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마정석 광산으로 가는 여정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버기카 십여 대에 수송 차량 이십여 대가 한꺼번에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려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우우!
멀리서 화염 늑대 우두머리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족히 수백 마리는 넘을 것 같은 엄청난 무리였다.
화염 늑대는 공격성이 강하고 집요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자신의 영역에 대한 애착심이 강해 침범한 다른 존재를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화염 늑대 무리조차 마정석 광산으로 향하는 행렬엔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놈들도 아는 것이다.
페가수스 공략대를 건드렸다가는 씨몰살을 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고,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는 마수들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페가수스 공략대의 위용은 대단했다.
적어도 마정석 광산으로 가는 길목에 서식하는 마수들 중에 페가수스 공략대를 공격할 만한 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페가수스 공략대는 편하게 마정석 광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가?”
제온이 버기카에서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벌써 세 번째 오는 마정석 광산이다 보니 이젠 정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곳이 마정석 광산?”
“살벌하네.”
반면 브리엘과 레빈은 처음 보는 마정석 광산의 위용에 압도당했다.
용병으로 참여한 다른 각성자들도 두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페가수스 공략대처럼 경험이 많은 각성자들이 아니면 누구나 마정석 광산의 위용에 압도당하기 마련이었다.
성문이 열리고 서른 대나 되는 차량이 차례로 마정석 광산에 들어갔다.
마정석 광산에 던전 공략대가 들어오는 일은 매우 흔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규모 인원이 들어오는 일은 절대 흔한 게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마정석 광산에 상주하는 각성자들조차 놀라 바라볼 정도였다.
그때 마정석 광산에서 누군가 나와 이지령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그는 바로 서 구역의 차진철이었다.
차진철의 등장에 이지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병력은?”
“칠십 명 모두 숙소에 있네.”
“칠십 명?”
“왜, 수가 너무 적어서? 걱정하지 말게. 최하 C급 이상의 각성자로 구성된 정예니까. 적어도 페가수스 공략대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야.”
“그 약속 꼭 지키길 빌지.”
“걱정하지 말게. 그보다…….”
차진철이 말을 끊고 주위를 살폈다.
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제온이 있었다.
제온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경매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제온의 진가를 몰랐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차진철이 제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말을 건넸다.
“오래만이군.”
“그렇네요.”
“이번 던전 공략에 기대가 크네.”
“그런가요?”
“페가수스 공략대에 정식으로 들어간 건 아니지?”
“일단 용병으로 참여했습니다만?”
“잘 판단했군.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지.”
차진철이 미소를 지었다.
제온 때문에 이번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제온이 페가수스 공략대에 정식으로 들어갔다면 문제가 골치 아파진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서 구역으로 영입할 수 있었다.
그때 제온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그런데 허리에 걸린 그거, 혹시 화이트 베어 카라반 경매에서 얻은 물건입니까?”
“맞네! 옥지기의 포승줄이라는 아이템이지.”
차진철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몇 개의 아이템을 낙찰받았다.
다른 아이템들은 모두 서 구역의 창고로 들어갔고, 옥지기의 포승줄이라는 아이템만 남았다.
서 구역의 지배자인 김현수는 차진철에게 수고했다며 옥지기의 포승줄을 하사했다.
“비상시 사용하면 괜찮을 거 같아서 가지고 다니지.”
“그렇군요.”
“이게 마음에 들면 자네에게 줄 수도 있다네.”
“네? 아닙니다.”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말하게. 자네 정도의 능력자라면 서 구역은 언제든 아이템 창고를 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직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아직 자네가 젊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혼자서는 한계가 존재하네. 자네처럼 진귀한 능력을 가진 자는 우리 같은 세력 아래서 비호를 받아야 클 수 있는 걸세. 자네만 서 구역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총력을 다해 지원해 주겠네.”
차진철은 마치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그의 진짜 목표는 바로 제온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제온만 들일 수 있다면 던전 공략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 더 강압적으로 말을 하려 할 때였다.
“그쯤 하시죠.”
갑자기 웬 여자의 목소리가 잡음처럼 끼어들었다.
“감히!”
차진철이 자신의 말을 끊은 상대를 노려봤다.
상대는 웨이브 진 금발을 길게 늘어트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사파이어를 박은 것 같은 푸른 눈에 싱그러운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넌 누군데 우리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냐?”
“제 이름은 맨디 시스테인이에요. 시청에서 파견 나온 슈퍼바이저입니다.”
“슈퍼바이저? 너 따위 애송이가…….”
“그래도 직급이 있으니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 주시죠.”
맨디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박따박 말하는 모습에 차진철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겁 모르는 애송이를 당장에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직급이 걸렸다.
시청에서 파견하는 슈퍼바이저는 결코 녹록한 존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슈퍼바이저가 잘못되면 시청에선 반드시 책임을 물어 온다.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어마어마하기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절대 슈퍼바이저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큿! 다음에 다시 보지.”
결국 차진철이 먼저 물러났다.
