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그림리퍼.
흔히 사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단순히 마수라고 치부하기엔 턱없이 강력하고, 인간처럼 어느 정도 사고도 가능하다.
스펙터처럼 물리적인 육신 없이 영체로만 움직이는 이 녀석은 추정 등급만 A급이 넘는 괴물이었다.
다른 던전이었다면 충분히 보스 역할을 수행할 녀석이었다.
그런 괴물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네오 서울의 그 어떤 각성자도 그림리퍼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리퍼가 보스로 나오는 던전은 극히 드물었고, 이 던전처럼 모두 네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때문에 놈의 위험성은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것이다.
멀뚱멀뚱 바라만 보는 각성자들에게 제온이 다시 한번 외쳤다.
“어서 피하라고.”
“쓰벌! 누구한테 큰 소리야?”
“저딴 게 뭐 무섭다고.”
서 구역 각성자들은 오히려 발끈해 제온을 노려봤다.
생전 처음 보는 마수가 눈앞에 있지만, 두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설령 상대가 A급 마수일지라도 충분히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그럴 전력도 됐다.
문제는 그들의 상성이었다.
기계화 각성자들의 공격력은 주로 물리력에 편중되어 있었다.
물론 파츠를 이용해 화염방사기나 공기 압축탄 같은 기술을 쓸 수도 있었지만, 주공격은 모두 기계화된 육체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반면 그림리퍼는 실체가 없었다.
영체화된 육체엔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반면 그림리퍼는 거대한 낫으로 인간의 영혼을 수확할 수 있었다.
츠으으!
거대 두더지 마수가 급속도로 마르고 있었다.
그림리퍼가 영혼을 수확하면서 생기까지 흡수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림리퍼는 자신의 힘을 늘린다.
“스펙터 따윈 이걸로도 충분하지.”
기계화 각성자의 팔목에서 얇은 은사가 튀어 나갔다.
은사는 그림리퍼를 휘감았지만, 실체가 없기에 헛되이 통과만 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계화 각성자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그에겐 비장의 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복부에 장착된 소형 제너레이터가 작동하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전류가 발생했다.
초고압의 전류는 은사를 타고 흘렀다.
기계화 각성자는 그림리퍼의 비명이 들릴 거라고 자신했지만, 그가 기대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 낸 전류는 그림리퍼에게 그저 따끔한 수준의 고통만 줬을 뿐이다. 그것이 그림리퍼를 화나게 했다.
그림리퍼가 전류를 쏜 각성자를 향해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스가악!
“어?”
거대한 낫에 베였음에도 각성자의 몸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낫에 베인 각성자가 눈을 끔뻑이다가 크게 웃었다.
“하하! 뭐야? 별거 아니잖…….”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왜 그래?”
“야! 장난치지 말고…….”
근처에 있던 동료 각성자들이 말을 거는 순간 그가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쿵!
넘어진 각성자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림리퍼의 낫에 영혼이 수확당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육체에 남아 있던 생기도 그림리퍼가 빨아들였다.
파스스!
순식간에 각성자의 육체가 쪼그라들더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남은 것은 오직 기계로 된 육체뿐이었다.
각성자의 영혼과 생명력을 흡수했음에도 그림리퍼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표정이 아니었다.
육체의 크기가 곧 영혼의 크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힘들게 낫을 휘둘러 얻은 영혼의 크기가 그림리퍼를 충족시켜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키에에에!
그림리퍼의 화가 폭발했다.
영양가 없는 영혼이 그림리퍼의 화를 돋운 것이다.
쉬가악!
그림리퍼가 다른 각성자들을 공격했다.
“씨발! 유령 새끼가.”
“죽엇!”
기계화 각성자들이 그림리퍼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그림리퍼에게 통하지 않았다.
반면 그림리퍼는 낫을 휘둘러 착실히 그들의 영혼을 수확하고 있었다.
“크악!”
“살려 줘!”
기계화 각성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씨발! 이게 무슨…….”
차진철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앞에서 수하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차라리 장렬하게 맞서 싸우다 산화하면 그나마 낫겠는데, 그냥 개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이 개새끼야! 나에게 덤벼.”
차진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오른팔을 내밀었다.
위잉!
순간 그의 팔이 변형을 일으키며 기다란 포로 변했다.
쾅!
포신에서 탄환이 발사됐다.
전기로 발사되는 레일건이었다.
매머드를 쓰러트렸을 때 사용했던 거대 레일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지만, 그 위력만큼은 대단한 무기였다.
스륵!
하지만 그가 발사한 레일건 탄환은 허무하게 그림리퍼의 영체를 통과하고 말았다.
그림리퍼가 자신을 공격한 차진철을 노려봤다.
그 순간 그림리퍼의 눈에 귀화가 피어올랐다.
놈의 시선은 차진철의 허리에 걸린 옥지기의 포승줄에 고정되어 있었다.
흐으으!
마치 홀린 것처럼 그림리퍼가 기괴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놈은 특유의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차진철에게 날아왔다. 정확히는 차진철이 가지고 있는 옥지기의 포승줄을 향해서였다.
“씨발!”
차진철이 욕설을 내뱉으며 레일건을 연신 날렸다. 하지만 탄환은 헛되이 그림리퍼의 몸체를 통과했고, 놈은 어느새 차진철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어서 피해야 합니다. 그림리퍼의 낫에 베이면 영혼에 큰 상처를 입을 겁니다.
