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켈다가 이끄는 구조팀만 남기고 전원 미지의 던전으로 들어갔다.
구조팀은 던전의 입구를 지키면서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제온 일행도 맨 마지막으로 던전에 들어갔다.
던전에 들어서는 순간 감각이 교란되며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크윽!”
“읍!”
던전 경험이 거의 없는 레빈과 브리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귀에 이명이 느껴지고, 감각의 교란에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속이 울렁이고, 전신이 짜부라지는 것 같은 느낌에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반면 경험이 많은 제온과 맨디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레빈과 브리엘은 꼴사납게 바닥에 나뒹굴었고, 제온과 맨디는 간신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레빈과 브리엘이 울렁이는 속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던전 안?”
“무슨?”
그들의 시야에 불길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가지만 남은 나무가 가득한 숲이었다.
바닥엔 잡초 하나 나지 않았고, 대지는 메말라 푸석푸석했다.
검붉은 하늘에선 끊임없이 뇌전이 내리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살벌한 풍경에 레빈과 브리엘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몸을 일으킨 레빈이 헐벗은 나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이게 나무란 건가요?”
“그래! 하지만 죽은 나무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구나.”
“흡사 모든 생기를 빼앗긴 느낌이에요.”
“아마 네 느낌이 맞을 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왜 안 보이죠?”
“어, 진짜네?”
레빈의 말에 브리엘도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엔 오직 제온 일행만 있을 뿐 다른 각성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맨디가 말했다.
“던전 중에는 같은 입구로 들어가도 각기 다른 곳으로 떨어지는 것들이 있어요. 아무래도 이곳도 그런 곳 중 하나인 것 같네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계속 못 만나는 건가요?”
“공략을 진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서요.”
“윽!”
“던전의 핵을 찾아야 해요. 모두 그곳으로 향했을 테니 핵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던전의 핵이 어떤 건지 어떻게 알죠?”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네?”
“직접 보게 되면 절로 알게 될 거예요.”
“그게 무슨?”
맨디는 더 이상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의미였다.
그때 제온이 말했다.
“출발하자. 서둘러 다른 이들을 찾아야 한다.”
“네!”
제온은 곧장 걷기 시작했다.
브리엘이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어?”
“아니.”
“그럼 무작정 걷고 보는 거야?”
“일단 걷다 보면 언젠가 특이점을 마주하게 될 거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길을 찾으면 돼.”
“그래?”
브리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제온도 맨디처럼 그 이상 브리엘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배우기만 해선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두 사람에겐 그런 경험이 필요했다.
제온이 죽은 나무가 가득한 숲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생기가 없는 숲이라니. 아무래도 이번 던전 공략은 쉽지 않겠군.’
던전은 차원을 표류하는 쿠라얀의 편린이었다.
쿠라얀에서 떨어져 나온 어떤 지형이나 장소가 던전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 역시 쿠라얀의 어떤 시대, 혹은 장소가 구현된 것이 분명했다.
‘이 비슷한 곳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음습하면서 불길한 공기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디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좀 더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때 갑자기 브리엘이 경호성을 터트렸다.
“엇!”
“왜?”
“저기 나무가…….”
“나무가 왜?”
“움직인 것 같아서.”
“나무가 움직인다고? 그게 말이 되……네.”
레빈이 눈을 꿈뻑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그극!
나무 한 그루가 진짜로 움직이고 있었다.
뿌리와 가지를 움직여 일어서는 거대한 나무.
나무 한가운데 사람처럼 눈, 코, 입이 존재했다.
갓 잠에서 깬 듯 눈을 끔벅이는 것이 진짜 사람 얼굴처럼 보였다.
“뭐, 뭐야?”
“엔트다.”
“네?”
“그냥 움직이는 나무라고 생각하면 돼.”
브리엘이 하이 엘프답게 금방 나무 괴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레빈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나무 괴물이면 별거 아니잖아. 그냥 지져 버리면 되는 거 아냐?”
빠지직!
레빈의 전신에서 보랏빛 전류가 흘러나와 엔트를 직격했다.
보랏빛 전류는 순식간에 엔트를 태워 버렸다.
키에에!
엔트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숯이 되어 버렸다.
레빈이 손을 탁탁 털며 미소를 지었다.
“별것도 아닌 게.”
“이 멍청아!”
“왜?”
“그냥 죽이면 어떡해? 엔트를 섣불리 죽이면 동료 엔트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난단 말이야.”
“그게 무슨?”
쿠워어어!
순간 숲 곳곳에서 엔트들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동료의 죽음을 느끼고 깨어난 것이다.
