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브리엘은 마정석 광산을 둘러싸고 있는 돌산 중턱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선 도시 내부가 환히 보였다.
화려한 불빛 아래 휘청이며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사람들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미친 듯이 오늘을 즐겼다.
이곳까지 풍겨 오는 강렬한 욕망의 냄새가 브리엘의 뇌리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았지만, 처음 인간 세상에 납치되어 왔을 때만 해도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쉴 때였다.
“땅 꺼지겠다. 꼬맹아!”
등 뒤에서 레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브리엘이 바라보자 레빈이 숨을 고르며 허리를 폈다.
브리엘을 찾느라 마정석 광산을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 어떻게 찾아냈대?”
“왜 왔어?”
“그럼 꼬맹이가 뛰쳐나갔는데 그냥 놔둬?”
“내 몸 하나는 충분히 지킬 수 있거든.”
“알아.”
“그런데 왜?”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서로 지켜 줘야지.”
“가족?”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브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같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가족은 오직 하이 엘프들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 살고, 매일 보고, 서로 챙겨 주고……. 그게 가족이 아니면 뭐야?”
“가……족.”
울림이 큰 단어였다.
브리엘은 눈을 감고 몇 번이나 가족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레빈은 그런 브리엘을 말없이 지켜봤다.
바람이 불어왔다.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브리엘이 후련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됐어. 이제 가자.”
“어?”
“가자고.”
“으응!”
브리엘은 싱긋 웃으며 걸었다.
‘지금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잖아. 지금은 이곳이 내 집이고, 이들이 내 가족이야. 현실에 충실하면 돼.’
브리엘은 제온이 좋았다.
처음엔 맹약으로 엮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온이 좋아졌다.
이성 간의 감정이 아니었다.
제온이라는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에 빠진 것이다.
언젠가는 헤어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 때문에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돌산은 매우 가파르고 험했다.
올라올 때는 몰랐지만, 내려가려니 가파른 경사가 실감 났다.
레빈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이 돌산 안에서 마정석을 캔단 말이지?”
“어떻게 사막 한가운데 이렇게 돌산이 홀로 우뚝 서 있을까?”
“원래 네가 살던 곳엔 이런 산이 없었어?”
“전혀! 보이는 모든 곳이 모래였어. 엘프들이 살 만한 땅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고.”
“힘들었겠네.”
“거기 있을 때는 힘들었다는 생각도 못 했어. 모두 모래에 적응해서 살았으니까.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못 갈 거 같아.”
“왜?”
“도시에 익숙해졌으니까. 전기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못 하겠어.”
“푸핫!”
브리엘의 대답이 의외였기에 레빈이 폭소를 터트렸다.
“왜?”
“아니, 나도 동감이라서 말이야.”
“그치? 전기도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할 수만 있다면 내 고향에도 마정석으로 전기를 추출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어.”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언젠가 서로에 대한 증오가 조금 옅어지면 왕래를 하지 않겠어? 그럼 마정석에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방법도 알려 줄 수 있겠지.”
“와! 지금 레빈 뭔가 어른 같았어.”
“으이구! 당연히 너보단 어른이지. 꼬맹아!”
레빈이 브리엘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브리엘이 고개를 움츠리며 혀를 내밀었다.
‘그래도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다행이네.’
레빈이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웬 남자 하나가 레빈의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이십 대 중후반의 남자였다.
겉보기엔 평범한 광부 같았다.
실제로 그는 광부들이 입는 복장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었다.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곳은 마정석 광산이었고, 광부들이 상주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광부가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레빈은 광부에게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레빈이 광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신이 왜 이런 위화감을 느끼는 건지 이유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말을 하다 말고 엉뚱한 남자를 바라보는 게 이상했는지 브리엘이 눈을 끔뻑거렸다.
“왜 그래?”
“어, 그게…….”
그때 광부가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레빈이 인파 사이에서 광부를 찾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놓쳤나?”
“왜 그러는데?”
“그게 이상해서.”
“뭐가?”
“옷차림은 광부였는데, 행동거지는 광부 같지 않았어.”
그제야 레빈은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대개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면 그에 걸맞은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거지는 음울하면서 염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게 당연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자는 당연히 지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데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광부는 전혀 광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된 노동의 흔적도 없었고, 옷도 너무 깨끗했다.
또한 평범한 광부라기엔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마치 처음 이곳에 온 사람처럼 말이다.
‘누구지?’
별거 아닌 걸 수도 있었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레빈은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
“어우! 그 새끼 뭐지? 뭔가 눈치챈 건가?”
광부 차림의 남자가 뒷골목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나도 다 됐네. 꼬맹이한테 걸릴 뻔하고.”
“무슨 말이지? 걸릴 뻔하다니?”
갑자기 남자의 등 뒤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억! 깜짝이야.”
남자가 경기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바로 코앞에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서 있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접근한 것이다.
만일 여자가 적이었다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씨발! 제발 기척 좀 내고 다니라고 몇 번을 말했냐?”
