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그림리퍼는 실체가 없는 마수였다.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전혀 타격을 줄 수 없다.
오직 마법 스킬만이 그나마 그림리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것도 B급 이상의 강력한 스킬을 사용했을 때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제온과 최악의 상성이라 할 수 있었다.
모래를 다루는 제온의 능력은 그림리퍼에게 타격을 줄 수 없으니까.
아마 그림리퍼도 그 사실을 알고 나타났을 것이다.
그림리퍼의 낫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의 낫은 최상위 아이템이었다.
일명 사신의 낫.
이 낫에 살짝이라도 베이면 영혼에도 큰 상처가 난다.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영혼이 망가져 결국엔 죽게 되는 것이다.
그림리퍼가 사신의 낫을 앞세워 다가왔다.
“어디 정말 모래가 안 통하는지 볼까.”
제온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아공간이 열리며 엄청난 양의 모래가 쏟아져 나왔다.
통로를 가득 메운 모래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그 모습이 꼭 뱀 같았다.
바이퍼.
제온의 스킬 중 하나였다.
쐐애액!
수십 마리의 모래 뱀이 그림리퍼를 노리고 날아갔다.
퍼버버벅!
하지만 바이퍼는 허무하게 그림리퍼를 통과해 뒤쪽 벽에 부딪혔다.
제온은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바이퍼를 날렸다. 하지만 바이퍼로는 그림리퍼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샌드 믹서까지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림리퍼의 눈에 어린 귀화가 더 거세게 타올랐다.
제온의 공격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쉬가악!
그림리퍼가 사신의 낫을 휘둘렀다.
제온은 간발의 차이로 사신의 낫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그림리퍼가 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쉬쉬쉭!
통로에 사신의 낫이 가득했다.
그림리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사신의 낫을 휘두르면서 잔영이 생긴 것이다.
그림리퍼의 공격은 대단히 빨랐다.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보니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림리퍼의 속도로도 제온을 완전히 따라잡지 못했다.
단 몇 센티 차이로 그림리퍼의 모든 공격이 제온을 비껴 나갔다. 그러자 그림리퍼의 눈에 어린 귀화와 검은 아지랑이가 더욱 짙어졌다.
놈이 화났다는 신호였다.
쐐애액!
그림리퍼가 낫을 휘두르자 검은 기운이 쏘아졌다.
낫 모양의 검은 기운은 제온을 난도질할 듯 짓쳐 왔다.
좁은 통로에서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턱!
제온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런 제온에게 낫 모양의 기운이 비처럼 쏟아졌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제온이 서 있는 벽이 터져 나가며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그림리퍼는 사신의 낫을 길게 늘어뜨린 채 벽으로 접근했다.
제온이 죽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림리퍼가 벽에 거의 접근했을 때였다.
갑자기 자욱한 먼지 속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강렬한 붉은빛을 보는 순간 그림리퍼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붉은빛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림리퍼가 두려움을 느낀 붉은빛은 바로 드래곤의 눈이었다.
초열의 건틀렛에 박힌 드래곤의 눈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드래곤은 등급을 매길 수 없는 마수였다.
아니, 마수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불경한 존재였다.
그림리퍼가 제아무리 A급 마수라고 하지만, 드래곤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상위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눈알 하나라도 말이다.
그림리퍼가 두려움을 떨쳐 내기라도 하듯 사신의 낫을 휘둘렀다.
쉬쉬쉭!
예의 검은 기운 수십 개가 제온을 향해 쏟아졌다.
그 순간 초열의 건틀렛에서도 수십 개의 붉은 기운이 뻗어 나갔다.
파이어 미사일이었다.
퍼버버버벙!
수십 발의 파이어 미사일은 그림리퍼가 날린 검은 기운을 모조리 요격했다.
검은 기운을 모조리 분쇄한 것도 모자라 파이어 미사일은 그림리퍼에게 날아갔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그림리퍼의 몸에 파이어 미사일이 작렬했다.
키에에에!
이번에는 그림리퍼도 큰 타격을 받았는지 비명을 질렀다.
파이어 미사일은 마법계 각성자라면 간단히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힘을 빌려 발사하는 파이어 미사일은 차원이 다른 위력을 자랑했다.
그림리퍼의 몸이 순간적으로 출렁였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전구처럼 깜박이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만큼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같은 파이어 미사일이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당연히 좋은 아이템을 쓰면 위력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좋은 아이템이 아니라 드래곤의 눈알이 박힌 아이템이었다.
초열의 건틀렛은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진화했다.
그 위력이 그림리퍼를 상대로 발휘되고 있었다.
푸쉬쉬!
파이어 미사일에 적중당한 부위가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며 타들어 갔다.
그림리퍼가 처음 느끼는 고통에 괴로워하며 날뛰었다.
허공을 이리저리 부유하던 그림리퍼는 이내 고통의 원인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원인은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을 죽여야 이 고통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크워어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피어를 터트리며 그림리퍼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그림리퍼는 사신의 낫과 하나가 됐다.
콰콰콰!
그림리퍼를 뒤덮은 검은 기운이 폭풍이 되어 통로를 파괴했다.
제온이 피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피할 생각도 없었다.
제온이 초열의 건틀렛을 낀 손을 앞으로 뻗으며 중얼거렸다.
“파이어 레인!”
순간 어둡기만 했던 통로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화염의 비가 통로를 가득 채우고 쏟아졌다.