엔트들은 동족애가 강한 마수였다.
나무 형태를 하고 있지만, 생명체가 가지는 모든 감정을 다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이 바로 동족애였다.
동족을 죽인 자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이는 것이 엔트라는 족속이었다.
엔트들은 동료를 죽인 자를 찾아 걸어왔다.
느릿하게 걷는 것 같아도 키가 워낙 커서 순식간에 제온 일행 가까이 다가왔다.
“뭐가 저렇게 많아?”
“숲이니까 당연히 많지.”
“씨! 다 태워 버리면…….”
“엔트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데 태운다고? 이 멍청아!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라. 머리는 장식이냐?”
“그럼 어떻게 해?”
“도망쳐야지.”
브리엘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제온과 맨디도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멍하니 서 있던 레빈이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같이 가.”
***
차진철과 서 구역 각성자들이 들어온 곳은 협곡이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메마른 협곡엔 스산한 바람만이 불어오고 있었다.
“기분 나쁜 곳이군.”
차진철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도 적잖은 던전을 들어가 봤다. 하지만 이번 던전처럼 들어온 그 순간부터 불쾌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은 처음이었다.
생명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퍼석퍼석한 바람에 기계 육체가 녹스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들어온 순서대로 모두 분산된 건가?”
그나마 서 구역 각성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수하들이 모두 흩어졌다면 제아무리 차진철이라고 해도 난감했을 것이다.
‘현무!’
―예! 마스터.
다행히 보조 AI 현무가 대답했다.
현무가 그의 육체에 다운로드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이 어떤 종류의 던전인지 알 수 있나?’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군.’
―죄송합니다.
차진철이 수하들을 돌아봤다.
칠십 명이 넘는 각성자들이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을 둘로 나눠 던전을 수색한다. 핵으로 짐작되는 곳을 발견하면 서로 연락한다.”
“네!”
차진철은 자신 다음으로 강한 서 구역 각성자에게 다른 한 팀을 이끌 것을 지시했다.
명색이 B급 각성자이니 어떤 돌발 사태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차진철은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던전 수색에 나섰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이다.
협곡을 빠져나오자 나뭇잎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이 나타났다.
“협곡에 이어 숲인가?”
그때였다.
“으랏차!”
“야압!”
기합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숲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바로 제온 일행이었다.
브리엘과 레빈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제온과 맨디도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소매로 닦아 냈다.
레빈이 말했다.
“이제 안 따라오겠지?”
“엔트는 숲 밖으로는 잘 안 나오니까.”
“다행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멍청아!”
“그래도 멍청이는 아니지.”
“그러니까 누가 숲에서 엔트를 공격하래?”
“그거야…….”
“그래서 네가 멍청이라는 거야.”
“이씨!”
브리엘의 구박에 레빈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기에 더 이상 뭐라 변명하지 못했다.
차진철이 그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사이가 좋군.”
“이 근처에 떨어진 모양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제온의 물음에 차진철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제온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여전히 제온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직 마나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마나 회복이 더딘가 보군.”
“던전이 이따위라서 그런지 쉽지 않네요.”
“하긴…….”
차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가 가득한 던전일수록 쉽게 마나가 회복되는 것이 상식이다.
이렇게 생기가 거의 없는 던전에서는 마나가 더디게 회복된다.
차진철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현무! 지금이라면 놈을 쉽게 죽일 수 있겠지?’
―계산상 그렇습니다.
‘실행할까?’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왜?’
―이곳의 희박한 마나량을 보면 제온이 마나를 모두 회복하려면 며칠 걸릴 겁니다. 그 전까지 그를 이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역시 그렇군.’
차진철의 눈에서 흉포한 기운이 사라졌다.
그의 변화는 너무 짧은 시간에 나타나 레빈과 브리엘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제온과 맨디는 그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제온의 시선이 문득 차진철의 허리로 향했다.
“그 포승줄 말입니다. 원래 그렇게 빛났나요?”
“무슨? 응! 이게 왜?”
차진철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온의 말처럼 그의 허리에 달린 포승줄이 검은빛을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포승줄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의 경매에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정식 명칭은 옥지기의 포승줄.
계속 허리에 매달고 다녔지만, 기계화 각성자라는 특성 때문에 그간 쓸 일이 없었다.
제온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 던전, 그 아이템과 연관 있는 곳인가 보군요.”
간혹 그런 던전이 있다.
다른 던전에서 발굴된 아이템이 공명하는…….
‘어쩐지 봉인이 되어 있는 것 같더니, 이곳에 풀 실마리가 존재하는 건가?’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옥지기의 포승줄에서 검은빛이 더욱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