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드디어 도착했다.”
레빈이 이마의 땀방울을 소매로 쓸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거점에 도착한 것이다.
격벽 위에서 감시하고 있던 각성자들이 제온 일행과 서 구역 각성자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문을 열어라.”
보호막이 잠시 사라지고, 격벽의 문이 열렸다.
제온 일행과 서 구역 각성자들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벌써 이렇게 꾸몄다고?”
레빈과 브리엘이 거점 안의 풍경에 입을 떡 벌렸다.
격벽만 세워져 있던 거점 안에는 텐트를 비롯해 사람들이 자고 먹을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새 젤로에이가 이끄는 팀이 완벽하게 거점을 꾸민 것이다.
이제 이 안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공략 계획을 세우면 된다.
그때 페가수스 공략대의 각성자 하나가 제온에게 다가왔다.
“대장님이 제온 님을 뵙자고 하십니다.”
“지금요?”
“네!”
“가죠.”
“저를 따라오십시오.”
각성자가 제온을 가장 큰 텐트 안으로 안내했다.
텐트 안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 이지령이 앉아 있었다.
“무사히 돌아왔군.”
“많이 기다렸습니까?”
“아니, 적당한 시간에 왔어. 그런데 벌써 희생자가 났다며?”
“네!”
“그 희생자가 하필 차진철이라고?”
“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지?”
“그림리퍼를 만났습니다.”
“그림리퍼? 혹시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사신 말인가?”
“맞습니다.”
제온의 대답에 이지령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제온의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다.
그만큼 황당하기 때문이다.
“별게 다 나오는군. 그럼 이 던전의 주인이 그림리퍼인가?”
“글쎄요. 일단 이 던전이 차진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과 연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옥지기의 포승줄?”
“예!”
“분명 다른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인데, 이곳과 연관이 있다? 그럼 지구에 나타난 다른 던전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건가?”
이지령의 감은 예리했다.
제온은 지구에 나타난 던전이 쿠라얀의 편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그냥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추리해 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림리퍼라면 이 던전의 주인은 언데드일 가능성이 크겠군.”
“언데드용 아이템은 좀 준비해 왔습니까?”
“아이템이라고 별 게 있을까? 그냥 힘으로 부숴 버리는 수밖에.”
네오 서울 각성자 중에 언데드 던전을 경험한 자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희귀한 것이 언데드 던전이었다.
이지령 역시 언데드 던전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언데드라고 해서 진짜 죽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부수고, 살아나지 못하도록 짓이기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핵을 부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무섭도록 단순한 방법이다.
그만큼 효율적이기도 했다.
다만 이 방법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을 때나 위력을 발휘한다.
“희생자가 많이 나올 겁니다.”
“감수해야지. 원래 위험이 큰 만큼 돌아오는 대가도 큰 법이니까. 공략대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 던전을 공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던전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던전은 쉽게 정복되지만, 어떤 던전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한다.
던전을 공략하는 각성자가 된다는 것은 매 순간 위험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좋은 방어구로 전신을 보호하고, 강한 무기를 들어도 살아나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대신 살아나오면 그 대가는 확실하다.
자신이 죽어도 가족은 대가를 받아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각성자들이 공략대에 몸을 담는 이유다.
“어쨌든 고생했어. 탐사팀이 돌아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어.”
“그들이 귀환하는 대로 공략을 진행할 생각입니까?”
“던전 공략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니까.”
“알겠습니다.”
“마나는 많이 회복했나?”
“어느 정도는요.”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군. 이번 던전 공략엔 네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으니까.”
“제 역할은 던전 입구를 찾는 것까지였던 것 같습니다만?”
“상황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지. 너도 많은 희생자가 나오길 바라지 않을 텐데.”
“그렇긴 한데 제 책임은 아니니까요. 그럼…….”
제온이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텐트 반대편 문이 열리고 브론슨이 들어왔다.
이지령이 브론슨에게 말했다.
“놈을 최대한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어. 그래야 놈이 심정적으로 우리를 의지하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직 마나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 같으니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당장이야 제온이 건재해서 찔러 볼 틈이 없지만, 약해지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이지령은 그런 기회 포착에 도가 큰 인물이었다.
***
제온은 브리엘과 레빈, 엘로이가 있는 텐트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각자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브리엘이 제온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물었다.
“괜찮아?”
“뭐가?”
“그 인간이 해코지 안 했어?”
“누구? 이지령?”
“응!”
“안 했어.”
“조심해! 느낌이 안 좋은 인간이니까.”
“조심하고 있어.”
제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던전에 들어온 직후 브리엘의 신경이 예민해졌다.
제온은 그것이 하이 엘프의 특성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 엘프보다 감이 훨씬 좋으니, 이렇게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던전에 유달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엘로이가 제온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밥부터 먹어야지.”
