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거대한 샌드웜이 폭발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사방으로 샌드웜의 잔해가 튀고, 바닥엔 깊은 구덩이가 팼다.
그 한가운데 유령화한 레빈이 있었다.
레빈에게서 발산되던 보랏빛 전류가 서서히 잦아들었고, 유령화도 풀렸다.
“하아!”
레빈이 이제까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샌드웜의 배 속에 들어가서 공격하는 것은 그에게도 모험이었다.
유령화하면 물리적인 공격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마수의 배 속으로 스스로 뛰어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두둑한 배짱이 필요했다.
다행히 레빈은 독심과 배짱의 소유자였다.
그는 목숨을 건 모험을 했고, 그 결과는 샌드웜의 죽음이었다.
제온이 레빈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잘했다.”
“형!”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면 돼.”
“네!”
레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은 레빈을 지나쳐 샌드웜의 목표가 됐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겨우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오빠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보다 작은 여자아이.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옷은 중세 시대의 가죽 갑옷을 연상시켰다.
네오 서울에서는 절대 입지 않는 투박한 디자인이었다.
두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들을 쫓아왔던 샌드웜도 무서웠지만, 샌드웜을 손쉽게 해치운 낯선 방문자들이 더 무서운 것이다.
제온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시선을 맞췄다.
“여기에 사니?”
“…….”
“어른들은 어디 있느냐?”
“…….”
그 후로도 제온이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브리엘이 나섰다.
“안녕! 내 이름은 브리엘이야. 보다시피 우린 이곳 사람이 아니야. 지나가던 길이지. 너희들에겐 관심도 없고, 해를 끼칠 생각도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너희들만 데려다주고 우린 또 떠날 거거든.”
“…….”
“말하지 않을 거면 우린 그만 떠날게. 우린 정말 바쁘거든.”
“정……말 우릴 집으로 데려다주고 떠날 거야?”
남자아이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브리엘이 슬쩍 미소 지었다.
“물론이지.”
“그, 그럼 부탁할게.”
“좋아! 그런데 너희들 이름은 뭐야? 최소한 이름은 알아야 할 거 아냐?”
“내 이름은 제이콥, 동생은 루시야.”
“그런데 둘밖에 없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같이 나온 어른들은 모두 죽었어.”
제이콥이 샌드웜의 잔해를 노려봤다.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어떻게 된 사연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어른들과 함께 나왔다가 샌드웜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샌드웜에게 잡아먹히고, 어린아이들만이 겨우 살아남아 도주하다가 제온 등을 만났다.
제온이 말했다.
“앞장서거라. 마수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제이콥이 루시와 함께 앞장서 걷고, 제온 일행이 뒤를 따랐다.
엘로이가 제온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 저 아이들만 데려다주고 떠날 생각이야?”
“봐서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거지?”
“말했잖습니까?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거 하난 인정. 아마 그게 엘프들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겠지.”
엘로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엘프들에게 인간 정도의 적응력만 있었으면, 네오 서울에 기생하는 것이 아닌 그들만의 도시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엘하룬이라는 이종족들만의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곳은 엘프들만의 도시는 아니었다.
아마 엘프들만 건너왔다면 그렇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지는 못했을 거다.
제이콥과 루시는 걷는 내내 흘깃흘깃 뒤를 돌아봤다.
처음엔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호기심이 강하게 떠올라 있었다.
두 아이는 이곳 토박이였다.
사막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었고, 외부인과는 단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태어난 마을에서는 외부인은 모두 적이라고 가르쳤다. 그만큼 그들의 마을은 폐쇄적이었고, 외부와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그런 마을에 과연 외지인들을 데려가는 것이 잘하는 짓일까 싶었지만,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곳에서 마을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수많은 마수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길을 어린아이 둘이서 헤쳐 나갈 수는 없었다.
결국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루시가 제이콥에게 속삭였다.
“저들을 데려가도 괜찮을까? 어른들이 싫어할 텐데.”
“어쩔 수 없잖아. 저들이 아니면 우리끼리 어떻게 마을로 돌아가?”
“그래도…….”
“오빠가 다 책임질게.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마.”
“알았어.”
루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이콥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의 천덕꾸러기인데 이 일로 인해 또 얼마나 구박을 받을지 걱정이 됐다.
그때였다.
아우우!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제이콥과 루시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화염 늑대다.”
“어떡해?”
“제기랄!”
화염 늑대는 이곳에서 가장 흔한 마수였다.
놈들은 늑대와 하이에나의 습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한번 먹이를 노리면 끝까지 따라붙고, 죽을 때까지 달라붙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놈들이 위험한 것은 무리 지어 몰려다닌다는 것이다.
일단 먹이를 포획하면 뼈까지 씹어먹기에 놈들에게 잡히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원래 이곳은 화염 늑대 서식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던 무리가 인간을 습격해 잡아먹었다.
인간의 고기 맛을 본 화염 늑대 무리는 떠나지 않고 아예 자리를 잡았다.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
아우우!
먼지를 일으키며 화염 늑대 무리가 나타났다.
놈들의 주둥이와 꼬리에서 화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서 화염 늑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슴속 깊이 각인된 두려움 때문에 제이콥과 루시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그때 엘로이가 나섰다.
그녀가 미친 구미호를 꺼내 들고 화염 늑대 무리에게 달려갔다.
“겁을 상실한 개새끼들에겐 몽둥이가 약이지.”
많게는 수백 마리까지 뭉쳐 다니는 화염 늑대지만, 지금 그녀 앞을 막아선 것은 겨우 수십 마리에 불과했다.
이 정도는 그녀에게 큰 위협이 아니었다.
