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진금호가 공무를 보는 시장실은 시청사 최상층인 오십 층에 있었다.
제온과 서태란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소리도 없이 오십 층으로 이동시켰다.
엘리베이터에 탄 지 십 초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오십 층에 도착해 있었다.
“내리시죠.”
서태란이 먼저 내리고, 제온이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드넓은 집무실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막히는 곳 하나 없이 널찍한 통창은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배경으로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코 아래와 턱에 난 수염. 그리고 몸에 쫙 붙는 슈트까지 어느 것 하나 멋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가 바로 네오 서울의 시장인 진금호였다.
진금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갑네. 네오 서울의 시장인 진금홀세.”
“제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서 오게. 네오 서울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제온이 진금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상대는 폐허가 된 대지 위에 거대 도시를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땅의 사람들 또한 다른 콜로니처럼 중세 문명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데이오든이 주도해 네오 서울을 세웠고, 그 덕분에 인류는 예전의 문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업적만으로도 진금호는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남자였다.
제온을 맞이하는 진금호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 일단 자리에 앉게.”
“네!”
제온은 사양하지 않고 진금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마실 것은?”
“물이면 됩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서태란이 바로 물을 가지러 갔다.
“빈민가에서 산다고 들었네. 그곳은 어떤가?”
“지낼 만합니다.”
“그래?”
“원래 살던 곳이라 편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제온의 대답에 진금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금호는 제온을 편하게 대했다.
네오 서울의 절대자답지 않게 소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그런 진금호의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모래술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네.”
“운이 좋아 모래술사로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운도 본인의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 따라오는 걸세.”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온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제온의 모습에 진금호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자신을 보면 긴장을 한다.
자신이 제아무리 편히 대해 준다고 해도 상대가 느끼는 압박감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상대를 압박하거나 기세를 발휘하지 않더라도 진금호와 대면한 상대는 알아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최근에 대면한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단주 알렉산드로 역시 그랬다.
그런데 비교적 나이가 어린 제온은 진금호를 마주 보고도 위축된 기색 하나 없었다.
입가에 떠오른 옅은 미소와 자신감 어린 눈빛은 진금호에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네를 보니 내 친구가 떠오르는군.”
“친구요?”
“오래된 친구가 있네. 자네와 그는 외모와 분위기가 다른데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구석이 있군.”
“그런가요? 친구분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데이오든! 그의 이름은 데이오든일세. 나의 유일한 친구였고, 경쟁자였던 남자지. 그가 없었다면 네오 서울을 다시 세우지 못했을 거야.”
“친구……분은 어디 계십니까?”
“떠났네!”
“어디로 말입니까?”
“나도 모르네. 어느 날 그는 이곳을 떠났고,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
“친구분 이름이 데이오든이라고요?”
“그렇다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지.”
데이오든을 언급하는 진금호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의 미소가 진짜 데이오든이 그리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기만하려고 짓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데이오든은 진금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흉하지만, 같은 편일 때는 그래도 믿고 의지할 만한 놈이다.
데이오든이 정면에서 마수를 상대하면 진금호는 후방에서 그를 지원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마수와 싸우면서 네오 서울의 성벽을 쌓았다.
비록 나중엔 사이가 틀어졌지만, 그래도 데이오든은 진금호를 원망하지 않았다.
진금호가 말했다.
“왜 그럴까? 그렇게 기질과 외모가 상반된 데도 자네를 보면 그 친구가 연상되는 이유가…….”
“글쎄요.”
“미안하네. 괜히 귀한 손님 모셔 두고 엉뚱한 이야기만 했군.”
“아닙니다.”
“고맙네!”
“네?”
“자네가 발록을 막아 줬지 않은가? 덕분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어.”
“발록이 날뛰면 제집도 무너지기에 나선 것뿐입니다.”
“어쨌거나 그 덕에 빈민가 전체가 무사할 수 있었지. 빈민가가 무너졌으면 네오 서울도 큰 피해를 입었을 거야.”
진금호의 말속엔 네오 서울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빈민가도 언급하긴 했지만, 그냥 의례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진금호에게 중요한 것은 빈민가가 아니라 네오 서울이었다.
빈민가는 네오 서울을 지키기 위한 방파제에 불과했다.
진금호가 물었다.
“이제 앞으로 어떡할 생각인가?”
“무얼 말입니까?”
“접촉해 오는 곳이 꽤 있을 텐데, 어느 곳에 합류할지 결정했는가?”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자네가 내 친구와 닮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눈빛, 기질을 가진 자는 절대 남의 밑에 들어가지 않지. 그래서 그렇게 추측했다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군요.”
“자네야말로 모래술사라는 직업을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진금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커다란 통창 너머 화려한 네오 서울의 전경이 보였다. 하지만 진금호의 시선은 네오 서울이 아닌 성벽 너머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향해 있었다.
“겨우 요 정도라네.”
“네?”
“내가 평생을 노력해 얻어 낸 인간의 땅이 겨우 이 정도뿐이라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이상 인간이 살 만한 땅을 확보하지 못했지.”
화려하지만 네오 서울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렇게 좁은 땅에 무려 천만 명이나 산다. 빈민가까지 합치면 이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이 좁은 도시에 뭉쳐 사는 것이다.
도시를 확장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 도시 밖은 마수의 영역이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강한 마수들이 서식하지. 그곳까지 인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해. 적어도 평범한 각성자들에겐 말이지. 하지만 자네는 달라. 자네의 능력이라면 인간의 영역을 이보다 확대할 수 있어.”