“밥?”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하면 제대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거야.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야지. 레빈!”
“넵! 형.”
레빈이 아공간 배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을 꺼냈다.
그의 배낭엔 클렉시 영감이 만들어 준 음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레빈은 그중 일부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자, 먹자구요.”
레빈의 말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맛있어.”
음식을 맛본 엘로이가 눈을 크게 떴다.
클렉시 영감이 솜씨를 부린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던전 안에서 이 정도 수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거 정말 맛있네.”
“충분히 싸 왔으니까 쉬는 틈틈이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잘했다. 꼬마! 능력도 대단하고, 준비성은 더 대단하네.”
“헤헤!”
엘로이의 칭찬에 레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브리엘이 그런 레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밥이나 먹어. 괜히 여우에게 홀리지 말고.”
“으응!”
레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음식을 먹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모두가 식사를 거의 끝마쳤을 때였다.
“탐사팀이 돌아왔다.”
“문을 열어.”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사람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점으로 귀환하는 탐사팀이 보였다.
그런데 탐사팀의 몰골이 심상치 않았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듯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방어구 곳곳에 흠집이 나 있었고, 머리는 산발한 데다가 혈흔이 내비쳤다.
그들이 귀환했다는 소식에 이지령이 달려왔다.
“괜찮은가?”
“허억! 허억! 잠시만…….”
게슬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들었다.
이지령은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겨우 숨을 고른 게슬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일단 핵으로 짐작되는 곳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예! 고성이 확실합니다.”
“역시 그렇군.”
“처음 보는 양식의 고성이었습니다. 지구 중세의 고성 같은 느낌이었는데, 성 전체에 강력한 역장이 쳐져 있어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역장이 존재한다고? 보스도 아니고, 고성에?”
“예!”
게슬링의 대답에 이지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공략 난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역장을 해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역장을 해제하려면 마법계 각성자, 그중에서도 역장에 능통한 자들을 많이 동원해야 했다.
페가수스 공략대에도 그런 각성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겠군. 힘으로 부수는 수밖에…….”
“문제는…….”
“또 문제가 있다고?”
“유사가 있습니다.”
“뭐?”
“고성으로 가는 길목에 유사 지대가 있습니다.”
“유사 지대?”
“엄청나게 넓은 유사 지대입니다. 강한 인력이 작용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럼 탐사팀은 유사 지대를 어떤 방식으로 넘은 거지?”
“죄송합니다. 저희도 넘지 못했습니다.”
게슬링이 다시 떠올려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탐사팀이 은신했던 지역에도 거대 두더지 마수가 나타났었다.
밖으로 나온 거대 두더지 마수는 유사 지대에 접근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거대 두더지 마수를 유사 지대로 끌어들였다.
버둥거리며 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거대 두더지 마수는 유사 지대로 끌려 들어갔다.
모래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탐사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격렬하게 요동치던 유사 지대와 거대 두더지 마수의 처절한 비명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끔찍한 비명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눈앞에서 거대 두더지 마수의 최후를 본 탐사팀은 더 이상의 전진을 포기했다.
고성에 역장이 쳐져 있다는 것도 멀리서 관찰해서 알아낸 것이다.
“결국 그 이상 알아낸 것은 없다는 거군.”
“죄송합니다.”
탐사팀이 제대로 된 공략 정보를 수집해 오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최악의 던전임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머물면서 차근차근 정보를 수집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그림리퍼에게 잡혀간 차진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서 구역은 이번 공략의 최대 후원자였다.
차진철이 죽으면 그들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터였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반드시 차진철을 구해 내야 했다.
“어쩔 수 없군. 몸으로 부딪치면서 해결하는 수밖에…….”
“이대로 공략하실 생각이십니까?”
“차진철이 죽으면 김현수가 지랄 발광할 거야. 무리가 되더라도 움직여야지. 그리고 우리에겐 그가 있잖아.”
“하지만 그는 아직 마나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는데 유사 지대를 제어하는 게 가능할까요?”
“어떻게든 해내겠지. 그럴 만한 능력과 각오가 되어 있는 녀석이니까.”
던전 공략대를 이끌면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 본 이지령이었다. 때문에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마나가 고갈되었다고 하지만, 분명 숨겨 놓은 수가 있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당당할 수 없어. 이번 기회에 놈이 숨겨 놓은 수를 모두 털어놓게 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럼 거점팀만 남겨 두고 모두 출발한다.”
“네!”
브론슨이 이지령의 명령을 그대로 전했다.
격벽의 문이 열리고, 각성자들이 고성을 향해 출발했다.
본격적인 던전 공략의 시작이었다.
제온이 고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