미안은 발록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종족을 향한 그의 뿌리 깊은 증오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발록이 된 그가 네오 서울을 짓밟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발록이 침입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이 바로 그가 사는 빈민가였다.
최소한 자신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때 보린이 발록에게 화살을 쐈다.
이곳에서 경매로 구입한 나일리아의 활이었다.
엘프 영웅인 나일리아가 사용했던 활답게 그 위력은 가공했다.
푹!
무려 발록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설픈 공격은 오히려 발록의 화만 돋우었다.
후웅!
발록이 화염 채찍을 휘둘렀다.
음속을 돌파한 화염 채찍은 보린을 강타했다.
쾅!
보린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그나마 나일리아의 활로 화염 채찍을 막았기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충격 때문에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보린을 향해 화염 채찍이 다시 날아왔다.
“보린!”
세리언이 보린을 구하려고 했지만, 발록의 화염 채찍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운명을 예감한 보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
퍼엉!
그 순간 보린의 앞쪽에서 공기가 터져 나갔다.
화염 채찍이 보린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바로 앞의 공간을 후려친 것이다.
가공할 열기에 얼굴이 익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무슨?”
보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 순간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단지 뒷모습일 뿐이었지만, 보린은 단숨에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제온?”
화르르!
불타오르는 화염 채찍이 초열의 건틀렛을 낀 제온의 오른손에 잡혀 있었다.
“이제부터 내가 상대해 주마. 데미안! 아니, 발록!”
크워어!
분노한 발록이 제온을 공격했다.
그 순간 수많은 모래 줄기가 발록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