“안다고.”
차진철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림리퍼가 그런 차진철을 따라붙었다.
무엇도 놈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퍼억!
“그쯤 해라, 이 해골바가지야.”
누군가 그림리퍼를 강타한 것이다.
바로 레빈이었다.
레빈도 그림리퍼처럼 유령화된 상태였다.
일반적인 물리 공격으로는 그림리퍼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지만, 같이 유령화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빠지직!
레빈의 전신에서 보랏빛 전류가 명멸했다.
키에에!
보랏빛 전류에 격중당한 그림리퍼가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제너레이터로 만들어 낸 전류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각성자가 발산하는 전기엔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때 초고열의 화염이 그림리퍼를 덮쳤다.
제온이 초열의 건틀렛을 이용해 파이어 미사일을 날린 것이다.
전기와 화염 공격까지 더해지니 그림리퍼도 큰 타격을 입고 주춤거렸다.
“죽여 주마! 이 해골 새끼야.”
맨디가 엘로이로 변해 공격을 퍼부었다.
연이은 공격에 그림리퍼가 큰 타격을 입고 주춤거렸다.
물리 공격엔 그렇게 극강한 모습을 보이더니 다양한 속성 공격엔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제온이 그런 그림리퍼를 향해 다가갔다.
초열의 건틀렛에 담긴 드래곤의 기운이 폭발했다.
순간 그림리퍼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제아무리 A급 마수인 그림리퍼일지라도 드래곤엔 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림리퍼는 급히 제온에게서 떨어져 차진철에게 날아갔다.
“이 새끼가. 꺼지지 못해?”
차진철이 분노어린 주먹질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림리퍼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림리퍼는 차진철의 주먹을 통과해 그의 허리에 있는 옥지기의 포승줄을 잡았다.
푸화학!
순간 불길한 검은빛이 옥지기의 포승줄에서 폭발했다.
“크읏!”
“뭐야?”
각성자들이 강렬한 빛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들이 눈을 떴을 때는 차진철이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이럴 수가!”
“대장!”
서 구역 각성자들이 미친 듯이 일대를 뒤졌지만, 어디서도 차진철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온이 아직 유령화 상태인 레빈에게 말했다.
“놈을 찾아봐.”
“알았어요, 형!”
레빈이 날아서 일대를 수색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림리퍼와 차진철은 발견되지 않았다.
레빈이 유령화를 풀며 말했다.
“없어요, 형! 이미 멀리 떠난 것 같아요.”
“그럼 놈의 둥지로 데려간 모양이구나.”
“둥지면 던전 핵이 있는 곳 말인가요?”
“그렇겠지.”
“왜 하필 그를 납치한 걸까요?”
“그 아이템.”
“네?”
“아무래도 옥지기의 포승줄이라는 아이템 때문인 것 같다.”
“그게 왜?”
“어떤 존재의 원념이 담긴 아이템 같았거든.”
아이템에 원주인의 사념이 깃드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념이란 것이 그저 약간의 미련, 혹은 염원에 불과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소멸된다.
그런데 옥지기의 포승줄에 남아 있는 원념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피부가 저릿해질 만큼 강한 원념이 표출되고 있었다.
봉인되었음에도 그 정도라면 풀렸을 때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제온이 ‘데미안이 네오 서울에 독을 풀었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봉인이 유지되는 동안엔 문제가 없지만, 언젠가 봉인이 풀리면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서 구역에서 낙찰받았기에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는데.”
서 구역 각성자들은 신체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했다. 때문에 원념 같은 저주가 잘 통하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봉인이 약해지고 그림리퍼가 데려갔단 말이지. 아무래도 이곳은 옥지기와 관련이 있는 던전인 것 같군.”
옥지기가 무엇인지는 제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차진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의 이름이 옥지기의 포승줄인 만큼 이 던전의 주인도 그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페가수스 공략대부터 찾자.”
“아, 그들이라면 제가 어딨는지 알고 있어요. 그림리퍼를 찾으러 다닐 때 봤거든요.”
“그래?”
“제가 안내할게요.”
레빈이 앞장서 걸었다.
제온과 브리엘, 엘로이가 그 뒤를 따랐다.
남겨진 서 구역 각성자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급히 뒤따랐다.
“같이 갑시다.”
“제기랄!”
그들도 페가수스 공략대에 합류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 조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대장이 납치당하다니.’
차진철도,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 레빈의 말처럼 페가수스 공략대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 멀리 보호의 날개로 보호되는 거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레빈이 앞장서 길을 개척했다.
중간중간 무언가 꺼림칙한 구간이 있으면 레빈이 유령화해서 먼저 수색했다.
유령화한 레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간혹 예상치 못한 마수가 나타나도 엘로이가 모조리 격퇴했다.
덕분에 일행은 무사히 거점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뒤따라온 서 구역 각성자들의 얼굴엔 질렸다는 빛이 역력했다.
‘도대체 이 파티는 뭐지?’
‘구성원이 뭐 이래?’
모래술사인 제온, 미친 공격력을 자랑하는 엘로이, 그리고 자유자재로 유령화하는 레빈, 마지막으로 무언가 의뭉스러운 고깔모자를 쓴 꼬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들의 조합이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제온이 있었다.
‘단순히 희귀한 능력만 각성한 게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도 좋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