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탐사팀의 말처럼 저 멀리 고성이 보였다.
고성 주위로 은은한 역장이 일렁이고 있었다.
“진짜 고성이군.”
“저런 양식은 처음 봐.”
고성을 본 각성자들이 수군거렸다.
무엇이든 있을 수 있는 곳이 던전이었지만, 저런 양식의 고성은 그들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레빈이 제온에게 물었다.
“던전에 저런 성이 존재하는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존재하는 거겠지.”
“하하! 그래도 저건…….”
“던전에 인간의 상식 따윈 통용되지 않는다.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게 현실이 되는 곳이 던전이다.”
“그런…….”
“그러니까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마라. 살아 나가고 싶으면…….”
꿀꺽!
제온의 심각한 분위기에 레빈이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켰다.
덩달아 브리엘도 긴장했다.
지금 제온은 강력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카루크의 고성과 비슷해.’
죽음의 기사 아카루크.
그가 주인으로 있던 고성이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언데드가 나오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렇다면 이곳의 주인 역시 아카루크와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위험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지.’
제온이 이지령을 바라봤다.
이지령도 이 던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여전히 자신감이 내비치고 있었다.
수많은 던전을 공략하고, 정복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유사를 건너는 것이다.
츠으으!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 들을 수 없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유사가 흐르는 소리였다.
곱디고운 모래 입자가 거대한 강처럼 흐르는 모습은 각성자들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그때 각성자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충분히 건너뛸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말에 몇몇 각성자들이 눈을 빛냈다.
유사의 폭은 대략 이백 미터 정도였다.
그 정도라면 뛰어난 무투계 각성자나, 도약 같은 스킬을 가진 자들은 뛰어넘을 수 있었다.
말을 꺼냈던 각성자가 앞으로 나섰다.
“내가 먼저 뛰어넘겠다.”
그는 무투계 C급 각성자였다.
비록 등급은 낮지만, 삼중 도약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 이백 미터 정도는 단숨에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다.
‘유사를 뛰어넘으면 모두가 나를 주목할 거야.’
그는 용병으로 참여했다.
그의 목표는 이곳에서 두각을 나타내 페가수스 공략대에 스카우트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알아서 시험해 주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두의 주목 속에 각성자가 앞으로 나섰다.
츠으으!
모래가 흐르는 소리가 공포스러웠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후! 넘을 수 있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이보다 더 넓은 곳도 넘어 봤잖아.’
잠시 호흡을 고른 각성자가 수십 미터를 질주해 유사 앞에서 도약했다.
팟!
그의 몸이 마치 새처럼 유사 위를 훌훌 날았다.
거의 칠팔십 미터를 날아간 각성자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그 순간 각성자의 스킬인 삼중 도약이 발동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발판이 있는 것처럼 그가 허공을 밟고 다시 한번 도약했다.
“됐다.”
“충분히 넘을 수 있어.”
각성자들이 그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누가 봐도 성공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억!”
갑자기 각성자가 신음과 함께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이어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다.
“저, 저?”
“뭐야? 갑자기 왜 저래?”
그 모습을 본 각성자들이 놀라 소리쳤다.
추락하는 각성자는 다시 도약하기 위해 스킬을 펼쳤다.
‘삼중 도약!’
분명히 스킬이 펼쳐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추락하고 있었다.
유사 지대에서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이 그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마치 올가미에 묶인 것처럼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엄청난 압력 때문에 삼중 도약이 펼쳐지지 않았다.
‘씨발! 뭐야? 뭔데?’
퍼억!
결국 각성자는 유사 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부드러운 모래라서 목숨을 구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으으!”
각성자의 몸이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바둥거리며 기어 나오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모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기랄! 줄을 던져.”
“조금만 견뎌.”
다른 각성자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때였다.
“으, 으아악!”
갑자기 각성자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각성자의 몸을 새까만 무언가가 뒤덮고 있었다.
“저게 뭐야?”
“모래 속에 이상한 게 있어.”
“씨발! 거머리다.”
각성자를 뒤덮고 있는 것은 사람 팔뚝만 한 크기의 거머리였다.
얼마나 많은 거머리가 기어 나온 건지 몰랐다. 각성자 주위 수십 미터가 거머리로 뒤덮여 있었다.
놈들은 각성자의 피부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아먹었다.
거머리가 피를 빨 때마다 각성자의 몸이 쪼그라들더니 금세 미라처럼 변했다.
그것이 각성자의 최후였다.
“맙소사!”
“저런 괴물들이 모래 속에 숨어 있었다니.”
“그냥 건넜으면…….”
다른 각성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각성자의 피를 빨아 죽인 거머리들은 모래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지령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냥 유사가 아니었군. 괴물 거머리들이 숨어 있었어.”
“멋모르고 들어갔다간 우리도 저 꼴이 될 뻔했군.”
