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제온은 바로 빈민가로 돌아가지 않고 네오 서울을 걸었다.
예전에도 네오 서울에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타지크를 처리하기 위한 정보 수집이 목적이었기에 제대로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제온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명목상 시청과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지만, 뚜렷한 경계선이 없기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제온은 자유롭게 네오 서울을 구경할 수 있었다.
네오 서울은 빈민가와 다른 세상이었다.
빈민가가 근대와 현대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면, 네오 서울은 확실히 현시대의 문명을 뛰어넘어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겨우 백 년 만에 이런 문명을 만들어 내다니.”
진금호는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도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금호가 네오 서울을 재건했기에 무려 이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마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남자의 집념과 의지가 빚어낸 기적을 제온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둘러봤다.
그때였다.
“어?”
“제온이다.”
갑자기 아이들의 목소리에 제온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미간에 골이 팼다.
마치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 자매.
바로 은수진과 은수영이었다.
“너희들이 왜?”
“우리가 묻고 싶은 얘긴데?”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빈민가에 있지 않고?”
그녀들이 제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제온이 순순히 대답했다.
“시장이 불러서.”
“뭐야? 그럼 제온도 시청 소속이 되는 거야?”
“넘버즈에 들어오는 거야? 그럼 같은 식구잖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왜?”
제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여긴 너무 깨끗하거든.”
“무슨 말이야?”
“모래가 없잖아.”
“아! 제온은 모래술사였지.”
시답지 않은 이유를 댔는데, 의외로 두 사람은 금방 납득했다.
제온의 머릿속에 침투해 모래술사라는 사실을 진즉 알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모래술사에게 모래가 없는 환경은 최악이라는 것을 알기에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중간에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넘버즈의 또 다른 일원인 고 노인이었다.
제온의 얼굴을 본 고 노인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발록을 같이 상대했기에 제온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시장님이 불러서 왔대.”
“시장이?”
고 노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넘버즈이기에 진금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누군가를 함부로 시장실에 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만한 가치와 용건이 있을 때만 대면을 허락했다.
“영입 제안을 하던가?”
“아닙니다.”
“그럼?”
“그냥 소소한 대화 몇 마디 나눴을 뿐입니다.”
“음!”
그렇지 않아도 주름살 가득한 고 노인의 얼굴에 더욱 많은 주름이 생겨났다.
‘시장이 겨우 아무 의미 없는 대화나 나누자고 저자를 불러들였다고? 개도 믿지 않을 소리군.’
분명 무언가 은밀한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 캐물을 수도 없었다.
진금호는 넘버즈에게도 개별적으로 임무를 준다.
다른 사람이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절대 알 수 없다.
쌍둥이 자매야 고 노인이 보호자 겸해서 같이 다니는 거라 같은 임무를 수행하지만, 다른 넘버즈들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제온에게도 무언가 제안을 했을 것이다.
그의 제안을 제온이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같이 식사나 하지 않겠나? 내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 맛있는 식당에서 대접하고 싶군.”
“좋습니다. 어차피 따로 갈 곳도 없으니까요.”
“그럼 같이 가세.”
고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쌍둥이 자매는 제온의 곁에 달라붙어 쫑알쫑알 떠들었다.
“제온은 언제 각성한 거야?”
“등급은 어떻게 돼?”
“언제까지 빈민가에 있을 거야.”
“친구는 있어?”
“머물 곳은 있어?”
쉬지 않고 이어지는 그녀들의 질문 공세에 제온은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고 노인이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들이 좀 시끄럽지? 자네가 이해하게. 원래 호감 가는 사람한테만 이러니까.”
“좀 귀찮긴 하네요.”
“자네가 이해하게. 난 몇 년을 이러고 살았으니까.”
“네!”
제온이 피식 웃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를 견제하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친구처럼 친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마냥 웃긴 것이다.
그 모습을 쌍둥이 자매가 봤다.
“어, 웃네!”
“제온도 웃을 줄 아는구나.”
“잘생겼다.”
“진짜 잘생겼어.”
그녀들의 목소리에 제온의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치고받고 싸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고 노인이 데려간 곳은 삼십 층 고층 건물의 최상부에 있는 꽤나 화려한 식당이었다.
식당 안엔 이미 많은 손님이 있었다.
손님들 모두 고급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중장갑을 착용한 각성자도 몇 명 보였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각성자가 절대 우위인 세상이었기에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우린 저쪽에 앉지.”
고 노인은 빈 창가 자리로 제온을 데리고 갔다. 그러자 지배인으로 보이는 자가 급히 다가왔다.
“손님, 그곳은 이미 예약이 된 자리입니다.”
“그 예약 취소하게.”
“그건…….”
“이래도 취소하지 않을 텐가?”
망설이는 지배인에게 고 노인이 슬쩍 신분증을 보여 줬다.
신분증을 본 지배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고 노인의 신분증에는 시청 고위 공무원을 뜻하는 시장 직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 직인이 찍힌 신분증은 네오 서울에서는 프리 패스나 다름없었다. 이 신분증을 가진 자는 제한 없이 어떤 시설이라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배인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그 자리는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음식은 최고급으로 세팅하게. 내 귀한 손님을 대접하러 온 것이니까.”