화염 비는 무섭게 그림리퍼를 두들겼다.
퍼버버버벅!
물리적인 공격을 모두 통과시키는 그림리퍼의 능력도 이번엔 소용이 없었다.
키에에!
그림리퍼의 절규가 통로 안에 울려 퍼졌다.
놈의 몸체는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이 작아져 있었다. 그래도 A급 마수답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거군. 그렇다면…….”
제온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예전부터 꼭 시험해 보고 싶었던 스킬이 있었다.
그림리퍼는 시험해 보기 좋은 마수였다.
제온이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모래들이 떠올라 그림리퍼를 휘감았다. 하지만 그림리퍼는 모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모래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제온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콱!
가아앙!
그가 주먹을 꽉 쥐는 순간 그림리퍼를 휘감은 모래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샌드 믹서였다.
하지만 샌드 믹서는 그림리퍼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무섭게 회전만 할 뿐 그림리퍼를 모두 통과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제온도 예상했다.
“여기에 파이어 월을 더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 그대로 불로 벽을 쌓는 기초적인 스킬.
마나의 소모가 극심하다는 단점을 빼면 화염계 마법을 익힌 각성자 누구나 펼칠 수 있다. 그동안은 마나 소비 대비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아 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샌드 믹서와 파이어 월이 융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섭게 회전하는 모래 입자 하나하나가 화염을 머금었다.
붉게 달아오른 샌드 믹서는 그 자체로 초고열 용광로나 다름없었다.
그 속에 갇힌 그림리퍼가 절규를 했다.
그림리퍼를 보호해 주던 검은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초고열의 모래는 그림리퍼의 본체를 갉아 냈다.
가아아앙!
갈려 나간 그림리퍼의 입자가 화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키에에!
그림리퍼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샌드 믹서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탈출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그대로 소멸하라. 이 세상에도, 저세상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아.”
결국 그림리퍼의 본체가 초고온의 샌드 믹서에 모두 갈려 나갔다.
툭!
남은 것은 바닥에 떨어진 사신의 낫뿐이었다.
그제야 제온이 샌드 믹서를 해제했다.
공기를 뜨겁게 달궜던 열기도 눈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어디서도 그림리퍼는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제온은 손을 뻗어 사신의 낫을 주워 들었다.
사신의 낫을 쥔 손이 저릿하게 아프다.
단지 쥔 것만으로 온갖 저주가 그의 몸을 파고든다.
사신의 낫은 저주받은 아이템이었다.
지독한 저주가 걸려 있어 저주계 각성자가 아니면 손에 쥘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제온은 꿋꿋하게 버텼다.
몸으로 사신의 낫에 걸린 저주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피부가 순식간에 푸석해진다.
“쯧! 온갖 저주가 다 걸려 있군.”
사신의 낫은 온갖 저주의 매개체였다.
단지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만가지 저주가 제온의 몸을 잠식해 왔다.
제온 정도 각성자가 아니면 손에 쥐는 순간 바로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제온은 초열의 건틀렛에 어린 기운을 끌어 왔다. 그러자 그의 몸을 잠식하던 온갖 저주가 불타 사라졌다.
아무리 사신의 낫이 대단한 아이템이라고 하지만 초열의 건틀렛에 박힌 드래곤의 눈알을 당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제온은 정상이 되었다.
“저주를 뿌리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는 건가?”
누가 알려 준 것이 아니다.
사신의 낫을 손에 쥔 순간 본능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 알게 된 것이다.
저주를 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신의 낫은 가치가 무궁무진했다. 다만 지금 제온에겐 필요가 없었다.
제온이 아공간을 열어 사신의 낫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나마 남아 있던 저주 기운이 깨끗이 사라졌다.
제온은 사용한 모래도 모두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처럼 모래가 귀한 환경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 이상 제온을 막아서는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제온의 짐작처럼 그림리퍼가 마지막 수문장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긴장은 풀지 않았다.
그때였다.
쿠쿠쿠!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지하 전체가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가 딛고 선 바닥이 어디론가 수평 이동을 했고, 벽들이 변화를 일으켰다.
어떤 곳은 벽이 사라지기도 했고, 어떤 곳에는 없던 벽이 나타나기도 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지하 공간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제온은 당황하지 않고 공간의 변화를 유심히 바라봤다.
공간, 아니 고성 전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제온을 막을 수단이 없자, 오히려 핵심부로 제온을 이동시키는 느낌이었다.
쿵!
한참을 이동한 끝에 마침내 제온이 딛고 서 있던 공간이 멈춰 섰다.
순간 제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형!”
“제온!”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 이들은 바로 레빈과 브리엘, 그리고 엘로이였다.
제온이 말했다.
“모두 무사했구나.”
“역시 살아 있을 줄 알았다니까요.”
“모래가 제온을 죽일 리 없잖아.”
“멀쩡하네.”
그들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제온은 레빈과 브리엘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그들과 같이 있던 인물들을 바라봤다.
이지령, 브론슨, 게슬링을 비롯한 페가수스 공략대 전원과 서 구역 각성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제온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지령이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늦었군.”
“막아서는 자들이 많더군요.”
“오느라 고생했으니, 이제부턴 편히 쉬면서 지켜보도록.”
“…….”
“우리가 어떻게 이 성의 주인을 잡는지 말이야.”
이지령이 보고 있는 것은 정면의 문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문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안에 고성의 주인이 있다고 말이다.
이지령이 그 문을 부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