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제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떨어진 곳은 거대한 지하 공간이었다.
거대 거머리 수십 마리가 날뛰어도 공간이 남을 만큼 광활했다.
실제로 제온과 함께 추락한 거대 거머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음에도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그나마 유사가 이 안에도 흐르고 있다는 게 다행인가?”
지하 공간에도 모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흐름이 정상이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강처럼 흐르고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폭포수가 거꾸로 올라가는 것처럼 역행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벽을 타고 옆으로 흐르는 모래 줄기도 있었다.
이 안에 작용하는 어떤 미지의 힘이 모래의 흐름을 제멋대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재밌네!”
제온이 미소를 지을 때였다.
키에에!
괴성과 함께 거대 거머리들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거대 거머리들이 제온을 발견하고 공격해 왔다.
콰앙!
거대한 주둥이가 제온이 있던 곳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때는 제온이 이미 다른 곳으로 피한 뒤였다.
그런 제온을 쫓아 다른 거대 거머리들이 공격했다.
쾅! 콰앙!
그들의 공격을 제온이 간발의 차이로 모두 피해 냈다. 그러자 약이 오른 듯 거대 거머리들이 고개를 흔들며 괴성을 토해 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한 모습이었다.
제온이 거대 거머리들을 향해 모래를 날렸다.
모래가 날아가는 모습이 고개를 꼿꼿이 세운 독사 같았다.
샌드 블라스터의 진화형인 바이퍼였다.
퍼버버벅!
바이퍼가 거대 거머리들의 동체를 연신 두들겼다. 하지만 덩치가 워낙 크고, 껍질이 두꺼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강도가 상당하군.”
이미 예상했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제온은 그 후로도 다양한 스킬을 펼쳤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거대 거머리의 몸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역시 별다른 타격을 입은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질을 건드렸는지 놈들이 더 흉포하게 제온을 공격해 왔다.
촤하학!
거대 거머리의 몸통이 순간적으로 수십 미터나 늘어나 제온에게 도달했다.
제온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주둥이와 톱날처럼 빼곡히 나 있는 이빨이 선명하게 보였다.
순간 제온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어디 내부도 껍질만큼 단단한지 보자.”
촤하학!
제온의 뒤쪽에서 거대한 모래 줄기가 날아와 거대 거머리의 입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콰콰콰!
모래는 무섭게 회전하며 거대 거머리의 내부를 관통했다.
주둥이, 식도, 위장이 모래에 갈려 나갔다.
콰아앙!
순간 폭음과 함께 거대 거머리의 몸체가 박살 났다.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거머리들.
결합이 해제되면서 수천, 수만 마리의 조그만 거머리로 나누어진 것이다.
조그만 거머리 수만 마리가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리는 모습은 구역질이 날 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제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다른 거대 거머리들의 입안을 공격했다.
쾅!
콰아앙!
내부에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거대 거머리들이 연신 터져 나갔다.
덩달아 바닥에 나뒹구는 소형 거머리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합이 풀린 소형 거머리들이 바닥을 새까맣게 뒤덮은 채 꿈틀거렸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던 소형 거머리들이 이내 제온에게 몰려왔다.
바닥을 새까맣게 뒤덮은 거머리들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제온은 발밑에까지 다가온 거머리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제온의 눈빛은 소름 끼칠 만큼 무서웠다.
네오 서울에선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눈빛이었다.
이게 제온의 본래 눈빛이었다.
칠 년 동안 홀로 사막을 헤맸다.
마수도 위험했지만,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바로 같은 인간이었다.
웃으며 칼을 찌르는 인간들을 너무 많이 만났기에 제온은 아예 감정적으로 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그때 그의 눈빛이 이랬다.
네오 서울로 돌아오면서 조금은 부드러워졌지만, 이게 본래 제온의 모습이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기에 자연스럽게 제온의 본래 모습이 나온 것이다.
제온이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어딘가 모체가 있을 텐데.”
군집 마수는 모체가 되는 여왕이나 보스 개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놈들이 군집 마수의 핵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무리를 이끌 정도의 보스라면 분명 범상한 개체가 아닐 것이다.
놈은 지금 수많은 무리 속에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수만 마리가 넘는 거머리 중 어떤 놈이 모체인지 구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구별할 수 없다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해야지.”
제온의 오른팔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파이어 레인!”
화르르륵!
지하 공동에 불비가 쏟아졌다.
초고열의 불비는 바닥을 빼곡히 뒤덮은 거머리들 위로 쏟아졌다.
키에에!
거머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불비는 무자비하게 거머리들을 불태웠다.
모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형 거머리들은 무기력했다.
놈들은 모래 속으로 파고들려고 했지만, 제온이 용납하지 않았다.
제온은 모래를 단단하게 만들어 거머리들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다.
수천 마리가 넘는 소형 거머리들이 불에 타 죽었다.
하지만 아직 모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충분히 견딜 만한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제온은 다시 한번 파이어 레인을 펼쳤다.
화르륵!
또 한 번 초고열의 화염 비가 내렸고, 수많은 거머리가 죽어 나갔다.
“허억! 허억!”
제온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뜩이나 바닥을 보이던 마나가 이 두 번의 공격으로 완전히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마나가 고갈되면서 탈력감에 제온이 비틀거렸다.
그때였다.
쿠드득!
불타 죽은 거머리들 사이에서 한 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른 거머리들보다 유독 새까만 녀석이었다.
