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레빈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기절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아우! 뒈질 뻔했네.”
레빈이 간밤의 고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진저리를 쳤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두 번 다시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레빈을 훑어보던 엘로이가 놀라 말했다.
“어, 너 몸이 변했는데?”
“네?”
“왜 이렇게 몸이 좋아졌어?”
“진짜요?”
레빈이 상의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각이 잡힌 선명한 복근이 눈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가슴, 팔, 다리까지도 근육이 꽉 차 있었다.
원래 레빈의 체형은 날씬했다. 근육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룻밤 만에 근육질로 바뀌었다.
그것도 말처럼 탄탄하면서 힘 있는 근육으로 말이다.
레빈이 제온에게 물었다.
“이거 모래 아귀 쓸개 때문인가요?”
“맞아!”
“와아! 겨우 쓸개 하나 먹었다고 이렇게 변한다고요?”
“그게 모래 아귀의 효능이지. 사냥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쓸개를 복용하면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주지.”
“고마워요, 형! 이렇게 귀한 걸 저를 주다니.”
레빈이 감격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러자 엘로이와 브리엘이 투덜거렸다.
“쳇!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먹는다고 할걸.”
“나도! 아깝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부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엘로이는 이미 모래 아귀의 쓸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신체를 단련했고, 브리엘은 무투계 각성자가 아니라 몸을 단련할 필요가 없었다.
제온이 말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모래 아귀 고기도 다 먹자.”
“네!”
이미 쓸개의 효능을 경험한 레빈이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 후로 제온 일행은 오아시스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그사이 브리엘은 모래 아귀의 뱃가죽으로 로브를 만들었다.
그녀의 고깔모자에서는 로브를 만들 재료가 끝없이 나왔다.
마법 처리된 가위로 뱃가죽을 재단하고, 정체 모를 액체로 재단한 뱃가죽을 코팅했다.
이어 마법진을 새기고, 마나를 주입했다.
세 사람은 그런 브리엘의 행위를 말없이 바라봤다.
브리엘이 로브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모든 액체는 직접 연금술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효능의 액체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브리엘은 그렇게 연금술로 만들어 낸 액체를 이용해 로브에 새로운 성질을 부여하려 했다.
연금술뿐만 아니라 인챈터로도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에 엘로이는 놀란 눈으로 브리엘을 바라봤다.
‘이 꼬맹이, 진짜 장난 아니잖아.’
마나를 주입해 마법진을 활성화하자 로브에서 빛이 났다.
새로운 성질이 생겨난 것이다.
“좋았어! 완성이다.”
브리엘이 로브를 들고 활짝 웃었다.
레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성질이 붙은 거야?”
“피풍, 피수, 방한, 방열에 피로 회복, 그리고 보호 기능이 생겼어. 이 정도면 옵션이 빵빵하게 붙은 거지.”
“역시 대단하네.”
“후후!”
브리엘이 로브를 걸쳤다. 그러자 뜨거운 열기가 차단되며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성능이 덕지덕지 붙었다.
급조한 것치곤 꽤 성공작이었다.
브리엘은 내친김에 신발까지 만들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그녀는 경량화 성질을 신발에 부여할 수 있었다.
몸을 가볍게 해 모래에 푹푹 빠지는 것만 방지해도 체력이 뭉텅이로 깎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브리엘이 로브와 신발을 완성하는 사이 오아시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침 모래 아귀 고기도 모두 먹었기에 제온 일행은 오아시스가 있었던 곳을 떠났다.
브리엘이 제온의 뒤를 따르면서 중얼거렸다.
‘신난다. 이제 힘들지 않아. 덥지도 않고. 네오 서울로 돌아가면 로브의 성능을 더 개선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한참을 걸었는데도 피곤하지 않았고, 더위도 느껴지지 않아 쾌적했다.
이 정도라면 온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브리엘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힘들지 않은 것은 레빈도 마찬가지였다.
일행이 이동하는 속도는 이전에 비할 수 없이 빨라졌다.
덕분에 엘로이가 후미에서 그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엘로이가 선두에서 걷는 제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당신은 오랫동안 사막을 떠돌았지?”
“네!”
“그럼 안 가 본 곳이 없겠네. 혹시 이 근처에도 와 봤어?”
“저라고 모두 가 본 것은 아닙니다. 네오 서울 서쪽은 저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팔 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긴 것이 아니었다.
지구 전체를 걷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제온이 이제까지 가 본 곳은 네오 서울 남쪽과 동쪽 지역에 국한됐다.
서쪽은 제온에게도 미지의 땅이었다.
이곳에 어떤 마수가 서식하는지, 어떤 환경인지, 또 어떤 이들이 사는지 알지 못했다.
제온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네오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진 건지 모르지만, 운이 좋으면 콜로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곳에도 콜로니가 있을까?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 만한 환경으로는 안 보이는데.”
“이보다 더한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한 것을 봤습니다. 분명 어딘가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제온의 말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그는 인간의 저력을 믿었다.
‘지구가 이보다 더 망가져도 인간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은 약하지만, 하나로 뭉쳤을 때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니까.’
그러나 제온의 기대와 달리 며칠을 걸었어도 인간의 흔적 따윈 발견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사막뿐이었다.
끝나지 않는 고행에 일행들이 지쳐 가고 있었다. 그래도 제온은 지치지 않고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었다.
“잠깐!”
