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수많은 전선과 케이블 선이 연결된 금속 의자 위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금속성 느낌이 나는 피부와 근육을 가진 남자는 바로 서 구역의 패자인 김현수였다.
김현수는 의자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시청사를 바라봤다.
기계로 된 의안에 시청사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서 구역에 둥지를 튼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서 구역을 발전시키고, 고도의 기계 문명을 일궜다. 그럼에도 시청사와는 많은 격차가 존재했다.
그것이 김현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진금호,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무슨 짓을 벌이는 건가?”
네오 서울의 시장 진금호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가 들어오는 덕분이다.
김현수가 그중에서도 특히 신뢰하는 것은 바로 슈퍼컴퓨터인 삼족오의 분석이었다.
에이션트 골렘의 두뇌와 컴퓨터가 결합하여 탄생한 삼족오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분석한 정보와는 수준이 달랐다.
그럼에도 진금호와 네오 서울의 정보는 많이 알아내지 못했다.
시청사는 삼족오의 능력으로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방호벽을 갖추고 있었다.
“네오 서울은 한국인의 것이다. 언제까지 이종족과 외지인들이 설치는 것을 두고 볼 것인가?”
그는 골수부터 한국인이었다.
이 땅의 순혈 혈통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비록 신체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했더라도 말이다.
그때였다.
―마스터.
삼족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차진철 님이 조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뭐?”
김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만큼 삼족오가 전해 온 정보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현무의 보고입니다.
“차진철이 정말 죽었다고?”
―확실합니다.
“으음!”
김현수가 침음성을 흘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차진철에게는 삼족오의 열화판 AI인 현무가 장착되어 있다.
삼족오와 현무는 에고로 연결되어 있었다.
덕분에 이 먼 곳에서도 현무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김현수가 물었다.
“차진철이 어떻게 죽었지?”
―그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현무도 타격을 입은 건가?”
―차진철 님이 돌아가시기도 전에 현무가 귀환 프로토콜을 가동했습니다.
“그만큼 위험 상황이었다는 건가?”
현무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차진철의 머리에 이식한 칩이라는 매개체로 작동하는 삼족오의 분신이었다.
삼족오는 현무를 언제든 거둬들일 수 있다.
삼족오의 열화판 AI를 장착한 수하들이 배신하거나, 신통치 않을 때를 대비해 둔 포석이었다.
반대로 열화판 AI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삼족오에게 돌아오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이를 귀환 프로토콜이라고 불렀다.
현무는 다시 삼족오로 돌아오기 위한 귀환 프로토콜을 발동시켰다.
그만큼 위기 상황이기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끊고 삼족오의 회수만을 기다린다.
완전히 회수하기 전까지는 제아무리 삼족오라고 할지라도 현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삼족오가 물었다.
―현무를 회수할까요?
“그래야지. 당장 시작해.”
―회수 절차 시작하겠습니다.
“언제쯤 끝날까?”
―최소 하루 이상은 걸릴 겁니다.
열화판 AI를 회수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귀환 프로토콜이 허락되면 열화판 AI는 자신의 모든 데이터를 마나 입자에 담아 대기 중에 방출한다.
이를 삼족오가 수집하는 것이다.
중계기가 없기에 이 작업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신 일단 현무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면 분석할 필요가 없다. 데이터 형태로 삼족오에게 흡수되기 때문이다.
―현무가 흡수되는 즉시 다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김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현무가 장착된 차진철의 전투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런데도 당했단 말이지? 도대체 뭐에 당했단 말인가?’
***
“크아악!”
기사단장의 처절한 비명이 고성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전신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를 보호해 주던 갑옷도 검게 그을린 채 우그러져 있었다.
이지령 최강의 스킬인 뇌신의 철퇴가 강타한 흔적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뇌신의 철퇴에 강타당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사단장은 특유의 막강한 방어력으로 견뎌 냈다.
만일 트리지언이 죽지 않았다면 그는 언제까지고 이지령의 공격을 감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리지언이 죽으면서 그의 정신력이 크게 흔들렸고, 하필 그 순간 이지령의 등급이 올랐다.
진정한 S급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그가 겪은 수많은 전투와 한계까지 쌓인 경험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등급이 올라간 것이다.
진정한 S급이 된 순간 뇌신의 철퇴 위력도 달라졌다.
기사단장이 펼치던 홀리 실드를 산산이 박살 낸 것도 모자라 본체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힌 것이다.
이지령은 이제야 진정한 뇌신의 경지에 올랐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전신에서는 엄청난 양의 전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페가수스 공략대의 각성자들마저도 감전될까 두려워 멀찍이 떨어졌을 정도였다.
“후우!”
이지령이 한숨을 내쉬며 외부로 방출되던 전류를 모조리 거둬들였다.
“와아아!”
“대장이 S급이 됐다.”
“이겼다.”
그제야 페가수스 공략대의 각성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기사단장이 마지막이었다.
언데드 기사들은 진즉 정리가 된 상태였다.
이제 고성은 그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었다.
쿠쿠쿠!
고성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핵인 기사단장이 죽자 소멸하려는 것이다.
공략팀장 브론슨이 외쳤다.
“씨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서 시신 수습하고, 아이템들 챙겨. 부산물부터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가지고 나가야 해.”
거의 사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번 던전 공략에 동원됐다.
