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문 너머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기사였다.
풀 프레임 갑주와 붉은 망토를 착용한 진짜 기사.
그는 이제까지 상대한 언데드 기사와 달리 생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기사가 자연스럽게 흘리는 고귀한 기품에 이지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상상했던 옥지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옥지기라면 추레하고, 포악한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기사는 그런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기사는 이지령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침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위엔 그림리퍼가 납치해 온 차진철이 누워 있었다.
“대장이다.”
“대장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서 구역 각성자들이 차진철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지령이 손을 뻗어 그들이 차진철에게 달려가려는 것을 막았다.
기사는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진철만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차진철의 허리에 있는 포승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옥지기의 포승줄.
차진철이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낙찰받은 아이템이었다.
기사는 손을 뻗어 옥지기의 포승줄을 어루만졌다.
‘저 아이템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이 시중에 푼 물건 중 유독 제온의 신경을 거슬렸던 아이템이었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꺼림칙하고, 불길하게 느껴지는 물건들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런 물건들은 훗날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제온이 보기엔 옥지기의 포승줄이 그런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데미안이 네오 서울에 독을 풀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기에 지켜만 봤던 것이다.
그때 이지령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옥지기인가?”
기사가 대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데드라는 것은 대부분 이성을 잃고 본능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 이름은 그레고릭 텔마 카리온. 위대한 왕을 지키지 못해 옥지기로 영락한 죄인.
“그레고릭? 그대는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 건가?”
―내 이름은 그레고릭 텔마 카리온. 위대한 왕을 지키지 못해 옥지기로 영락한 죄인.
스스로를 그레고릭이라 밝힌 기사는 마치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성을 가진 게 아니라, 그냥 정해진 말만 반복하는 건가?”
이지령이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푸화학!
갑자기 기사의 손에 들려 있던 옥지기의 포승줄에서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다.
“뭐야?”
“누, 눈이…….”
강렬한 빛을 예상하지 못한 각성자들이 잠시 시력을 잃고 비틀거렸다.
제온과 이지령이 어떻게 대처할 사이도 없이 포승줄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무슨?’
‘뭐냐? 왜 아이템이…….’
그때였다.
두 사람에게 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기사가 검을 빼 들었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수백 명의 기사가 소환됐다.
그레고릭 텔마 카리온.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
죽어서도 지키겠다고 서약한 기사단장.
하지만 그는 왕을 지키지 못했고, 옥지기로 영락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스릉!
그레고릭이 검으로 각성자를 겨눴다.
―왕의 귀환을 방해하는 자, 모조리 죽인다.
투구 사이로 으스스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왕의 귀환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씨발! 조지고 대장부터 구해.”
서 구역 각성자들이 분노해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 뻔히 뜨고 차진철이 납치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지령이 말려 봐야 소용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엔 차진철을 구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죽여!”
“공격해.”
콰콰콰!
서 구역 각성자들이 총공격에 나섰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었다.
페가수스 공략대도 전투에 참여했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촤앙! 촹!
무기와 무기가 부딪쳤고, 각종 마법 공격이 오갔다.
“기사단장부터 잡아야 해. 놈이 보스야.”
브론슨이 공략팀과 함께 보스 사냥에 나섰다.
브론슨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제까지 전투에선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인간 형태의 마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가장 자신 있는 게 바로 대인전이었기 때문이다.
“뒈져랏!”
브론슨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일제히 기사단장을 공격했다.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이다.
그것이 비록 인간 형태의 마수일지라도 말이다.
콰콰쾅!
각종 스킬과 무기가 기사단장에 작렬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브론슨은 이 한 번의 공격으로 기사단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번쩍!
갑자기 기사단장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며 모든 공격이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청량해지는 성스러운 빛의 막이 기사단장을 휘돌고 있었다.
이지령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홀리 실드를 언데드가 어떻게?”
홀리 실드(Holy Shield).
성기사처럼 신을 모시는 자들이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네오 서울에선 동대문의 성기사들이 주로 사용했다.
비록 광신도라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신을 모시는 자들이었다.
덕분에 홀리 실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사단장이 펼친 홀리 실드는 동대문의 성기사들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했다.
마치 태양과 달만큼이나 말이다.
기사단장의 홀리 실드는 단순한 방어 스킬이 아닌 공격까지 가능한 공방일체의 스킬이었다.
콰콰쾅!
홀리 실드에서 뻗어 나온 강력한 빛이 브론슨과 각성자들을 강타했다.
