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진금호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온을 맞이했을 때의 미소는 거짓말처럼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태란은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그런 진금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진금호가 입을 연 것은 한참 후였다.
“참 재밌단 말이야.”
“네?”
“세상일 말이야. 뜬금없이 모래술사가 나타나다니.”
“아, 네!”
진금호가 몸을 돌려 서태란을 바라봤다.
“어때 보이던가?”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너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네!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것 같습니다.”
“나와 생각이 똑같군.”
진금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본 제온은 전형적인 강강약약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자상하다.
무모하거나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기에 그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 천안이 놈에겐 통하지 않더군.”
“그게…… 정말입니까?”
서태란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천안(天眼).
진금호의 주력 스킬 중 하나다.
샤오룬의 석회안처럼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스킬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위험했다.
천안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인과율을 대략적이나마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스킬을 펼친 채 상대를 보면 후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즉 내가 천안을 펼친 상대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이었다.
자신이 상대에게 개입하면 변수가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진금호는 될 수 있으면 상대에게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할 뿐이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진금호의 방침이었다.
“내 천안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데이오든이 유일했지. 이제 거기에 제온이 더해졌어.”
“그럼 제온이 데이오든 급의 강자란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
“음!”
“모래술사라는 클래스만으로도 경계해야 할 존재인데, 하물며 등급도 높은 모양이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제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처형 부대를 모두 움직이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랬다가는 겨우 조율한 인과율이 흔들릴 것이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지금의 흐름이 내 계획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말씀하십시오.”
“그러지.”
서태란의 말에 진금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후웅!
갑자기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순간 진금호와 서태란의 표정이 바뀌었다.
오직 시장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동이었다.
네오 서울의 모든 마법진과 결계는 시청에서 관리한다. 약간의 수치라도 변화가 있으면 정보가 즉각 시장실로 전달된다.
서태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오 서울의 항마력 수치가 또 낮아졌다는 통보입니다.”
“지하로 내려가자.”
“직접 보시겠습니까?”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웅!
엘리베이터가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순식간에 1층까지 도달한 엘리베이터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지하 이십 층.
네오 서울 사람들은 시청사가 지하 이십 층, 지상 오십 층. 총 칠십 층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시청사에 상주하는 이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시청사의 지하에는 그들이 모르는 공간이 존재했다.
지하 이십 층 한참 아래에 존재하는 은밀한 공간.
아는 자들 사이에선 발굴동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이십 층을 지나 한참을 더 아래로 내려갔다.
체감상 지상 오십 층을 올라가는 것보다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띵!
마침내 발굴동에 도달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두 사람 앞에 광활한 지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청사가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지하 공간은 거대했다.
네오 서울 지하에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지하 공간에 떡하니 놓여 있는 거대한 물체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족히 백오십 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괴물이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축 늘어진 한 쌍의 날개와 힘없이 감긴 눈. 머리에 솟아 있는 한 쌍의 거대한 뿔. 그리고 소금 사막의 모래처럼 새하얀 비늘.
괴물은 바로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순백의 화이트 드래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생명체가 네오 서울 지하 공동에 존재하고 있었다.
화이트 드래곤에게선 아무런 생명 징후가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놈은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진금호가 화이트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타뮬라스, 지구가 사막으로 변한 후 넘어온 여덟 마리 드래곤 중 하나.”
오래전 진금호는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다.
쿠라얀으로 통하는 거대한 차원의 문이 열리고 여덟 마리의 드래곤이 넘어오던 것을 말이다.
지구로 넘어온 드래곤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뿔뿔이 흩어져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중 한 마리가 북한산으로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진금호의 눈앞에 있는 화이트 드래곤 타뮬라스였다.
타뮬라스는 나이가 어린 드래곤이었다.
당연히 다른 드래곤들에게 비해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차원의 문을 통과하느라 힘을 거의 소진했기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아래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때 데이오든과 힘을 합쳐 놈을 잡았지.”
데이오든은 드래곤에 의해 처자식을 잃고 분노에 눈이 먼 상태였고, 진금호는 천안을 통해 타뮬라스를 잡아야만 인류에게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선택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반드시 타뮬라스를 잡아야만 했다.
두 사람의 주도하에 수많은 각성자들이 타뮬라스 사냥에 나섰다.
테라포밍의 부작용으로 각성자들이 이제 갓 등장하던 시기.
각성자들은 당연히 투쟁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뮬라스가 어린 드래곤이었다는 것이다.
타뮬라스 역시 경험이 적었고,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간이 그나마 많이 살아남았던 옛 서울 인근에 둥지를 트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어쩌면 그만큼 인간을 우습게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데이오든, 진금호가 이끄는 인간 각성자들과 타뮬라스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사흘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전투에 인간 측 각성자들 거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것은 데이오든과 진금호를 비롯한 소수의 각성자들뿐.
