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후!”
제온이 어깨와 머리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렉산드로 일행의 뒤를 잠깐만 봐주려고 했는데 위험 지역을 빠져나가는 것까지 보고 오는 데 무려 보름이나 걸렸다.
생각보다 여정이 길어진 것이다.
얼른 집에 들어가서 씻고 쉬고 싶었다.
빈민가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온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성채가 세워졌던 곳을 바라봤다.
성채의 잔해는 보이지 않았다.
높게 쌓인 모래가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린 것이다.
모래 섞인 바람은 이렇게 모든 것을 묻어 버린다.
누군가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흔적마저도 말이다.
‘덧없군!’
제온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오랜만에 돌아왔다고 지저분한 빈민가가 반갑게 느껴졌다.
“제온!”
“형!”
빈민가에 들어서자마자 제온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이 있었다.
브리엘과 레빈이었다.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응!”
“어휴! 말도 마요. 이 꼬맹이가 매일같이 여기 앉아서 기다렸다니까요.”
두 사람의 대답에 제온의 미소가 짙어졌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처음 알았다.
“좋네! 이제 집에 가자.”
“집은 나중에 가는 게 좋겠어.”
“왜?”
“파리들이 많이 꼬였어.”
“그래?”
브리엘의 뾰로통한 표정에 제온이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발록을 상대하면서 제온은 능력을 공개했다.
모래술사로서의 능력을 말이다.
몇 남지 않은 생존자의 입을 통해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젠 많은 이들이 제온이 모래술사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사막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모래술사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계산을 끝낸 많은 이들이 제온을 끌어들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브리엘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왜 그랬어? 능력을 드러낼 거면 차라리 결계 안에 있던 모든 자들을 죽이지. 그럼 비밀이 유지됐을 거 아냐?”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드러날 비밀이었어. 끝까지 유지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가장 가치 있을 때 드러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
더군다나 상대가 발록이었다.
능력을 숨기고 싸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제온도 진심으로 상대해야 할 만큼 강대한 마수였기에 모래술사의 권능을 개방해야 했다.
소형 마수나 별 볼 일 없는 마수를 상대로 능력을 선보였다면, 각 구역의 수뇌부들은 제온을 단지 이용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발록이라는 강대한 마수를 상대로 압살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들의 머릿속도 복잡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제온이 브리엘과 레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클렉시 영감 가게나 가자.”
“밥 먹으려고?”
“어! 계속 육포만 먹었더니 제대로 된 음식이 먹고 싶네.”
“응!”
세 사람은 클렉시 영감의 노점이 있는 거리로 향했다.
제온을 보자마자 클렉시 영감이 매섭게 째려봤다.
“돌아왔구나. 음흉한 놈! 그렇게 감쪽같이 속이다니.”
“뭐가요?”
“네 능력 말이다. 화염이 아니라 모래를 부리는 거였다니.”
“그게 왜요?”
“어떻게 나에게까지 숨길 수 있냔 말이다. 어떻게 우리 사이에…….”
“섭섭한 척 그만하고 밥이나 주세요.”
“킁! 표났냐?”
“많이요.”
“재미없는 놈. 조금만 기다려라.”
클렉시 영감이 코를 찡그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제온은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클렉시 영감이 부지런히 팔을 놀리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너 때문에 각 구역이 난리 났다. 각 구역에서 네놈 포섭하려고 빈민가에 사람들을 보냈어. 그놈들이 너에 대한 정보 얻겠다고 들쑤시고 다니고 있어.”
“그래요?”
“뭐, 그래 봤자 너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겠지만. 흐흐!”
클렉시 영감이 음흉하게 웃었다.
빈민가의 정보는 그가 꽉 틀어쥐고 있었다.
그가 제온에 대한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이상 외부의 인물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제온이 피식 웃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됐다. 너에게 감사의 인사 받자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네놈 덕분에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발록이 풀려났으면 제일 먼저 빈민가가 초토화됐을 것이다.
네오 서울에서 빈민가를 내버려 두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처럼 예상 못 한 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빈민가를 방패막이 삼아 시간을 버는 것이다.
네오 서울의 전력이라면 발록이 들이닥치기 전에 완벽한 대응 태세를 갖췄을 것이다.
그사이 빈민가의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 나가든 네오 서울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클렉시 영감이 제온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이다.
제온이 말했다.
“빈민가에 제집이 있습니다. 제집이 파괴되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감사의 인사 따윈 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놈도 참 솔직하지 못해.”
“저만큼 솔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그래! 그렇다고 치자. 이거나 먹어라.”
탁!
클렉시 영감이 제온의 앞자리에 덮밥을 내놓았다.
평소보다 양이 많고, 내용물도 푸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제온이 수저를 들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클렉시 영감은 레빈과 브리엘에게도 덮밥을 한 그릇씩 줬다.
두 사람 역시 클렉시 영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식사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세 사람을 보며 클렉시 영감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도 자주 보다 보니 이제 세 사람이 자신의 진짜 손자 손녀처럼 느껴졌다.