“크아악!”
“컥!”
비명과 함께 그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브론슨은 피를 흘리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공격했던 각성자들은 대부분 중상을 입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지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S급인가?”
이제까지 수많은 마수들을 사냥했지만, S급 마수를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원이 다른 엄청난 존재감에 이지령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A급을 넘어 S급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진짜 S급의 존재감에 숨이 턱 막혔다.
문득 그의 시선이 제온을 향했다.
딱딱하게 굳은 그와 달리 제온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이 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이제까지 애써 무시했지만, 이제 확실히 알겠다.
자신은 그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열등감일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게 한 것은 제온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당혹스러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놈은 나 혼자 상대하겠다.”
“대장!”
“그사이 나머지 놈들을 정리하라.”
“부디 조심하시오. 대장이 어떻게 되면 우리 페가수스 공략대도 무너지니까.”
“나를 믿어라.”
“흐흐! 우리가 대장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게슬링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매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역시 저 기사단장이 이제까지 만나 본 적이 없는 괴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나, 이지령. 언젠가 네오 서울 정상에 오를 남자다. 나에게 이 정도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지령이 기사단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빠지직!
뇌전을 전신에 두른 채 기사단장에 부딪혔다.
콰아앙!
두 괴물이 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했다.
충격파는 제온 일행도 강타했다.
제온이 대부분의 충격파를 상쇄해 준 덕분에 브리엘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기사단장이 소환한 기사들이 그들도 공격했기 때문이다.
“죽지 못한 망령들이 어딜?”
“챠하핫!”
엘로이와 레빈이 그들에 맞서 싸웠다.
이번 던전 공략을 통해 레빈도 많이 성장했다.
순식간에 유령처럼 변해 퍼플 라이트닝을 발산했다.
빠지직!
이제까지 수많은 언데드들을 박살 냈던 퍼플 라이트닝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을 상대론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새끼들!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있어.”
레빈이 이를 악물었다.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 퍼플 라이트닝의 위력을 감쇄시키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공격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기사들의 공격도 그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림리퍼처럼 그 역시 유령화되었을 때 물리적인 공격에 타격을 입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기사들이 검에 빛을 피워 올렸다.
신성력을 검에 담은 것이다.
“씨발! 언데드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반칙 아냐?”
이렇게 되면 유령화한 상태라도 안심할 수 없다.
신성력은 영체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빈은 물러나지 않고 맞섰다.
엘로이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뒈졋!”
미친 구미호를 휘두르며 날뛰는 그녀의 모습은 광인을 연상케 했다.
장내는 혼돈 그 자체였다.
각성자와 언데드 기사들이 뒤엉켜 싸우고, 레빈과 엘로이가 미쳐 날뛰었다.
그 한가운데 제온과 브리엘이 있었다.
브리엘이 제온을 올려다봤다.
모두 미쳐 날뛰는데 오직 제온만이 동떨어진 세계에 홀로 있는 것처럼 평온했다.
다른 각성자들을 미친 듯이 공격하는 언데드 기사들조차도 본능적으로 위험한 냄새를 맡았는지 제온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제온!’
브리엘이 제온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제온이 먼 곳으로 떠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제온이 브리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제온의 미소를 보자 괜히 안심됐다.
브리엘을 안심시킨 제온은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차진철이었다.
차진철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왕의 귀환을 방해하는 자 모두 죽인다?’
제온은 기사단장이 했던 말을 되뇌며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옥지기의 포승줄이 빛으로 화해 사라지던 광경을.
‘옥지기의 포승줄은 왕의 부활을 위한 매개체였군.’
이제 모든 상황이 명료해진다.
자신이 왜 그렇게 옥지기의 포승줄에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이 고성의 진정한 주인이 차진철을 이용해 부활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제온은 차진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언데드 기사들이 제온을 막아섰다.
“비켜라!”
퍼버벅!
제온의 주먹이 언데드 기사들에 작렬했다.
언데드 기사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차진철에게 향하는 길이 열렸다.
제온은 그 길을 내달렸다.
다른 언데드 기사들이 막기 위해 달려왔지만, 그때는 제온이 이미 차진철에게 도달한 후였다.
제온이 그대로 차진철의 머리에 주먹을 내리쳤다.
“안 돼!”
“이 미친 새끼가…….”
서 구역 각성자들이 몸을 던져 제온의 공격을 막았다.
퍽!
제온의 주먹을 온몸으로 막아 내는 각성자 때문에 차진철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진철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