“이곳에서 합류한다던 슈퍼바이저가 당신이었습니까?”
“어쩌다 보니 제가 오게 됐네요. 어쨌거나 잘 부탁드릴게요.”
맨디가 제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또 다른 인격인 엘로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숙소를 먼저 잡아 놨어요. 같이 가시죠.”
“그러죠.”
그때 브리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하프 엘프!”
“약쟁이 엘프, 너도 왔구나.”
“반쪽짜리가…….”
“그래 봤자 약쟁이 주제에…….”
두 엘프는 만나자마자 으르렁거렸다.
“자 자, 두 사람 다 진정하시고…….”
중간에서 레빈이 땀을 뻘뻘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제온이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험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인간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한 엘프였다.
직접 부딪쳐 싸워 봐야 손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옥지기의 포승줄이라니.’
제온은 차진철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포승줄을 떠올렸다.
데미안이 경매에 내놓았던 물건이었다.
유독 제온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놈이다.
옥지기의 포승줄에서는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런 물건을 차진철이 소유하고 있었다.
제온은 그에게 경고해 줄까 하다가 말았다.
차진철의 성격으로 미뤄 보아 자신이 경고한다고 들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단단히 봉인된 거 같으니 별일은 없겠지.’
***
조용할 거라는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 마정석 광산의 밤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들어오면 특히 더 소란스러워졌다.
“거기, 잘생긴 오빠 이리 와.”
“아저씨, 오늘 화끈하게 놀다 가.”
“호호호!”
마정석 광산에 상주하고 있는 창녀들이 모두 나와 각성자들을 유혹했다.
속살이 거의 다 보이는 아슬아슬한 옷차림을 한 채 손짓하는 창녀들의 모습에 각성자들의 눈이 뒤집혔다.
“씨발! 까짓것 놀자.”
“당분간 모래만 실컷 먹을 텐데, 오늘 원 없이 먹어 보자.”
“어머! 짐승.”
“꺄르르!”
유혹에 넘어간 각성자들이 창녀들을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은 오랜만의 대목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술에 취해 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이지령과 차진철은 수하들의 일탈을 용납했다.
본격적인 던전 공략에 나서면 욕구를 풀고 싶어도 풀 수 없다.
조일 땐 강하게 조이더라도, 풀어 줄 때는 또 확실하게 풀어 줘야 했다. 그것이 수하들의 일탈을 용납한 이유였다.
“마정석 광산이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어? 잠을 잘 수가 없네.”
브리엘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맨디가 말했다.
“오늘 하루뿐이니까 참고 자는 게 좋을 거야.”
“이런 상황이 익숙한가 봐?”
“나야 인간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너도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뭘 익숙해져? 난 언젠가 네오 서울을 떠날 테니까 그럴 필요 없어.”
“잘도 가능하겠다.”
“무슨 말이야?”
“너희 마을에서 다시 받아 주겠어? 마약 냄새가 그렇게 깊이 배어 있는데.”
“그건…….”
“네가 아무리 중독에서 벗어나도, 몸에 밴 그 냄새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맨디의 말에 브리엘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엘프들의 감각은 인간보다 몇 배나 예민했다. 후각 또한 그랬다. 당연히 은은하게 몸에 밴 마약 냄새를 구별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엘프는 그래도 동료를 받아들이지만, 하이 엘프는 달랐다.
스스로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하이 엘프들은 더럽혀진 동료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상태의 동료만 인정하는 것이다.
하물며 브리엘은 무려 마약에 중독되었었다.
고귀한 하이 엘프들은 절대 그녀를 다시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순수함이야말로 하이 엘프의 정체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인간 세상에 살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왜 인간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 압도적인 문명을 이룰 수 있었는지 말이다.
순수한 것은 생존에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앞으로 나가려는 의지였다.
그런 면에서 하이 엘프들은 많이 부족했다.
그런 그들이 마약에 찌들었던 브리엘을 다시 받아 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아!”
브리엘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며 맨디가 생각했다.
‘괜히 말했나?’
하지만 누군가는 말해 줘야 했다.
그녀 자신이 하프 엘프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의 심정을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없다.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 결정의 순간은 온다.
인간으로 살아야 할지, 엘프로 살아야 할지 말이다.
맨디는 엘프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기에 평소 엘로이가 아닌 맨디의 인격으로 존재했다.
그편이 인간 세상에 적응하는 데 수월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언젠가는 결정해야 한다.’
브리엘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맨디가 괜히 제온과 레빈을 바라봤다.
그 순간 레빈이 일어섰다.
“제가 따라갈게요.”
그는 브리엘을 쫓아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맨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괜한 말을 한 걸까요?”
“조금 이른 것 같기는 하네요.”
“그래도 해 줘야 했어요. 그녀는 나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많이 고생했나 보군요?”
“말이 좋아 하프 엘프지, 인간에게서도 이방인 취급 받고, 같은 엘프들에게는 잡종 취급을 받죠. 평생을 네오 서울에서 살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이방인이죠.”
그녀의 목소리엔 쓸쓸함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