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이지령은 팔짱을 낀 채 전방을 바라봤다.
저 멀리 거대한 고성이 보였다.
아득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뚜렷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대한 고성.
이지령은 단번에 저기가 이 던전의 핵임을 알아차렸다.
생기 없이 삭막한 지형에 뜬금없이 나타난 고성.
누가 봐도 저곳이 던전의 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저곳까지 가는 과정이었다.
얼핏 보면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당연히 고성까지 가는 과정이 쉬울 리 없었다.
그때 그의 곁으로 젤로에이가 다가왔다.
“어떻게 할까? 이곳에 거점을 세울까?”
“그러는 게 나을 것 같군. 다른 이들이 모일 시간도 필요하니까.”
페가수스 공략대는 워낙 인원이 많기 때문인지 뿔뿔이 흩어졌다.
제대로 된 던전 공략을 진행하려면 모두가 모여야 했다.
젤로에이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모두 볼 수 있도록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지.”
그는 거점팀에 돌아가 작업을 시작했다.
아공간에 가져온 구조물들을 차례차례 세워 벽을 만들었다.
공터에 거대한 벽이 둥글게 세워졌다.
이 정도만 해도 임시 거점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한다. 하지만 젤로에이가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젤로에이가 외쳤다.
“보호자의 날개를 설치한다. 모두 벽 안으로 들어와라.”
그의 외침에 각성자들이 벽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젤로에이가 아공간에서 거대한 깃발을 꺼내 중앙에 꽂았다.
후웅!
순간 보이지 않는 막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반구형으로 뒤덮었다.
“하! 살겠군.”
“역시 보호자의 날개야.”
각성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자의 날개는 던전에서 발굴된 아이템이었다.
일종의 거점 아이템으로 B급 이하의 마수가 공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준다.
인식을 못 하니 당연히 공격당할 일도 없다.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수는 인식하지 못하는 반구형의 막이 인간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당연히 멀리서도 보고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보호자의 날개가 발동하자마자 곧바로 수십 명의 무리가 찾아왔다. 흩어졌던 페가수스 공략대의 각성자들이었다.
뒤이어 용병 각성자들도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제온과 차진철 일행은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지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들은 먼 곳에 떨어졌나 보군.”
“자주 있는 일이지 않나? 둘 다 경험이 많으니 잘 찾아올 거야.”
젤로에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지령의 입장은 달랐다.
“이러면 공략 방법이 달라지는데.”
애초 계획은 물량 공세로 단숨에 핵이 있는 곳까지 돌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력이 뿔뿔이 흩어진 이상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령이 탐사팀장 게슬링을 불렀다.
“게슬링!”
“예! 대장.”
“인원이 전부 모이기 전에 이곳 지형을 파악한다.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대장.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게슬링이 자신감을 보였다.
디텍터인 게슬링, 지도 제작자인 이치우, 안내자인 오브로이, 보호자인 맥나인으로 이뤄진 탐사팀은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인원을 더 붙여 줄까?”
“됐습니다. 방해만 됩니다.”
탐사팀이 오랫동안 네 명으로 유지된 것은 그만큼 그들의 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이들이 끼면 톱니바퀴에 낀 이물질처럼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지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이상 현상이나 대형 마수를 만나면 바로 귀환하고.”
“오케이! 대장.”
게슬링은 바로 탐사팀을 이끌고 거점을 떠나갔다.
단 네 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던전 안을 탐사한다는 것이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지령은 그들을 믿었다.
이제까지 탐사팀은 그의 기대를 배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나저나 제온은 어디에 떨어졌을까?’
제온이 마수에게 당했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던전의 입구를 여느라 마나를 많이 소비했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마수에게 당할 거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탐사팀이 귀환할 때까지만 제온과 서 구역 각성자들이 합류하면 준비가 완료된다.
그때였다.
콰드득!
갑자기 일대의 땅이 들썩였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지령이 외쳤다.
“모두 조용.”
순간 거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들도 대지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콰드드득!
그들 눈앞에서 대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저게 뭐야?’
‘맙소사!’
대지를 뚫고 몸을 일으킨 것은 거대한 두더지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족히 이십 미터는 될 듯한 엄청난 크기의 마수.
놈의 등은 암석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졌고, 칼날처럼 휘어진 발톱은 어른 키보다 크고 날카로웠다.
거대 두더지 마수의 눈은 완전히 퇴화한 것처럼 거의 보이지 않았다.
땅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온 거대 두더지는 냄새를 맡는 것처럼 코를 킁킁거렸다.
거대 두더지의 코가 향한 방향은 정확히 거점이었다.
쿵쿵!
놈이 거점으로 다가왔다.
거점 주위를 맴돌며 코를 킁킁거리는 거대 두더지 마수.
눈이 완전히 퇴화한 데다가 보호의 날개가 인식을 저해해 거대 두더지 마수는 사람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이상한지 거대 두더지는 거점 일대를 냄새 맡으며 돌아다녔다.
각성자들은 각자 무기를 손에 쥐고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보호의 날개를 믿지만,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다.
콰드득!
그때 대지를 뚫고 또 한 마리의 거대 두더지 마수가 올라왔다. 놈도 다른 놈처럼 거점 주위를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D급, 아니 이 정도면 C급이라고 봐야 하나?’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마수였다.
당연히 이름도 몰랐고, 놈들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켜보는 것이다.
잡고자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이 던전 안에 저런 마수가 얼마나 있는지, 또 마수들 중에서 어떤 수준인지 파악해야 했다
다행히 거대 두더지 마수들은 보호의 날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찾지 못하고 땅속으로 돌아갔다.
