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그의 이름은 트리지언 마엘 브리든이었다.
한 왕국의 지배자였고, 기사들의 왕이라는 이명으로 불렸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통치자였고, 왕국을 지키는 위대한 검이었다.
왕국은 번성했고, 평화는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파국은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왕국은 멸망했다.
백성을 잃은 왕은 절망했고, 신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그리고 타락했다.
타락한 기사왕은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신의 징벌을 받아 옥지기의 포승줄에 봉인됐다. 그리고 그가 이끌던 기사들은 모두 언데드가 되었다.
언데드 기사들은 위대한 기사왕 트리지언이 부활하기만을 염원했다. 하지만 쿠라얀이라는 세상 자체가 멸망하면서 트리지언이 봉인된 옥지기의 포승줄은 사라졌다.
절망 속에서 그들은 언젠가 옥지기의 포승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옥지기의 포승줄은 돌아왔고, 트리지언의 봉인은 깨졌다.
정신을 차린 트리지언이 새로운 육체를 점검할 때였다.
―정신 차리셨습니까? 마스터.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마스터, 저 현무입니다.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현무?’
―마스터를 보조하는 AI 현무입니다.
‘신기하구나. 인간의 머릿속에 또 다른 정신이 기생하다니.’
―기생?
순간 현무가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비록 삼족오의 열화판이라고 하지만, 현무 역시 고도의 지능이 탑재된 AI였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줄 알았다.
―마스터 의식 긴급 점검.
현무는 급히 차진철의 의식 점검에 들어갔다.
그때 차진철의 육체를 장악한 트리지언이 몸을 일으켰다.
철컥! 철컥!
순간 팔과 다리에서 미세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트리지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뭐냐? 이 육체는? 쇳덩이가 섞여 있다니.’
기계와 결합한 차진철의 육체는 트리지언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트리지언이 조심스럽게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인간의 육체와 기계를 더하다니. 어떤 마법사가 이렇게 흉악한 시험을 한 건가?’
―마스터의 정신이 오염된 것으로 판단. 현 시간부로 마스터와의 모든 연결을 끊고, 보조 AI 현무의 삼족오 귀환 프로토콜을 시행한다.
‘삼족오? 귀환 프로토콜?’
순간 트리지언의 눈이 빛났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알아차렸다.
차진철의 기억을 검색해 알아낸 것이다.
그는 기사였지만, 마법에도 능통했다.
트리지언은 우선 서칭 마법을 펼쳐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기계로 된 팔과 다리의 구조가 선명히 들어온다.
그다음 눈에 띈 것은 심장이었다.
인간의 심장에 기계로 된 무언가 부착되어 있었다.
마나 엔진이었다.
심장의 마나를 증폭시켜 주는 서 구역만의 마도 공학.
김현수가 구상하고 삼족오가 완성한 마나 엔진은 그 자체로 과학과 마법의 결정체였다.
트리지언은 순식간에 마나 엔진의 구조를 파악하고 원리를 이해했다.
그다음 트리지언의 의식이 향한 곳은 머리와 목이 만나는 곳에 있는 중추 신경계였다.
그곳에 조그만 쇠 상자가 있었다.
어른 손톱만 한 쇠 상자엔 온갖 마법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현무라는 AI의 의식이 그 안에서 느껴졌다.
‘뭐지? 혹시 골렘의 핵인가?’
골렘이라고 생각하니 이해하기 편했다.
인간이 골렘의 핵을 이식했고, 그 때문에 골렘의 의식이 정신에 개입한다.
기계로 된 팔다리는 골렘의 도움을 받아 최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트리지언에겐 이 모든 것이 혁신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본체가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차진철의 몸 속에 있는 것은 본체의 일부라는 이야기다.
‘일부만으로도 이렇게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데, 본체라면 얼마나 대단한 세계를 보여 줄 것인가?’
트리지언의 상상력이 무한대로 발휘됐다.
차진철의 몸을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이 몸과 정신,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총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쾅!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큰 위협이 느껴졌다.
결국 트리지언이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을 공격하려는 남자와 그를 필사적으로 막는 이들이 보였다.
공격하려는 남자는 제온이었고, 막으려는 이들은 서 구역의 각성자들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감히 대장을 죽이려고 하다니.”
“씨발! 모두 이 새끼 총공격해.”
서 구역 각성자들이 모두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제온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당신들의 대장은 정상이 아니에요.”
“시끄럽다.”
“죽엇!”
서 구역 각성자들은 제온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공격했다.
제온이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차진철을 바라봤다.
차진철의 눈에서 붉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붉은빛.
언뜻 봐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때 차진철의 눈빛이 안정됐다.
붉은빛은 더 이상 점멸하지 않고, 동공에 확실히 안착했다.
그 순간 제온은 확실했다.
옥지기의 포승줄에 봉인되었던 존재가 차진철의 육신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을 말이다.
“늦었군!”
그렇다고 차진철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차진철의 육신을 차지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대로 세상에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차진철에게 가기 위해서는 우선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각성자들을 무너트려야 했다.
쾅!
제온의 주먹이 선두의 각성자 복부에 작렬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지는 각성자.
제온이 그를 뛰어넘어 바로 뒤에 있던 각성자를 공격했다.
그의 육체 능력은 어지간한 무투계 각성자 이상이었다.
거기에 팔 년 동안 사막을 헤매며 싸웠던 경험까지 더해지니 서 구역 각성자들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콰지직!
“크억!”
서 구역 각성자의 기계 팔을 송두리째 뜯어내거나 부러트렸다.
순식간에 제온의 앞을 막아서던 각성자들이 무너져 내렸다.
다른 각성자들이 제온을 막으려 했지만 브리엘이 나서서 방해했다.
“얍!”