그중 삼분지 이가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는 겨우 백 명이 조금 넘었다.
그나마도 페가수스 공략대 각성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용병과 서 구역 각성자들은 대부분 죽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피해였다.
겨우 던전 하나 공략하려다가 본 피해치곤 너무 컸다.
그래도 이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팔면 손해는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았다.
가장 큰 소득은 공략대장인 이지령이 진정한 S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던전 공략은 큰 소득이었다.
“언데드 기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도 다 챙겨. 그거 다 돈이니까.”
“잭팟이다. 여기 비밀 창고가 있다.”
“비밀 창고?”
어느 각성자의 외침에 많은 이들이 달려갔다.
각성자가 발견한 비밀 창고엔 많은 아이템이 쌓여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모두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이템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정도라면 이번 공략에서 입은 손해를 모두 벌충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언제 던전이 소멸할지 모르니 서둘러 움직여. 가치가 나가는 것부터 모두 가지고 나와.”
“예!”
각성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에겐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최고의 애도는 죽은 자들의 가족에게 많은 보상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조그만 아이템 하나까지 달달 긁어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게 중요했다.
페가수스 공략대는 이런 식으로 사망자들의 가족을 챙겼고, 이는 공략대의 명성에 큰 기여를 했다.
이지령은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전신에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치 혈관에 피 대신 뇌전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온몸이 뇌전으로 이뤄진 것 같은 고양감은 생전 처음이었다.
지금이라면 네오 서울의 지배자인 진금호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인의 힘을 만끽하던 이지령이 잠시 후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은 고성의 비밀 창고에서 가지고 나오는 아이템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닥에 쌓여 있는 검은 재였다.
트리지언을 태우고 남은 흔적이었다.
이지령이 제온에게 다가갔다.
“고생했다. 덕분에 고성을 공략할 수 있었어.”
“그쪽은…… S급이 되었군요?”
“그렇다. 운이 좋았어.”
“운도 노력한 사람에게 따라 주는 법이죠.”
이지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덕분이다. 많은 자극이 됐어.”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차진철을 태운 재를 왜 그렇게 보지? 혹시 김현수가 앙심을 품을까 두려운 건가?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 우리 모두 차진철이 다른 존재로 변한 것을 보았으니까. 내가 그에겐 잘 말해 주지.”
“그건 그다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제온이 대답 대신 허리를 숙여 잿더미 안에 있던 조그만 쇠 상자를 꺼냈다.
차진철의 머리에 이식되었던 칩이었다.
제온이 살짝 힘을 주자 칩이 힘없이 부서졌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아니!”
이지령이 고개를 저었다.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차진철은 기계화 각성자였다.
특이하게 인간의 육체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각성한 자들.
몸속에서 금속이 나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 그게 신경 쓰이나?”
“조금요.”
“지닌바 힘에 비해 생각이 너무 많군.”
“예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천성이라 고쳐지지 않는군요.”
“강자는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오직 목표를 정하고 전력으로 달려가면 돼. 그러면 사소한 고민이나 계획 따윈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게 되지.”
“전 당신 정도의 야망이 없어서요.”
“과연 그럴까?”
이지령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제온은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 눈빛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
쿠우우!
강력한 진동과 함께 고성 내부에 커다란 포털이 생성됐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출구다.”
“와아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제야 이지령이 제온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가 페가수스 공략대에 말했다.
“수고했다. 모두 챙겼으면 밖으로 나가자.”
“옛!”
각성자들이 대답과 함께 차례로 포털로 들어갔다.
이지령은 각성자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략대의 대장이란 그런 자리였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자리.
모든 각성자들이 고성을 빠져나가고, 이지령과 제온 일행만 남았다.
제온이 일행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나가자.”
“예! 형.”
“응!”
“어서 나가자고. 이젠 지겨우니까.”
레빈, 브리엘, 엘로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가는 순서를 기다리는 게 지겨웠던 것이다.
그들이 포털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그런데 말이야.”
뜬금없이 이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온과 일행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번쩍!
그 순간 거대한 뇌전이 그들을 덮쳤다.
뇌신의 철퇴.
이지령 최강의 스킬이 펼쳐진 것이다.
‘제기랄!’
피할 여유도 없었고, 피하면 뒤에 있는 브리엘 등이 직격당한다.
제온이 팔을 교차하며 정면으로 뇌신의 철퇴를 맞았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제온이 포털 옆으로 튕겨 나갔다.
S급에 오른 이지령의 뇌전 스킬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위력을 자랑했다.
뇌신의 철퇴는 제온뿐 아니라 브리엘, 레빈, 엘로이도 감전시켰다.
제온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
이지령이 그런 제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동생인데, 원수는 갚아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그의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제온이 기사왕을 죽이는 것을 본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 열등감이 폭발했다.
이대로 제온을 살려 두면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를 암습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던전을 공략한 공이 있으니 직접 죽이지는 않지. 던전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라고.”
그가 마지막 말과 함께 포털로 들어갔다.
포털이 닫히고 공간 전체가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공략이 끝난 던전이 소멸하는 것이다.
던전이 소멸하면 그 안에 있는 생명체도 함께 소멸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이지령이 일부러 제온을 공격해 낙오시킨 것이다.
제온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군. 하지만 당신은 잘못 생각했어.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직접 숨통을 끊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