“암살자가 소리를 내면 자격 상실이지.”
“내가 암살 대상이냐? 난 동료잖아. 동료!”
“그래서 들켰다고?”
“아니! 안 들켰어. 그냥 웬 꼬맹이가 자꾸 쳐다봐서 마음에 걸렸던 것뿐이야.”
“진짜지?”
“나 못 믿어? 나 아슬란이야. 잠입의 귀재 아슬란이라고.”
“잠입의 귀재가 꼬맹이의 레이더에 걸린다고?”
“안 걸렸다니까.”
결국 남자, 아슬란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럼에도 로브를 눌러쓴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래서 정보는?”
“어! 다 수집했어.”
“그럼 나가자.”
“더 있다 가면 안 돼? 이렇게 즐길 거리가 많은데 왜 벌써 나가려고 해?”
“오래 머물수록 들킬 확률이 높아진다. 이미 웬 꼬맹이의 눈에 띄었다고 하지 않았나?”
“안 들켰다니까.”
“가자!”
“씨발! 사람 말 좀 들어라. 놀다 가자니까.”
“정 남겠다면 나 혼자 나가지.”
“에이! 그럼 나는 어떻게 빠져나가라고?”
“내 알 바 아니다.”
“아, 피도 눈물도 없는 년. 그래, 가자. 가!”
결국 아슬란이 항복했다. 그러자 여자가 아슬란을 사뿐히 안아 들며 말했다.
“간다. 꽉 잡아.”
“헤헤! 꽉 잡았다.”
아슬란이 헤실헤실 웃으며 여자를 꽉 끌어안았다. 얼굴과 팔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이 치솟던 분노를 잠재웠다.
로브 속에 가려진 여자의 육체는 무척이나 풍만했다.
남자라면 치욕적일 수 있는 공주님 안기에도 아슬란이 분노하지 않는 이유였다.
아슬란을 안은 여자의 몸이 투명해졌다.
그것이 여자의 각성 능력 중 하나였다.
투명화.
비록 잠시뿐이지만, 자신과 접촉한 물체를 투명하게 만들어 시야에서 벗어나는 능력이었다.
여자는 투명화 능력으로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성벽 앞에 도착한 여자가 로프를 날렸다.
로프는 채찍처럼 뻗어 나가 성벽 위 기둥을 휘감았다.
여자는 로프를 끌어당기며 성벽 위로 몸을 날렸다.
성벽 위에는 각성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누구도 여자의 등장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또한 여자의 각성 능력이었다.
여자는 각성자들의 눈을 감쪽같이 속인 후 사막 쪽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여자는 사막의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
레빈과 브리엘은 숙소로 돌아왔다.
맨디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 자고 있었고, 거실에는 제온이 혼자 있었다.
제온이 브리엘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내일 먼 길을 가야 하니 얼른 들어가서 자.”
“응! 그럴게. 제온도 어서 들어가.”
“어!”
“안녕!”
브리엘은 해맑은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온이 레빈에게도 말했다.
“수고했어. 너도 들어가서 쉬어.”
“형, 그런데…….”
“왜?”
“아까 좀 이상한 사람을 봐서.”
“응?”
“사실은…….”
레빈은 아까 보았던 광부에 대해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네.”
“그쵸?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죠?”
“마정석 광산에 있는 광부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을 때 절대 밖에 돌아다니지 않아.”
마정석 광산에서는 광부들을 가혹하게 굴린다.
낮이고, 밤이고 체력만 된다면 갱도에 투입하는 것이다.
중노동에 지친 광부들은 밖으로 나오면 휴식을 취하기 바쁘다.
이렇게 각성자들이 많이 들어왔을 때는 특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괜히 각성자들과 시비라도 나면 손해 보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뭘까요? 분명 광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글쎄.”
“에이! 모르겠다. 저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레빈마저 방으로 들어가고 제온 혼자 남았다.
제온은 레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정석 광산에 어울리지 않는 광부라…….”
다른 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빈이 한 말이라서 더 신경 쓰였다.
레빈은 평범한 소년이 아니었다.
가족을 죽인 살인마를 추적하면서 쌓은 경험과 눈썰미, 기억력이 남달랐다.
그런 레빈이 이상하게 느꼈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던전 공략행은 쉽지 않겠군.”
동원된 각성자만 사백 명 가까이 되고, 차량이 서른 대가 넘는다.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원정대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데 감히 누가 덤빌까 싶지만, 세상에는 상식을 부정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마정석 광산에서 발굴할 던전까지의 거리는 삼백 킬로미터가 넘는다.
그 정도 거리는 며칠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막의 가혹한 환경은 그렇게 쉽게 가도록 놔두지 않는다.
사람을 괴롭히는 환경엔 태양, 모래, 마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도 그중 한 요소였다.
“사실 인간이 가장 무섭지.”
무려 팔 년을 사막에서 살았지만, 제온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마수가 아니라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