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키에에!
시작은 이름 모를 마수의 포효였다.
놈의 포효를 시작으로 전갈을 닮은 마수들이 습격했다.
놈들의 등껍질엔 귀신을 닮은 문양이 있었다.
“귀신 전갈이다.”
“꼬리의 침을 조심해. 찔리면 즉사야.”
페가수스 공략대의 각성자들은 단번에 마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귀신 전갈은 트윈 헤드 버팔로처럼 무리를 지어 사는 마수들이었다.
놈들은 사막 지하에 자신들만의 미로를 만들어 무리 짓는다.
귀신 전갈의 침엔 모래를 굳게 만드는 효능이 있었다.
마치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것이다.
귀신 전갈은 모래를 파고 벽에 침을 뿌려 굳건하게 만든다. 그렇게 영역을 확장해 지하 전체를 미로처럼 만들어 버린다.
일단 그렇게 미로 같은 둥지가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수가 불어난다.
귀신 전갈 한 마리가 보이면 근처에 수백 마리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지령이 뇌전을 발산하며 소리쳤다.
“게슬링! 어떻게 된 거야? 이 근처에 귀신 전갈의 둥지가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던전을 찾아왔을 때는 분명 없었습니다.”
게슬링이 귀신 전갈을 죽이며 대답했다.
게슬링은 탐사팀의 팀장이었다.
지금 가고 있는 던전도 그가 이끄는 탐사팀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때 이곳을 지났을 때는 분명 귀신 전갈의 둥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귀신 전갈을 봤다면 다른 길로 일행들을 이끌었을 것이다.
“게슬링의 말이 맞습니다. 그때는 귀신 전갈 한 마리 보지 못했습니다.”
같은 탐사팀원인 맥나인이 게슬링의 말에 힘을 실어 줬다.
이지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그 후에 귀신 전갈이 자리를 잡은 건가?”
탐사팀이 던전을 탐사한 후 몇 달이 지났다.
그사이 귀신 전갈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렇다고 보기엔 귀신 전갈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귀신 전갈의 수가 무려 수백 마리가 넘었다.
이 정도 무리라면 마수들 중에서도 대군에 속했다.
“설마 여왕이 탄생한 건가?”
그렇다면 말이 된다.
드물게 탄생하는 여왕은 귀신 전갈 수십 마리를 한 번에 출산하니까 말이다.
이지령이 외쳤다.
“모두 조심해. 분명 이 근처에 귀신 전갈 여왕이 있을 거다.”
“네!”
“오케이! 대장.”
각성자들은 단단한 스크럼을 짠 후 귀신 전갈과 맞서 싸웠다. 그래도 희생자가 나왔다.
“크악!”
“컥!”
귀신 전갈의 독침에 찔린 각성자들이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독침에 찔린 자리가 시커멓게 변색되더니 금세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끄아아!”
“사, 살려 줘!”
귀신 전갈의 독에 중독된 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씨발!”
“누구 포션 가진 사람 없어?”
그때 고깔모자를 쓴 소녀가 나섰다.
브리엘이었다.
그녀가 귀신 전갈의 독침에 찔린 각성자들에게 포션을 조금씩 먹였다. 그러자 각성자들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아! 하아!”
“살……았다.”
브리엘이 복용시킨 포션은 바로 직접 만들어 낸 해독 포션이었다.
아직 빈민가에서만 유통될 뿐 네오 서울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브리엘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들이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꼬마야! 이 은혜는 반드시 갚으마.”
“흥! 은혜는 갚지 않아도 되니 다시 싸우기나 해.”
브리엘이 그들을 다시 전장으로 내몰았다.
그때 레빈이 브리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거 해독 포션 맞지? 너도 도깨비 시장에서 구한 거야?”
“바보!”
“어? 왜 또?”
“그거 내가 만든 거야.”
“뭐?”
“해독 포션, 내가 만든 거라고.”
“진짜?”
레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꽤 멍청하면서도 웃겨 보였기에 브리엘이 피식 웃고 말았다.
“도깨비 시장에 유통되는 해독 포션 내가 만든 게 맞아.”
“몰랐어. 우와! 너 진짜 대단하구나.”
“이제 알았어? 내가 그렇게 대단한 엘프라고.”
브리엘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때 켈다가 브리엘에게 다가왔다.
브리엘이 해독 포션으로 수하들을 살리는 모습을 본 것이다.
“혹시 해독 포션 여유 있나요?”
“몇 개 가지고 있어.”
“저희에게 전부 넘겨주세요. 값은 충분히 쳐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귀신 전갈의 독침에 찔린 이들을 서둘러 치료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고 만다.
현재로서는 브리엘이 가지고 온 해독 포션밖에 치료 수단이 없었다.
브리엘은 흔쾌히 해독 포션을 내놨다.
“모두 열 개야. 한 병당 다섯 명 정도 치료할 수 있어.”
“고마워요.”
켈다는 해독 포션을 가지고 급히 쓰러진 자들에게 달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포션을 복용시켜야 목숨을 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행히 늦지 않게 해독 포션을 복용한 이들은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신 전갈 집게에 당한 자들의 목숨은 구할 수 없었다.
집게에 잡힌 이들은 전신이 갈가리 찢겨 나갔기 때문이다.
죽여도 죽여도 귀신 전갈은 끝없이 기어 나왔다.
이대론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제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귀신 전갈들이 기어 나오고 있는 구멍이었다.
쿠르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여왕이군.’
부하들이 죽어 나가자 참다못한 여왕이 직접 나선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제온이 암암리에 모래를 움직였다.
일대의 모래가 소리도 없이 구멍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촤아아!
