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제온이 돌아왔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요한이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 보이는 작은 눈동자엔 그 어떤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언제?”
“두 시간 전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보름 만의 귀환인가?”
“그렇습니다.”
“그런 일을 벌이고 보름이나 자리를 비웠단 말이지?”
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세력이 바로 동대문이었다.
브릭스턴과 김재경, 그리고 함께 파견한 광전사들까지 모조리 죽었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씨 몰살당한 것이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피해였다.
보고를 듣자마자 요한이 어이없어 헛웃음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믿기지 않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수하가 거짓 보고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하의 보고는 사실이었다.
그가 믿었던 수하들은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동대문의 전력 삼분지 일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동대문뿐만 아니라 성채에 병력을 보냈던 대부분의 세력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온이었다.
극소수의 생존자들을 통해 제온이 발록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진정한 각성 능력도 말이다.
‘모래술사라니.’
그런 각성 능력이 존재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대부분의 땅이 모래로 변한 이 세상에서 모래술사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C급 모래술사만 돼도 떠받들고 살 텐데, 하물며 제온은 추정 등급이 A급이었다.
그것도 최소로 잡았을 때였다.
발록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것으로 보아 S급이 확실했다.
S급 모래술사의 등장에 지금 네오 서울의 모든 권력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제온을 영입하기 위한 쟁탈전이 물밑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다만 제온이 무슨 이유에선지 보름이나 거처를 비웠기에 쟁탈전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제 제온이 귀환했으니 각 구역에서 본격적으로 영입에 나설 것이 분명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문제는 동대문이 제온 쟁탈전에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제온과는 이미 적이 된 상황에서 영입 제의를 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우습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제온을 그냥 놔둘 수도 없었다.
이대로 제온을 놔두면 분명 동대문을 잡아먹을 것이 분명했다. 제온이 원치 않더라도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그 전에 제온을 제거해야 했다.
“직접 움직여야 하나?”
요한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었다.
***
제온이 로브를 벗어 벽에 걸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변한 것이 하나 없었다.
그동안 브리엘과 레빈이 관리를 잘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켜보는 눈에 의해 완벽하게 보호되기 때문이다.
제온이 자리를 비운 동안 그를 영입하겠다고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개중에는 강제로 문을 부수려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제온이 허락하지 않은 자는 절대 들어올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브리엘이 제온에게 붉은 액체가 담긴 병을 내밀었다.
“고생했어. 이거 마시고 푹 쉬어.”
“이건 뭐냐?”
“내가 만든 건데 피로 회복에 아주 좋아.”
제온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붉은 액체를 바라봤다. 피처럼 보여서 꺼림칙했다.
“어서 마셔! 진짜 괜찮다니까.”
“알았어.”
브리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붉은 액체를 마시고 말았다.
붉은 액체를 마신 순간 제온이 깜짝 놀랐다.
전신에 활력이 돌았기 때문이다.
브리엘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끝내주지?”
“어!”
“히히! 성공이다.”
“네가 만든 거야?”
“응! 마나 회복 포션 만들려고 했는데, 이런 게 나왔어. 마나 대신 활력을 회복시켜 주더라고.”
“미쳤네! 아이템도 아닌데 이런 효과라니.”
“좋았어!”
제온의 호평에 브리엘이 신나서 방방 뛰었다.
‘재능이 만개하고 있군.’
브리엘을 구했을 때만 하더라도 마약에 찌든 약쟁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서 마약에 찌든 티는 거의 나지 않았다.
아직도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눈에 초점이 나가는 날이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고 있었다.
‘그래도 하이 엘프라는 건가?’
이대로 브리엘이 발전하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제온도 알 수 없었다.
브리엘은 아직 나이가 어렸고, 별일 없다면 하이 엘프답게 매우 오래 살 것이다. 그런 그녀가 또 어떤 아이템을 만들어 낼지 제온도 알 수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이거 얼마나 만들 수 있어?”
“레시피는 완성했어.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야?”
“으음…….”
“어렵구나.”
“응! 구할 수는 있는데 비싸.”
“그럼 됐네. 못 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제온이 피식 웃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아공간엔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니까.
그에겐 차라리 이런 활력 포션이 더 도움이 됐다.
“유세희에게 말해 놓을 테니까 도깨비 시장에서 필요한 재료 마음껏 갖다 써.”
“그래서 말인데…… 그 여자하고 동업하면 어떨까 해.”
“동업?”
“그게 훨씬 더 이익일 것 같아서…….”
“마음대로 해.”
“진짜 그래도 돼?”
“응!”
제온의 허락이 떨어지자 브리엘이 환히 웃었다.
이번에 발록 소환 사태를 겪으면서 그녀는 많은 것을 느꼈다.
한 인간이 가진 집념과 원한이 발록이라는 재앙급 마수를 이 땅에 불러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인간이 원한을 가진 대상이 자신과 같은 이종족들이었다.
