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
17화
가웨인의 두 주먹에 오러가 어리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오러는 클레잉이나 마시모토에 비할 수 없이 강렬하고 화려했다. 그들보다 등급이 더 높다는 증거였다.
그의 등급은 제온보다도 한 단계 더 높았다.
순수 능력치로만 따지면 제온은 절대 그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사막이었다.
사막 전체가 그의 무대이자 화폭이었다.
이곳에선 그가 원하는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슈우우!
사방에서 모래 벽이 불쑥 올라와 제온을 보호했다. 하지만 모래 벽은 이내 가웨인의 주먹에 부서졌다.
제온은 당황하지 않고 샌드 미사일을 펼쳤다.
조금 전 클레잉을 죽인 그 수법이었다.
“어림없다.”
가웨인이 주먹을 휘둘러 샌드 미사일을 부숴 버렸다.
조금 전 클레잉이 죽는 것을 보며 이미 제온의 공격 방식을 파악한 것이다.
“뒈져랏!”
순식간에 샌드 미사일을 무력화한 가웨인이 제온 앞에 도달했다. 그는 커다란 주먹을 제온에게 휘둘렀다.
“흐읍!”
그때 기합과 함께 제온이 가웨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온의 발밑에 커다란 구덩이가 순식간에 만들어지며 빨아들인 것이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가웨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가웨인의 발밑에서 제온은 샌드 미사일을 닥치는 대로 쏴 올렸다.
퍼버버버벙!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가웨인의 몸이 들썩였다.
“크으으!”
가웨인이 몸을 잔뜩 웅크리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그는 D급 각성자답게 강한 내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오러로 전신을 강화시켜 보호했다.
그 때문에 무차별적인 샌드 미사일의 폭격 속에서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무차별 폭격을 받는다면 반격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가웨인이 이를 악물었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우워어어!”
그가 괴성을 내지르며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쩌어엉!
모래 바닥에 주먹이 작렬하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의 스킬인 쇼크 웨이브가 발동한 것이다.
충격파는 일대의 모래를 완전히 뒤집어 놨다.
제온이 숨어 있는 구덩이도 쇼크 웨이브를 피할 수는 없었다.
“크으!”
충격파에 제온의 뇌가 진탕되었다.
고막과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예상치 못한 가웨인의 반격에 제온이 비틀거렸다.
가웨인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끝이다. 애송이!”
그가 제온을 향해 쇼크 웨이브를 펼쳤다.
정통으로 가격당하면 제온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야아!”
그 순간 제온의 고함과 함께 주위에 있던 모래가 그대로 구덩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래더미는 파도처럼 가웨인과 제온을 덮쳤다.
모래가 강타하며 가웨인의 쇼크 웨이브가 취소됐다.
“크윽!”
졸지에 모래에 생매장당한 가웨인이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온몸을 짓누르는 막대한 양의 모래.
가웨인은 주위에 제온이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제온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래 구덩이를 빠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쥐새끼 같은…….’
가웨인이 치를 떨며 몸을 일으켰다.
퍼엉!
쇼크 웨이브를 펼치자 그를 덮고 있던 막대한 양의 모래가 터져 나갔다.
가웨인이 제온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며 모래 구덩이 위를 경계할 때였다.
푸욱!
갑자기 하반신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뭐……야?”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십여 개의 가시가 그의 하반신과 복부를 교차로 관통하고 있었다. 모래로 만든 가시들이었다.
위에서의 기습만 대비했지, 정작 그가 들어 있는 구덩이 안에서의 공격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제온이 빠져나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구덩이 바닥에서 제온이 몸을 일으켰다.
“크헉! 너?”
가웨인이 피를 토하며 제온을 바라봤다.
설마 제온이 그의 감각을 감쪽같이 속인 채 구덩이에 숨어 있을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모래를 자유자재로 다를 수 있는 능력은 하나밖에 없었다.
“너, 설마 모……래 각성자인가?”
“네!”
“미친! 그런 사기적인 능력을 각성하다니. 쿨럭!”
가웨인이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그 순간 제온이 지배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가웨인의 몸을 관통했던 모래 가시들이 무너져 모래알로 돌아왔다.
몸을 지탱해 주던 모래 가시들이 사라지자 가웨인도 무너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긴장이 풀린 제온이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실 가웨인을 공격한 마지막 스킬은 임기응변이었다.
목숨이 위기에 처한 그 순간 즉흥적으로 떠오른 방식인 것이다.
모험이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본능을 믿고 따랐다.
구덩이 밖으로 탈출하는 대신 가웨인의 발밑에 숨고, 모래로 존재감을 감췄다.
만에 하나라도 가웨인이 눈치채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쇼크 웨이브를 맞으면 제온의 목숨은 순식간에 날아갔을 터였다.
“하아! 하아!”
제온이 거친 숨을 몰아쉴 때였다.