구멍을 가득 채운 모래는 무서운 속도로 치달리다가 귀신 전갈 여왕과 맞닥트렸다.
콰가가가!
고압의 모래가 귀신 전갈 여왕의 갑각을 갉아 냈다.
키에에!
귀신 전갈 여왕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명색이 B급 마수였다.
당연히 역장을 두르고 있었다.
어지간한 물리 공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든든한 보호막이었지만, 비좁은 동굴 속을 가득 채운 채 쏘아지는 모래엔 소용이 없었다.
퍼억!
귀신 전갈 여왕의 눈이 터져 나갔다. 터진 눈으로 모래가 침투했다.
모래는 귀신 전갈의 눈, 뇌, 식도, 심장 등을 차례로 공격했다.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모래 공격에 귀신 전갈 여왕이 경련을 일으켰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크레모아.’
콰앙!
순간 귀신 전갈 여왕의 체내 외에 있던 모래가 일제히 폭발했다.
귀신 전갈 여왕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폭사했다.
여왕이 죽자 그렇게 격렬하게 인간을 공격하던 귀신 전갈들이 우왕좌왕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야? 도망가는 거야?”
“살았다.”
귀신 전갈들이 왜 도주하는지도 모르고 각성자들이 환호했다.
제온이 귀신 전갈 여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는 이지령과 차진철을 포함한 소수에 불과했다.
‘사막에서 모래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능력이라니. 정말 사기가 따로 없군.’
‘등급이 어떻게 되기에 귀신 전갈 여왕을 저렇게 손쉽게 제거하는 거지?’
각성자의 등급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손목에 새겨진 계급장을 확인하는 것.
어떤 이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계급장을 내놓고 다니지만, 생각이 깊은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계급장을 철저하게 가린다.
이지령도 보호대로 팔목을 가렸고, 차진철 역시 긴 소매로 계급장을 완벽하게 감췄다.
그런 상대의 계급장을 보려면 제압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온이 쉽게 당해 줄 리도 없을뿐더러, 이곳은 그의 영역인 사막이었다.
그가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모래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제온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제온과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싸우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훨씬 유리한 환경을 골라야 했다. 적어도 이렇게 모래밖에 없는 사막은 아니었다.
한편 제온은 귀신 전갈 여왕에게서 마정석이 나왔는지 은밀히 살폈다. 하지만 어디서도 마정석은 감지되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번엔 나오지 않은 모양이군.’
모든 마수들이 마정석을 품은 것은 아니다.
등급이 높은 마수임에도 마정석이 나오지 않는 녀석들도 다수 있다.
이번 경우처럼 말이다.
제온은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섰다.
페가수스 공략대는 난장판이 된 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아쉽군! 이놈들의 껍질로 방어구를 만들면 좋은 놈이 나올 텐데.”
“실을 곳도 없잖아. 아쉽지만 버릴 수밖에.”
수송 차량을 수십 대나 끌고 왔지만, 그곳에 마수의 사체를 실을 공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마수의 사체를 실어도 던전에서 나온 놈들을 실어야 한다.
경험상 던전에서 나오는 마수들의 사체가 더 가치가 나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던전 공략을 할 때는 이렇게 사막에서 잡은 마수들의 시체는 버리고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이지령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도 신세를 졌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이어 이지령의 시선이 브리엘을 향했다.
“켈다에게 해독 포션을 줬다고?”
“응!”
“그거 효과가 대단하던데 어디서 구한 거지?”
“도깨비 시장에 가면 있어.”
브리엘은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숨겼다.
“빈민가의 도깨비 시장에 말인가?”
“응!”
“아쉽군! 미리 알았다면 우리도 준비하는 건데. 어쨌거나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했다. 이 보답은 확실히 하지.”
“그건 알아서 해.”
브리엘이 보답은 관심 없다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보답에 관심이 없었다.
해독 포션 몇 개 내준 것을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지령은 그런 브리엘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페가수스 공략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가 멀찍이 떨어지자 브리엘이 투덜거렸다.
“무서워 죽겠네. 무슨 눈빛이 와…….”
“너도 무서운 게 있어?”
“그럼 나도 감정이 있는데.”
“난 또 겁을 상실한 줄 알았지?”
“아, 진짜…….”
브리엘이 레빈을 째려봤다.
레빈은 그녀의 시선을 모르는 척 휘파람을 불었다.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다행히 금방 수습됐다.
“자, 출발합시다.”
“출발!”
공략대는 다시 차에 올라타 던전을 향해 출발했다.
제온 일행도 버기카에 타고 그들을 쫓았다.
덜컹!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버기카에서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레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거, 구동축에 문제 생긴 것 같은데요.”
“당장 멈출 것 같아?”
“그건 아닌데, 이 상태라면 저녁쯤엔 퍼질 것 같아요.”
“그럼 그냥 운행해. 어차피 저녁쯤이면 던전에 도착할 테니까.”
“알았어요. 형!”
레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오래 버틴 것이다.
다른 차량들은 벌써 몇 번씩 멈춰서 젤로에이가 이끄는 거점팀이 수시로 고쳤다.
그에 비하면 제온이 타고 있는 버기카는 단 한 번도 고장 나지 않고 이곳까지 왔다.
레빈은 그것이 제온 덕분임을 알고 있었다.
제온이 지배력을 이용해 모래에서 보호해 준 것이다.
그럼에도 차량은 사막의 가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졌다.
사막에 해가 떨어질 무렵 제온 등이 타고 있던 버기카가 완전히 멈춰 섰다. 그래도 일행은 실망하지 않았다.
버기카가 멈춰 선 곳이 바로 던전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 근처였기 때문이다.
제온이 버기카에서 내리자 발밑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짜 던전이 있군. 그것도 매우 강력한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