“휴!”
“제기랄!”
그제야 각성자들이 경계심을 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려 버린 것이다.
이지령이 공략팀장 브론슨을 불러서 물었다.
“저런 마수를 본 적이 있나?”
“한 번도 없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공략했던 던전에서는 보지 못했던 마수입니다.”
“등급은 어느 정도 되어 보이지?”
“최소 D급입니다만 덩치가 워낙 크니 C급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내 생각과 같군.”
덩치가 크면 당연히 힘도, 방어력도 세진다.
거대 두더지 마수가 어떤 공격 스킬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거대한 덩치만으로도 인간에겐 충분히 위협적이다.
이지령이 손으로 턱끝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곳의 주인이 어떤 마수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
“탐사팀이 파악해 올 겁니다.”
“그때까지 긴장 풀지 말고 있으라 전해.”
“알겠습니다.”
브론슨이 대답과 함께 떠났다.
혼자 남은 이지령이 중얼거렸다.
“제온, 너는 어디에 있는 거냐?”
***
불쑥!
땅을 뚫고 거대 두더지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수다.”
“일 조 전투 모드 들어간다.”
차진철은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위잉!
순간 서 구역 각성자들 중 열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바로 일 조였다.
일 조 각성자들은 곧바로 전투 모드에 들어갔다.
철컥! 철컥!
기계음과 함께 그들의 팔과 다리가 전투에 적합하게 변했다.
금속성의 팔다리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간다.”
일 조원들이 동시에 거대 두더지 마수를 공격했다.
쾅!
일 조장이 주먹으로 거대 두더지 마수의 머리를 후려치지만, 소용이 없었다.
등을 따라서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암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단한 암석은 일 조장의 주먹에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방어력 C등급 이상.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상처조차 입힐 수 없음.”
거대 두더지 마수를 공격하면서 얻은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서 구역 각성자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링크를 통해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 구역 각성자들의 무서움이었다.
분명 별개의 인간이었지만, 링크를 통한 데이터 공유로 마수의 전력을 파악해 즉각 대처가 가능한 것이다.
쾅! 쾅! 쾅!
일 조원들은 맹렬히 거대 두더지 마수를 공격했다.
그때마다 놈의 등을 이루고 있는 암석이 부서지고, 깎여 나갔다. 그래도 아직 암석이 많이 남아 있었다.
“물리적 공격에 매우 강합니다. 마법계 각성자가 있다면 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 구역 각성자들은 거의 다 기계화 각성자로 이뤄져 있었다.
기계화 각성자는 무투계 각성자만큼이나 파괴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다만 공격력이 물리력에 한정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계화 각성자들은 각종 장비를 부착한다.
화르륵!
그중 하나가 지금 일 조장의 팔에서 방사되고 있는 화염이었다.
초고열의 화염이 거대 두더지 마수의 입안으로 쏟아졌다.
크아아아!
엄청난 고열에 거대 두더지 마수가 괴로워하며 날뛰었다. 그러자 배 부위가 나타났다.
일 조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쾅!
일 조원의 팔뚝에서 압축 공기탄이 날아가 거대 두더지 마수의 배에 작렬했다.
압축 공기탄이 작렬한 곳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며 피가 터져 나왔다.
“배 부위가 약점임. 따라서 거대 두더지 마수를 공략하려면 어떻게든 배를 드러내게 만들어서 배를 공격해야 함.”
데이터를 공유받은 일 조원들이 일제히 거대 두더지 마수의 배를 공격했다.
거대 두더지 마수가 고통에 겨워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었다. 하지만 서 구역 각성자들은 집요하리만큼 놈의 배만 공격했다.
“별다른 공격 스킬은 없는 것으로 보임. 결론은 덩치만 조심한다면 손쉬운 상대임.”
그것이 거대 두더지 마수에 대한 일 조장의 판단이었다.
데이터를 모두 얻었으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일 조원들은 더욱 맹렬히 공격했고, 거대 두더지 마수는 얼마 못 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거대한 덩치에 비하면 생각보다 싱거운 싸움이었다.
“별거 아니었군. 이런 마수만 있다면 공략이 쉽겠군.”
차진철이 조소를 흘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그는 거대 두더지 마수를 통해 이 던전 마수들의 수준을 가늠해 본 것이다.
“흐흐! 이 정도면 페가수스 공략대도 필요 없겠는데요.”
“그냥 우리끼리 공략을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서 구역 각성자들이 차진철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둘러싸인 차진철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반면 제온은 심각한 표정으로 차진철과 거대 두더지 마수를 보고 있었다.
목숨을 잃은 거대 두더지가 무서운 속도로 삐쩍 마르고 있었다.
볼이 홀쭉 들어가고, 배가 쑥 꺼졌다.
그 사실도 모르고 차진철과 서 구역 각성자들은 거대 두더지 마수를 죽였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브리엘이 제온의 소매를 잡았다.
하이 엘프 특유의 감으로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제온!”
제온이 브리엘의 손을 잡아 주며 차진철에게 말했다.
“모두 조심해요.”
“조심? 뭘?”
차진철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 순간이었다.
스아아!
스산한 바람과 함께 그것이 나타났다.
로브를 눌러쓴 채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반투명한 인간이.
놈은 유령처럼 나타나 주위를 슥 둘러봤다.
“저게 뭐야?”
“저것도 마수인가?”
서 구역 각성자들이 신기한 것을 다 본다는 표정으로 떠들었다.
그 순간 제온이 외쳤다.
“그림리퍼다. 모두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