“물론입니다.”
“음!”
고 노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세상 소탈할 것 같은 고 노인이었지만, 그 역시 네오 서울의 정점에 있는 권력자 중 한 명이었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하고 즐길 줄 알았다.
고 노인이 제온에게 말했다.
“이곳의 송아지 스테이크가 정말 기가 막힌다네. 자네도 한번 맛보면 계속 찾아오게 될걸.”
“진짜 송아지 고깁니까?”
“당연하지. 배양육하고는 차원이 달라.”
“네오 서울 어디에서 소를 키우는 겁니까? 땅도 좁은데.”
“인간이 대단한 게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일세.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먹기나 하게.”
이곳을 처음 오는 자들은 모두 제온과 같은 생각을 한다.
세상이 모래로 변하고 난 후 소처럼 풀을 많이 먹는 동물들도 종말을 맞았다.
풀 자체가 나지 않으니 키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네오 서울 같은 도시도 소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떻게 소를 키울 방법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정말 요지경 같은 세상이군. 진짜 소를 키우다니.’
이 화려한 도시 어디에서 소를 키울 공간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 진짜 맛있어.”
“한번 맛보면 또 먹고 싶을걸.”
“벌써 침 고인다.”
“빨리 먹고 싶어.”
쌍둥이 자매가 탁자를 쿵쿵 치며 떠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슬쩍 바라보기만 했을 뿐 뭐라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이들 일행이 네오 서울에서도 꽤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잠시 후 고 노인이 주문한 송아지 스테이크가 나왔다.
새하얀 그릇에 담긴 송아지 스테이크는 보는 것만으로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고 노인이 제온에게 물었다.
“와인도 한잔할 텐가?”
“와인도 있습니까?”
“어디 와인뿐일까? 먹고 싶은 술이 있다면 뭐든지 말하게. 이곳에선 다 가능하니까.”
“권유는 감사합니다만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그럼 나만 한잔 마시지.”
고 노인은 지배인에게 와인 한 잔을 내올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와인까지 나오자 식사가 시작됐다.
서걱! 서걱!
그들이 앉은 자리에 고기 써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처음 맛본 송아지 스테이크의 맛에 제온이 눈을 크게 떴다.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키운 배양육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부드러운 식감과 안에 담긴 육즙이 천국이 이런 것이구나 하게 했다.
“어때? 괜찮지?”
“맛있네요.”
제온이 솔직히 대답했다.
고 노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마셨다.
“자네도 네오 서울에 들어와 살면 매일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야.”
“매일 먹기엔 부담되고, 가끔 오면 되겠네요.”
제온이 에둘러 고 노인의 제안을 거절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이런 음식에 길든다면 두 번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건 제온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지금 먹는 송아지 스테이크도 맛있었지만, 제온은 클렉시 영감이 해 주는 음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쨌거나 제온은 지금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조금씩 천천히 고기를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육즙이 혀를 즐겁게 했다.
이 순간만큼은 쌍둥이 자매도 떠드는 것을 멈추고 음식에 집중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음! 향이 좋군.”
고 노인은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며 향을 즐겼다.
그렇게 네 사람이 한참 식사에 집중할 때였다.
“뭐, 우리 자리가 없다고?”
“너, 죽고 싶어? 허락도 없이 예약을 캔슬 해?”
갑자기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각성자 두 명이 소란을 피우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지금 제온 등이 앉은 자리를 예약한 사람들로 보였다.
지배인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비켜! 어떤 새끼들이 감히 우리 자리를 차지했는지 면상을 보고 갈아 버릴 테니까.”
“별 거지 같은 것들이…….”
각성자들이 사나운 기세를 풀풀 풍기며 제온 등이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지배인은 더 이상 그들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사이 각성자들이 탁자 앞에 도달했다.
꽤 고위 각성자인지 하나같이 좋은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너희들이야? 우리 자리를 빼앗은 버러지들이.”
“노인네 하나, 애송이 하나, 애새끼 둘이네. 너희 뭐 하는 새끼들이야?”
고 노인이 그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희 자리 빼앗은 것은 미안하게 됐다. 보상은 충분히 할 테니 지금은 조용히 물러나거라.”
“뭐라는 거야? 이 미친 늙은이가.”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각성자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누군데 그러는가?”
“씨발! 우린 암흑 형제단 소속이다.”
“암흑 형제단? 그런 곳도 있었나?”
고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답을 준 이들은 쌍둥이 자매들이었다.
“서 구역과 남 구역의 경계 지역에 둥지를 튼 조직이야.”
“불법 도박장과 사창가가 그들의 주 수입원이야.”
순간 고 노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그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군.”
“뭐?”
“어차피 쓸어버릴 곳이었으니까 며칠 일찍 죽는다고 해도 억울해하진 말라고.”
“씨발! 뭐라는 거야? 이 미친 늙은이가…….”
듣다 못한 각성자가 커다란 주먹으로 고 노인을 내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딱!
고 노인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그들의 상체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결계로 그들의 상체만 가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최후였다.
상체를 잃은 하체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본 손님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살인이다.”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 노인이 말했다.
“식사는 나중에 마저 하지. 오늘은 암흑 형제단이란 곳을 치워야겠어.”
암흑 형제단에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