탐사팀장 게슬링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히 유사를 건너겠다고 객기를 부렸다면, 자신들도 저 꼴이 되었을 것이다.
“유사를 건너뛰는 것은 포기해야겠군.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어.”
“인력이나 중력, 뭐가 됐든 사람을 유사로 끌어당기는 것이 분명해.”
콰르르!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 다발이 유사 지대로 떨어졌다.
이지령이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빠지지직!
수천만 볼트의 번개에 모래가 새까맣게 탔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번개로도 유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류가 사라진 직후 모래 속에서 거머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번개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곳을 통과할 수 없겠군.”
이지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저 모래가 문제였다.
번개를 흘려보내 거머리들이 타격을 전혀 받지 않게 만든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었다.
이지령이 번개 다발을 쏟아 낸 후 다른 각성자들도 각자 스킬을 펼쳤다.
각종 마법 공격이 모래에 작렬했다. 하지만 거머리들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거머리 한 마리는 그리 무섭지 않았다.
잘해 봐야 E급이나 D급 정도.
모래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용병들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문제는 놈들이 모래 밖으로 나올 생각도 없을뿐더러, 모래 속에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슬링이 제온을 바라봤다.
“역시 그밖에 없군.”
“음!”
이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자는 제온뿐이었다.
이지령이 제온에게 다가갔다.
“봤나?”
“네!”
“유사 속에 마수가 숨어 있다. 우리가 놈들을 처리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저라면 당신들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겠죠.”
제온이 이지령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지령도 제온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부탁하는 거다. 이곳에서, 아니 지구에서 오직 너만이 유사 지대에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그러면 남은 마나마저 전부 소모하게 됩니다만?”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건가?”
제온을 바라보는 이지령의 눈빛이 강렬했다.
누가 봐도 제온을 도발하는 모습이었다.
제온이 피식 웃었다.
“알았습니다. 길을 열어 주죠.”
이 정도로 도발한다면 당연히 응해 줘야 했다.
그는 이지령을 지나쳐 유사 앞으로 다가갔다.
“후!”
제온이 유사 지대 앞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솨아아!
그의 감각이 모래를 타고 뻗어 나갔다.
마치 신경망처럼 무수히 뻗어 나간 감각 덕분에 모래 속의 상황이 손금 보듯 보였다.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거머리는 유사 지대 전체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제온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잠시 이지령을 슬쩍 바라본 제온이 눈을 감았다.
본격적으로 지배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쿠쿠쿠쿠!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유사가 격렬히 흔들렸다.
모래를 흐르게 만든 힘과 제온의 지배력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그에 따라 모래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콰아아!
모래가 유사 지대 밖으로 밀려 나왔다. 모래 속에 숨어 있던 거머리들도 덩달아 딸려 나왔다.
“으아악!”
“거머리다. 물러나.”
근처에 있던 각성자들이 기겁해 뒤로 물러났다.
“이 거머리 새끼가…….”
“죽엇!”
그나마 정신을 차린 몇몇 각성자가 거머리를 공격해 죽였다.
모래 속에 숨어 있을 때나 무서웠지, 밖으로 나온 거머리들은 그다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퍽!
거머리들이 각성자들의 공격에 터져 나갔다.
문제는 거머리들의 피였다.
각성자들에게 거머리의 피가 튀었다.
치이익!
“끄아악!”
“살려 줘!”
피가 튄 부위가 강산에 담근 것처럼 녹아내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각성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들도 멋모르고 거머리들 근처에 있었다면 저렇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머리의 피가 튄 각성자들이 바닥을 나뒹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근처에 있던 각성자들이 힐링 포션을 뿌려 상처를 치료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결국 신체가 녹아내려 목숨을 잃었다.
“미친!”
“이런 놈들이 모래 속에 득실거리고 있었다니.”
동료들의 죽음을 본 각성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시선이 제온에 집중됐다.
이제 던전 공략의 성패는 제온에게 달렸다.
제온이 유사 지대를 열지 못하면 던전 공략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콰콰콰콰!
그 순간에도 유사는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유사 앞에 선 제온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일 정도였다.
제온은 온 정신을 집중해 지배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요동치는 모래도, 모래 속에 숨어 있는 거머리도 제온의 집중력을 깰 수는 없었다.
유사의 요동이 최고조에 달한 그 순간 제온이 눈을 떴다.
지배력을 끌어 올린 제온의 눈동자는 붉은 모래와 똑 닮아 있었다.
제온의 두 손이 모래를 가르는 것처럼 양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그의 손짓에 유사가 갈라지고 있었다.
이지령이 주먹을 꽉 쥐었다.
“길……이 열린다.”
“와아아!”
각성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 앞에 고성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고 있었다.
사막 유일의 모래술사 제온이 만들어 낸 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