“개새끼야!”
“죽엇!”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스캐빈저들이 기습했다.
제온이 깜짝 놀라 바라봤을 때는 이미 그들의 무기가 몸에 닿기 직전이었다.
피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제온이 죽음을 떠올린 그때였다.
슈우웅!
무형의 기운이 제온의 머리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푸화학!
제온을 공격하던 스캐빈저들이 무형의 기운에 두 동강이 나서 떨어졌다.
그들이 흘린 피가 제온을 덮쳤다.
“아!”
제온이 그들의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입만 뻐금거렸다.
그런 그의 귀에 데이오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적이 남아 있는데 방심하다니.”
제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욕을 들어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직 멀었다, 병신아!”
데이오든의 욕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거둬들였다.
크레이온으로 오러를 날려 제온을 기습하던 적들을 모조리 베어 버린 것이다.
수십 미터 밖으로 오러를 날린 데이오든의 실력은 실로 가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파빌사가 놀란 것은 데이오든이 아닌 제온 때문이었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맙소사! 모래를 다루는 각성자라니?”
오랜 세월을 사막을 떠돌며 많은 각성자를 만났지만, 단 한 번도 모래를 다루는 각성자는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런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
파빌사가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데이오든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마무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한 제온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어쩐지 저 괴물이 데리고 다닌다고 했더니.’
이제야 데이오든이 제온과 동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막화된 세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모래술사였다.
비록 이제 능력을 개화해 위력이 생각보다 약했지만, 발전할 가능성만큼은 무한했다.
스캐빈저들을 모두 처리한 제온이 아르켈론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한 번의 싸움을 위해 제온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상상력, 마나, 육체의 에너지 한 방울까지도 모두 쥐어짜 냈다.
마수와의 싸움도 힘들지만, 인간과의 싸움은 더 힘들었다.
“후!”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아르켈론에 올랐다.
“고생했다.”
“수고했어.”
파빌사와 케일리가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정작 데이오든이 보이지 않았다.
“데이오든은요?”
“안에 들어갔다. 눈이 썩을 것 같다면서…….”
“하아!”
제온이 한숨을 내쉬자 파빌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 너는 충분히 잘 싸웠다.”
“네!”
“고생했으니 너도 들어가서 쉬어라.”
그가 케일리에게 고갯짓을 했다.
케일리가 제온에게 다가왔다.
“가자! 거처로 안내해 줄게.”
“고맙습니다.”
제온은 거절하지 않고 케일리를 따랐다.
그녀가 안내해 준 것은 구석진 곳에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여기서 쉬고 있어. 간단한 요깃거리 갖다줄게.”
“네!”
케일리는 제온을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갔다.
제온은 돌로 만든 침대에 앉아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덜덜!
마치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오늘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비록 그들이 스캐빈저라고 하지만, 그와 똑같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같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신에 상당한 고통을 줬다.
이전에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와중에 우발적으로 죽인 거였고, 지금은 철저한 계획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만큼 자책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극복해야겠지?”
제온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까지 자책할 수 없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죄책감 따윈 버려야 한다.
어차피 남을 짓밟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제온도 그런 세상의 법칙을 일찍이 터득했다.
“후!”
떨리던 손이 급속도로 진정됐다.
그제야 조금 전의 싸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제온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스캐빈저들과의 싸움을 복기했다.
***
파빌사는 노크도 없이 데이오든이 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데이오든은 무릎 위에 크레이온을 올려둔 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파빌사가 말을 걸었다.
“크레이온이 변했군.”
“화염 드레이크의 심장에 벼렸다.”
“크레이온에 화염 속성을 부여한 건가? 진짜 해볼 생각인가 보군.”
“백 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내 목표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후우! 백 년이면 모든 것을 망각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거늘.”
파빌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고 치부하며 애써 그날의 기억을 묻어 뒀다.
대신 모트 일족의 보호와 번영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그가 일족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데이오든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아왔다.
그런 행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파빌사가 아는 사람 중에선 데이오든이 유일했다.
그래서 바보 같고, 또 존경스러웠다.
파빌사가 말했다.
“크레이온을 다오.”
“…….”
“그 상태로 쓰면 오히려 크레이온이 상할 걸세. 애들을 시켜 안정시켜 주지.”
화염 드레이크의 심장은 엄청난 화기를 머금고 있었다.
가히 살아 있는 용광로라 할 만했다. 그런 화염 드레이크의 화기를 흡수했으니 크레이온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지금 안정시켜 주지 않으면 강도가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데이오든이 파빌사에게 크레이온을 건넸다.
크레이온을 받는 순간 파빌사의 몸이 휘청였다. 그만큼 크레이온의 무게는 엄청났다.
이것이 데이오든이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였다.
이런 검을 들고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백 년을 살아온 남자.
그가 바로 데이오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