제온이 갑자기 일행을 멈춰 세웠다.
세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왜요?”
“전방에 마수가 있다.”
“마수? 제가 가서 확인할게요.”
레빈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순식간에 유령화해서 날아갔다.
엘로이가 피식 웃었다.
“정찰병으로 딱이라니까.”
이렇게 제온이 위험 요인을 감지하면 레빈이 나서서 정찰했다.
수시로 유령화를 하다 보니, 속도도 빨라지고, 유지 시간이 길어졌다.
레빈은 순식간에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늑대와 닮은 마수예요.”
“늑대?”
“네! 머리엔 큰 뿔이 달렸고, 덩치도 커요. 최소 D등급 정도는 되어 보여요.”
“D등급이면 그렇게 위험하진 않네.”
엘로이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왜?”
“늑대의 등에 안장이 있어요.”
“안장이면 사람이 타는 그거?”
“네!”
“그럼 늑대 마수를 길들인 인간이 있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요. 일단 주위에 인간은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인간이 마수를 길들였다면 대박인데.”
엘로이가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서둘러 늑대 마수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모래 산을 넘자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레빈의 말처럼 그곳에 늑대를 닮은 마수들이 있었다. 마수들의 등에는 커다란 안장이 실려 있었다.
제온이 말했다.
“인간이 타기엔 안장이 너무 큰데.”
“그러게. 저건 인간보단 훨씬 더 큰 무언가가 타기 위해 만든 것 같은데.”
그때였다.
늑대 마수들이 갑자기 하울링을 터트렸다.
우오오오!
그 순간 늑대 마수들이 있는 곳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의 모래가 들썩이더니 바닥이 열렸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미터에서 삼 미터 정도 크기의 인간형 괴물이었다.
흉측한 얼굴과 입술을 삐집고 나온 커다란 어금니,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과 큰 칼.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저건?”
“오……크다.”
놈들의 정체를 알아챈 이는 바로 브리엘이었다.
레빈이 물었다.
“저게 오크라고?”
“오크 맞아! 저렇게 누린내를 풍기는 종족은 오크밖에 없어. 오크가 왜 여기에?”
브리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의문에 답을 해 준 이는 바로 제온이었다.
“아무래도 이곳 지하에 오크의 흥미를 끌 만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네.”
“그게 뭔데?”
브리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아는 오크는 단순 무식 그 자체였다.
원래부터 강인한 육체를 타고난 오크에겐 환경에 적응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그냥 견디고 산다.
또 꽉 막힌 것을 싫어해 어지간하면 지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오크들이 지하로 들어갈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저 안에 먹이, 혹은 인간이…….”
브리엘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밖으로 나온 오크들은 늑대 마수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늑대 마수들이 제온 일행이 있는 곳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브리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우리 냄새를 맡고 오크들을 부른 모양이야.”
“저 늑대들이 그런 지능이 있다고?”
“보통 늑대가 아니야. 오크 기수들이 탄다는 블러드 울프야.”
“블러드 울프?”
“응! 사납고 잔인한 데다가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해. 나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하이 엘프 마을 어른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들은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오크들을 보는 순간 생각났다.
“취익! 인간!”
“냄새난다.”
블러드 울프의 울음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는지 오크들이 등에 올라탔다.
놀랍게도 오크들은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했다.
비록 듣기 싫은 숨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발음만큼은 인간과 똑같았다.
오크 기수를 태운 블러드 울프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인간 맞다.”
“먹이다. 잡아라.”
제온 일행을 발견한 오크들이 소리쳤다.
그에 엘로이가 발끈했다.
“건방진 오크 새끼들! 누굴 보고 먹이라는 거야?”
그녀가 미친 구미호를 꺼내 들고 오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취익! 엘프다.”
“엘프는 맛없다. 죽인다.”
오크들이 엘로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살기를 발산했다.
콰콰쾅!
엘로이와 오크 기수들이 격돌했다.
십여 마리가 넘는 블러드 울프와 오크 기수들을 상대로 엘로이가 미쳐 날뛰었다.
“꾸웨엑!”
“미친 엘프다.”
오크 기수들이 엘로이의 공격에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제온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오크들이 기어 나온 지하 통로였다.
지하에선 코가 썩을 것 같은 냄새가 풍겨 나왔지만, 제온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하로 들어갔다.
개미굴 같은 공간이었다.
모래로 이뤄진 벽은 무슨 수를 썼는지 무너지지 않고 용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벽을 따라 조그만 방들이 여러 개 있었다.
제온이 그중 하나를 열었다.
순간 피비린내가 훅 풍겨 나왔다.
피 냄새를 풍기는 물체를 확인한 제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안에 켜켜이 쌓인 물체는 다름 아닌 인간의 시신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의 시신들이 쓰레기처럼 뒤엉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크가 모래 아래 동굴을 파서 거처를 만들 리 없으니, 이곳은 분명 인간이 만든 곳일 것이다. 그러다 이 근처를 지나던 오크 기수들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시체들의 신체에 오크들의 이빨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제온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죽이고, 잡아먹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하나같이 깡마르고, 볼품없는 시신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려고, 모래 아래로 숨어든 사람들. 하지만 오크들은 기어이 그들을 찾아냈다.
싸움을 포기한 인간에게 허락된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디 다음 세상에는 평화로운 곳에 태어나길…….”
제온은 그들의 명복을 빌며 불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