그녀가 고깔모자에서 무언가를 꺼내 제온과 각성자들 사이에 던졌다.
공 같은 물체는 일종의 폭탄이었다.
펑!
폭탄이 터지면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큭!”
“뭐야?”
연기를 흡입한 서 구역 각성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리엘이 득의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헹! 목 아프고 힘이 들어가지 않지? 이럴 줄 알고 내가 특별히 만들어 낸 특제 폭탄이다.”
인간의 몸을 포기하고 기계와 결합한 기계화 각성자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 있다.
바로 기계를 매끄럽게 움직이는 윤활유였다.
양이 적건 많건, 기계화 각성자에겐 윤활유가 필수적이었다.
브리엘이 만든 폭탄은 바로 윤활유를 굳게 만드는 성질이 있었다. 조금만 흡입해도 윤활유를 굳게 만드는 것이다.
효과는 끽해 봐야 일이 분 정도밖에 가지 않았다.
그냥 잠시 기계화 각성자들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제온에겐 큰 도움이 됐다.
서 구역 각성자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제온은 차진철 앞에 도달했다.
차진철의 몸을 차지한 트리지언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넌 누군데 감히 이 몸의 부활을 막으려는 것이냐?”
“그건 알 거 없고.”
제온이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쾅!
초열의 건틀렛을 낀 주먹에 적중당한 트리지언이 뒤로 날아갔다. 트리지언의 가슴은 움푹 패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즉사했을 정도의 상처였다. 하지만 트리지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제법 강력한 공격이구나.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이 몸에 별다른 타격을 입힐 수 없느니라.”
“어디 끝까지 나불거릴 수 있는지 두고 보면 알겠지.”
제온이 차갑게 말하며 달려들었다.
초열의 건틀렛에 박힌 드래곤의 눈알이 강력한 빛을 발산했다.
순간 트리지언의 붉은 눈빛이 광포하게 빛났다.
“저주받을 드래곤의 눈이구나. 드래곤의 기운을 사용하는 자, 절대 용서할 수 없도다.”
그의 음성엔 드래곤을 향한 원독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의 의지를 대행해 그를 옥지기의 포승줄에 봉인한 존재가 드래곤이었기 때문이다.
푸화학!
트리지언의 전신에서 회색 기운이 방출됐다.
기계화 각성자 특유의 회색 오러였다.
회색 오러는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 서 구역 각성자들을 덮쳤다. 브리엘의 폭탄에 당해 몸이 굳은 각성자들은 회색 오러를 피할 수 없었다.
“크억!”
“윽! 대장. 우립니다.”
서 구역 각성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회색 오러에 잠식당한 그 순간부터 기계 육신이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진철의 의지가 그들의 육체에 개입한 것이다.
누군가 알려 준 것이 아니었다.
기계로 된 차진철의 육신을 장악한 그 순간 절로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이 육체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말이다.
기계로 된 육체는 부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주위에는 부품이 될 만한 육체가 널려 있었다.
바로 서 구역 각성자들이었다.
그 순간 트리지언이 떠오른 키워드는 네 개였다.
분해, 추출, 결합, 증폭.
서 구역 각성자들의 기계 육체를 분해하고, 부품을 추출한다. 그리고 차진철의 육체에 끼워 맞춰 위력을 증폭시킨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콰콰콰!
“으악! 대장.”
“살려 줘!”
서 구역 각성자들의 비명과 함께 기계로 된 육체가 산산이 분해됐다. 분해된 육체에서 쓸 만한 부품들이 추출됐다.
부품들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트리지언의 육체와 결합했다.
순식간에 트리지언의 육체가 두 배나 커졌다.
팔과 다리가 굵어지고, 상체가 크게 부풀었다.
고릴라와 비슷한 모습이다.
왕의 육신이라고 보기엔 위엄이 떨어지지만, 이후에 수정하면 그만이다.
수많은 부품이 합쳐진 금속성의 육체 안에 흐르는 엄청난 양의 마나.
트리지언은 강력한 힘과 해방감을 느꼈다.
“누가 감히 짐에게 맞설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외침이 고성에 울려 퍼졌다.
―오오! 왕께서 부활하셨다.
제일 먼저 반응한 이는 이지령과 맞서 싸우던 기사단장이었다.
―오오오!
―왕께서 돌아오셨다.
그의 외침에 언데드 기사들이 광분했다.
“무슨?”
“이것들이 왜 이래?”
이지령과 각성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들의 전투력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지령이 다급히 트리지언을 바라봤다.
“진짜 보스는 저쪽이었나?”
당장이라도 몸을 빼서 트리지언을 상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사단장이 그를 놔두지 않았다.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왕께 다가갈 수 없다.
그런 기사단장을 본 트리지언이 말했다.
“그레고릭. 나의 충실한 신하여.”
―오오! 왕이시여.
“이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세상으로 나가자. 네오 서울에 나의 깃발을 꽂을 것이다.”
―네오 서울?
“이곳의 인간들이 세운 왕국이다. 그 땅을 내 발아래 둘 것이다.”
―모든 것이 왕의 뜻대로 이뤄질 겁니다.
기사단장의 기세가 증폭됐다.
트리지언이 부활하면서 버프를 받은 것이다.
언데드 기사들의 전투력도 상승했다.
이지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들을 내보내면 네오 서울이 위험해집니다.”
제온의 목소리에 이지령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단순히 던전 공략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을 막지 못하면 네오 서울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진다.
이지령이 제온에게 말했다.
“물러나라. 모래가 없는 넌 저들을 상대할 수 없어.”
“누가 그럽니까? 모래가 없다고.”
“뭐?”
그 순간 제온의 등 뒤로 아공간이 열렸다.
촤아아!
아공간에서 붉은 모래가 강물처럼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