‘하아! 나도 죽을 날이 머지않은 모양이군.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이야.’
또각! 또각!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빈민가에서는 보기 힘든 하이힐 소리였다.
클렉시 영감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위아래 모두 몸에 착 달라붙는 빨간 정장을 입고, 굽 놉은 빨간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빈민가와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었다.
네오 서울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저런 복장을 했다. 그리고 클렉시 영감은 그 대표적인 인물을 알고 있었다.
“하아!”
클렉시 영감이 한숨을 내쉬며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제온 옆자리에 거침없이 앉았다.
그녀가 제온이 먹는 덮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맛있어 보이네요. 저도 똑같은 것으로 주세요.”
“재료 다 떨어졌다.”
“오랜만에 보는데 이렇게 야박하게 굴 건가요.”
“다 떨어진 재료를 힘들게 구해서 음식을 만들어 줘야 할 정도로 친근한 사이도 아니지.”
“그럼 있는 재료로 만들어 주세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거머리 같은 것.”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여자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클렉시 영감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덮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목적을 달성한 여자가 제온을 바라봤다.
그녀의 따가운 시선에 제온이 입을 열었다.
“뭔가요?”
“반갑습니다. 제온!”
“전 그렇게 반갑지 않네요.”
“소중한 식사 시간을 방해한 것은 미안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당신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무리했어요.”
“흠!”
그제야 제온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과 서늘한 분위기만 아니었으면 누구라도 반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 이름은 서태란입니다. 시청 소속이죠.”
“시청?”
“정확히는 시장 직속 비서예요. 제가 이렇게 온 것은 제온 님을 시청에 초대하고 싶어서예요.”
“시장님이 찾는 건가요?”
“네! 그분께서 제온 님의 능력에 큰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직접 뵙고 싶어 하죠. 시장님께서 이렇게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에요.”
“그거 영광이네요. 그런데 어떡하죠? 전 조금 부담스러운데.”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특별한 제안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저녁 한 끼 함께하자는 것뿐이니까요.”
“그런가요?”
“네!”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부담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장 진금호의 부름이었으니까.
네오 서울의 최고 권력자이자, 대멸망 이전부터 살아온 괴물이 바로 진금호였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진금호의 부름 앞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온의 얼굴에선 그런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서태란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이 남자는 시장님과 면담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가?’
각 구역의 지배자들조차도 발아래로 내려다보는 게 진금호다. 그와 일대일로 대면한다는 것은 네오 서울, 그것도 핵심부에 단숨에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처형 부대라고 불리는 넘버즈들도 그렇게 진금호에게 스카우트되거나 키워졌다.
제온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시청에 한 번 들르죠.”
“이걸 보이면 바로 시청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서태란이 기다렸다는 듯이 출입증을 내밀었다.
마법 처리를 해서 위조가 불가능한 출입증이었다.
“고맙습니다.”
“네오 서울 안에서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그 출입증을 보여 주십시오. 그럼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만?”
“네오 서울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요. 권위에 대항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죠.”
“그렇군요.”
“저는 제온 님이 그런 분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서태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것처럼 위압적인 미소였다. 하지만 제온에겐 통하지 않았다.
제온이 품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뭐, 저도 사람이니까요.”
“사람도 사람 나름이죠.”
“부담되네요, 그럼 전 먼저 일어나죠.”
제온이 돈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브리엘과 레빈도 그와 함께 일어났다.
제온이 서태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며칠 후 다시 뵙죠.”
“네!”
제온과 레빈, 브리엘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서태란은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탁!
그때 클렉시 영감이 서태란에게 덮밥을 내놨다.
“음식 나왔다.”
“됐어요.”
“뭐?”
“생각해 보니 재료가 빠진 음식은 맛이 없을 것 같네요. 그냥 먹은 걸로 할게요.”
“이 싸가지…….”
“밥값은 이걸로 대신할게요.”
그녀가 품에서 꺼낸 것은 조그만 마정석이었다.
한 끼 식삿값치곤 너무 과했다.
이 조그만 식당의 한 달 매출보다 더 비싼 놈이었다.
클렉시 영감이 냉큼 마정석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배고프면 언제든 찾아와. 정성껏 만들어 줄 테니까.”
“제 발로 찾아올 일이 또 있을까요?”
“앞날은 아무도 모르지. 내가 빈민가에서 장사할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그건 그렇네요. 어쨌거나 목적을 달성했으니 전 이만 가겠어요.”
“제발 좀 얼른 가라.”
“시장님께 안부 전해 드릴게요.”
“됐다. 그 인간하고 두 번 다시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혓바닥이 길어졌느냐? 잡설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 면상 좀 내 앞에서 치워다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요.”
“죽으면 죽었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두고 보죠.”
서태란이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떴다.
육감적인 엉덩이를 씰룩이며 멀어지는 서태란의 뒷모습을 보며 클렉시 영감이 중얼거렸다.
“마수보다 지독한 년을 봤으니 몇 달은 재수가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