놈은 마치 제온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이라도 하듯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저놈이다.’
제온은 놈이 이 무리의 모체임을 알아차렸다.
파이어 레인이 내린 곳에서도 유일하게 멀쩡히 존재하는 놈.
모체에게선 강렬한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마나의 파동이 향한 곳은 바로 제온 자신이었다.
‘나에게 마나가 남아 있는지 탐지하고 있군.’
무섭도록 영악한 녀석이었다.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있음에도 무작정 힘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염탐한다.
만일 제온이 마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 무리 속으로 모습을 감출 생각이었다.
모체는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제온에게 남은 마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제온의 몸엔 마나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모체에게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이이에!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같기도 한 괴이한 소리였다.
모체의 소리에 다른 거머리들이 반응해 몰려들었다.
다시 예의 거대한 거머리로 뭉치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저번처럼 여러 마리로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모체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크기의 거대 거머리가 탄생했다.
놈의 정수리엔 모체가 되는 녀석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제온이 마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거대 거머리의 전신에는 붉은 역장이 어려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역장이었다.
모체가 거대 거머리 이마에서 제온을 내려다봤다.
놈이 제온을 굽어보며 비웃음을 날리는 것 같았다.
제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건방지게…….”
비웃는다는 것 자체가 모체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양한 감정을 가진 마수일수록 등급이 높았다.
모체가 코어가 된 거대 거머리는 그 자체로 A급이 됐다.
반면 제온은 마나가 모두 고갈된 상황.
누가 봐도 제온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하지만 제온에겐 믿는 수가 있었다.
푸화학!
갑자기 제온의 목 부위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엘루라의 눈물.
하루에 한 번 마나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는 사기적인 아이템.
이제까지 옷 속에 꼭꼭 숨겨 두기만 했던 엘루라의 눈물을 사용한 것이다.
순식간에 제온의 마나가 모두 회복됐다.
그에게선 마나 고갈의 후유증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알아본 모체가 당혹스러운 듯 몸을 꿈틀거렸다.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제온의 마나가 모두 회복된 것을 감지한 것이다.
이제 와 결합을 풀 수도 없었다.
놈에게 남은 것은 제온을 공격하는 것밖에 없었다.
키이이!
괴성과 함께 어마어마한 거체가 제온을 향해 쭉 뻗어 왔다.
고무줄처럼 늘어난 거체는 그대로 제온이 있던 자리를 직격했다. 하지만 그곳에 제온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온은 모래를 발판 삼아 허공에 떠 있었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가볍게 시작해 보자고. 크레모아!”
콰아아앙!
순간 거대 거머리의 근처에 있던 모래들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모래 입자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흉기가 되어 거대 거머리의 몸체를 무섭게 두들겼다.
키에에에!
거대 거머리의 비명이 지하 공동에 울려 퍼졌다.
역장 덕분에 치명상을 입진 않았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거대 거머리와 모체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줬다.
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모체가 몸부림을 치더니 폭주했다.
퍼버버벙!
거대 거머리의 몸체에서 포탄이 쏘아졌다.
결집한 소형 거머리들을 포탄처럼 발사한 것이다.
제온이 바로 앞에 모래를 응집시켜 막을 만들었다.
모래 막에 거머리 포탄이 작렬했다.
쾅! 콰앙!
폭음과 함께 거머리 포탄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모래 막이 출렁였지만, 완전히 뚫리지는 않았다.
퍼버버벙!
거대 거머리가 계속해서 포탄을 쏘아 댔다.
워낙 몸집이 거대한 만큼 소형 거머리의 수도 엄청났다.
아무리 쏘아 대도 줄어든 표가 전혀 나지 않았다.
제온은 모래를 타고 허공을 날았다.
소형 거머리 포탄은 그런 제온을 쫓았다.
쾅!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거머리 포탄이 폭발했다.
포연 속에서 제온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모래의 흐름이 바뀌었다.
지하 공동을 제멋대로 흐르던 모래들이 더 강한 힘의 개입에 일제히 허공으로 치솟은 것이다.
뿌옇게 지하 공동을 가득 채운 모래 입자들.
그 속에서 제온이 중얼거렸다.
“모래는 나의 전장. 이곳에서 나에게 싸움을 건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지 알려 주지.”
제온이 손을 뻗었다.
순간 지하 공동을 가득 채운 모래가 거대 거머리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아아앙!
마치 톱니바퀴 회전하는 듯한 소리가 지하 공동에 울려 퍼졌다.
제온의 주력 스킬 중 하나인 샌드 믹서가 펼쳐진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모래 입자들은 거대 거머리의 역장을 갉아 내기 시작했다.
거대 거머리는 역장을 최대한 강화해 몸을 보호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반적인 모래라면 역장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제온의 지배력이 개입하는 순간 모래는 더 이상 평범한 모래가 아니게 된다.
마치 마법계 각성자들의 스킬처럼 역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키에에에!
거대 거머리가 생전 처음 느끼는 끔찍한 고통에 요동쳤다.
역장이 강제로 해제되고, 표피를 이루고 있던 소형 거머리들이 무참히 뜯겨 나갔다.
단단한 표피가 해체되고, 틈이 벌어지자 모래가 그 속으로 침투한다.
침투한 모래는 거대 거머리의 내부에서 격렬히 회전한다.
가아앙!
거대 거머리의 체내외에서 동시에 회전하는 모래 입자들.
콰앙!
모체를 중심으로 뭉쳤던 거대 거머리가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