진금호가 뒤돌아 제온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빛은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온은 지금 이 모습이 진금호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의 영역을 넓히고 싶네. 겨우 네오 서울에 만족할 게 아니라 더 넓은 땅을 확보하고 싶네. 네오 서울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어. 더 이상 인구가 태어나도 수용할 수 없어.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지.”
진금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제 더 건물을 세울 땅도 없고, 수직으로 증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수용할 집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네오 서울 주위의 모래를 모두 치워 달라는 거면 저도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엄청난 양의 모래를 움직일 정도의 지배력은 없습니다.”
“알고 있네, 인간에게 그 정도의 힘이 가능했다면 이 땅이 이렇게 망가지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왜?”
“땅을 넓히는 것은 내가 할 걸세. 자네는 내게 필요한 물건 하나만 구해 주게. 그러면 내 자네의 편의를 봐주지.”
“편의라면?”
“자네에게 접근하는 골치 아픈 존재들을 다 처리해 주지.”
“동 구역이나 서 구역 같은 곳도 말입니까?”
“단언하건대 그들이 자네를 귀찮게 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 부탁만 들어준다면 말이지.”
“그럼 제가 시청에 들어와야 합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굳이 시청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네.”
“그건 흥미롭네요.”
제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설마 진금호가 이런 제안을 해 올 줄은 몰랐다.
진금호의 권력욕과 인재 수집욕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라고 제안할 줄 알았던 것이다.
“네오 서울에서 지낼 수 있는 집과 시민권도 주지. 원한다면 같이 사는 아이들의 시민권도 주겠네.”
“그렇게까지 하면서 저에게 부탁할 일이란 게 뭡니까?”
“마수 한 마리만 잡아 주게.”
“네?”
“내가 인간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진행해 온 프로젝트가 있네. 거기에 어떤 마수의 심장이 필요하네.”
“네오 서울에도 각성자가 많지 않습니까?”
“각성자는 많지만, 이놈을 잡을 수 있는 자는 자네밖에 없네.”
“그게 무슨?”
“놈의 이름은 모비딕일세.”
“모비딕?”
“모래 속에 사는 거대한 고래지.”
“그런 마수가 있었습니까?”
“패스파인더 1팀이 최근에 발견한 마수라네.”
네오 서울은 사람이 살 만한 땅을 찾기 위해 패스파인더 팀을 운용했다.
그중 1팀이 믿지 못할 보고를 해 왔다.
“길이만 무려 백이십 미터에 몸통 둘레만 삼십 미터가 넘는 초대형 마수라고 하더군.”
“믿기 힘들군요. 그렇게 거대한 마수라니.”
“나 역시 마찬가지라네. 믿기 힘들었지. 하지만 이런 증거물을 보내 왔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지잉!
그 순간 시장실 한쪽 벽이 열리더니 거대한 하얀 기둥이 나타났다.
“이건?”
“모비딕 이빨이라네.”
하얀 기둥처럼 보이던 물체가 사실은 육지 고래인 모비딕의 이빨이었던 것이다.
모비딕 이빨에서 엄청난 마나가 느껴졌다.
“음!”
“엄청나지? 그래서 나도 처음 이빨을 받았을 때 놀랐다네. 이빨에 함유된 마나의 순도가 너무 높아서.”
“정신이 다 아찔할 정도군요.”
제온이 솔직히 말했다.
이렇게 순도 높은 마나를 함유한 마수의 부속물은 본 적이 없었다.
마수의 본체에서 떨어진 부속물은 마나가 옅어지기 마련이었다.
“한낱 이빨 따위가 이렇게 엄청난 마나를 머금고 있는데 하물며 심장은 어떻겠는가?”
“모비딕의 심장으로 뭘 어쩌려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말해 줄 수 없군. 다만 내가 하려는 일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로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네.”
“…….”
“이놈은 샌드웜처럼 모래 속을 헤엄쳐 다니네. 그래서 일반적인 각성자들은 찾아낼 수도, 죽일 수도 없다네. 패스파인더 팀이 모비딕을 발견한 것도 운이 따라 줬기 때문이지.”
모비딕은 모래 속에 사는 고래였다.
고래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래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기에 굳이 모래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됐다.
그 때문에 패스파인더 1팀도 모비딕을 추적하다가 놓치고 말았다. 열흘 동안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발견한 것은 놈의 이빨뿐이었다.
“이 세상에 모비딕을 찾아내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모래술사인 자네가 유일해.”
“그래서 저를 찾은 거군요.”
“그렇다네.”
“제가 아무리 모래술사라고 하지만, 이 넓은 사막에서 모비딕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근처에 있다면 감지할 수 있겠지?”
“십 킬로미터 안쪽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럼 됐네. 언젠가 자네가 우연히라도 모비딕을 감지한다면 놈을 잡아 주게. 놈의 심장을 꺼내서 가져온다면 나는 만족하네.”
제온은 눈을 감았다.
진금호가 어디에 쓰려고 모비딕의 심장을 구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온에게 해가 되는 제안은 아니었다.
정말 모비딕이 고래와 같은 성질을 가졌다면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헤엄쳐 다닐 것이다.
평생을 찾아 헤매고 다녀도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진금호의 제안은 반드시 찾아내서 잡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라도 마주친다면 사냥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진금호가 제온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제온의 거절 따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