하지만 그들은 결국 타뮬라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승리였다.
진금호는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타뮬라스의 시체 위에 거대한 건물을 올렸다.
시청사 건물로 타뮬라스의 시체를 감추고, 건물들을 하나 둘 세웠다.
그것이 네오 서울의 시작이었다.
타뮬라스는 드래곤.
쿠라얀에서 넘어온 모든 마수들의 정점에 선 고귀한 존재였다.
비록 숨이 끊어졌어도 그 존재감만은 여전했다.
마수들은 타뮬라스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것이 비록 시체일지라도 말이다.
덕분에 네오 서울은 마수들의 습격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마수들이 접근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생존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면서 도시는 점점 커졌고, 중세 시대까지 떨어졌던 문명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사였다.
그런데 타뮬라스의 시체 주위엔 작업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작업대 위에서 일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거의 다 됐다.”
작업자들은 타뮬라스의 비늘을 떼어 내고 있었다.
타뮬라스의 비늘은 같은 크기의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면서도 다이아몬드보다 훤씬 강한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드래곤의 몸에서 떼어 내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비늘 한 장을 떼어 내기 위해 마법사, 연금술사, 기술자, 광부가 달라붙어 족히 한 달 이상 작업해야 했다.
그 때문에 드래곤의 비늘 한 장을 떼면 모두가 기진맥진할 정도였다.
비늘뿐만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살, 피, 뼈, 골수를 채취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타뮬라스의 사체는 그야말로 보물이었다.
버릴 것이 하나 없었다.
비늘은 방어구나 무기의 재료로 사용하고, 피는 의약품 원료로 가공된다. 조금씩 채취하는 골수는 불로불사를 탐구하는 재료가 됐다.
네오 서울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드래곤의 사체에서 채취되는 재료들 때문이었다.
시청사에 근무하는 연금술사, 마법사 들은 드래곤의 사체를 연구했고,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네오 서울을 발전시켰다.
그것이 네오 서울이 다른 콜로니와 달리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진짜 비밀이었다.
“문제는 드래곤의 사체에서 재료를 채굴하는 만큼 항마력이 빨리 소진된다는 건데…….”
타뮬라스의 사체에서 채취한 재료를 가공하는 그 순간 항마력은 사라진다.
최근 들어 네오 서울의 항마력이 약해진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들은 타뮬라스의 사체를 꾸준히 채굴했고, 그 결과 이제 멀쩡한 부분은 삼분지 일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삼분지 일마저 모두 채굴하고 나면 네오 서울의 항마력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네오 서울도 마수들의 습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얼마나 걸릴까?”
“예측한 바로는 삼십 년 정도면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그만큼 기술의 발전도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드래곤의 시체를 발굴하는 만큼 기술은 발전을 이루지만, 그만큼 네오 서울도 마수들의 위협에 노출되는 딜레마였다.
서태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발굴 속도를 늦추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늦었어.”
“…….”
“이미 흐름을 탄 이상 이대로 가야 해. 섣불리 멈췄다가는 오히려 더 큰 문제만 초래할 뿐이야.”
“제온이 모비딕의 심장을 구해 올 수 있을까요? 그게 없으면 천벌(天罰)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천벌은 완성될 거야. 제온이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만든 흐름에 편승할 수밖에 없으니까.”
진금호의 자신 있는 목소리가 거대한 지하 공간에 퍼져 나갔다.
***
“진금호!”
제온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거대한 시청사가 보였다.
진금호의 시선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잔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그만큼 진금호가 그에게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꼭 중갑을 장착하고, 창검으로 무장해야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없어도 본연의 강함만으로도 상대를 압박하는 존재가 있다.
진금호가 그런 존재였다.
네오 서울 전체가 그의 지배하에 있었다.
자신의 영역에서 굳이 무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순간 네오 서울의 모든 각성자가 출동할 테니까.
“모비딕의 심장을 구해 달라니. 도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는 거지?”
모비딕은 길이만 백이십 미터에 이른다.
드래곤이나 레비아탄만큼이나 큰 초거대 마수인 것이다.
덩치가 거대한 마수는 당연히 강대한 마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거대한 몸뚱이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수의 심장은 마나의 저장고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거대한 마수일수록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를 심장에 품고 있었다.
모비딕의 심장을 구해 달라는 것은 그만큼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제온은 진금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진금호가 말한 혜택 때문이 아니었다.
데이오든이 스치듯 한 말 때문이었다.
―언제고 진금호를 만나면 한 번쯤은 도와줘도 나쁘지 않을 거다. 방법이 과격하긴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살아남은 인간을 위한 거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이오든이 한 말이었다.
제온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바로 데이오든이었다.
그가 한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제온이 진금호의 제안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넓은 사막에서 언제 모비딕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