처음엔 그런 맹목적인 원한과 분노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처지 바꿔 생각해 보니 자신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 이종족들은 이 땅을 망가트린 침략자였다.
자신들이 살겠다고 무리하게 넘어오지 않았다면 지구가 이렇게 황폐해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수많은 인간들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인간의 원한을 샀으니, 누군가 이런 복수극을 계획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종족이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빈민가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어.’
활력 포션으로 얻은 이득을 이곳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굳이 유세희와 동업하려는 이유였다.
“난 도깨비 시장에 다녀올 테니까 제온은 쉬고 있어.”
“그래!”
브리엘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혼자가 되자 제온이 소파에 앉았다.
“후!”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자 안도감이 들었다.
제온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붉은 네온사인 너머 높은 장벽과 시청사가 보였다.
제온은 한참이나 시청사를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소파에서 잠을 잤음에도 피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날 복용한 활력 포션 덕분인 것 같았다.
“굉장한 것을 만들어 냈네.”
제온 같은 각성자보다 하위 각성자들에게 유용한 물건이었다.
포션 한 병으로 피로를 모두 풀어 버릴 수 있다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 시중에 풀리면 꽤 많은 인기를 누릴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진금호가 찾는단 말이지.”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진금호는 네오 서울의 지배자였다.
데이오든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괴물.
추정 나이만 백오십 살이 넘는다.
이종족들을 제외하고 그만큼 오래 살아남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제온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말이다.
데이오든보다 오래 살아남고, 데이오든만큼 강할지 모르는 각성자.
그런 각성자가 제온을 부르고 있었다.
겁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진금호만큼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제온도 만만치 않은 사로를 헤쳐 왔다.
진금호를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사막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네오 서울 안은 달랐다.
네오 서울은 온갖 마법진과 결계로 보호되기에 외부의 모래가 유입되지 않는다.
모래가 없다면 제온의 전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진금호도 제온을 네오 서울로 불러들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군.”
눈 뜨고 코만 베이면 양반이다.
방심하는 그 순간 목숨을 잃거나 목줄이 매일 수 있었다.
“쉴 시간이 없네. 휴!”
제온이 한숨을 내쉴 때였다.
“어, 형! 돌아왔네요.”
문을 열고 레빈이 돌아왔다.
“밤새우고 온 거냐?”
“네!”
레빈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다. 성과는 좀 있었냐?”
“아직요.”
레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직도 살인마를 추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인마는 그날 이후 완벽하게 잠적했다.
자신의 흔적을 완벽히 감추고 사라진 것이다.
살인도 저지르지 않았다.
어딘가 숨어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놈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상처를 치료하고 나오면 분명 다시 살인을 저지를 텐데…….”
레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야 이미 가족을 잃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막고 싶었다.
“뭐, 어쨌든 다음에 다시 놈을 만나면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레빈이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제온이 미소 지었다.
그동안 레빈도 많이 성장했다.
살인마를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과 접촉을 했고, 그렇게 만난 이들은 모두 레빈의 인맥이 됐다.
그렇게 방대한 인맥을 기반으로 레빈만의 독자적인 정보망을 구축했다.
아르고스의 눈 같은 정보 조직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정보망을 구축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제온이 로브를 입으며 말했다.
“난 밥 먹으러 갈 건데 너는?”
“저도 같이 가요.”
“나가자.”
“네!”
레빈이 제온을 따라나섰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거리는 고요했다.
두 사람은 함께 클렉시 영감이 장사하고 있는 거리로 향했다.
후르륵!
클렉시 영감의 가게엔 벌써 손님이 있었다.
짧은 머리에 덩치가 큰 남자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클렉시 영감이 만든 음식을 먹고 있었다.
단지 뒷모습뿐이었지만, 제온은 단숨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제온이 남자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서 보는군요.”
“왔군!”
남자가 고개를 돌려 제온을 바라봤다.
오른쪽 뺨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와 황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남자의 이름은 이지령.
페가수스 공략대의 대장이자, 제온이 죽인 남자의 형이었다.
“여기 음식이 맛있군. 빈민가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
“영감님 솜씨가 대단하죠. 우리도 같은 걸로 주세요.”
제온이 클렉시 영감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알았다. 크흠!”
클렉시 영감이 헛기침하며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온이 이지령에게 말했다.
“빈민가의 음식이나 먹으려고 온 것은 아닐 테고, 저를 만나러 온 겁니까?”
“아주 화려하게 일을 저질렀더군.”
“발록 말입니까?”
“그래! 스스로 각성 능력을 드러내다니. 어리석은 선택이었어.”
“그런가요?”
“이제 네 능력을 탐낸 자들이 아귀처럼 들러붙을 거다. 감당할 수 있겠어?”
“어차피 언젠가는 공개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감당은 해 봐야죠.”
“자신 있는 모양이군.”
“그래서 충고를 해 주러 온 겁니까?”
“충고는 무슨? 제안 하나 하러 왔어.”
“제안……입니까?”
“그래! 제안! 나와 함께 던전 하나 공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