“챠앗! 일루전 스피어!”
엘로이의 창, 미친 구미호가 순간 수십 개로 늘어났다.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짠지 구별할 수 없다.
화염 늑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엘로이의 공격이 쏟아졌다.
콰콰쾅!
깨갱!
크엥!
폭음과 화염 늑대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십여 마리의 화염 늑대가 숨통이 끊어졌다.
이어 엘로이가 살아남은 화염 늑대 무리 사이로 뛰어들어 창을 휘둘렀다.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졌다.
그녀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마리의 화염 늑대가 죽어 나갔다.
화염 늑대는 엘로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고 있어.”
엘로이는 순식간에 화염 늑대를 모조리 죽였다.
제이콥과 루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엘로이를 바라봤다.
“도대체?”
“마을 어른들보다 훨씬 강해.”
그들이 사는 마을에도 각성자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도 화염 늑대를 어쩌지 못하고 피해 다녔다. 그런데 엘로이는 너무 쉽게 화염 늑대 무리를 정리했다.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못했을 광경이다.
샌드웜을 순식간에 죽인 레빈, 화염 늑대 무리를 손쉽게 정리한 엘로이.
이들이 포함된 파티가 얼마나 강한지 아이들의 머리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엘로이가 죽은 화염 늑대들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아쉽게도 마정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에이! 쭉정이들밖에 없네. 아무래도 본 무리에 낙오된 녀석들인 거 같아.”
엘로이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일행에게 돌아왔다.
아이들에겐 일대 사건이었지만, 그녀에겐 크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 것이다.
제온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마수가 앞을 막아서는 일은 없을 거다. 출발하자.”
“네!”
제이콥이 대답과 함께 제온 일행을 마을로 안내했다.
한 삼십 분쯤 걷자 사암으로 이뤄진 산이 나타났다.
산이라고 해 봐야 높이가 겨우 백여 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경사도 가팔라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산 중턱, 벽면에 커다란 동굴 입구가 보였다.
동굴 입구에는 각성자로 보이는 사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제이콥이 말했다.
“저곳이 우리 마을이에요.”
“마수들을 막기 좋은 곳에 마을을 만들었구나.”
대형종은 막을 수 없지만, 어지간한 소형종들은 저 벽을 오를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덕분에 이제까지 마을이 유지될 수 있었다.
비록 위치가 외져 외부와 교류가 완전히 끊겼지만 말이다.
제온 일행이 가까이 접근하자 경비를 서고 있던 각성자들이 외쳤다.
“거기 멈춰라.”
“가까이 접근하면 공격하겠다.”
그들의 목소리엔 경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잠시만요. 잭 아저씨. 저희예요. 제이콥과 루시.”
“어? 너희들이 왜 거기에? 같이 나갔던 사람들은 어떡하고?”
“샌드웜의 습격을 받아 모두 죽었어요.”
“그런…….”
“이들이 아니었으면 저희도 샌드웜의 먹이가 됐을 거예요.”
제이콥의 말에 각성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들 마을은 외부와 단절한 채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을 구성원 스스로 외부와의 교류를 완전히 끊은 것이다.
그 때문에 외부인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각성자들이 말했다.
“모두 잠시 기다려라. 장로님들께 알릴 테니.”
“일단 저희만이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그럴 수는 없다. 허락 없이 외부인들과 접촉했으니 장로님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너희들을 들일 수 없다.”
“제기랄! 그러지 말고요.”
“마을의 규칙이다.”
“그럼 루시만이라도 들여보내 줘요. 그렇게 무리한 부탁은 아니잖아요.”
“규칙에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성자의 냉랭한 태도에 제이콥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빨리 알려 주세요.”
“기다려라. 마을 일엔 다 절차가 있는 법이니까. 거기, 당신들도 얌전히 있으시오. 섣불리 마을 진입을 시도했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각성자는 제온 일행에게도 경고했다.
제온은 어깨를 으쓱해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레빈이 엘로이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요?”
“그래 보이네. 저 아이들도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고.”
“무슨 사연일까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니까.”
“네! 그냥 궁금해서 해 본 말이에요.”
“저렇게 폐쇄적인 집단은 외부인에게도 적대적이야. 아마 저 마을에 들어가도 환영받진 못할 거야.”
오랫동안 네오 서울에서 살아온 엘로이는 사람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만 봐도 저 마을이 얼마나 폐쇄적인 곳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루시가 제이콥의 손을 잡았다.
“오빠, 괜찮아?”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아저씨들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개 같은 늙은이들.”
“조심해! 듣겠어.”
“들으라지. 이런 마을은 그냥 망해야 해. 그래야 정신 차리지.”
“쉿!”
그때 마을 입구에서 노인 십여 명이 나타났다.
그들이 바로 이 마을의 실세인 장로들이었다.
장로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제이콥, 어떻게 된 일인지 네가 설명해 보아라. 왜 외인들을 끌고 온 것이냐?”
“장로님들이 명령하신 임무를 수행하다가 샌드웜을 만나 모두 죽었어요. 이들이 아니었으면 저희도 죽었을 거예요.”
“모두 죽었다고?”
“네! 메튜 아저씨도 벅 아저씨도, 세라 아줌마도 실종됐어요. 그 썬 플라워를 채취하려다요,”
“크음!”
“이분들을 못 만났으면 우리도 죽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서 들여보내 주세요.”
“너희들은 기다려라. 저들과 대화한 후에 들여보내 줄 건지 결정할 거니까.”
장로들의 시선이 제온 일행을 향했다.
제온은 그들의 시선에 담긴 강력한 적의를 읽었다.